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공제, 민주주의의 젖줄

2011-04-08     자크 슈마랭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는 19세기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다. 현 상호공제조합의 원조인 상호공제원조회사의 설립은 경제적 차원에서 투쟁 결과를 다수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 투쟁 성과의 대중적 공유

1944년 3월 15일,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CNR)는 전후 프랑스에 ‘더 공정한 사회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가치와 원칙이 담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발표된 개혁안 중에서 사회보장제도 구축 방안은 국민 화합을 향한 길이자 모든 시민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사회적 획득물, 유례없는 진보적 제도로 평가됐다. 이렇게 구축된 사회보장 시스템은 노동조합운동의 지원을 받으며 돈의 권력에 대항하는 성벽으로 기능해왔다.
국가적 차원의 연대 메커니즘으로서 프랑스 사회보장제도(Sécurité Sociale)는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다. 상호부조운동 역시 초기의 사회적 근거를 상실하면서 직업 단위 조합과 거리를 둔 채 개인 자유 가입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1967년부터 사회보장제도가 조금씩 해체되면서 건강과 연대, 상호부조주의, 공동의 목적으로 수렴되는 개인들의 자발적 연대 같은 가치가 상업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피에르 브르고부아 정부(1992~93)에서 사회부 장관을 지내고, 1979∼92년 프랑스 상호공제조합(La Mutualit? Fran?aise) 회장을 지낸 르네 퇼라드는 “전후의 결정적 국면에 노동계와 좀더 밀접하게 손을 잡았어야 한다”고 본다. 결정적 전환기에 있던 프랑스 사회의 경제·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인식했다면 공제조합 모델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항상 상호부조론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마시프(Macif) 그룹(1)은 창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속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사회 속에 뿌리를 내렸다. 마시프 그룹은 독립 경영자 그룹뿐 아니라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복지경제까지 ‘거버넌스’를 확대했다. 개인보험 분야에서도 ‘자발적 연대’와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선택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상호공제법에 의해 운영되는 ‘마시프상호공제조합’(Macif-Mutualit?)이다.
상호부조론과 사회운동의 역사적 관계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보장제도를 ‘상업화’하려는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마시프상호공제조합은 연대·책임·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막대한 책임을 안고 있다.

연대와 책임에 기초한 모델

혹자는 보험이 근본적으로 연대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다. 위험(Risk)을 공동으로 상호 분담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단지 금융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보험도 존재한다. 반면 상호공제조합은 사회연대, 특히 세대 간 연대를 실천하며 의료 행위에서도 한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제공하는 상호공제는 일종의 정치적 선택이다. 따라서 연대란 상호공제조합이 조합원들과 함께 실행하는 모든 것의 총합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식으로 마시프상호공제조합은 조합원이 일상생활에서 겪을지 모르는 사고나 직업·사회·가족 생활에서 만나는 갖가지 예기치 않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연대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조합은 조합원의 납입금을 수당 형식으로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또 의료 시스템 규제 방식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의무를 진다. 상호공제조합과 결합된 의료서비스는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과 규제를 동시에 가능하게 해준다. 의료기관과 사회보장제 집행기관 사이에 맺는 협정은 의료진과 조합 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각 조합원 역시 책임을 진다.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공동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책임은 상호공제조합 내 각 소속기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조합원은 부분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책임을 지면서 동시에 조합의 장래에 공동 책임을 진다. 각자의 책임 수용은 곧 민주주의 원칙을 구현하는 길이다.
상호공제조합 가입은 그 자체로 상호부조운동 참여의 의미가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표들이 모이는 조합 총회는 상생 원칙을 확인하는 해방과 창조의 장이다. 국가와 시민 사이의 매개자로서 상호공제조합은 건강한 민주주의 확립과 시민의식 발전에 기여한다.
‘연대’, ‘책임’, ‘민주주의’라는 세 가지 가치는 노동조합운동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연결고리다. 양쪽을 혼동해서는 안 되지만, 상호공제조합과 노동조합운동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주체로 서며 삶 속에서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사회·직업 분야를 포함하는 마시프 그룹의 조직 체계 역시 이런 가치들을 구현하고 있다. 상호공제조합은 사회운동에 경험을 제공하고 노동조합운동에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시장에서 기업의 거대화가 진행되는 이 시점에 ‘거버넌스’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상호조합들은 합병을 통해 사회적 기초에서 멀어지고 있다. ‘직접 마케팅’(Direct Marketing)은 결코 주민 곁을 찾아가는 사회복지를 대신할 수 없다. 조합 통합에서 비롯된 괴리 현상을 극복하려면 조합의 대의적 성격을 강화해 임금노동자와 피보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사회운동과의 협력은 조합원과의 일상적 유대를 강화하는 데 좋은 방법이다.
시작 단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주체들 사이에 공감을 이끌어내자는 제안을 유토피아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마시프 그룹이 추구하는 모델 역시 이 개념에 근거한다. 이처럼 다양한 조합조직 사이에 맺어진 유대관계는 여러 공제조합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연대는 우리 모두가 기여자이며 동시에 수혜자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상호공제조합은 공론의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제조합운동 역량이 통일될수록 그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공제조합운동의 임무는 단지 개혁을 지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주도해가는 데 있다. 상호공제조합은 사회복지를 둘러싼 각 주체들이 서로 만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다. 여러 제안이 제출되고 구체적이면서도 조합원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 위에 합의가 도출되는 만남과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상호공제조합은 국가적 연대와 개인의 자발적 연대를 보충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적 연대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프랑스 국민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 여러 공제조합과 보험기관을 통해 구현되는 개인의 자발적 연대는 국가의 사회복지 원칙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경제의 문제 넘어 사회의 문제

우리는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성장의 시대를 살아왔다. 관건은 ‘국가 사회보장제도’와 ‘자발적 연대를 통한 보장’ 사이에 어떻게 예산을 분배할지다. 후자는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상호공제조합은 오늘날 특정 위험을 선별한 뒤 국가가 책임질 능력이 없다는 식의 논리로 사회보장제도를 해체하려는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이는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선택의 문제다. 과연 국가적 연대를 통해 유지되는 사회보장제도의 원칙을 지켜나갈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보자. 상호공제조합은 최초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할 때의 근본 가치를 현대사회의 현실에 맞게 다시 살려냄으로써 가입자에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프랑스 사회 모델 수호에 앞장설 것이다.

글 · 자크 슈마랭 Jacques Chemarin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정식 명칭은 ‘프랑스 상인, 산업생산자, 산업·상업 노동자 상호공제보험’(La Mutuelle d’assurance des commerçants et industriels de France et des cadres et des salariés de l’industrie et du commerce). 1960년 자크 마르테와 자크 방디에가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