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사회주의의 트로이목마?

2020-04-29     리 필립스 외

사회주의 음모의 심장부에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가 있다면?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은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1) 그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의 세계적인 유통업체 월마트는 구세계의 유물이 아닌, 혁명 이후 필요한 요소를 미리 상상하고 구축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제임슨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워진 월마트라는 경제모델과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 급증의 연관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또 한 가지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월마트의 물류조직이었다. 월마트가 ‘사회주의적’이라니? 그의 이런 문제 제기로 인해, 시장의 힘과 계획경제의 효력을 대립시키는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920년에 발표한 논문 <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 사회주의 연방에서의 경제 계산>을 통해 “한 공동체가 산업화 이전의 가족 단위 규모를 초과할 때, 무엇을, 얼마나, 언제 생산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방안이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미제스는 “없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런 모험을 감행할 경우 빈곤, 기아, 사취, 무질서 등 최악의 사회·경제적 불안정이 초래될 거라고 예측했다. 

미제스는 경제생산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시장가격’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가격은 각 자원의 공급과 수요의 상태, 투입되는 생산요소들의 가격, 구매자 취향의 변동을 반영한다. 보수주의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실생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미제스의 설명에 의하면, 계획경제는 이론 그 자체로서도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다.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입증한 월마트

우리는 상식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이론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실패했으나, 현실에서 잘 실행되고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월마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미제스가 그토록 불가능성을 입증하고자 했던 계획경제의 눈부신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이 다름 아닌 월마트이기 때문이다.

새뮤얼 월튼은 1962년 7월 2일 아칸소 주의 로저스에 1호 점포인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를 열었다.(2) 이후 그 작은 상점은 세계 최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월마트는 창립 이래 연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개인 기업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월마트의 경제 규모는 스웨덴과 스위스에 버금간다. 

기업이 시장에서 활동하려면, 내부적으로는 계획경제의 대원칙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각 부서와 점포, 화물트럭과 공급자들은 경쟁 대신 협력을 해야 한다. 냉전이 한창이던 중에, 이 미국 대기업이 수립한 계획경제 모델은 소련 경제 수준의 규모를 달성했다. 1970년 소련의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시세로 약 8,000억 달러였는데, 2017년 월마트는 4,8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미제스와 그의 동료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미국 대기업은 사라져야 했다.

월마트는 1970년에 유통센터 1호를 열었다. 5년 뒤에는 IBM 370/135를 임대해 재고관리를 통괄했고, 디지털 방식으로 재고목록을 상호연결하는 최초의 유통업체가 됐다. 이런 유통혁신 전에는 매장의 재고관리를 유통업체가 아닌 판매자(소매업자)가 담당했다. 이 운영방식은 수요 변동 증폭(AVD) 혹은 ‘채찍효과’(Bullwhip effect, 상품 공급망에서 하위단계의 수요정보가 상위단계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보가 왜곡되고 확대되는 현상-역주)로 인해 언제든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1961년 최초로 발견된 ‘수요 변동 증폭’은, 공급망에서 생산자 단계로 올라갈수록 재고와 수요 변동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은 매장의 상품과 고객이 요구하는 상품 물량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로 인해 나타난다. 즉, 재고 물량이 넘치거나 부족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재고가 소진된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매장에서는 유통업체에 주문량을 재조정한다. 매장들은 대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안전재고’를 비축해둔다. 유통업체는 도매업자 역할을 수행하며, 이 경우 제조업체도 동일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 결과 각 체인점마다 변동 폭이 커지고 안전재고가 늘어난다. 각 점포의 수요 변동 폭이 5%에 달하면 최상위 단계의 관계자들에게는 이것이 40%까지 급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에서는 공급망의 전 구성원이 데이터 순환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조정이 필요한 항목이 있을 때 각자가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월마트가 책정한 가격을 승인하도록, 공급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실제로도 그렇다. 공급자는 초대형 기업의 유통망을 통해 자사 제품을 판매할 수 있으므로,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한다. 일단, 월마트라는 울타리로 들어가면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대부분의 공급업체들과 대규모의 장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 따라서 공급망의 모든 관계자들은 투명하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마케팅 비용, 재고, 물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다. 일부 금융거래는 여러 업체들이 담당하겠지만, 자원 배분은 공급자, 물류창고, 점포로 구성된 거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이런 공급망 전체를 하나의 단일한 개체로 보는 분석가들도 있다. 

 

월마트는 성공하고 시어스는 몰락한 이유

월마트는 모든 기업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바코드’를 최초로 사용한 기업이다. 위성으로 연결된 초대형 데이터베이스 ‘리테일 링크(Retail Link)’ 덕분에 공급자들은 수요를 예측할 수 있고, 모든 관계자는 현금 등록기에 축적된 실시간 판매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미제스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기술의 진보로 월마트에서 대규모 계획경제가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월마트의 주요 경쟁사의 하나로, 120년 전에 설립된 ‘시어스, 로벅 앤드 컴퍼니’는 월마트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시행했다가 몰락했다. 백화점 체인이었던 시어스 홀딩스 코퍼레이션은 2016년에 약 2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로 실적을 마무리한 마지막 해인 2011년 이후부터 계산하면 총 104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다. 이 실패의 원인으로 CEO인 에드워드 램퍼트의 결정이 지적된다. 그는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즉 내부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회사를 세분화했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이 작전은 합리적이다. 기업가들은 ‘현대사회에서 부의 원천은 시장’이라고 늘 말하지 않던가? 

램퍼트 회장은 운영방식을 새롭게 구성하고 그룹을 30개로 분할한 후, 40개 사업체가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했다. ‘의류’, ‘장비’, ‘전기시설’, ‘인사’, ‘정보서비스’, ‘마케팅’ 부서들은 서로 협력하는 대신, 사업체별로 사장과 운영위원회 및 회계장부를 두고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의류’ 부서가 정보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인사부에 요청을 하고 싶으면 관련 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한 사업체의 재무제표를 좋게 보이려는 노력이 그룹 전체에 부담을 초래한 것이다. 차라리 외부 용역을 알아보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각 사업체의 사장들은 회의 도중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업체가 알 수 없도록 모니터에 개인정보 보호 필터를 설치했다. 수익률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사내 경쟁은 더욱 가열됐고, 각 부서는 최소한의 유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와 동시에 구조적 책임이 공유되지 않아서, 여러 관리 기능이 중복돼 각 사업의 수익이 하락했다.

각 사업체의 경우 점포 유지를 위한 인프라 투자가 비용의 일부로 전락해 그룹 전체의 자본지출이 수익의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대다수 경쟁업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각 사업체는 그룹 내 통합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먼바다로 나아갔다. 어떤 이들은 배를 떠나고, 어떤 이들은 다음 사실을 확인하며 무너졌다. 시어스 백화점 체인의 램퍼트는 자유무역에 건 내기에서 졌으며, 그의 모델은 모든 형태의 협력을 마비시켰다.

이 두 기업이 보여준 교훈은,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할 것인가?  

 

 

글·리 필립스 Leigh Phillips 
미할 로즈월스키 Michal Rozworski

『People’s Republic of Walmart: How the World’s Biggest Corporations are Laying the Foundation for Socialism 월마트 인민공화국: 세계 최대 기업들은 어떻게 사회주의의 기초를 다지는가』(Verso, 2019년)의 저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Fredric Jameson, 『Archaeologies of the Future: The Desire Called Utopia and Other Science Fictions』, London & New York, Verso. 2005
(2) Serge Halimi, ‘Wal-Mart à l’assaut du monde 전 세계에 침투한 월마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