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 돌아온 독방의 시대
전쟁 이후, 광기와 돌봄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빛을 잃어감에 따라 정신의학은 위기에 빠졌다. 환자를 감금하고 격리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면서, 인권침해 문제가 심각해졌다. 의료분야 종사자들은 이런 학대 상황을 끝낼 방법을 모색 중이다.
반항하는 환자를 양쪽에서 잡을 수 있도록 2개의 출입문이 마주보고 있다. 침대는 바닥에 고정돼 있고, 세면대나 변기가 없는 방도 있다. 요강에서는 대소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입원한 지 1년이 되어가는 한 환자는 사지를 결박당한 채 한쪽 팔로 대야를 바닥에 놓을 수 있게 끈을 조절해주는 ‘특별 배려’를 받았다. 대개의 경우 호출버튼은 없다. 따라서 환자는 도움이 필요하면 몸에 상처가 날 만큼 문을 두드려야 한다. 결박당한 경우 고함을 질러야 한다.
식사는 주로 바닥에 앉아, 침대를 탁자 삼아서 한다. 환자가 식사를 할 때는 2명의 간병인이 서서 관찰한다. 자살예방을 위해, 환자를 벗은 채로 두는 경우도 있다. 옷을 입더라도, 병원에서는 개인 소지품이 금지사항이므로 병원에서 제공하는 환자복만 입을 수 있다. 환자의 입원기간은 줄곧 잊혀진다. “오래 전부터 여기서 일했던 간병인은 그 환자를 계속 봐왔다”라는 식이다. 방문도 금지된다.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도록 독방에 CCTV, 마이크로폰, 열화상 카메라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정신의학의 위기, 가장 큰 피해자는?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 수용시설의 인권보호 감독관 아델린 아잔이 작성한 보고서의 일부다. 아델린 아잔은 정신병원 실태를 조사한 후 2016년 3월 엥 정신병원(부르강 브레스 소재), 2018년 3월 생 테티엔 대학병원(루아르 소재), 2019년 11월에는 소트빌 레 루앙에 있는 루브레이 병원(센 마리팀 소재)에 ‘긴급 시행 권고안’을 제시했다. 아잔의 보고서에 의하면 환자의 권리는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었다. 정신의학의 위기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환자다. 앞서 언급한 환자들은 결박과 격리수용을 당한 이들인데, 거리에도 정신질환자들은 존재한다. 노숙자들 가운데 30%가 중증 정신질환 증세를, 수감자의 35~45%가 정신질환을 보인다.(1), (2)
그리고 가정과 병원에서조차 정신질환자를 방치해서 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한다. 가족은 간병 방법을 모르고, 병원에서는 인력·예산 부족이나 안전 등을 이유로 환자들의 활동을 제한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력감, 권태, 질병의 ‘만성화’로 인한 자폐증상의 심화를 불러온다. 하지만 언론은 이토록 충격적이고 심각한 위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다만 정신건강검진센터 예약의 불편함, 전담 의사와 병상수 부족 등의 문제만 언급할 뿐이다. 즉,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 정신의학의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정신질환자들을 강제수용하지 않고 지역 사회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역사회 정신의학’을 단지 정신의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시대사조였다고 생각할 뿐, 실질적인 행정 제도로 정착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광기’를 정의해야 한다. 지역사회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자를 정상인과 다름없는 한 인간으로 인정한다.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카에타노 베네데티는 “우리가 실수를 해도, 환자를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그도 우리를 이해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3) 이렇듯 광기를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정신질환자도 감정, 불안, 욕구, 고통, 개인사를 지닌 인간인 것이다. 즉, 광기는 인격체 자체가 겪는 질환이라는 점에서 다른 질병과는 구별된다. 정신질환자도 인간이므로, 사회 속에서 공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세기 동안 정신질환자를 소외시키고, 추방하고, 박해하고, 불태우고, 감금했던 역사를 종결시켜야 한다. 프랑스 해방 후 지역사회 정신의학을 주창했던 이들의 용기는 프랑스 혁명 시기, 비세트르 병원에서 정신질환자를 결박한 쇠사슬을 끓고 인도주의적 돌봄을 강조했던 현대정신의학의 시조, 필립 피넬(1745~1826)에 비견할 만하다. 필립 피넬은 “의사는 항상 정신질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강화하는 치료법을 ‘도덕치료’라고 명명했다.
사실 돌봄의 방식은 광기에 대한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 정신질환자가 타인과 사회공동체 안에서 공존하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단지 수용소 담장을 허문다거나, 최근 의회보고서의 제안처럼 단순히 통원치료를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4) 충분한 돌봄시설과 유능한 간병인이 필요하며, 거리나 감옥으로 유기될 위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돌봄은 환자와의 인간적 관계가 핵심이다. 약물은 부수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정신의학은 사회가 고통받는 환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협동해야 한다. 기관, 시장, 의원, 사회복지사, 체육시설, 법조인, 소방관, 경찰, 공공주택, 문화센터, 가족 등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자들의 참여하는 새로운 정신의학이야말로 단지 협소한 의학적 지식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으며, 입원중심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다.
정신의학자 필립 코에클랭이 “병원의 주인은 바로 환자다”라고 단언했듯이, 환자의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5) 환자를 위해 간병인을 교육하고, 퇴원 후에도 지속적으로 돌봄이 가능한 의료팀을 구성해야 한다. 개인 맞춤형 치료를 실시하고, 환자의 방문이 수월하도록 모든 지역에 정신건강검진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돌봄은 정신질환이라는 협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전체 사회관계망 속에서 실천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신시아 플뢰리의 말을 인용하면, “돌봄은 인본주의적이어야 한다.”(6)
1960~70년대에 탄생한 이런 혁신적인 정신의학이 어떻게 퇴보한 것일까? 퇴보의 이유로는 정신의학자들의 참여 부족, 생물학적 접근방식의 대두, 병원의 관료주의, 인력과 재원 부족, 정신건강검진센터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광기에 대한 인식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들 수 있다. 지역사회 정신의학의 ‘가치’에 맞서는 개인주의, 경쟁, 소비자 중심주의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 사고가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정신의학은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하기 시작했다.
과학자, 경영자, 그리고 경찰의 관점
오늘날 정신질환에 관한 접근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과학적 접근방식이 있다. 정신병은 다른 질병과 다를 바 없이, 뇌 또는 신경계 이상이나 유전 때문에 발생했다는 관점이다. 지역사회 정신의학 창시자들은 정신의학은 의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와 접점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과학적 접근방식은 다르다. 정신분석학은 낡은 것이며, 과학만이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접근방식에서는 환자를 사물화한다. 정신과 의사는 한 인격체로써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병 자체만을 본다. 결국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는, 이상행동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 근절하고자 한다. 환자를 돌보려 하지 않고, 단지 ‘고치려고’ 한다. 따라서 약물치료가 핵심이 되며, 이는 제약회사가 가장 반기는 치료법이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만으로 광기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정신의학 연구자 칼렙 가드너와 아서 크라인만은 미국의 저명한 의약학 학술지, <더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드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전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최근 이룩한 성과는 놀랍다. 그러나 병원이나 보호시설에 있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므로, 연구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7)
그리고 생물 정신의학은 지금까지도 정신질환에 대한 완벽한 이론적 모델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과학적 접근의 허점을 짚었다. 2000년에 발간된 미국 정신의학의 바이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5차 개정판이 2013년에 출간됐을 때,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정확한 진단기준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해결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광기에 대해 근거 없는 두려움만 확산시킬 뿐이다.
두 번째는 비용관리중심 접근방식이다. 사실 정신질환은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큰 병으로 인식돼왔다. 따라서, 노동자가 조현병에 걸렸을 때 ‘고친다’는 것은 상당히 비경제적인 일이다. 회수할 가능성이 희박한 돈을 ‘투자’할 이유가 있겠는가? 지역사회 정신의학은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수용한 후 진단을 내렸으나, 비용관리중심 접근방식은 환자를 수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신의학을 개편했다. 그리고 ‘비용절감’을 위해 환자에 대한 개별적인 배려 없이 여러 정신의학 분야를 통합시켜버렸다.
그 결과, 정신병원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환자 관리를 맡은 병원은 환자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시키는 ‘회전문 정책’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만성 환자는 기관이나 가정에 ‘관리’를 맡겨버린다. 병원장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경영자다. 2008년 안토니 병원에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병원장이 사장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비용절감을 최우선시하는 병원에서 인도적인 자세로 환자를 돌본다는 게 가능한가? 수익이 우선시되는 구조에서, 직원들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료수집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환자를 열심히 돌보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안전중심 접근방식이 있다. 이 방식은 위험을 강조한다. 2008년 안토니 병원에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간병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신병은 위험한 것이므로,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의무는 사회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후임 대통령들도 같은 태도를 취했고, 이에 따라 어이없는 대책들이 속속 나왔다. 무려 7천만 유로를 투입해 안전시스템을 정비하고 경비를 고용했으며, 병원 독방을 확충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정신 질환자는 예측불가한 폭력성이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이런 인식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심을 되살렸다.
병원을 방문하는 이들은 일단 증상을 완화하는 주사 몇 대를 맞은 다음, 질문을 받는다. ‘정신병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생활계획을 세웠는지’가 질문의 핵심이다. 그리고 나면, 환자는 이 계획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면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중증환자와 대부분 환자는 이런 시도에 실패한다. 실패할 경우, ‘부적응자’로 분류되는데, 그렇게 분류되는 순간, ‘돌봄’이 아닌 ‘관리’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과학만능주의, 약물처방중심 정신의학, 환자방임과 사물화, 수익에 혈안이 된 병원, 턱없이 부족한 재원, 무관심... 정신의학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원인들이다. 간병인은 무력감에 빠져 보람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잔이 비난했던 야만적이고 끔찍한 학대가 공공연히 자행된다. 정신의학의 위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위기다. 정신질환자들만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 인간 존엄성의 부정은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위험에 대해, 철학자 앙리 말리네이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정신의학에서 인간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알아차리는 인간이 드물다. 인간이 점차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8)
글·파트릭 쿠프슈 Patrick Coupechoux
정신의학 전문기자. 현대 정신의학의 문제점에 주목하여 보도하고, 보다 전문적인 병원의 구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Un homme comme vous. Essai sur l’humanité de la folie 당신과 같은 인간, 정신질환자의 인간성에 관한 에세이』(Seuil, Paris, 2014년)가 있다.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Alain Mercuel, ‘SDF. Aspect psychopathologique et comportement 노숙자, 정신병학적 증상과 행동’, <Bulletin de l’Académie nationale de médecine(국립의학한림원저널)>, Paris, 2013년 2월 5일.
(2) ‘Prison et troubles mentaux : comment remédier aux dérives du système français 감옥과 정신병: 프랑스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Rapport au Sénat(프랑스 상원 보고서)>, 2010년 5월 5일.
(3) Gaetano Bededetti(1920~2013), 『a Psychothérapie des psychoses comme défi existentiel 실존적 과제로서 정신병 심리치료』, Erès, coll. <La maison jaune>, Toulouse, 2003년.
(4) <Rapport de la commission des affaires sociales sur l’organisation de la santé mentale 정신건강에 관한 사회 협력 위원회 보고서>, Assemblée nationale, Paris, 2019년 9월 18일.
(5) Edmée, Philippe Koechlin, 『Corridor de sécurité 안전 대피로』, Edition d’une, Paris, 2019년.
(6) Cynthia Fleury,『Le soin est un humanisme 인도주의적 돌봄』, Gallimard, coll. <Tracts>, Paris, 2019년
(7) Caleb Gardner, Arthur Kleinman, ‘Medicine and the mind: The consequences of psychiatry’s identity crisis’,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Boston, 2019년 10월 31일.
(8) Henri Maldiney (1912-2013), ‘L’homme dans la psychiatrie 정신의학과 인간‘, <Revue de psychothérapie psychanalytique de groupe 단체 정신분석 심리치료>, n° 36, Toulouse,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