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교의 재발견

2011-04-08     마르셀 트티엔

종교 역사에서 유일신교는 인류 신앙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끈 것으로 주로 묘사된다. 하지만 유일신교의 투쟁적인 세력 확장은 우리 상상 속에서 다신교를 소멸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대 인류의 3분의 2가 ‘천성적으로’ 다신교도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유일한 신’에 대한 주장이 수많은 신의 존재에 갑자기 의문을 일으켰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시 말해 ‘다신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유럽 및 그 연장선상에 있는 로마와 메카, 예루살렘에서 의미심장하게 전개된 일신교 창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 필요하다.(1)

‘다신교’, 르네상스 때야 개념화

다신교를 의미하는 프랑스어(Polyth?isme)의 그리스 어원 ‘Polutheos’는 ‘다수의 신에 속한다’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자신의 한 작품에서 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6~7명의 신이 모여 있는 아르고스 성문의 울타리를 묘사하기 위해 창안한 단어로 추측된다. 그리스에 존재하는 신들의 수십 가지 작은 정원 중 하나를 의미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다신교’라는 단어가 개념으로 자리잡으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즉, 대표적 유일신교인 기독교에 집단적으로 대항할 위험이 있는 ‘이교도’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기술된 것처럼 종교의 역사는 혼합돼 있다. 기독교 이론을 기반으로 구성된 역사와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가 뒤섞여 있다. 다신교(들)에 대한 의문은 ‘인류 종교의 기원’에 대한 (철학자와 사회학자, 인류학자, 신학자의) 고찰에서 비롯됐다. 종교의 기원은 서구세계의 지식 기반에 필수적인 동시에, 문명사회를 구현하려는 서구인의 특권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인식됐다. 무엇 때문에 다신교의 유형, 종류, 다양성, 스타일에 대한 비교적이고 실험적인 분석이 대부분의 지식 영역에서 끊임없이 배척되고 심지어 금기시됐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십 세기 전부터 유일신교 자체를 기준으로 한 물음과 문제를 기반으로 지식들이 발전해왔고, 3가지 대표 유일신교 중에서도 특히 ‘가톨릭’(2)이 앞장서왔다.
구약성서에서 신약성서에 이르는 역사적 기술은, 최초의 유일신교가 어떻게 끊임없는 투쟁과 분열로 얼룩진 역사의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준다. 히브리어의 구약성서는 수세기를 거쳐 아랍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복음서(신약성서)로 이어졌다. 우리는 근동 지역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다른 모든 신을 인정하지 않는 신의 등장이 기원전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7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류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너무 연약한 인간은 자신의 뇌가 발전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작은 복제품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하루하루를 생존해가는 데 필요한 열정, 즉 꿈을 바탕으로 한 모든 종류의 초자연적 대상이었던 셈이다.
두 발 짐승 중 하나인 인간은 모든 신을 배제하는 대신 유일신의 표상을 꿈꿨을 것이다. 이제 근동 지역의 시리아, 가나안 지역의 유목민족에서 일어났던 특이한 사실을 살펴보자. 두 지역의 목동 무리가 ‘민족의’ 작은 신이던 엘로힘이 유일한 신으로 추앙받기를 원해 스스로 그 신을 ‘야훼’라 명명하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선민’으로 택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미약했다. 아시리아인이나 그리스인, 아프리카인은 동요하지 않았고, 중국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과 동시대의 페르시아인이 유일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페르시아인은 정복지에 자치권을 인정해주고 구체적인 물질이나 신전, 동상 없이도 야훼와 같은 신성을 인정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모든 성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1천 년 역사의 다신교가 중동과 근동 지역에서 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토론회와 성소를 장악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작은 신에 집착하는 과대망상이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연구 자체가 금기시되다

신명기나 에스겔 이후 2천 년 이상 지난 볼테르 시대에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다신교’를 거론하는 동시대인 몇몇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하지만 서양의 수많은 나라에서 유일신교 가톨릭의 위상이 막강했기 때문에 다신교 연구가 시작된 것은 그러고도 한참 지난 뒤다.
고고학자와 언어학자, 역사학자들은 최근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로 추정되는 터키의 보가스코이에서 ‘신들의 회합 장소’인 판테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율법학자·관료·대신이 행정을 담당한 다신교는 고도로 중앙집권적이었는데, 그들은 수많은 신민(臣民)을 구분지어 강력한 몸과 영혼을 유지토록 하는 일을 맡았다. 동시에 수메르 문명과 고대 바벨론 문명의 전문가들을 통해 예언가, 율법학자 등 학식자들이 정성껏 100여 명의 신을 조직하고, 그들의 목록을 해석하며, 가족별로 편성하고, 두세 명씩 분류했음이 드러났다.
때로는 모래 위 발자국, 빈 옥좌, 금속 거울, 냄새, 침묵이 모두 신이 되었다. 특히 일본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 모든 대상과 생물체, 심지어 쌀알, 지명, 나뭇가지, 돌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 오래전 동양인은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소소한 것의 영혼을 숭배하며 이들의 은총을 받아 (매우 가톨릭적인 생각이다) 인간이 아니마(3)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날이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부족 증언을 토대로 한 아프리카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주물’이라고 불리는 대상과 사물 속에는 예언에 대한 작은 의식, 또는 한 선조에서 다른 선조로 이어져 탄생과 죽음 사이를 거치는 수천 가지 길이 담겼다.
세계 도처에 신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권능한 영혼이나 위대한 신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자연적 주체’에 형태를 부여하고 때론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상상해낸 종교의식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에 대한 개념을 습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만다행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기저기에서 섬광을 발한 인류의 파수꾼들이 있었다. 신세계 도래에 대한 기대로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어떤 파수꾼은 대중의 사고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닮는다면, 그것(대중의 사고)은 때론 친숙하고 때론 흉측스럽게 언제나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미셸 몽테뉴가 바로 그다. 그는 이런 신앙들은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유사’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신앙을 만들어낼 능력을 유일하게 갖춘 인간의 정신, 즉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장인’에 의해 탄생된다고 넌지시 암시했다. 종교를 창조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고 해도 그렇게 탄생한 종교가 과연 ‘막강한 권력’을 뽐낼 수 있을까? 영혼이든 정령이든 수많은 신은 지역끼리 대립하지 않는다고 뛰어난 파수꾼은 조용히 덧붙였다. 지금까지 어떤 쌀알도 ‘외쿠메네’, 즉 모든 거주 지역의 사람들을 개종하려 하지 않았다.

유일신교끼리 벌여온 학살극

단순한 사실은 유일신교들이 다신교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모두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가장 먼저 자신들끼리 전쟁을 벌인 당사자라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부한 진실은 가톨릭교와 이슬람교가 진실 폭로에 직면한 목격자로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바로 상호 대량학살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비장한 역사는 오늘날 할리우드가 ‘문명전쟁’을 그린 것처럼, 몸서리칠 만큼 살인적이었다.
진실이 있다면 다른 신앙들은 이단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팔레스타인의 예언자가 나타나,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소수의 숭배자가 그에게서 나타난 모든 영혼을 돌보는 ‘신’의 카리스마에 열광했다. 놀랄 만한 예언의 재현을 가족이 함께 믿는다는 것은 ‘회합’(4)해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메시아니즘을 확신한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우월한 종교’로 내세운 것을 믿게끔 하는 것은 새로운 신앙의 창시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악행이다. 갈릴리(팔레스타인의 북부 지방으로, 이곳의 나사렛 마을은 예수의 고향으로 알려졌다)의 후미진 마을에도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불시착한 인간들을 구원하려는 위대한 계시가 왜 없었겠는가? 그는 분명 친구와 이웃들에게 이제부터 ‘세상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기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줄기찬 탄압에도 다신교는 굳건

이는 다른 신앙, 즉 ‘이단’을 세계적으로 소외시키려는 원대한 작전에 대한 몽상을 의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작전은 결국 기원후 320년 서방세계에서 현실로 일어났다. 황제이기 때문에 비범했던 로마인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선임 황제들에 비해 뛰어나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복음’으로의 전향을 결심한 것이다. 결국 4세기 초 예수님의 가련한 신도들은 ‘회합’해 스승의 말씀을 중심으로 ‘책’(5)을 만들고 ‘교회’, ‘의회’라고 불리게 되는 것을 세웠으며,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도시를 ‘제국’의 중심지로 선정해 정착했다. 군주의 권력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교회는 성서 해석의 진리와 함께 하나님 계시의 유일한 종착지로서 사도신경에서의 믿음 의무를 가르치며, 그 밖의 모든 신앙은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치부했다. 결국 서열화된 성직자의 세계적인 권력 아래 수세기 동안 다른 모든 ‘신들의 봉직자’의 영향력은 퇴색했다. ‘서구 문명’은 점점 확장해 타민족을 개종하고, 정령을 숭배하는 야만인의 영토를 점령하고, 십자가를 앞세워 이른바 ‘종교적인 정의로운 전쟁’을 일으키며 곳곳에 진실과 선을 설파했다.
자, 이제 어떻게 수많은 고통에 놓인 영혼들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내려간 우리가 ‘다신교 신자’가 되었는지 알겠는가.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배척 정신이 담긴 전체주의적 유일신교의 뿌리 깊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지에서 다신교 숭배자가 된 이들도 있다. 즉각적으로 얻은 이득은, 한때 ‘종교적 이단’으로 소외된 우리의 거대한 상상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악랄한 전문가가 내게 속삭인다. “다신교, 장래가 유망한 시장이군!"

글 · 마르셀 드티엔 Marcel Detienne
저서로는 <민족 정체성, 그 수수께끼>(Gallimard·Paris· 2010) 등이 있다.

번역 · 배영미 youngmib0222@gmail.com

<각주>
(1) Francis Schmidt, <상상할 수 없는 다신교: 종교적 사료편찬 연구>, Editions des archives contemporaines, 파리, 1998.
(2) 가톨릭교를 뜻하는 ‘Catholique’는 ‘보편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파생되었다.
(3) 라틴어로 ‘영혼·생명’을 의미한다.
(4) 그리스어로 ‘Ekklesia’, 즉 교회를 의미한다.
(5) 책은 그리스어로 ‘Bibl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