개인 탓 하기로는 최고인 일본

‘자기책임론’의 나라

2020-04-29     야기시타 유타 l 독립 저널리스트

일본은 전통과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하지만 이런 일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 있으니, 다름 아닌 '극도의 개인주의'다. 일본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던 아시아 경제위기(1997~1998) 이후, 일본의 지도자들은 경제적인 궁핍을 교묘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수법을 쓰고 있다. 실업자가 되든, 비정규직이 되든, 병이 나든 '잘못되면 전부 네 탓'이라는 논리다. 프랑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 '댁의 잘못이야'의 일본판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일본인 이마이 노리아키가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그는 납치될 때만 해도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8세였던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마이 노리아키는 걸프전으로 피해를 입은 아동들을 돕고자 이라크로 떠날 결심을 했다. 하지만 이라크에 입국한 직후, 이마이 노리아키는 다른 일본인 2명과 함께 20여 명의 무장단체 요원들에게 납치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라크 무장저항세력 ‘무자헤딘 여단’이었다. 

“무장단체는 저와 다른 일본인들이 미국 스파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이마이 노리아키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렇게 해서 이마이 노리아키는 계획했던 봉사활동의 꿈이 무산되고 9일 동안 억류되는 신세가 됐다. 무장단체로부터 풀려난 이마이 노리아키는 두바이에 있는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어서 이마이 노리아키는 형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너의 이번 일로 일본에서 비난을 받고 있어. 아버지도 권고사직을 당하실 것 같아.”

실제로 이마이 노리아키는 함께 납치된 다른 일본인 2명과 마찬가지로 ‘자기책임(일본어로는 ‘지코세키닝’, じこせきにん, 自己責任)’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비난에 시달렸다.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가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배싱>(1)이다. 이마이 노리아키를 포함한 일본인 3명에게 쏟아진 비난은, ‘자신들 마음대로 위험한 나라에 갔다가 납치된 사람들을, 왜 정부가 세금으로 구출해야 하느냐’는 비난이었다. 

“정말로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이 당한 일은 자기 책임이 큽니다. 위험한 지역에 간 것은 세 사람의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환경부 장관이었던 고이케 유리코(현재는 도쿄도지사)가 비난조로 했던 말이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도 “납치 피해자들은 정부가 구출 비용으로 쓴 금액을 일부 갚아야 한다는 정부 인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2)라고 거들었다.

이후 이마이 노리아키 가족의 우체통에는 편지 수천 통이 쌓였다. 편지 내용은 하나같이 이마이 노리아키를 ‘공금 도둑’이라 몰아붙이며 ‘자살’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왜 저를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이마이 노리아키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일본에서 물리적인 공격까지 당한 이마이 노리아키는 우울증에 걸렸고, 회복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너의 불행은 네 게으름 탓”

이 사건 이후 자기책임론이 거의 모든 사회문제에서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이마이 노리아키처럼 위험지역으로 간 사람들만이 아니다. 싱글맘, 노동자, 비만·폐암 등 생활습관병 환자, 성폭행 피해자 등도 같은 비난에 시달린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일본의 정서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정부 고위층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친구 한 명이 ‘나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런 내가 왜 운동도 하지 않고 과한 음주나 흡연을 해대는 이들의 건강을 위해 보험료를 내야 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아소 다로 재무성 대신이 했던 말(3)이다. 이 말에 숨겨진 뜻은 분명하다. ‘당뇨 같은 병에 걸리면 자기 책임이다. 건강을 위해 더 노력했어야 한다.’

자기책임론이 만연한 일본에서는 비난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자기 실패’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거의 모든 노숙자가 현재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자기 탓으로 생각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아사 마코토 도쿄대 교수는 폭로한다. 유아사 마코토 교수는 약 25년 전부터 빈곤퇴치 운동에 나서고 있다. “노숙자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까지 정부의 도움을 계속 거절하며 버티는 노숙자들도 있죠.”

유아사 마코토 교수가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그 결과 2012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 85%가 정부 보조금 수령을 포기했다.(4) 반면, 프랑스에서는 정부 보조금 수령을 포기한 사람은 35%에 불과하다.(5) “자기 책임은 연대의 반대말입니다. 비참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철저히 본인 탓이고, 사회나 타인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은 스스로 해야지, 타인이나 정부 기관에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요코하마에 위치한 간토가쿠인 대학의 나카시니 신타로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자기책임론은 사회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며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에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던 시기에 태어났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작가들도 있다. 자기책임론은 1990년대 중반에 신문칼럼, 정부 고위기관들이 발행한 자료에서 처음 등장했다. 금융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침체기를 맞았다. 2002년부터 일본의 공식 실업률은 5%대를 넘어섰는데, 이는 194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정규직 52.6%, 자살 56% 증가

1992~2002년 기간에 일본에서 정부보조금(프랑스에서 저소득층에 지급되는 적극적 연대 소득(RSA)에 해당)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40%나 급증했다. 이후 들어선 정부마다 단기직과 임시직, 일명 ‘히세이키(비정규)’를 포함한 비정규직법 시행을 완화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같은 기간 950만 명에서 1,450만 명으로 약 52.6% 늘었으며, 자살자 수는 2003년에 3만 4,427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1992년에 비해 56% 증가한 것이다.

일본 정부 총리실 산하의 자문위원회이자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는 경제전략회의는 기존의 사회모델이 지나치게 평등주의를 추구해 경기침체를 부추긴다며, 모델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도요타 대표이자 일본 재계 대표단체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프랑스 경제인 연합회 MEDEF에 해당) 회장이던 오쿠다 히로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유명한 다케나카 헤이조 등 경제전략회의 회원들은 자기책임과 자수성가를 기본으로 한 ‘경쟁력 있고 건전하며 창조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6) 그리하여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능력 있는 개인들을 우대하는 새로운 사회모델이 바람직한 모델로 인정받았다. 

경제전략회의, 경제학자들과 언론이 능력주의를 높이 사고 평등주의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자기책임론이 점차 일본 국민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와세다 대학의 사회학자 하시모토 겐지에 의하면, 자기책임론은 경제 엘리트층, 기업의 대표와 임원들 사이에서 특히 성공을 거두었다. 

“자기책임이라고 돌려버리면 불평등이 심해져도 지도자로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엘리트층은 자기책임론을 강조하며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사회학자 하시모토 겐지의 분석이다. 자기책임이 강조되면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무시를 받게 된다. “엘리트층은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게으른 탓이라고 주장한다.” 하시모토 겐지가 내린 결론이다.

이런 일본의 ‘자기책임론’에 대한 저항이 크지 않은 이유는,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라대학의 기노시타 미츠오 연구원에 의하면, 에도 시대의 지도층은 백성들의 상황이 어려우면 해당 지역에서 해결할 문제로 생각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일본에서는 1946년에야 ‘극빈자를 책임지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는 내용을 담은 법이 마련됐다. 

그전에는 정부가 시민들을 빈곤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정부의 빈곤퇴치 의무는 헌법에도 명시돼 있으나 원래 예전부터 일본에서 당연시된 ‘각자도생’과 ‘성과주의’에 매몰돼버릴 수 있다. 게다가, 자기책임론 지지자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뭐든 자기 책임이라는 원칙 속에서 살아야 하니 정말 힘든 일입니다. 자기책임론 지지자들은 어려움을 견디지 않고 사회에 불만을 호소하며 반항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자 나카시니 신타로가 말을 잇는다. 따라서 사회문제를 제기하며 투쟁하는 사람들은 ‘배부른 투정을 한다’라는 비난과 외면을 받는다. 정말로 비참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행동할 시간이나 방법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이유로 자기책임론이 자주 나오고 사회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네 탓’이라는 비난에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자기책임론 흔드는 인구고령화 

이마이 노리아키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산 지 15년이 흘렀다. 비정규직이 늘어난 지 15년이 됐다. 그런데 경제위기만큼 심각한 파급력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기책임론의 영향력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문제가 나오고 있다. 인구 고령화 문제다. 

2035년이 되면 일본인 3명 중 1명이 64세 이상인 고령자가 되고 경제활동 인구는 1,00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50%라는 기록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정부는 사회보장 지출 증가를 막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40년이 되면 일본 정부의 사회보장 지출액이 1조 5,830억 유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7) 

하지만 비정규직의 증가로 연금납부액도 줄어들고 있다. 2004년에서 2016년까지 부부 한 쌍이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5% 감소했다. 2016년 65세 이상의 빈곤률은 이미 19.6%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에 속한다.(8) 여기에 임금동결이라는 문제가 더해진다. 이미 노동자의 4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결과 중 하나가 임금동결이다.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에 의하면 민간기업의 시급이 1997~2017년 9% 하락했다.(9) 기업들이 줄이는 것은 시급만이 아니다.

“종신고용 모델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전부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대표되는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에서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마사키 요시히사의 설명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로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라고 보는지 묻자, 마사키 요시히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많이 벌겠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더 이상 모든 사람이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우울한 미래가 자기책임론의 종말을 가져올 듯하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했던 종신고용, 높은 임금, 안정적인 연금이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점점 먼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나머지는 은퇴하자마자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 사회학자 하시모토 겐지의 분석이다. 그에 의하면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온 일본인 다수가 은퇴를 앞두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자기책임론 지지자들도 결국,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능력과 무관하게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즉, 인구고령화가 자기책임론의 기반을 흔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학자 하시모토 겐지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강조했다. 너무 낙관적인 믿음일까?

한편, 이마이 노리아키는 사정상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청소년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를 세웠다. “특히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마이 노리아키의 설명이다. “저소득 가정의 아동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가 많지만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이마이 노리아키는 집단 괴롭힘 문제에 여전히 민감하다. 그 역시 집단 괴롭힘의 피해자였던 경험이 있어서다. “일본에서는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 청년들이 비난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청년들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을 바랄 뿐입니다.” 

이마이 노리아키의 비영리 단체는 저소득층의 아동들을 기업과 연결시켜주고자 한다.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으니까요.” 이마이 노리아키의 행동은 자신의 청춘을 망가뜨린 자기책임론에 저항하는 나름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이마이 노리아키는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글·야기시타 유타 Yuta Yagishita 
기자. 도쿄에서 일본 정치와 환경 문제를 주로 보도하고 있다. 프랑스 릴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연구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의 <배싱>, 2005년 칸 영화제 출품작으로 프랑스에서는 2006년 개봉. 
(2) <요미우리 신문>, 도쿄, 2004년 4월 19일.
(3) Yotaro Hamada, ‘당뇨병에 걸리면 개인 탓인가? 생활습관 병’, <아사히 신문> 홈페이지, 도쿄, 2019년 3월 30일, www.asahi.com (일본어 기사).
(4) Kensaku Tomuro,  ‘빈곤율, 가난한 노동자의 비율’, 야마가타 대학 법경제 학부의 연구(일본어), 2016년 4월.
(5) Sylvain Chareyron, ‘빈곤과 사회보장 수급권의 포기’, <Économie et prévision>, n° 213, 파리, 2018.
(6) ‘일본의 경제 회복 전략’, 경제전략회의 보고서, 1999년 2월 26일, 일본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도쿄, ipss.go.jp (일본어).
(7) ‘Japan's daunting long-term social welfare costs’, <재팬 타임스>, 도쿄, 2018년 5월 24일.
(8) <Panorama de la société 2019>, OCDE, 파리, 2019.
(9) ‘시급 9% 감소’, <니혼게이자이(닛케이)>, 도쿄, 2019년 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