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은 동정이 아니다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은 역사·문화·정치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를 크게 5가지 모델로 분류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베버리지 모델’로, 영국이나 아일랜드의 자유주의 제도가 해당된다. 이 제도는 국민의 기본적 욕구만 해결해주며 세금을 통해 재정을 운영한다. 베버리지 모델은 최소한의 사회보장을 제공하며, 넓게는 극빈층을 대상으로 ‘보조적’ 역할만 담당한다. 수혜금은 사회보장 분담금과 관계없이 일률적이며, 필요로 하는 개인에게 지급된다. 그 밖의 사회보장수당은 민영보험 가입을 통해 지급받을 수 있다.
‘북유럽 모델’은 주로 세금을 통해 재원을 확충하고, 폭넓은 사회복지 서비스와 수당을 제공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모든 시민은 동등하게 사회보장 권리를 보장받으며, 수혜금도 동일하게 받는다(수혜금이 분담금과 비례하는 비스마르크 모델과 상반된다). 영국이 미니멀리스트라면 북유럽은 맥시멀리스트인 셈이다.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의 ‘라틴 모델’은 역사적으로 가족·지역·종교 내에서 행해지던 상호부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초기의 사회보장제도는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됐고, 국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과거 공산주의였던 중앙유럽 국가 모델은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바탕으로 하며,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훨씬 폭넓은 보험제도를 갖추고 있다. 지금도 출산휴가를 2년, 심지어 3년까지 보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가의 사회복지 서비스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자유주의 모델 수렴 경향 뚜렷
현재 유럽의 다양한 사회보장제도 모델이 하나로 묶여 자유주의 모델로 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유주의 모델에는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필요한 이들에게만 수혜금이 지급되는 ‘보조적’ 성격에 가깝다- 와 기본적 서비스만 제공하는 전문적 사회보장제도가 공존한다. 이와 관련해 사회보장제도의 연대성 혹은 개인주의에 대한 논쟁이 유럽 곳곳에서 열띤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12면 참조).
유럽은 여전히 사회보장제도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조화를 위한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는 여전히 지배자로 군림하려고만 하고 갖가지 조약은 사회 분야에서 아무런 실행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 와중에 리스본 조약을 통해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의 사회적 욕구를 고려하는 ‘수평적’ 사회에 대한 조항이 설치됐고, 유럽연합 역내 인구이동에 대한 합동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발효된 규정은 유럽연합 역내에서 이동하는 시민들에게 질병보험, 연금, 실업급여 및 가족수당에 대한 권리 유지를 보장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유럽연합은 담배와 라벨링, 이력 추적 시스템 등의 규제를 통해 강제적으로 공중보건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최근의 사회복지 서비스 자유화 경향이 집약된 ‘공동이익의 사회복지 서비스’(SSIG)는 국민의 생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수당을 지급한다. 2006년 12월 28일 발효된 이 ‘서비스’ 지침은 해석의 여지가 커서 법적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경제원조와 동일시될 여지마저 남겨두고 있다.(1)
이런 상황에서도 차별성을 갖춘 연대사회보장 기관들은 존재한다. 사회적 협상 채널을 기반으로 하는 공제기관과 사회경제 분야의 대표적인 공제조합들이 연합해 설립한 유럽 사회보장연구소(Ipse)의 도미니크 부셰르 대표는 “연대는 하나의 의무처럼 여겨져야지 아량을 베푸는 것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규범에 의해 여러 사회보장기관이 동일한 양상을 띠어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연대라는 차별성을 강조하려 한다. 연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재해나 수혜자를 선변하는 데 까다롭지 않고, 보험회사는 계약 체결에만 급급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셰르는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틀기만 하면 수당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는 아니라고 강조하며 두 가지 예를 언급했다. “포르투갈의 상호공제조합은 여성에게 해방 공간을 제공하고, 고용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일자리를 추천해줄 뿐 아니라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조언해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Pro BTP가 ‘소셜 카페’를 열어 은퇴한 이주노동자에게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행정업무를 도와주거나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다.” 연대를 위한 일련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공제조합의 활동을 통해 어떻게 공동이익이 충족되는지 알리기 위해 Ipse는 유럽 연대사회보장 헌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 헌장에는 조직(건강한 사람과 환자 간, 세대 간 연대), 관리의 투명성(사회보장 부담금과 수혜금의 흐름), 민영보험과 구별되는 특수성과 효율성 등 의무 사항이 명시될 것이다.
최대 쟁점은 자금 확보다. 유럽 노동조합연맹의 고문인 앙리 루르델은 “우리 사회보장제도의 구조와 자금 조달 방식을 살펴보면 주로 노동자의 소득에 의지하고 있다. 이는 연대를 향한 사회보장제도의 투쟁이 고용과 고용의 질 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됐음을 의미한다. 염려스러운 점은 10년 전부터 유럽에서 창출된 일자리 대부분이 비정규직 혹은 임시직, 시간제라는 사실이다. 이는 효율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운용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끊임없이 강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막강한 자본력을 갖추고도 극소수의 노동자만 고용해 분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기업을 찾아내야 한다. 자본 이득 측면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불안에 대응할 모델 필요
글 · 드니 스토캥 Denis Stokkink
번역 · 배영미 youngmib0222@gmail.com
<각주>
(1) 디디에 미노의 글 참조.
(2) 에티엔 카니아르, <지속적인 보건위생의 사회적 의미>, in Agir pour une santé durable, Les Cahiers de la solidarité, 25호, 파리, 2011년 1월.
(3) <유럽 속에서 상호조합회사의 특수성>, Les Cahiers de la solidarité, 23호, 201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