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를 거부한 아일랜드의 총선결과

2020-04-29     줄리언 머실 l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 연구원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유럽의 지도자들은 유럽위원회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언(때로는 강압)에 따라 긴축재정 정책을 펴왔다. 이 정책노선은 곧바로 대중시위의 물결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함께 전통적인 예산정책을 거부하는 급진적인 정당과 조직이 등장했다. 영국의 제레미 코빈 노동당 당수,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좌파당 대표와 포르투갈의 좌파블록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스페인의 급진 좌파 정당 포데모스에서부터 그리스의 정당 급진좌파연합에까지 영향을 끼쳤다.(1)

아일랜드 공화국(이하 ‘아일랜드’)은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24.5%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가장 표를 얻은 신 페인(Sinn Féin)당(1947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창당했으며, 현재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는 당. 신 페인은 아일랜드어로 ‘우리 스스로(we ourselves)’라는 뜻-역주)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좌파 민족주의 진영 정당의 지도자들이었다.

100년이 넘도록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아일랜드를 통치해온 두 정당은 중도우파 성향 피아나 파일(FF)당과 피너 게일(FG)당이다. 2007년 선거에서 무려 68.9%의 득표율을 자랑했던  FG당과 FF당은 점차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2011년 53.6%, 2016년 49.8%, 2020년에는 43.1%의 득표를 했다. 한편, 최근 선거에서 좌파 및 중도좌파 정당이 받은 표는 41.9%를 기록했다. 

이런 역사적 변화는 2008년의 경제위기 이후 강화된 신자유주의 체제를 대중이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일랜드 지도자들은 위기 이후부터 실시해온 규제완화 정책과 금융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긴축재정 정책을 추진했다. 2008~14년, 무려 300억 유로의 예산이 삭감됐다. 아일랜드 국내총생산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실업률은 몇 년 사이에 3배로 치솟아 2012년에는 15.5%를 기록했다. 물질적 박탈률(유럽위원회의 정의에 의하면, ‘인간이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 및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이들의 비율’)은 2008년 13.7%였던 것이 2013년에 30.5%로 증가했다.(2)

 

치솟는 주거비, 노숙자 1만여 명

2016년 당시 집권당이던 FG당은 제2당인 FF당과 협약을 체결했다. FG당이 ‘정부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집권당을 지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유권자들은 오랜 하수인에 불과한 다른 정당의 정치인에게 투표한다고 해서 정치를 혁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후 그들은 다른 당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가장 이상적인 후보는 SF당이었다. 이 정당의 정치인들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보다 민생과 밀착되어 있는 사회문제로 방향을 전환해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료문제와 주거문제였다. 

2008년 이후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됐다. 45%의 국민들이 수입에 따라 차별적용되는 국가 의료보험을 해약하고, 개인 의료보험으로 갈아탔다. 55%의 국민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 선거 직전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전체 인구 490만 명 중 55만 6,770명에 달했고, 그 중 18개월 이상 대기한 사람의 수는 10만 7,040명이었다. 병원이 처리해야 할 치료목록은 6만 7,303행에 걸쳐 기록됐다. 예산삭감에 직면하자, 아일랜드의 사회시스템은 물자부족으로 허덕였다. 2020년 2월 현재, 11만 명의 환자가 침상이 부족해 들것에 실려 입원했다. 당시에는 코로나19가 아일랜드를 본격적으로 강타하기 전이었음에도 말이다.

2012년 이후 연평균 임대료 상승률 70%를 기록한 더블린은 유럽에서 가장 주거비가 비싼 도시 중 하나가 됐다. 2015~18년 성인 노숙자의 수는 2배에 달했고(95% 증가), 아동 노숙자는 3배 이상이 됐다(228% 증가). 이 나라에 거처 없이 떠도는 노숙자의 수는 약 1만 500명으로, 이례적인 규모였다.(3) 복지주택 관련 예산은 2008년 14억 유로였지만, 2014년에는 1억 6,700만 유로로 삭감됐다. 그 결과, 복지주택은 2009년 5,300개 아파트를 건축했던 것이 2012년에는 1,000개로, 2015년에는 476개로 급감했다. 대기자 명단의 가족 수는 2005년에 4만 3,000명에서 2017년에 8만 6,000명으로 증가했다.(4) 정부는 새 주택을 짓지 않고 임차인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방법을 택했다. 공급은 늘리지 않은 채, 수요만 증대시켜 위기를 가중시킨 셈이다.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역시 부동산 시장을 개방했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수익 투자처를 찾는 기관 투자자들의 탐욕 때문이었다.(5) 아일랜드 정부는 2013년에 부동산 투자 신탁에 세제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벌처 펀드’로부터 악성 부채와 자산을 재구매하도록 부추겼다. 이는 투기성 펀드가 부동산에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조치였다.(6) 이들 펀드는 사들인 토지를 고급 주택단지나 상업지구로 바꿔 시장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어떤 이들은 각종 토지를 (때때로 할인가로 양도받은 공유지까지) 잔뜩 매입하면서도 이 땅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택공급을 줄임으로써 주택가격을 폭등시키려는 것이다. 

2월 선거 직전의 상황은 너무나 암울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더블린 시장마저 이렇게 경고했다. “비싼 주거비, 긴 통근 시간, 진이 빠지게 하는 의료체계와 교육제도… 이 모든 문제들이 거주지, 근무지, 투자처로서 아일랜드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7)

 

저항의 씨를 뿌린 SF당

국제 언론은 2020년 2월에 치러진 선거결과를 두고, 아일랜드 섬 통일을 난항에 빠뜨린 브렉시트의 결과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로 해석한다. 그러나 투표소 출구조사 결과는 이런 주장과 모순된다. 시민들이 품고 있는 불만 가운데 최상위 두 항목은 모두 사회문제에 대한 것으로, 전체 조사 결과 가운데 무려 58%를 차지하고 있었다. 브렉시트를 언급한 유권자는 전체 조사인원의 1%에 불과했다.(8) 그렇다면 파국을 초래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회귀하는 것인가? 단기 이양식 투표(중·대선거구제 하에서 최고 득표자가 정해진 쿼터 이상을 득표할 경우, 잉여 득표가 차등 득표자에게 이양되는 방식-역주)에 의한 투표 결과는 그것이 올바른 분석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아일랜드의 의회의원은 총 160명으로, 39개의 선거구에서 각각 3명 내지 5명이 선출된다. 각 선거구마다 보통 12명으로 구성된 후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투표용지를 만든다. 유권자는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의 이름 옆에 숫자 ‘1’을 기입하고,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순서대로, 다른 후보자들의 이름 옆에도 숫자를 기입한다. 

각 선거구에서 당선에 필요한 득표수를 계산한다. 1위를 차지한 후보자가 정해진 득표량을 넘으면, 여분의 득표는 기계적으로 차등 후보자로 이양돼 합산된다. 지난 선거에서, 이번 선거에서 SF당은 여러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하며 할당량을 훌쩍 넘었다. 최종투표 결과는 잉여득표가 누구에게로 이양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잉여득표 중 상당수는 좌파 또는 극좌파로 이양돼 다른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9) 실례로 더블린 남동부의 선거구에 있는, 좌파동맹연대 후보 폴 머피 같은 인물은 같은 선거구에서 1위로 당선된 SF당의 후보 션 크로우(Seán Crowe)로부터 여분의 득표를 이양 받아 당선이 확정됐다. 

2020년 2월의 선거결과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아직 파장의 결과를 찾아볼 수는 없다. 수 년 전부터 계속돼 온 대중집회는 점점 폭력성이 커졌다. 2014~2015년에는 그동안 무상으로 공급돼 오던 수돗물에 사용료를 부과하려고 했던 정부의 조치(10)가 사회운동가들과 좌파 정당을 격분시켰다. 그 결과 거대한 반대시위의 물결이 나라를 흔들었고, 그 가운데 SF당은 정부정책에 대한 저항의 씨를 뿌렸다.

2015년에 실시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에 관한 국민투표는, 투표자 중 62%가 찬성해 법안이 승인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당시 반대 목소리를 내던 카톨릭 교회는 성폭행 스캔들에 휘말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2018년에 또 다른 국민투표의 결과,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여러 사회운동가들과 많은 국민들이 벌인 대규모 캠페인의 결과로, 정치영역에서 거둔 사실상 최초의 승리였다.

SF당은 유럽에서 긴축재정 정책에 반대하는 정당들이 표방하는 것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이후 이 당은 2008년의 경제위기와 관련된 대중적 분노에 힘입어 진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었다. 에오인 오 브로인과 같은 일부 정치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거 및 노숙자 문제를 우선순위로 삼아 많은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 왔다. 오 브로인은 심지어 선거 몇 달 전에 이 주제에 관한 본인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11)

 

점차 커지는 통일에의 열망

이 정당은 좌파 중에는 치열한 경쟁자가 없다는 점도 잘 활용했다. 노동당은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린 FG당과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대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스스로 신뢰를 잃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증대됨에 따라서 녹색당의 규모가 점차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녹색당은 노선이 온건할 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소수 지식인층이 핵심 지지 기반이기 때문에, 많은 수의 대중을 동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편, 트로츠키주의 동맹 연대가 있기는 하지만, 3% 미만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소수 정당이다.

사회갈등의 전면에 나선 SF당은, 역사적으로 아일랜드 공화국군(1919~1922)과 연결된 정당답게 아일랜드 섬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정당으로 남아있다. 이는 국민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아니지만,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영국 전체 인구 중 52%가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한 반면, 북아일랜드의 투표자들 중 56%는 회원국 자격 유지, 즉 아일랜드 섬이 국경 없이 남아있는 편을 택했다.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통일에 대한 바람은 점차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과반수를 약간 상회하는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결과, 아일랜드 섬 통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와 북아일랜드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수는 거의 비슷했다.(12)

단기간에 아일랜드 섬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물론, 북아일랜드 폭력 사태를 종결시킨 1998년 4월 10일의 성 금요일 협약은 체결되자마자 아일랜드 섬 통일로 가는 길목을 열었다. 협약문에는 ‘만약’ 과반수 이상의 투표자가 통일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리라고 ‘상당한 정도로 예상된다면’, 영국이 국민 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암시돼 있다. 그러나 이 모호한 진술은 여전히 해석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여론조사 결과 및 선거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다수의 민족주의자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이 진술을 해석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선거 결과에서 보다시피, 적어도 정부에 관한 한, FF당과 FG당 사이의 연합 정당은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SF당을 포함한 중도좌파 정당이 단 1석을 얻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FF당과 FG당 사이의 연합은 두 주요 정당이 실상 비슷한 정당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두 정당이 보다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체제를 요구하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SF 정당은 다음 선거에서 더 큰 승리를 거둘 것이다.  

 

 

글·줄리언 머실 Julien Mercille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의 지리학부와 게어리 공공정책 연구소 연구원

번역·이근혁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Les quatre vies du modèle irlandais 한국어판 제목: 이론 대신 신화가 된 아일랜드 모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0년 10월호.
(2) Julien Mercille와 Enda Murphy, 『Deepening Neoliberalism, Austerity, and Crisis : Europe’s Treasure Ireland(신자유주의, 긴축재정 정책, 그리고 위기심화 : 유럽의 보물섬 아일랜드)』(Palgrave Macmillan, 런던, 2015년). / Emma Heffernan, John McHale과 Niamh Moore-Cherry (총괄 기획), 『Debating Austerity in Ireland : Crisis, Experience and Recovery, Royal Irish Academy 아일랜드의 긴축 재정 정책 : 위기, 경험과 회복, 그리고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 더블린, 2017년.
(3) 『The Daft.ie rental price report. An analysis of recent trends in the Irish rental market 2018 Q1  Daft.ie의 임대료 보고서: 아일랜드 임대시장 2018 Q1의 최근 동향 분석』, Daft.ie, 2018년.
(4) Surya Deva, Leilani Farha, ‘Mandates of the Working group on the issue of human rights and transnational corporations and other business enterprises and the special rapporteur on adequate housing as a component of the right to an adequate standard of living, and on the right to non-discrimination in this context’, 국제 연합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Haut Commissariat des Nations unies aux droits de l’homme), 2019년 3월 22일.
(5) Marion Deniau, ‘Irlande, des bulles dans le béton 아일랜드, 콘크리트 도시의 거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4월호. 한국어판 2018년 11월호.
(6) Michael Byrne, From Puerto Rico to the Dublin Docklands. 『Vulture Funds and Debt in Ireland and the Global South 푸에르토리코부터 더블린 도크랜드까지: 벌처 펀드와 아일랜드의 부채,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Debt and Development Coalition Ireland (DDCI), 2017년.
(7) David Chance, ‘Start acting like a rich country: Ibec and EU call for infrastructure 부자 나라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라’, <The Irish Independent>, 2020년 2월 27일.
(8) Stephen Collins, ‘Detailed election 2020 exit poll results : How voters answered 15 questions 2020년 선거 출구조사 상세 결과: 15개 질문에 대한 유권자들의 답’, <The Irish Times>, 2020년 2월 9일.
(9) Mary Regan, ‘How the Sinn Féin surplus will shape the next Dáil’, RTÉ, 11 2020년 2월.
(10) Renaud Lambert, ‘La goutte d’eau irlandais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5월호.
(11) Eoin Ó Broin, Home. ‘Why Public Housing is the Answer’ <Irish Academic Press>, 더블린, 2019.
(12) Simon Carswell, Brian Hutton et Freya McClements, ‘More than half of voters want Border polls north and south’, <The Irish Times>, 2020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