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정신은 자본화할 수 없다

2011-04-08     장 사뮈

상호공제조합 운동은 19세기 무렵 일어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현했다. 정부의 무기력과  삶의 비참함에 분노한 일반 국민은 상호 연대를 도모하는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1세기 초, 유럽 국가는 ‘개혁’이란 이름 아래 한때 효과적이던 상호공제 모델을 위협하고 있다.

공제조합은, 장 조레스가 ‘끔찍한 법’이라고 평가한 ‘르 샤플리에 법’(1)이 프랑스에서 유효하던 시절에 연대와 유대, 평등이라는 가치 추구의 산물로 탄생했다. 테르미도르(2)와 보나파르트의 자유주의가 우세하던 시절, 남녀 모두 그들이 가진 적은 여윳돈을 모아 일상에서 닥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려 했다. 초기 공제조합 중 하나로 알려진 ‘수의 비용 모으기’는 조합원들이 숨진 뒤에 옷가지 하나 걸치지 못하고 공동 구덩이에 던져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설립 목표였다.(3) 19세기 리옹 견직공들(폭동을 통해 19세기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끼침)은 “불쌍한 우리들은 시트 하나 없이 묻혔다”라고 노래했다.(4)
공제조합은 노동자 간 단결을 금지하는 법망을 피해 인정 많은 명사와 독지가의 후원을 받아 시민들의 참여로 설립됐다. 초기 설립자들은 독립적인 개체의 연합을 주장하는 프루동의 연방주의 견해에 자극 받아 상호부조를 지지하는 흐름에 힘을 실어줄 조직을 만들었다. 상호부조 지지 운동은 급속히 성장해 19세기 말에는 가입자를 300만 명 이상 모집했다.

그들에겐 저승 갈 때 입을 옷이 절실했다

공제조합으로 개방된 시장의 의식 속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적 보험회사가 문을 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인가된 상호공제조합을 통해 상호부조 지지 운동을 다시 일으키려 했고, 공화국은 1888년 상호공제조합에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상호공제조합을 제도화해도 기본적인 단체는 일정 지역의 회사나 경제 분야에 소속된 시민이 관리하는 인근 조직으로 남았다.
국가는 공식적인 테두리를 통해 단일한 사회운동을 손상시켰다. 1902년 ‘프랑스상호공제연맹’(FNMF)의 첫 번째 회의와 ‘노동총연맹’(CGT)의 2개 분파와 직업소개소, 각종 산업연맹이 모여 개최한 대회는 상호부조와 노조주의 사이의 휴지기였다. 전문단체는 자신의 요구 사항에만 집중한 채 그들 눈에 상호부조주의가 상징하는 ‘사회적 타협’을 비난했다.
이런 상황은 1945년 전환기가 있었음에도 20세기 후반까지 지속됐다. 1945년 ‘레지스탕스평의회’(CNR) 프로그램은 보편적이라고 여기던, 노조에 위임된 사회보장제도 창설로 이어졌다. 공제조합은 보조적 보호 장치를 제공하면서, 역할과 공공서비스에 새로운 특권을 부여한 모리스법 덕분에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노동계 주세력과의 거리로 인해 손해봤다. 또한 공제조합 가입자들이 증가하거나 재집결하면서 유력자들은 점차 권력을 획득했다. 공제조합의 사회운동 면모는 점점 더 희석됐다.
1960년대부터 부활 움직임이 싹텄다. ‘전국노동자공제조합연맹’ 회장 루이 칼리스티(1923~2005)는 ‘활동과 관리의 상호부조’를 제안했다. 그가 일으킨 움직임은 다시금 민주주의와 사회 참여를 기치로 내걸었다. 프랑스상호공제연맹에 소속되지 않은 공제조합이 모인 ‘프랑스공제조합연맹’(FMF)의 설립은, 공제조합 개념이 주요 흐름이 내세우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에서 ‘상호공제의 자주성’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제도에 기댄 ‘인가’되고 ‘관리자적’인 공제조합에 대응해 노동자공제조합이 대표하던 움직임을 부활시켰다.

정치적 중립성에서 자주성으로

가입자와의 인접성, 민주주의, 독립성은 공제조합의 진정한 힘이다. 누구도 1980년의 경우처럼 많은 사람을 모집할 수 없는 오늘날, 단순히 조합원 수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당시 공제조합의 자율적 상환금 산정을 제한하려는 가입자 본인부담금제에 반대해 약 700만 명이 가입했다.
대부분 잊혔지만, 상호공제조합의 창립 원칙이야말로 공제조합이 건강보험 및 사회보장 분야에서 주요 보험업계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다. 공제조합이 연대성에 근간을 둔 인적회사인 반면 보험회사는 개인적 관점, 무엇보다 금전적 관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내부적 논쟁에만 집중하던 상호공제조합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대되고(12면 참조), 단체협상을 대신해 개별적 접근이 이루어지며, 잘못된 규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쟁에 참여하려는 일부 대표들로 인해 예기지 못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강요되는 보험업계 표준 모델

신건전성규제(Solvency II)와 관련해 상호부조 민주주의의 역사적 가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월 1일까지 모든 보험회사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채택된 이 규제는 유럽 보험업계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강화하고 대폭 자본화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마련됐다. 여기에는 자기자본, 감사, 운영 방식 개편, 정보 처리 형식 표준화 등 다양한 요구 사항이 포함됐다. 보험업계 재정비가 기술적으로 필요하고, 또 모두에게 득이 되기 위해 필요한 최적화 과정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는 상호공제조합의 특성과 관리 방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보험업계 전체에 표준 모델을 강요하는 것이다.
조합 운동가들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간 규제의 변화로 인해 연대적·사회적·민주주의적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우선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고 무엇보다 규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공제조합 요율이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상승폭 10~20% 예상). 위험을 인지하는 일이 공제조합의 일상적 업무이긴 하지만 보험계리(5), 자기감사 및 외부감사와 관련한 요구 사항은 대부분의 공제조합이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기술적·인적·재정적 수단을 요구할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나타난 상호부조운동 통합 움직임은 프랑스 내 공제조합 수를 6천여 개에서 750개로 축소했고,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곳은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공제조합의 지방 조직이다. 자원봉사자들의 참여와 노력, 재정적 지원에 기초한 그들의 운영 방식은 신건전성규제의 기술적 요구 사항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공제조합의 운영위원회가 이익을 얻기 위해선 공제조합이 본래 역할을 벗어나, 효율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과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공제조합은 조합원과 의료 전문가 사이의 인간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효율성을 유지해왔다. 보험업계 전반에 걸쳐 시뮬레이션한 결과, 새로운 규제는 사회적·연대적 경제를 위해 펼치는 공제조합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경제를 기반으로 한 기업에 대한 모든 투자는 그 가치가 하락하거나 공제조합의 자기자본에서 고스란히 사라진다. 컨설팅업체의 활동이 재정 정보에 집중된다면 실질적 연대와 사회활동, 의료비 지출 관리, 예방의학적 조처 등을 고려할 여지가 있을까? 이런 노력이 소용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또 집단으로 가입하는 행태를 볼 때, 공제조합원의 첫 번째 덕목은 신중함이다.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공제조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규제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올리비에 파스트레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는 “신건전성규제는 아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개혁”이라고 평가했다.(6) 현재 상호공제조합에는 3800만 명이 가입했다. 5만5천 명이 일하며, 보유한 납입금은 160억 유로에 달한다.

‘고객’이 아니라 ‘회원’이다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원인이 다양해도 전 국민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의료비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의료보험공단이 주도한 중앙집권적 의료비 관리는 전문적 동업조합주의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실패했고, 의료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알랭 쉬피오가 환기한 것처럼 “연대성에 기초를 둔 공제조합은 의료 전문가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며 “예방의학 투자를 확대하고, 모든 국민에게 자신의 건강상태에 적합한 치료를 동등하고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최상의 의료보장을 지속하기 위해 이런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7)
메디아토르 사건(당뇨치료제 메디아토르의 부작용으로 500여 명이 숨진 사건)은 때맞춰 제약업체와 의료 전문가 사이의 불투명한 관계를 미디어 전면에 드러냈다. 이제 의료 시스템, 조직, 목적, 지위, 영업 방법 및 의료 전문가 급여 지급 방법에 관해 전 국민이 참여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경제 조건에 맞서, 사회 전체적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개인적으로 더 추상화돼가는 민주주의의 불씨를 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학자 알랭 카이예가 작성한 칼 폴라니 프랑스 연구소의 성명서는 “상호부조와 결사의 세계에서 출발하고 우리의 경험과 개괄적인 자원을 동원해, 연합적이고 상호부조적인 운영에서 필수적인 사항과 이론적인 제약 사항의 특성을 고려해 반성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이와 동시에 민주적인 역동성을 일으키는 것”(8)을 목표로 한다.
이미 거대한 공제조합이 설립됐거나 설립 중이며, 국민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비아리츠에서 열린 프랑스상호공제연맹 조합원의 날 행사에서는 1990년대부터 강조된 ‘고객’(Client) 개념이 버려지고, 대신 ‘회원’(Adhérent) 개념이 다시 부각됐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적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까?

글 · 장 사뮈 Jean Sammut
칼 폴라니 프랑스 연구소 소장, 공제조합과 사회적 경제 관련 컨설팅업체인 프로시알 설립자.

번역 · 서희정 mysthj@gmail.com

<각주>
(1) 1791년 르 샤플리에 법은 동업조합 창설을 금지했다.
(2) 테르미도르 9일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면서 ‘사회적 공화국’ 프로젝트도 무산됐다.
(3) 장 필리프 밀레지, <사회적 경제와 노조운동>,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출판사, 프라티크 총서, 2009.
(4) 아리스티드 브뤼앙이 1894년 작곡한 <리옹 견직공의 노래> 참조.
(5) 경험표를 바탕으로 위험을 평가하는 수학적 기법.
(6) 올리비에 파스트레, ‘신건전성규제는 실업자를 양산한다’, <레제코> 2010년 2월 25일자 참조.
(7) 알랭 쉬피오, <필라델피아 선언의 정신: 전체 시장에 대한 사회정의>, 쇠유 출판사, 파리, 2010.
(8) ‘지적이고 결합적이며 협조적이고 상호부조적인, 책임 있는 시민사회를 향하여’, 칼 폴라니 프랑스 연구소, www.institutpolanyi.f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