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의 선택

2020-04-29     앙토니 뷔를로 l 역사학자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1939~1944년의 사건으로 일어난 내부 분열에 주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레지스탕스의 조직망과 구성, 정치세력의 관계처럼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피에르 라보리(Pierre Laborie, 1936~2017)는 비시 정부 하 프랑스 여론 연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사후에 발표된 라보리의 연구집(1)을 살펴보면 라보리의 연구 행보에 대한 주요 특징을 알 수 있다. 라보리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치밀한 문제 제기를 했으며, 여론 현상이 지닌 복잡한 특성을 이해하려 했다. 그는 또한 특유의 예리함으로, 모든 형태의 저항(무언의 저항에서 적극적인 저항에 이르기까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당시 프랑스인 레지스탕스들의 태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주목했다. 이들 프랑스인 레지스탕스들을 가리켜 ‘4,000만 명의 페탱 지지자들’이라 소개한 베스트셀러(2)도 있었다. 

레지스탕스를 연구하는 최근의 주요 역사학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프랑스인 레지스탕스들이 선택한 개인적인 행보에 관심을 보인다. 상당수의 증언을 토대로 한 『그들은 어떻게 레지스탕스가 됐는가?』는 서로 뒤엉킨 다양한 다양한 인생 이야기로 짜여 있다.(3)『프랑스의 지하투쟁』의 저자들도 관심사는 다르지 않다. 이들 저자는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명확한 틀 속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끄는 방향과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며 레지스탕스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4)

 

레지스탕스 활동은 은밀하게 이뤄져야 했기에, 활동가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당시의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비시 정부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쓴 자료는 적지 않다. 그 중 고전으로 분류된 자료도 있다. 장 게에노의 『암흑시대의 일기』, 레옹 베르트의 『증언』, 몽발레리앙에서 총살당한 보리스 빌데가 감옥에서 쓴 일기가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레지스탕스의 다양한 행보와 형태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최근 몇 달 동안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다. 제2차 대전 이전에 프랑스 외무성에서 가장 저명한 대사에 속했던 남편을 둔 엘렌 오프노는 일기를 쓰는 습관(5)이 있었고 예술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페탱 장군을 거부했지만,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부임해 비시 정부와는 뒤늦게 관계를 끊은 남편을 묵묵히 내조했다. 

지조, 신중함, 드골 장군에 대한 불확신, 불안정한 힘의 관계. 앙리 오프노는 1942년에야 사임했다. 워싱턴으로 간 앙리 오프노는 앙리 지로 장군과 드골 장군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자유 프랑스(제2차 대전시 해외 망명 정부의 호칭)의 탁월한 간부가 돼 활발히 활동했다. 상류층을 대표하는 오프노 부부는 활동지역과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오프노 부부의 행보는 드골을 둘러싼 합의가 매우 천천히 이뤄졌음을 잘 보여준다. 

 

엘린 오프노의 일기는 내용이 풍부하고 명확하다. 반대로 장 프레보스트의 일기는 전쟁과 레지스탕스의 흔적이 모호하게 나와 있다. 『작업일지』(6)를 보면, 프랑스 문예지 <Nouvelle Revue Française 신 프랑스 평론>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던 젊은 작가 장 프레보스트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주변 관계, 자신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 터지자 장 프레보스트는 간결한 메모 형식의 글에 만족했다. 이후 장 프레보스트는 재혼했고, 일간지 <Paris-Soir 파리 수아르> 팀에 다시 합류해 글을 썼다. 그가 특히 몰두한 글은 스탕달과 글쓰는 기술을 다룬 연구논문이었다. 논문이 통과되자 장 프레보스트가 꿈꾸던 다음 목표는 레지스탕스 활동이었다. 이런 원대한 포부를 품는 것을 끝으로, 일기는 1943년 4월자로 중단된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장 프레보스트는 베르코르의 후작이 이끄는 전투위원회에 들어갔다.

장 프레보스트는 1944년 8월, 손에 무기를 든 채 베르코르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글·앙토니 뷔를로 Antony Burlaud
역사학자. 유럽사회정치학센터(CESSP)박사과정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Pierre Laborie, 『Penser l’événement 1940-1945 (1940~1945년의 사건을 생각하다)』, Gallimard, coll. <Folio Histoire>, Paris, 2019년.
(2) Henri Amouroux, 『Quarante millions de pétainistes. Juin 1940 - juin 1941 (4,000만 명의 페탱 지지자들. 1940년 6월~1941년 6월)』, Robert Laffont, Paris, 1977년.
(3) Robert Gildea, 『Comment sont-ils devenus résistants? Une nouvelle histoire de la Résistance 1940-1945 그들은 어떻게 레지스탕스가 됐는가? 레지스탕스의 새로운 역사 1940~1945년』, Seuil, coll. <Points Histoire>, Paris, 2019년.
(4) Sébastien Albertelli, Julien Blanc et Laurent Douzou, 『La Lutte clandestine en France. Une histoire de la Résistance. 1940-1944 프랑스의 지하투쟁. 레지스탕스 이야기. 1940~1944년』, Seuil, coll. <La librairie du XXIe siècle>, 2019년.
(5) Hélène Hoppenot, 『Journal. 1940-1944 일기. 1940~1944년』, Claire Paulhan, Paris, 2019년.
(6) Jean Prévost, 『Journal de travail. 1929-1943 작업일지. 1929~1943년』, La Thébaïde, Le Raincy,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