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를 위협하는 북극, ‘콜드 러쉬 Cold Rush’
쇄빙선의 지정학
극지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여름철 북극 빙하가 눈에 띄게 감소함에 따라, 넓은 대양과 연안지대가 형성되면서 항로개척과 자원개발의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쇄빙선의 전 세계적인 증가추세에서는 극지방의 기후변화를 기회로 삼으려는 각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월 15일,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총리는 사임 몇 시간 전 1,270억 루블(약 15억 8,813만 유로, 4월 26일 기준) 수표에 서명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쇄빙선을 제작하는 ‘리더(Lider)’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것이다. 길이 200m, 너비 50m에 120mw의 추진력을 자랑하는 이 초대형 쇄빙선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돼, 무르만스크를 모항지로 하며, 현재 운항 중인 5척의 원자력 쇄빙선보다 2배 강력한 성능이 탑재된다.
2027년 운항 예정인 3척의 ‘리더’호들 중 맨 처음 완성되는 쇄빙선이 인도되기에 앞서 러시아 국영 로사톰플롯 사에서는 원자력으로 추진하는 다른 대형 선박 3척의 출항도 준비했다. 이 정도면 북극해의 가장 두터운 빙하 지대에서 운하를 개척하며 1년 내내 '프로젝트 22220'을 실행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로써 러시아는 북동항로의 새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지와 함께 당당히 해상으로 복귀했다. 구소련 시절 각지를 이어주던 북동항로 세브모르푸트가 국제적인 항로로 거듭날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북극에서 900km 떨어진 캐나다 얼러트 기상관측기지는 사람이 거주하는 최북단 지역이다. 그런데 6개월 전인 2019년 7월 14일, 이곳의 수은주가 무려 영상 21℃를 기록했다. 이는 7월 평균 기온에 비해 무려 15℃나 높은 수치였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최근 보고서 역시 북극 지역의 포괄적인 온난화 현상을 지적했다. 이미 1℃로 예상되는 평균 상승치보다 2~3배 높은 기온 상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1) 그에 따라 겨울철 바다의 결빙(結氷)이 어려워지면서 빙하가 점점 얇아지고 있으며, 늦여름 기준 빙하의 면적도 차츰 감소하고 있다(지도 참고). 2019년 9월 18일 빙하의 두께는 1979년 관측 이래 (2012년 최고 기록 이후) 두 번째로 얇았다.(2)
IPCC의 가상 시나리오에 의하면, 1.5℃의 지구온난화가 일어날 경우, 100년에 1번, 2℃의 지구온난화가 일어날 경우, 10년에 1번꼴로 여름철 북극해의 얼음이 완전히 녹아버릴 전망이다. 기온 상승은 이토록 명백한 현실인데, 빙하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중해 8배 면적의 남극해(3)만 해도, 바다와 맞닿은 해안 빙하의 용해에 따라 얼어붙은 대륙을 둘러싼 해빙지대가 유지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적설량이 늘어나면 두꺼운 빙관(산 정상이나 고원을 덮은 돔 형태의 영구 빙설)이 녹아내린 부분도 일부 상쇄될 수 있다.(4)
지중해의 5배에 달하는 북극해의 온난화 현상에 대한 최근 연구에서는 온난화의 50% 이상이 오존층에 유해한 프레온 가스로 유발됐을 것이라 지적한다.(5)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점진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프레온 가스는 강력한 온실가스지만, 향후 50년 이내에 서서히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반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험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해양과 내륙의 빙설지대가 줄면서 태양열의 지구 반사율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표면과 바다에서 흡수하는 태양열이 많아져 온난화가 가중되고, (해양, 내륙 할 것 없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메탄을 비롯한 온실가스가 새로이 배출된다.
전반적으로 향후 몇 년 간 해빙이 얇아지고 면적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지방 해역에서 개빙구역(물에 떠있는 얼음, 부빙(浮氷)이 수면의 1/10 이하인 지대)의 항해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1년 전체로 보면 바다에서 부빙이 형성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처럼 해빙이 녹을수록 쇄빙선 수요가 높아지는 모순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쇄빙선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수많은 항만 연결을 단축해주는 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극지방 항로 개척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가령 수에즈 운하를 통해 로테르담에서 요코하마까지 갈 때는 2만 700km를 가야 하지만 북동항로를 이용하면 이동거리가 1만 2,700km로 단축된다.(6) 뉴욕에서 상하이까지도 파나마 운하를 통하면 1만 9,600km 거리를 이동해야 하지만, 캐나다 북부를 통해 가면 이동거리가 1만 4,500km로 단축된다.
해상주권과 연계되며 논란거리가 된 ‘쇄빙선’
현재 쇄빙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운항 중이다. 극지방 백야를 보러 가는 여름철 관광객은 물론 영하 50℃의 혹한에서 하얗게 성에가 낀 채로 야간주행을 원하는 사람들까지 실어 나르고 있다. 2019년에는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대의 도움만으로도 선박 510척의 북극 항해가 가능해졌으나, 이전에는 해도 통상적인 항해건수는 2년 간 400척에 불과했다. 극지방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의 늑골은 튼튼한 재료로 구성된다. 그러나 모든 선박이 ‘쇄빙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선급연합회(IACS)의 규정에 의하면, 두께 70cm 이상의 빙판을 깨고 지나갈 수 있는 중량과 외형, 추진력을 갖춘 선박만이 ‘쇄빙선’의 자격을 얻는다.
대형급 쇄빙선은 여러 해에 걸쳐 두께 4m 이상으로 쌓인 얼음은 물론, 두께 10m 이상의 두 빙반 사이로 융기한 빙산까지 부술 수 있다. 극지방에서의 항해와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쇄빙선의 1차 목적은 캐나다의 세인트 로렌스 하구와 북유럽의 발트 해, 러시아 북부의 백해, 북태평양의 오호츠크 해 등지에서 상용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지방을 오가는 이 쇄빙선이 해상주권과 연계되면서 새로이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남극의 경우, 1961년 남극조약에 따라 그 누구도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연구 등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이 허용된다. 이에 30여 개 국가가 현재 남극에 연구기지를 두고 기후변화 및 남극발 주요 해류를 연구 중이다(아마도 그 중 다수는 미래의 천연자원 이용 가능성을 보고 있을 것이다). 반면, 북극의 경우는 상황이 복잡하다.
북극해의 공해(국제법 상 모든 국가에 개방된 해역)에서는 대륙붕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 확대를 위해 러시아와 노르웨이, 덴마크가 영유권 주장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캐나다로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일부 항로의 공유 문제도 치열한 법적·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영유권 주장의 기반은 1994년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인데, 미국은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또한, 해저 및 해양자원 개발에 대한 권리가 새로이 인정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이는 항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해에서의 항해는 여전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나다와 러시아는 관행적으로 인정돼오던 자국의 내해 안에 주요해협을 포함해 완전한 주권 행사를 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는데 합의했다. 자유로운 항해를 주장하는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해당 항로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국제해협에 속한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7) 하지만 러시아와 캐나다는 동 협약에서 환경보전과 오염우려에 관한 ‘극지방 조항’을 근거로 제시하며, 부적절한 선박의 통과는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8) 따라서 자국의 권익수호와 국제항로의 증진 간 균형유지는 쉽지 않은 과제인 듯하다.
불신 분위기가 고조되자, 북극 또한 영유권 싸움으로 진흙탕이 됐다. 2007년 8월에는 러시아의 한 잠수정이 북극 해저 4,261m 지점까지 내려가서 녹슬지 않는 티타늄 소재의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그리고 1993년 이후 방치돼있던 러시아 동북부의 코텔니 섬에는 새로운 군사기지가 마련됐다. 러시아 최북단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 제도의 나구르스코이에도 군사기지가 확대됐다.
미국의 경우, 나토 동맹군과 함께 5만 명을 동원해 2018년 10월 노르웨이 북부에서 ‘트라이던트 정처(Trident Juncture)’ 합동 방위훈련을 수행했다. 게다가 2019년 8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까지 제안했다. 이 지역의 자원매립 가능성을 감안하고 고조되는 관심을 트럼프 특유의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개척이 쉽지 않은 북서항로
전 세계 쇄빙선대 내에서 러시아의 비중이 높은 것은, 우선 역사적·지리적·기후적 차원의 문제로 설명된다. 러시아는 해풍과 해류, 특히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시베리아 외해의 북동항로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반면, 캐나다 북극권 섬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북서항로는 오랫동안 개척이 어려울 전망이다.
수차례의 실패를 거친 끝에 1903년과 1906년 사이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가까스로 원정에 성공한 북서항로는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항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북동항로의 경우, 1878~1879년 이미 아돌프 에릭 노르덴쇨드가 노르웨이에서 베링해협에 이르기까지 전 구간을 주파했으며, 수많은 사건사고 끝에 세브모르푸트 항로가 마련된 후로는 아시아 쪽과 면한 지역이 새로이 부각됐다.
1932년에는 아르한겔스크에서 출발한 쇄빙선 시비리아코프가 처음으로 3개월 만에 요코하마에 도착했고, 1930년대 중엽부터는 여름에 수시로 북부 연안을 드나들 수 있었다. 여름에 해빙돼 시베리아를 남북으로 잇는 오브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 콜리마 강에 더해 추가적으로 동서 항로가 개척된 것이다. 1959년에는 몇 개월 간 자급이 가능한 최초의 원자력 쇄빙선 레닌 호가 진수돼 1989년까지 운행을 지속하며 시베리아 지역과 극동아시아 지역의 광물자원을 탐사했다.
이에 더해, 1977년 8월 14일에는 레닌 호의 후속 쇄빙선 중 하나인 아르크티카 호가 북극까지 도달한 최초의 쇄빙선으로 기록된다. 이듬해 서쪽 지방에서는 예니세이 강 하구 근처의 딕슨 항까지 1년 내내 이를 수 있는 바닷길이 열렸다. 역사학자 피에르 토레즈의 설명에 의하면 “1970년대 초 소련은 138척의 빙해선박을 보유했으며, 소비에트 연방 말기로 가면 이 수치가 350척까지 늘어난다. 게다가 장거리 쇄빙선도 16척이나 되고, 그 중 8척이 핵 추진력을 이용한 쇄빙선이었다.”(9)
1980년대에는 수송규모가 700만 톤에 다다르며 정점을 찍는다. 운반되는 물자는 주로 석탄과 석유, 목재, 광물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구소련 붕괴 후 수송규모가 급격히 줄어 1998년 150만 톤으로 최저점에 이른다. 거주여건이 혹독한 이 지역의 주민 수가 급감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뒤집기 위해,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해양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후 운송량이 서서히 증가해 2017년에 비로소 1989년 수준을 뛰어넘었으며, 2018년 그 규모가 2,000만 톤으로 급증했고 2019년에는 3,100만 톤에 이르렀다.(10)
이렇게 급격히 운송량이 늘어난 이유는, 오브 강 삼각주의 이아말 반도에서 막대한 가스채굴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15대 가량의 빙해가스 수송선까지 투입돼 북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가스를 실어 날랐다. 이렇듯 이 지역가스가 각광을 받은 것은 서구권과 중국의 기술적·경제적 지원 덕분이다. 채굴과 수송을 담당하는 야말 LNG 합작기업의 주식은 프랑스 토탈사가 20%, 페트로차이나가 20%, 중국 국부 펀드인 실크로드기금에서 9.9%를 보유 중이다. 그래도 주식의 과반(50.1%)은 러시아 국영 기업 노바텍 소유로 남아있다.
항만, 공항, 철도 시설의 확대나 보수 등 대규모 투자소식도 많이 들려오지만, 러시아의 리더 프로젝트와 22220 프로젝트의 핵심은 쇄빙선이다. 2020년과 2021년, 2022년에는 각각 아르크티카호, 우랄호, 시비르호가 진수될 예정인데, 이 쇄빙선들은 독보적인 화력의 성능 외에도 ‘밸러스트(배의 하부에 싣는 중량물)’를 이용해 흘수(물에 잠긴 배의 깊이)를 조절함으로써 수심이 얕은 강 하구에서도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19년 말 북동항로 개발계획에 시동을 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에 면한 북극지방을 ‘전략적 자원의 보고’로 소개하면서 극지방 권역을 넘어선 재정투자를 장려하는 새로운 법까지 제안했다. 현재까지 밝힌 목표는 향후 2035년까지 2,160억 유로 이상,(11) 2025년에는 운송량 8,000만 톤, 10년 후에는 그 2배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에르베 보뒤 교수는, “세브모르푸트 북동항로가 현재로서는 화석연료 및 광물자원 개발관련 벌크 수송에만 유용한 만큼, 푸틴의 계획은 상당히 원대한 목표”라고 설명했다.(12)
2018년 9월 벤타머스크 컨테이너 선의 북극항로 운항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물동량의 대부분은 원자재가 차지한다. 러시아에서 해외로, 혹은 러시아 항구 간에 거래되는 원자재 수송이 대부분이다. 원자재 이외의 일반상품 수송은 일부에 그친다. 지난 3년간 매년 30척 미만의 선박으로 수송된 일반상품의 규모는 북동항로 수송량의 3% 미만으로, 수에즈 운하를 통한 화물수송의 1/3,000에 불과하다.
북극해 서쪽 편에서는 당분간 어떤 개발계획도 없어 보인다. 에르베 보뒤의 분석에 의하면, “캐나다든 미국이든, 해상권 장악에 대한 욕심만큼 쇄빙선대를 늘리기 위한 정치적 의지도 재정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13) 캐나다 쇄빙선대의 규모는 10여 척이지만, 그중 쓸 만한 것은 이누이트 족 물자보급과 연구목적으로 1969년부터 운항 중인 루이 S. 생 로랑호가 유일하다. 자급력도 제한적이고, 북극해에서 장기간 운항을 위한 인프라도 부족하므로, 러시아 쇄빙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에 캐나다 의회나 언론에서는 북극해에서의 주권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8년 8월 스티븐 하퍼 총리는 이누비크 지역을 방문해 2017년 막강한 빙해선박 존 디펜베이커를 건조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최근 소식에 의하면 13억 캐나다 달러(약 8억 2,500만 유로)에 달하는 예산 확보에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캐나다 세인트 로렌스 항로에서는 보다 작은 규모의 선박들이 주를 이루는데, 슈페리어 호수에서 대서양 섬들에 이르는 구간이 녹으면 겨울철에 수많은 소형급 쇄빙선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1959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이 거대한 수문과 운하들은 극지방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경제적 기능을 하고 있다. 비록 1970년대부터 수송량은 줄었지만, 하천 수송은 아직도 2018년 기준 4,100만 톤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오대호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협력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지만, 자유로운 운항문제는 양국 간 마찰의 원인이다. 알래스카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 미국은 1969년부터 항해 가능성을 시험해왔고, 이를 위해 길이 300m, 운반 규모 10만 톤의 유조선까지 투입했다. 빙해운항이 가능하도록 선체가 강화된 선박이다. 이듬해 캐나다는 ‘북극해 오염방지법’을 의결해, 북극항로 통과가능 선박의 기준을 마련했다. 이는 1985년 미 해안 경비대의 중형급 쇄빙선 ‘폴라 시(Polar Sea)’가 북극항로를 지나려 했을 때, 양국 간 외교 마찰의 원인이 됐다.
결국 쇄빙선의 통과를 저지하지 못한 캐나다는 항해를 허가함과 동시에, 자국 쇄빙선대의 취약성을 깨달았다. 외국 잠수함의 침입이 잦아지자 국방부 장관은 1987년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공격용 핵잠수함을 수입할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양국 간에 체결된 조약에 따라 미국이 “캐나다 내해에 속하는 캐나다령에서 미국의 쇄빙선이 이동하는 모든 경우에 대해 캐나다 정부의 동의를 구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14)
하지만 이 조약에서는 “우방과 친구 간에 맺는 이 협력조항의 어떤 것도 해당구역이나 모든 해양공간과 관련된 해상권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다. 2007년 나니시비크 심해 지역에서의 항만 건설발표가 수포로 돌아갔듯, 잠수함 구입계획도 실행되지는 못했다. 이 지역에서의 해안경비대 정찰활동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 결과, 보급기지 하나가 내년 여름 배핀 섬 북부에 설치될 예정이다.
취약한 생태계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
미국의 경우도 캐나다에 비해 나을 게 없다. 가장 추진력이 센 쇄빙선 ‘폴라 시(Polar Sea)’호만 해도, 진수된 지 이미 44년이 지났다. 디젤과 가스로 병용추진하는 이 배는 자급력 측면에서도 원자력 쇄빙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1999년 연구목적으로 진수된 힐리호는 2015년 처음으로 북극에 도달한 미국 선박이 됐는데, 러시아보다는 38년 늦은 기록이다. 그런데 지난 2월, 해안 경비대 사령관 칼 슐츠 대장은 힐리호에 대해, “지난 몇 개월의 정찰하는 동안 대부분은 신뢰할 만한 보고 없이 극지대를 항해했다”고 밝혔다.(15) 그럼에도 칼 슐츠 대장은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사계절 북극해를 누빌 수 있는 3척의 신형 중량급 쇄빙선의 재정지원 상태가 순조로운 편이라며 낙관했다. 그 중 1 척에는 예산이 배정됐으나, 의회에서는 아직 표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중국의 북극해 진출도 북미권의 이런 지지부진한 상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하다. 그래도 1999년 8월 14일,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사들인 쇄빙선 쉐룽호의 접안이 이뤄지자,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 이누이트 마을 툭토약툭의 작은 항구가 약간 술렁이기는 했다. 이 사실을 미리 보고받았음에도 캐나다 행정당국이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6) 2012년 여름 이 배가 북동항로를 지날 때, 러시아의 핵 쇄빙선들 중 하나인 바이가치호가 그 옆을 계속 지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9월 상하이에서 제작된 쉐룽2호가 추가됨으로써 중국의 쇄빙선대 규모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연구목적이라고 밝혔지만, 2018년 1월 중국의 북극백서에서 공표된 ‘극지방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의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의 화석 연료 자원에도 눈독을 들일 뿐 아니라 캐나다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의 잠재적인 광물 자원에도 점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다수의 선박 프로젝트가 논의됐고, 2018년 6월에는 중국 국영 핵공업총공사에서 3만 톤 규모의 원자력 쇄빙선 건조를 위한 입찰을 공고했다.(17) 이 정도면 거의 러시아 쇄빙선에 준하는 규모다.
유럽연합은 2002년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연구선, 오로라 보레알리스 함께 북극지방을 탐사하겠다”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북극 프로젝트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장비가 있는 다른 국가들도 의지를 강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핀란드 만과 보트니아 만의 연변 지역(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이 대표적인데, 매년 겨울 이곳에서는 그리 두껍지 않은 빙하가 형성됨에도 이곳의 항로개척에 나서는 국가들은 별로 없다. 노르웨이와 덴마크도 각각 스발바르와 그린란드가 있어 이들 극지방으로 가려면 쇄빙선이 필요하나 본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극지방 해역을 오가는 대부분의 배들은 연구 목적의 항해를 하거나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최신 대형 선박들처럼) 남반구와의 연락선 기능을 하고 있다. 극지방 해역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쇄빙선 한척과 유럽에서 온 쇄빙선들(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혹은 아시아 지역에서 온 쇄빙선들(일본, 한국, 인도) 정도다. 프랑스의 쇄빙선은 아스트롤라브 호가 유일한데, 이 배는 2017년부터 인도양 프랑스령(케르겔렌 제도, 생 폴 섬, 크로제 군도), 그리고 뒤몽 뒤르빌 및 콩코르디아 기지의 연락 및 물자 보급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에게는 희소식이 있다. ‘코망당 샤르코’ 크루즈선을 예약해 극지방 여행이 가능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가스 터빈과 전기 엔진으로 추진하는 이 150m 길이의 관광용 쇄빙선은 270명의 승객을 싣고 여름에는 북극으로, 겨울에는 남극으로 항해할 예정이다. (루마니아에서, 뒤이어 노르웨이에서)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은 2021년이지만 이 배의 소유주인 포낭 선사는 이미 ‘프랑스식 고품격 차세대 여행을 구상’ 중이다.
1987년 10월 1일 소련 무르만스크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에서 구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공산당 총서기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북극에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평화적인 협력의 길을 제안했다. 안보란 비단 군사적인 방식만으로는 담보될 수 없으며, 극지방에서 핵무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996년 환경보호를 주 목적으로 북극 이사회가 설립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극에 영토를 둔 국가들 간 협의체인 북극이사회는 이후 원주민 공동체에는 물론, 유럽 및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도 문을 열며 ‘옵저버’ 지위를 부여했다.
간혹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노르웨이와 러시아는 2010년 4월 바렌츠해의 분쟁지역 공유에 관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선례를 만들었다. 북극 이사회는 다수의 중요한 합의안을 만들어냈으며, 특히 2013년 선박이나 항공기의 조난 구조 및 연구에 관한 합의를 도출했다. 2019년 3월 15일부터는 최소 16년 간 북극해의 공해에서 모든 상업적 조업 행위를 금지하는 국제조약도 체결됐다.
그러나 남극에 비하면 북극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생태계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만 보더라도 중립 지대 설정이 불가피한데, 2019년 5월 핀란드에서 개최된 지난 북극 이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회담은 결국 공동 선언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는데, 기후변화가 극지방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명기하는 것을 미국 측에서 거부했으며, 중국의 개입에 대해 상당히 꺼렸기 때문이다.
극지방의 주요 지형이 드러날 정도로 퇴빙이 진행되면서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르네상스 시절의 오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각국은 유엔의 깃발을 앞세운 채 극지방을 향한 행보를 지속 중이다. 이런 극지방에 대한 개발계획에는 수많은 실무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대피용 항구도 거의 없고, 해협도 얕으며 해상지형도 완전하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항해조건이 불분명한 극지방에서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 극한의 추위에서 화물과 물자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문제다. 쇄빙선을 이용한 견인비용과 보험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엄청난 금액의 쇄빙선대를 구축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약 없는 투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무역항로와 에너지 보급로를 다각화하려 하고, 러시아는 안정적인 자원 채굴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세계 1위의 가스 생산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러시아는, 최소한 북극해에서만큼은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이 시장에서 미국과 전면 경쟁을 벌이고자 한다.
글·상드린 바카로 Sandrine Baccaro
포토 저널리스트. 주로 극지방, 에너지, 환경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다.
필립 데스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마니에르 드 부아> 제167호(2019년 10~11월) ‘인구 폭탄’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1.5℃ 높아졌을 때 지구온난화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IPCC 특별 보고서’, 세계기상기구, UNEP, 2019년.
(2) Arctic Report Card 2019(미 국립해양대기국 2019 북극 보고서), www.arctic.noaa.gov
(3) 남위 60도 이남지역의 모든 해양을 남극해로 보는 현재의 통상기준에 의하면 남극해 면적은 약 2,000만㎢, 북극해의 경우 약 1,200만㎢에 달한다.
(4) ‘L’Antarctique, un équilibre fragile 남극해의 불안한 균형’, 프랑스 기상청, 2020년.
(5) Lorenzo M. Polvani, Michael Previdi, Mark R. England, Gabriel Chlodo & Karen L. Smith, ‘Substantial twentieth-century Arctic warming caused by ozone-depleting substances’, <Nature Climate Change>, n° 10, 2020년 2월.
(6) ‘Aquaplot’ 사이트에서 계산한 거리, https://app.aquaplot.com
(7) Hélène De Pooter, 『L’Emprise des États côtiers sur l’Arctique』, A. Pedone, Paris, 2009.
(8) 빙설지대에 관한 제234조.
(9) Pierre Thorez, ‘La route maritime du Nord. Les promesses d’une seconde vie 제2의 가능성 열린 북동항로’, <Le Courrier des pays de l’Est>, n° 1066, Paris, 2008년 3월-4월호.
(10) <NSR Shipping traffic – Transits in 2019>, Centre for High North Logistics, https://arctic-lio.com
(11) 2020년 3월 5일 대통령령.
(12) Hervé Baudu, ‘La route maritime du Nord, réalité et perspectives 북동항로의 현실과 전망’, <Regards géopolitiques>, n° 5, Québec, 2019년 가을.
(13) Hervé Baudu, ‘La flotte mondiale de navires brise-glaces 전 세계 쇄빙선대 현황’, <Regards géopolitiques>, n° 4, 2018년 겨울.
(14) <Accord entre le gouvernement du Canada et le gouvernement des États-Unis d’Amérique sur la coopération dans l’Arctique 극지방에서의 협력에 관한 미국-캐나다 협정>, 1988년 1월 11일.
(15) Arctic Today, Anchorage, 2020년 2월 21일.
(16) Sébastien Pelletier & Frédéric Lasserre, ‘Intérêt de la Chine pour l’Arctique : analyse de l’incident entourant le passage du brise-glace Xue Long en 1999 à Tuktoyaktuk, Territoires du Nord-Ouest 극지방에 대한 중국의 관심: 1999년 쉐룽 호의 북서쪽 캐나다령 툭토약툭 통과를 둘러싼 사고 분석’, <Monde chinois>, n° 41, Paris, 2015.
(17) ‘Why is China building a 30,000-ton nuclear-powered icebreaker?’, <China Military Online(인민해방군 사이트)>, 2018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