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이름으로, 방글라데시 ‘바늘 혁명’

2011-04-08     야스미나 함라위

서구 유명 의류업체는 방글라데시를 최적의 생산기지로 여긴다.  하지만 정작 방글라데시에서는 인간다운 삶에 준하는 임금인상을 촉구하는 섬유공장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 물결이 거세기만 하다.

다카와 방글라데시 북부를 잇는 유일한 도로인 3번 국도는 낮이나 밤이나 차량으로 붐빈다. 국도 양쪽에는 군데군데 옴폭 팬 엉성하기 그지없는 도로변을 따라 나이 든 여인네와 젊은 여성들이 줄줄이 걸어가고 있다. 저 멀리 공터가 나타나자 걸음을 옮기던 여성들이 열을 이탈해 제각각 흩어지더니, 공터 한복판에 솟아 있는 거대한 개미굴 모양의 공장들 속으로 꾸역꾸역 사라진다.

세계적 브랜드에 가린 생활고

아침이면 300여 명의 인파가 다카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4천여 개 공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바느질하는 여성에서 재단하는 여성, 디자인하는 여성, 상품 취급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에 이르기까지 출근 행렬의 4분의 3이 여성이다. 방글라데시 여성 인력은 서구 굴지의 섬유업체나 유통업체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월마트, H&M, 토미힐피거, 갭, 리바이스, 자라, 카르푸, 막스앤드스펜서 등 유명 회사들이 방글라데시에 생산기지나 구매 대행업체들을 잇달아 세우고 있다.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한 섬유산업은 동아시아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 가운데 하나다.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산업화 과정에 들어섰다. 방글라데시는 1970년대 말부터 섬유산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 산업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대개 이혼한 여성,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남편에게서 강제로 버림받은 여성, 혹은 과부가 주를 이뤘다. 많은 여성이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가난에 찌든 농촌을 떠나 다카로 몰려들었다. 소득도 없이 불안정한 삶을 꾸려가던 농촌 여성들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가난을 피해 도시행을 택하는 여성 외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거나 중매혼이라는 운명에 인생을 내맡기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식 교육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다카를 찾는 여성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다카 산업공단은 극빈층 여성의 해방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방글라데시 여성은 결혼도 원하는 사람과 하고, 남자에게 결혼 지참금을 주는 대신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많은 의류 섬유 수출국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방글라데시는 위기 국면을 잘 벗어났다. 방글라데시 주재 유럽연합대표부 질룰 혜 라지 상무관은 “경제위기가 터지자 많은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싼 국가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를 진출지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세월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지 않고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또 인력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싼 인건비 수준을 자랑할 수 있었다.

농촌 여성들의 엑소더스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세 번째로 유럽연합에 의류를 많이 공급하는 국가이다. 거대한 이웃 나라 인도를 제치는 쾌거까지 달성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의 의류 섬유 산업은 국내총생산의 13%,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유력 의류 단체 ‘깨끗한 옷 입기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에 따르면, 방글라데시가 2005년 6월~ 2006년 6월 수출한 의류는 65억 유로에 이른다. 국토(14만7570km²)가 작은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웃 나라인 버마(미얀마)처럼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남단에 위치한 벵골만 일대에는 주기적으로 사이클론이 발생해 피해가 속출한다. 그 결과, 무시무시한 환경 재앙을 피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빈곤이나 치안 불안 등의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인도나 중국 등 쟁쟁한 주변국에 둘러싸여 있는 방글라데시 국민 가운데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인조차 방글라데시호가 침몰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자기 배를 채워보려고 안달이다. 그러다 보니 방글라데시는 국제투명성기구(TI)(1)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심각한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임금 인상 시위, 사상자 속출

전체 국민의 40%가 빈곤선(하루 1.25달러) 이하의 삶을 사는 방글라데시는 인간개발지수가 182개국 가운데 146위에 머물러 있다.(2) 사회적 불만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저항 시위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발생한 식량 폭동이다. 그 밖에 전체 산업 인력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섬유산업의 노동자 시위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제조수출업협회(BGMEA)에 가입한 제조업체 및 수출업체가 벌어들이는 수익과 노동자 임금 사이의 왜곡 현상은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난해 5월 시위에는 5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몇 달에 걸쳐 간헐적으로 시위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매번 무력진압으로 대응한다. 이미 10여 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임금 인상이다. 필수식품 가격 급등의 여파를 상쇄하기 위해, 월급여를 현재 1662타카(약 17유로)에서 5천 타카(약 51유로)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베트남 노동자의 최저 월소득은 75유로, 인도는 112유로다.(3)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노동권리 준수도 요구한다. 주중 하루 휴일과 출산휴가를 허용하고, 노동시간에 따라 정확하게 임금을 지불하며, 추가노동에 따른 수당을 꼬박꼬박 제공하고,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임기 초 국회 연설에서 섬유 노동자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표시했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형편없고”, “비인간적”(4)이라며 분개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29일 체결된 노사협정의 일환으로 임금인상안이 발표된 뒤에도 노동자들이 작업장 복귀를 거부하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총리는 경영자협회의 요구에 따라 “사태가 악화되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장에 군대를 급파하기에 이른다. 사용자 쪽은 노동자가 요구하는 임금수준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임금을 너무 많이 인상하면 생산비가 증가해 다른 섬유대국인 베트남이나 중국과 대등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에너지 수급 불안정, 열악한 인프라, 교통시설 미비 등에 따른 짐이 고스란히 피라미드 최하단에 위치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최저임금을 월 3천 타카(약 30유로)로 인상하는 것을 뼈대로 한 노사협의체의 협정이 지난해 11월 1일 발효됐다. 그러나 여전히 섬유 노동자의 요구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월 3천 타카는 여전히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시아 최저 임금’(Asia Floor Wage)(5)에 따르면, 최저생계비는 월 1만 타카(약 144유로)가 적당하고, 부양 가족이 없는 경우라도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5천 타카 정도가 필요하다. 한편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새로 제정된 법률을 기존 법률만큼 잘 지킬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법률 적용을 차일피일 미루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다카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여러 차례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면서 4명이 숨졌다.
공식적인 노사협상에서 파업이나 시위 주동자는 제대로 된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노사 간 대화에서 대부분 배제됐다. 정부는 이들을 체포하거나 협박하고, 대신 허수아비 인물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방글라데시는 1967년 노조 결성의 자유와 노조 권리 보호에 관한 1948년 협정을 비준했다. 하지만 파이줄 하킴 방글라데시 노동조합 위원장은 “공인을 받은 노동자 단체는 드물다. 그나마 공인된 단체는 정부나 사용자 쪽과 한통속인 경우가 많다. 그 밖의 단체는 노동자 단체에서 흔히 하는 말로 ‘음지’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정부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들도 이런 불법단체에는 가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성 가운데 최초로 섬유 노동자 권익단체의 사령탑을 맡은 미슈 모슈레파 의류산업노동자단결포럼 대표가 지난해 12월 전격 체포됐다. 그녀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정부가 외부 적과 내통한 혐의를 씌워 그녀를 여러 차례 구금하고, 외신과의 접촉도 금지했다.

한 몸으로 떠안는 세계 주변부 모순

방글라데시는 매년 유럽연합에 10억 벌의 티셔츠를 팔고 있으며, 전체 섬유 제품의 85%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더욱이 유럽연합 수출의 경우, 개발도상국에 대해 비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관세를 철폐하거나 인하해주는 ‘일반특혜관세제도’ 혜택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대표부는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묻는 질문에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유럽연합은 방글라데시에 무역특혜를 제공하는 등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어쨌든 ‘채찍’보다는 ‘당근’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혜 라지 상무관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공식적으로 압박을 가한 적은 없다. 생산성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문관의 입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에 많은 조언을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세 “방글라데시에서 섬유산업은 영향력이 크다. 300만 명의 노동자, 그 가운데 특히 시골에 남아 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막대한 파급력이 있다. 그러므로 저임금노동 착취 현실을 고발하고 상황 개선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로 인해 타격을 입거나 일자리를 잃게 될 수많은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재 참사에 무방비… 책임 떠넘기기

계속되는 파업 물결에 섬유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섬유공장 소유주들의 고민이 깊다. 수입업체는 한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다른 지역 공장에 납품 주문을 대체한다. 아웃소싱의 철칙상, 기업들은 납품업체를 한 지역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용이나 기술에 따라 납품처를 여러 지역에 분산해, 한 지역에서 생산에 문제가 발생해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은 최근 자사 상품의 윤리성에 대한 전세계 소비자들의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행동규범 채택에 나섰다. 노동자 리나는 그것마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증언한다. “해외 바이어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업체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을 속이게 하고, 미성년자는 실제 나이를 속이게 한다. 또 임금 지불 현황을 부풀린 가짜 장부에 서명하게 한다. 바이어가 골목 모퉁이만 돌아도, 금세 생수병을 낚아채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생수가 매우 비싸다.”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에 방글라데시 ‘오샹’ 의류 담당자는 즉답을 회피했다. 혜 라지 상무관은 “바이어의 태도가 바뀐다면 납품업체 사용자와 노동자의 숨통이 조금 트일 것”이라며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연쇄 하청에 의한 문제도 심각하다. 연쇄 하청은 발주처와 노동자 사이의 책임관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행동규범 준수를 어렵게 만든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의 안전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매년 하청 공장에 화재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참극은 대부분 위생시설이 열악하고, 수용인원이 초과된 건물에서 일어난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난해 12월 14일 화재는 카르푸, H&M와 하청계약을 맺는 그룹 하민(Hameen)의 다카 공장에서 일어났고, 28명이 숨졌다. ‘깨끗한 옷 입기 캠페인’에서 활동 중인 카롤 크라베는 방글라데시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수없이 많다고 지적한다. 일단 사건이 나면 발주처와 납품업체,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모든 책임은 공장 소유주와 바이어에게 있다. 최종적으로는 소비자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다. 소비자는 6유로짜리 셔츠를 사 입기 전에, 대체 그 셔츠가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 손에서 만들어졌을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다카 주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소속 경제담당 의원 루바이에트 제스민이 거침없이 말했다.

글 · 야스미나 함라위 Yasmina Hamlawi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이 단체가 가장 최근인 2010년 발표한 투명성 순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178개국 가운데 134위를 차지한다.
(2) 유엔개발계획(UNDP)이 작성한 순위(2009년 통계).
(3) 벨기에 소재 비정부기구 ‘깨끗한 옷 입기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이 발표한 통계 자료.
(4) <더 데일리 스타>, 다카, 2010년 7월 28일.
(5) 섬유산업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지역 단체로, 인간다운 삶에 준하는 임금 인상을 위해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