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 큰 권력, 민중봉기를 부르다

2011-04-08     사미르 아이타

‘아랍의 봄’에는 공적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단순한 요구 차원을 크게 넘어서는 배경이 있다. ‘아랍식 예외’를 거부하는 이유는 정치·경제에서 찾아야 한다. 새롭게 의식이 깬 민중이 종지부를 찍으려는 ‘아랍식 예외’란 1970년대부터 안정적으로 지속된 독재체제를 일컫는다. 아랍 세계에서 왕정은 절대적이며, 공화정은 종신 대통령(과 세습체제) 때문에 봉쇄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은 최고권력(1)이 정부와 독립성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관들 위에 군림하면서 영속을 위한 수단을 확보한 결과이다.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단 권력은 자신이 직접 통제하면서 의회나 심지어 정부의 감독도 일절 받지 않는 보안조직을 두었다. 이 조직의 일원이 정부 각료를 질책하거나 그들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울러 이 기구들의 문어발식 조직, 그리고 단일정당 혹은 봉건정당 내부의 밀고 끌어주는 인맥을 유지하는 데에는 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조달원은 경찰이나 군의 경우처럼 공공예산이 아니라 다른 각종 수입원이었다.

수명 다한 ‘아랍식 예외’

1973년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유 수출에 따른 수익이 크게 늘었다. 수익 중 일부는 공공예산을 확충하는 대신 다국적기업이 공모한 유통경로를 거쳐 왕실 혹은 이른바 ‘공화정’ 일가의 금고에 안착했다. 권력이 가로챈 재원은 비단 석유만이 아니다. 민간 부문과 군 부문의 대형 공공계약에 대해서도 커미션을 징수했는데, ‘구조조정’으로 예산 축소가 불가피해지면서 그 규모가 줄어든 뒤에는 새로운 기회가 등장했다. 가령 1990년대에는 이동통신이 도입되고 공공서비스 부문에 대대적인 민영화 물결이 이는 가운데 각종 ‘민관 제휴 관계’(BOT 형태 계약)(2)가 탄생했다. 특히 초기 이동통신은 비싼 요금을 낼 수 있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고객이 증가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다국적 대형 통신사와 영향력 있는 사업가, 그리고 집권층 사이에는 이익을 챙기려는 격렬한 싸움이 펼쳐졌다. 알제리 통신사 제지(Djezzy)를 두고 이집트의 오라스콤(Orascom)과 알제리 군 당국이 벌인 분쟁은 대표적인 사례다. 오라스콤은 그 전에도 시리아의 시리아텔(Syriatel)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오라스콤이나 레바논의 인베스트콤(Investcom) 등 아랍계 대형 다국적기업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막강한 보안조직과 돈줄 거머쥐고

아랍 경제의 세계화가 확대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중해 연안 아랍 국가들에는 유럽집행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여러 가지 의무를 강요하면서, 권력이 경제를 지배하는 추세는 가속화됐다. 특히 1986년 금융 붕괴 이후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3) 공적 투자가 줄어들고 정부의 규제 역할이 약해졌으며, 대형 다국적기업들은 집권층과 수익을 나눠갖는 방식으로 독점 혹은 과점 체제에 편입했다(시멘트, 유통 분야 등). 세계 유수 기업의 경영진들은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지, 신규 투자의 현지 파트너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튀니지는 트라벨시와 엘 마테리, 이집트는 에즈와 사위리스, 시리아는 마클루프, 레바논은 하리리 등이 현지의 대표적인 재벌 가문이다. 사위리스는 오라스콤-모비닐(Orascom-Mobinil)과 시멘트업체들의 지분을 이집트의 ‘혁명’ 직전 프랑스텔레콤에 팔아넘겼고, 덕분에 나지브 사위리스는 이집트에서 변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레바논에서는 인베스트콤을 남아공의 MTN그룹에 매각한 나지브 미카티가 현재 새 정부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부동산 부문이 부상했다. ‘두바이의 기적’을 둘러싼 대대적인 열기에 힘입어 아랍 세계의 모든 집권층은 공사 구분조차 모호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공적 개발계획을 발표한 토지를 개발업자들에게 헐값에 매각했고, 도심 유적지를 방치한 뒤 ‘동양의 매력’에 반한 투자자들에게 그 보수 공사를 의뢰했다. 결국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도쿄, 파리, 런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민영화, 공공서비스 마비시켜

이 모든 구조의 핵심은 은행 부문이었다. 벌어들인 커미션을 세탁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부동산 거래와 영업활동에 재활용한 주체는 은행이다. 또한 현지 기업가들이 권력에 지속적으로 충성하도록 대출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4)
이처럼 독특한 형태로 발전이 진행되는 이면에서는 정부와 공공서비스가 점차 힘을 잃고 있었다. 정부 각료는 최고회의에서 현 각료가 신임 각료를 뽑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나마 나은 경우가 국제기구(세계은행이 대표적)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를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선거권이 없었으며, 이들이 담당할 업무에 대한 프로그램조차 없었다.
정부의 모습은 더 이상 관료조직처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군의 세력도 약화됐다. 대신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친위대가 득세하며 권력의 영속성을 보장해주었다.(5)
통치 방식은 농촌에 전기를 공급하고 공교육을 확대시키던 독립 직후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졌다.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가 잇따라 지적했듯이, 커미션에 따라 결정되는 민영화는 급속도로 진행된 반면 공공서비스의 질은 저하됐다. 부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제다 같은 도시에서조차 급수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뤄지며, 어느 왕자가 강가에 배수시설이 없는 건물을 짓는 바람에 두 차례 물난리가 일어나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부패 캠페인이 전개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 거대 자본과 한 배를 탄 지도층이 부가가치를 조직적으로 착복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도덕적 혹은 종교적 문제인 양 호도하기 때문이다.
사회계층 피라미드의 밑부분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 가치가 유린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약 3분의 1이 이른바 ‘비공식 부문’(Informal Sector)에서 아르바이트로 연명한다. 이들은 실업자 통계에서 누락되는데도, 실업률은 20년 전부터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3분의 1은 민간 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자영업자이거나 근로계약·사회보장·퇴직연금·노조권을 누리지 못하는 무늬만 ‘임금노동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서비스나 행정조직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임금노동자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6) 공공서비스·행정 부문은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덕분에 특히 여성에게 인기가 높지만, 정부 수입 증대보다 지출 축소를 추구하는 ‘구조조정’ 정책 탓에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상당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인 이 국가들은 그만큼 노동시장이 분화돼 있다. 이주노동자(내전을 피해 온 팔레스타인·이라크·수단·소말리아 난민)의 정규직과 임시직 종사 비율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임시직은 경제적·사회적 권리가 훨씬 악화돼 있고, 이들의 노동을 착취해 막대한 커미션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7)

법치국가 재건이 급선무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문화로 무장한 아랍의 베이비붐 세대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유입되자,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의 하부가 최상부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사회구조 전체가 뒤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회적 혹은 부문별 요구가 곳곳에서 분출되자 일각에서는 놀라움을 표했다. 독립 뒤 국가 건설이 조용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정상 회복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이라도 한 듯 말이다.
이제 아랍 국가들은 다시금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즉 제도 위에서 활개치기보다 제도를 따를 줄 아는 한시적 권력이 통용되는 국가, 권력이 징수하는 커미션과 독점 구도가 하나씩 제거되면서 사업할 의욕을 유발하는 국가, 공적·사회적 자유가 모두에게 보장돼 노동자가 투쟁과 협상을 통해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국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고 구성원을 납득시킬 수 있는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추세가 그 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니 말이다.

글 · 사미르 아이타 Samir Aita
화학자. 주요 저서로 <무법지대의 아랍 근로자들>
(L’Harmattan·2011) 등이 있다.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각주>
(1) Samir Radwan & Manuel Riesco, <The Changing Role of the State>, Economic Research Forum, 2007.
(2) Build-Operate-Transfer. 정부가 민간투자자에게 일정 기간 시설 운영을 맡기는 일종의 임대계약.
(3) 당시 알제리와 시리아는 유가 폭락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1999년에도 동일한 현상이 재현됐으나 규모는 작았다.
(4) 이와 관련한 튀니지의 사례는 Béatrice Hibou, <복종의 힘>, La Découverte, Paris, 2006 참조.
(5) 살람 카와키비·바스마 코드마니, ‘칼날과 칼자루, 기로 위에 선 아랍 군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3월호 참조.
(6) Cf. ‘마그레브와 중동의 노동과 사회 문제’, <무슬림 세계와 지중해 리뷰>, n°105~106, Edisud, Aix-en-Provence, 2005.
(7) Steffen Hertog, <Princes, Brokers and Bureaucrats : Oil and State in Saudi Arabia>(Cornell University Press·Ithaca·2010)에 언급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주 노동자 비율에 관한 논의, www.economistes-arabes.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