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경제위기, 누가 비용을 치르나

2020-04-29     로랑 코르도니에 l 경제학자

위기는 늘 비슷하다. 일단 폭풍이 휘몰아치면, 선장은 연대를 외친다. 그러나 위험이 지나가면 어느새 단결력이 무너진다. 어떤 이는 직접 삽을 들고 배 밑바닥에 찬 물을 퍼내는 한편, 어떤 이는 상부 갑판 위에 올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재현되는가? 아니면 이번 코로나 전염병 사태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게 될 것인가?

 

세계의 현재 위기는 보건위기가 아닌 경제위기다. 아마도 중국 우한의 시장에서 처음 시작됐을 법한 나비의 날갯짓이, 글로벌 자유 자본주의의 취약한 고리를 따라 여정을 지속할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난 40년 간 손쉽게 돈을 벌어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저들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치사슬(기업이 재화 및 서비스 생산을 위해 자원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일련의 과정. 글로벌 가치사슬은 이 과정의 국가별 분업구조를 의미-역주)’을 재편해왔다. 

그렇게 손쉽게 이익을 주겠다는 약속 중 대표적인 것이 자본의 이윤증식을 위한 권모술수, 인건비 절감을 통한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경쟁, 적시생산방식(JIT·무재고시스템)(팔릴 만큼만 생산함으로써 재고가 없도록 하는 생산방식-역주), 린(lean) 경영(자재 구매에서 생산, 재고관리,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경영기법-역주), 자원 약탈, 계획적 진부화(기업이 기존 제품을 고의적으로 진부하게 만들어서, 제품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소비자가 새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전략. 일례로, ‘소니 타이머(소니(Sony)사 제품이 무상수리보증기간이 막 지난 시점에서 고장나는 현상)’가 있다-역주), 병원 내 마스크 및 병상 수 감축, 긴축정책 등이다.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건만, 벌써부터 경제학자들은 자문한다.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어떤 식으로?” 경제학자란, ‘비용’의 ‘비’자만 들어도 화색이 돈다. ‘비용’으로 밥벌이를 하는 자들이니, 이 황금 같은 질문을 할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들을 탓할 수 없을 듯하다. 비용문제는 현재 ‘정상으로의 복귀’를 지향하면서 모두 함께 고려해야 할 가장 중대한 문제가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관절 ‘정상’이란 무엇인가? ‘복귀’란 또 무엇인가? 앞이 꽉 막히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전망’이 정녕 존재하기는 하는가?

 

어떤 경제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현 위기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재 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상 우리가 앞서 경험한 어떤 위기와도 전혀 닮은 점이 없다. 현재 위기는 고전주의 경제학으로도, 케인스주의 경제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적, 기술적 장애나 생산요소(자본, 노동, 자원)의 결핍에 의해 발생한 공급충격으로 인해 일어난 위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돌발적인 수요하락으로 인해 발생한 위기도 아니다. 설령 지난 40년간 수요창출 시스템이 줄곧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 해도 말이다. 현재 위기의 가장 주된 원인은, 생산 시스템 전체를 갑자기 중단시키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노동력의 38%에 달하는 무려 12억 5,000만 명의 노동자가 현재 급격한 생산감소와 인력이동의 위험이 높은 분야에 고용돼 있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소매업, 숙박업, 요식업, 제조업”이라고 평가했다.(1) 위험은 이미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 일례로, ILO에 의하면 전 세계 노동시간은 2020년 2/4분기 동안 약 6.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종일제 일자리 약 1억 9,500만 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국제연합(UN)의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2) 현재 위기는 결국 무려 5억 명의 노동자를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런 만큼 ‘누가 비용을 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우리 눈앞에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미래로 눈길을 돌릴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즉, 현재 위기로 인해 치르게 될 첫 번째 대가는 재화 및 서비스 생산(유용성 및 유해성 여부와 무관하게)의 직접적인 소실이다. 아마도 이미 사라진 생산분을 만회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중단된 생산으로 인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는 아마도 노동자가 될 것이다. 아예 생산되지 않거나, 혹은 팔리지 않은 생산품으로 인해 노동자는 소득이 줄거나, 아예 사라질 테니 말이다. 사실상 이 부분은 우리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재 이미 치르고 있거나,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생산중단의 손실은 ‘노동자의 몫’ 우려

그러나 비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 사안이 아니다. 깨진 항아리 문제는 순식간에 깨진 조각을 다시 붙이기 위해 현재 혹은 미래의 노력에 관한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발치에는 어느새 국가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보장시스템은 현 위기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고, 생산급락에 따른 피해와 고통을 경감하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채무는 누가 부담한단 말인가?

물론 이것이 전자에 비해 덜 흥미로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첫 번째 청구서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이미 두 번째 청구서(국가가 짊어지는 채무)를 받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비용은 한편으로는 국가가 직접 겪는 생산급락에 따른 비용인 동시에, 첫 번째 비용을 사회보장기관들이 분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이나 가계와 마찬가지로 생산급락의 영향을 직접 겪으며 세수 결손(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유류세 등)의 형태로 손실을 감당하게 된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정부는 기업에 세금이나 사회보장분담금 납부를 연기해주고 있고, 기업에 대한 공여나 대출 보증 요구도 받고 있다. 한편 가계에 대해서도 (전면 혹은 부분적인) 실업수당의 형태로 대체소득을 지원하며 재정지원을 지속하거나 더욱 확대하고 있다. 아마도 내일이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인해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는 채무 인수, 재자본화(부실자산이 늘어 자본이 부족해진 은행에 자본을 늘려주는 것-역주), 국유화 등을 실행해야 할 필요성이 생길지 모른다. 

기업의 부채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에도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는 한층 급증해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2019년 10월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4%p 증가하는 경우를 가정해 연구한 한 가상 시나리오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앞으로 기업의 총 부실채권 규모가 순식간에 19조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2021년 민간기업이 짊어진 총 부채 규모의 무려 40%에 달한다.(3) 그러나 현 위기로 인한 생산감소는 이미 예측 수준보다 무려 2배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만큼 전망치를 재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현재 위기로 인해, 각국은 수개월 전 보다 훨씬 무거운 채무를 짊어지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누가 위기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두 가지 사항을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가 짊어진 채무 비용은 향후(5년, 10년 혹은 30년 후) 채권자에게 상환할 금액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대개 국가는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에 대해 상환을 연기(롤 오버)하고, 채권자들은 과거 발행된 채무증서를 새로운 증서로 돌려받는다. 즉 채권자에게 상환이 이뤄지기는 하나, 진정한 상환이 아닌 셈이다. 

둘째, 국가가 짊어져야 할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 대비하려면, 자금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경제학자 브뤼노 티넬이 말한 것처럼, “빚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로 예금 역시 많다고 말해야”(4)하는 것이다. 사실상 국가가 치르는 채무비용은, 차입금을 상환해나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년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그 비용은 장기적으로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칠 것인가? 나아가 그 비용을 완전히 털어내는 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 털어낼 것인가?

 

패닉발생 시, 신용도에 따른 가산금리로 남유럽 국채 위기 고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의 국채 금리는 아직 현격히 급등하지는 않았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는 지금도 여전히 10년 만기 1~2% 명목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의 금리도 여전히 1% 이하에 머무른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한다면, 이들 국가는 제로에 가까운 실질금리,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을 차입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채 비용은 향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게다가 실질적으로 누구도 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적어도 국채급등으로 인해 금융계가 패닉에 빠져, 공포(때로 우리가 이들을 ‘위험애호자’라고 즐겨 부르는 것처럼, 공포는 이들을 추동하는 주요 원동력이다)의 대가를 추가로 더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만일 가계와 기업의 예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들이 심각한 패닉상태에 빠진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경우 정부와 화폐당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공황상태가 정말로 발생한다면, 어느 정도 선별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유로존 국가들에게 요구되는 국채금리 스프레드(채권의 발행이나 은행 대출 때 신용도에 따라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뜻한다-역주)가 확대될 것이다. 당연히 남유럽은 북유럽에 견줘 더 큰 고초를 겪을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아마도 지난 2012년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정책을 수행하는 동안 줄곧 제공해준 것과 같은 ‘우산’ 혜택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당시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유럽중앙은행이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 국채 매물이 쏟아지는 경우(그로 인해 국채 금리도 급등하는 경우). 유럽중앙은행이 직접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해줄 것이라고 선언한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확실하게 담보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채 규모가 얼마만큼 확대될 것인지, 또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GDP의 120%? 150%? 혹은 200%?) ‘최후의 매수자’도 잠재우지 못할 만큼 시장의 불신이 확대되는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지점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다. 예금자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보다 훌륭한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국채 위기가 재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채 일부를 털어낼 방법, 부담을 완화할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결국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체 비용은 누가 부담한단 말인가?”

사실 이 정도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주류 경제학도 연장통 속에서 유용한 도구를 찾아내기 어렵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했던 장 티롤(프랑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대표주자. 2014년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며 스웨덴 은행이 수여한, 흔히 노벨상이라고 미디어가 보도하는 경제학상의 수상자)은 자신이 표방하는 이론의 경계를 훌쩍 넘어, 이웃으로부터 연장을 빌려오는 궁색한 처지에 몰렸다.

 

위기상황에서 해결책 못 찾는 주류경제학

경제학자 장 티롤은 기사에서 국채급등을 해결하기 위한 네 가지 해법을 하나씩 분석했다.(5) 첫 번째로 그가 거론한 해법은 국채 일부를 상각 처리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해법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위해 거론한 듯했다. 이 방법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신용도를 훼손할 수 있는 매우 ‘까다로운’ 해법이라고 티롤은 단정했다. 이 방안을 택한다면 신용도가 떨어진 국가가 단기간 내에 다시 자금을 차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결국 세입과 세출의 균형에 의지한 재정정책을 운용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마이너스 수요 충격이 크게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방안은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지름길일 뿐”이라고 티롤은 일갈했다. 하지만 부유층과 금리소득자의 희생에 의지한 이 방안이, 그렇게 나쁜 해법은 아니다. 이 방법은 순식간에 국가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6)

두 번째 해법은 세금을 더 걷고 예산지출을 줄임으로써, 새로운 채무 발행 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티롤의 설명에 의하면, “각 나라가 부유층을 대상으로 재산세 등 특수한 세금을 징수하거나, 나아가 국가재정상 긴요한 경우 중산층에게까지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이전의 긴축재정으로 되돌아가되, 계층 간 분배에 더욱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제학자는 이 해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이 ‘장기적인’ 긴축재정 정책에 만족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더 효율적인 분배에 입각한 이 해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을 건전화하고, 채무를 줄여나가야 한다”(7)라고 덧붙였을 뿐, 이를 위해 누가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 해법은 무엇인가? 유로존 차원에서 국채 일부를 회원국들이 상호 부담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코로나 본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티롤의 기사가 게재되고 며칠 후, 북유럽 국가들은 이 방안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실상 코로나 본드도 아주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적어도 국채 금리 상승이 일부 회원국에만 그치는 사례라면 말이다. 이 경우 이 국가들은 다른 평균 수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신용도 높은 국가의 덕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유로존 대부분 국가들로 시장의 불신이 확대된다면, 이런 해법도 무용지물이 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티롤 본인이 추천하는 네 번째 해법이다. 그것은 바로 부채의 화폐화(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정부의 부채나 재정적자를 해소해주는 것을 의미-역주), 즉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주는 방안이다. 티롤은 이 경우 더 이상 상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자금을 상환해야 할 공식적인 만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시적인 매입이 사실상 영구적인 매입이 되는 셈이다.” 각 나라는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때가 돌아오면,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새 채권을 발행한다. 그러면 유럽중앙은행이 유통시장에서 이 채권을 곧장 다시 매입해주는 것이다. 

대출한도를 끊임없이 갱신하듯, 유럽중앙은행에 진 채무는 그런 식으로 영구적인 채무로 영원히 남는다. 물론, 국가의 입장에서는 걱정거리를 확실히 더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체 그 이자는 누가 부담하는가? 그런데 장 티롤은 이 문제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어떻게든 혁신적인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채로 인한 실질적인 부담은 영원히 남을 테니 말이다.

 

국가와 중앙은행의 협의 아래 국채 일부를 화폐화해서 상각처리하는 파격적 해법 필요

사실 가장 간단한 해법은, 아마 중앙은행이 매입한 채권을 손비 처리해버리는 것일 수 있다. 한 마디로 협의에 의한 국채 상각을 하는 것이다. 이 해법이 지닌 장점은, 민간기관(당연히 그들은 유럽중앙은행이 제대로 값만 쳐준다면 채권을 매각하는 데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며, 인플레이션을 조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상 국채 매입을 위해 민간기관에 제공된 유동성이 그들의 재산을 불려주거나, 가상소득을 창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국가가 가계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민에게 뿌리는 돈을, 밀턴 프리드만은 ‘헬리콥터 머니’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헬리콥터 머니’ 개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협의에 의한 대대적인 국채 상각은, 유럽중앙은행에 막대한 자산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의 자기자본이 엄청난 마이너스 수준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방법일까? 국가가 유럽중앙은행에 자금을 수혈해야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암담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제도적 차원에서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 방안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경제적이거나 기술적이거나 제도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장애물이다. 현 정치 지도층 자신이, 항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것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가 과거의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명목임금 인상 등 완만한 인플레이션 유발로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 회복해야

사실 티롤은 생각해내지 못했을, 해법이 하나 더 있다. 유럽 차원에서 각 국이 함께 임금정책을 조율해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제도를 구축하는(혹은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명목임금(즉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상승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유로존 차원의 조율만 가능하다면(정부, 노조, 유럽중앙은행), 임금에 기초한 이 인플레이션 제도를 관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제도는 각 회원국 간에 명목임금 인상 속도를 차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그 결과 각 회원국이 더 이상 평가절하를 시행할 수 없게 된 이후로 누적된 실질적인 환율 격차를 해소할 길이 열릴 것이다). 또한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을 회복시켜, 가격 경쟁력 격차로 인해 발생한 회원국 간 무역 불균형도 해소해줄 것이다.

완만한 인플레이션 제도는 자금대출자인 부유층의 희생에 의지해, 국채 부담을 널리 경감시킬 수 있는 해법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전쟁을 극복할 때도 언제나 이 방법에 의지해왔다(사실 지금 또한 전쟁 상황 아닌가). 우선 정부는 금리생활자(대부 자본가)에게 자금을 앞당겨 군비를 충당한 후,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 이미 화폐의 구매력이 상당히 하락한 시점에서 빌린 돈을 되갚는 셈이다. 

이 제도는 빈곤층의 이익은 전혀 침해하지 않는다. 빈곤층은 국가에 빌려줄 돈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로존 국가가 서로 조율해서 차등적으로 임금에 기초한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을 운용한다면, 금리생활자(대부 자본가)의 기여에 의지해, 완만한 방식으로 천천히(연간 2~3%의 통화구매력 하락률의 속도로), 누적된 부채 부담을 경감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8)

국채 일부를 화폐화해서 이를 상각처리하거나, 혹은 임금정책을 통해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방안은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당대 자국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계속 지속되거나 혹은 더욱 악화된다면, 결국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인이나 관료는 그들이 알고 있는 이론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참담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지어 본인들의 원칙에 의하면 효과가 없다고 간주되는 방법까지 동원하려 할 것인데, 대개 그것은 주류 경제학에도, 비주류 경제학에도 해당하지 않는 방법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9) 

아마도 그런 징후 중 하나가 바로 알랭 맹크의 변절인지 모른다. 이제 그는 국가가 영원토록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영구적인 채무’에 대해 주장한다.(10) 장 티롤이 최근 보인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연합기구와 정치지도층, 심지어 ‘자신이 배운 이론’에까지, 실로 너무나도 다른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경제학자. 릴 대학 교수. 주요 저서로 『L’economie des Toambapiks. Une fable qui n’a rien d’une fiction (국내판 제목: 해피스톤은 왜 토암바 섬에 갔을까)』(2010), 『Pas de pitié pour les gueux 가난한 자들을 동정하지 말라』(2000) 등이 있으며, 현대사회의 광기를 폭로한 풍자성 공상과학 소설 『La Liquidation 해체 사회』(2015)를 쓰기도 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Observatoire de l'OIT : le Covid-19 et le monde du travail, 2e édition 국제노동기구 관측: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와 노동세계’, 제2판, 제네바, 2020년 4월 7일. 
(2) Chris Hoy, Eduardo Ortiz-Juarez, Andy Sumner, ‘Estimates of the impact of covid-19 on global poverty’, 연구자료, United Nations University, 헬싱키, 2020년 4월 8일.
(3) ‘Global Financial Stability report’, 국제통화기금(IMF), 워싱턴, 2019년 10월.
(4) Bruno Tinel, 『Dettes publiques : sortir du catastrophisme 국채: 극단적 비관론에서 벗어나기』, Raison d'agir, 파리, 2016년.
(5) ‘Jean Tirole : quatre scénarios pour payer la facture de la crise 장 티롤 : 위기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네 가지 시나리오’, <Les Echos>, 파리, 2020년 4월 4일.
(6) Renaud Lambert, ‘Dette publique, un siècle de bras de fer 더러운 채무 갚아야 하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5년 3월호.
(7) Gérald Darmanin, Bruno Le Maire, ‘Le plan d’urgence révisé à 100 milliards d’euros 1조 유로로 수정된 위기계획’, <Les Echos>, 파리, 2020년 4월 9일.
(8) 경제 메커니즘에 대해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Compétitivité-coût, taux de change réel et déséquilibres commerciaux 가격경쟁력, 실질금리 그리고 무역불균형’을 참조, www.monde-diplomatique.fr/61736.
(9) John Maynard Keynes, 『La Pavureté dans l'abondance 풍요 속 빈곤』, Gallimard, 파리, 2002년.
(10) ‘Alain Minc : pour une dette publique à perpétuité 알랭 맹크: 영구적 국채를 위해’, <Les Echos>, 2020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