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학, 재미뿐인 경제 프로

2011-04-08     로랑 코르도니에

배우 이브 몽탕의 자유주의적 교육 프로그램 <위기 만세!> 방영 25년 뒤, 프랑스 공영방송은 지난 1월 11일 재방송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 방송은 이념적 차이가 확연하다. 3년간의 금융위기로 시장자유주의의 신뢰가 빛을 잃자,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사회민주주의를 그려내려고 현시대의 경제사를 다시 쓰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케인스는 “이런 말을 믿고 싶지 않겠지만, 경제라는 학문은 어렵고 전문적이다”(1)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일반 시민들에게 경제 관련 핵심 사안을 알리려고 애쓰는 이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국영방송 <프랑스2>가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유머와 교훈과 시(詩)가 있는 경제 이야기’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프로그램 <돈, 몰락, 몰락 이후의 고통, 그리고 비극의 드라마>를 통해 이를 전달하려 한다. 시를 논하는 것은 진행자 피에르 아르디티의 역할이다. 프로그램 공동 작가이자 고등사범학교(ENS) 교수인 다니엘 코엔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서 교육자 역할을 맡았다.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만, 다른 공동 작가인 에릭 오르세나가 맡아야 한다고 해두자.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종국에는 프로그램이 지적 성숙을 가져온다기보다는 ‘정치적 편가르기’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좋지만…

프로그램의 시작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간결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진행자 피에르 아르디티는 ‘영광의 30년’ 시대의 생활과 현재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주제를 던진다. “제 어린 시절의 평화로운 시대와 현재를 어떻게 맞바꿀 수 있었을까요? 일자리가 사라지고, 손가락만 까닥하면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다들 사는 것을 점점 더 힘들어하고 있지만, 누구는 다른 사람들이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을 한 달 만에 버는 지금 세상과 말입니까?” 그는 다시 말한다. “이거 하나는 깨달았습니다. 탐욕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고, 참을성 없는 인물들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현 시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이 비극적인 드라마를 5부작에 걸쳐 영웅과 배반자, 거짓말쟁이, 꼭두각시를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르디티가 말하는 이야기가 동화가 아닌 인간의 악함이 주제인 도덕적 이야기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아르디티의 어조는 마치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의 앙드레 뒤솔리에처럼 ‘사악한 인간’(Homosapiensnequam)(2)을 토대로 한다. 악인의 역할로 로널드 레이건, 밀턴 프리드먼, 마거릿 대처, 장마리 메시에(3), 베르나르 타피,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회장인 딕 풀드가 등장한다. 헨리 폴슨과 앨런 그린스펀도 모습을 비친다.(4)


물론 이 인물 모두가 무대의상을 입고 등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매함과 거만함, 교활함이 번뜩이는 번쩍거리는 옷을 입은 인물들의 호쾌한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배우들, 아니 배우들의 재능 때문에 드라마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출연진에 무대연출이 가려지고, 몇몇 중요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성공의 무대가 된 곳에 대한 구조적 시각이 묻혀버렸다. 무대에 대한 구조적 시각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보고 싶어하는 부분이었을 텐데 말이다. 25년 전에 도입돼 금융 및 경제 위기를 오랫동안 가려왔던 신자본축적 체제의 구조 말이다. 법과 협약, 결정권 등 한 국가 내부 및 국가 간 경쟁 조건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게임 법칙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중소기업, 상장된 대기업, 은행권 및 다른 시장 내 금융기관, 저축 예금자와 노동자, 기관투자자와 주주, 상장기업의 고위 간부와 규제기관, 신용평가기관 등 주요 경제주체들 간 급격한 경제권력 재분배를 유발한 제도적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사회관계를 재정립하고, 국가 및 공공기관뿐 아니라 중앙은행, 공기업, 노동시장 내 중개기관, 사회권, 실업보험제도, 연금제도 등과 같은 경제 및 사회 제도의 어젠다 수립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념적 혁명은 무엇이 있는가? 프로그램 작가들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전환기를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노력 끝에 ‘사회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항해 시장이 대세로 가고 있음을 자축하는 장면도 나온다. 대처가 레이건에게 찬사의 말을 던지며, 미국식 억양이 아님을 사과한다. “이제 막 시작일 뿐인데요!” 칠레 피노체트 정권에 협력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통화주의의 대부’로만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은 사회적·정치적 반동혁명을 부채질하는 역할로 소개된다. 이런 혁명의 잔혹성은 1981년 미국에서 일어난 항공관제사 파업 진압 사건과(5) 1984년 영국의 광산노동자 파업 때 보여준 ‘철의 여인’ 대처의 가차 없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지적 성숙보단 정치적 편가르기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경제제도에 반드시 필요한 ‘근대화’라는 좀더 긍정적 모습으로 묘사됐다.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철강기업을 끝도 없이 도울 수는 없다”며 마지못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공표한 것으로 보였다. TV 프로그램에서 ‘경제학자’로 소개됐지만, 당시 대통령의 문화담당 자문을 지낸 에리크 오르세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런 대통령에게 용서의 뜻을 비친다. “1983년 3월은 정치가 진정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료급식소’가 다시 등장했고, 때마침 코미디언 콜뤼슈와 그가 만든 자선단체 ‘마음의 급식소’(Restos du cœur)가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풍요 속 빈곤으로의 회귀를 뜻함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시장과 개인 사이를 중재하던 사회제도들의 폐지나 다름없다”고 요약하는 다니엘 코엔의 말은 적절하다. 프로그램은 이에 따른 결과- 소득 격차 심화- 도 잘 보여주었으나, 너무 빨리 지나간 감이 있다.

말해야 할 것들을 말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구조적 측면까지 논하기에는 생략된 부분이 많다. 1984∼86년 로랑 파비위스 사회당 정부(6) 시절에 재정장관을 지낸 피에르 브르고부아의 지휘 아래 신자유주의를 찬양했던 주요 인물들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것이 놀랍다. 유럽 사회민주당 전체가 신금융 논리, 자유경쟁과 민영화의 미덕, 세금 인하와 노동복지로 돌아선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같이 ‘경제적 번영’이라는 명목으로 유럽 내 금융 분야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반대하는 영웅들도 전혀 다루지 않았다. 1985년 유럽집행위원장에 오르자마자 자크 들로르가 ‘거대 자본’(7)의 로비를 받고 추진하기 시작한 ‘단일시장화’와 유럽경제권을 전적으로 단일시장이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자유주의 논리는 언급되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경솔한 자유무역주의나 여기에 적극 찬동하는 유럽연합(EU),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퇴행적 정책을 가져온 ‘워싱턴 합의’는 다루지 않았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소득분배제도의 수정이나 경제학자와 정치권 및 금융권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1985∼86년 볼리비아 정부의 자유주의 경제체제 도입에 자문 역할을 했고, 1984∼96년 세계은행 컨설턴트였으며, 라자르은행의 현 자문인 다니엘 코엔이야말로 이런 유착을 상징하는 인물임에도 말이다. 1970년대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공격한 일단의 학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다.(8)

느닷없는 낙관주의로 마무리

에리크 오르세나가 지나간 과거와 위기가 닥친 미래 간의 연관성을 논하는 것으로 피날레는 시작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시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점이다. 두려움이야말로 사회 근간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것입니다. 겁먹었을 때 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르디티가 “상대방을 물어버리죠”라고 대답한다. “그렇죠. 상대를 물어버립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없앨수록 물리는 일도 없겠죠.” 오르세나가 말한다.
이렇듯 개로 비유한 경제학과 행태주의적 뉴런경제학 간의 어휘적 통합을 던져놓고는, 이를 음미할 시간조차 없이 곧바로 약속으로 가득한 미래로 우리를 안내한다. 조만간 풍력을 대체할 연을 보여주며 녹색 비즈니스를 비추고, 소액대출의 아버지 무함마드 유누스가 그 신성함으로 어제의 금융 중개인을 하루 만에 인류 구원자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며 행복이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참 희망적이지 않습니까?”라고 아르디티가 희망차게 말한다. “탐욕스러운 인간도 세상은 필요로 합니다. 마치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생태계에 포식자가 필요하듯 말입니다. 미래에 필요한 기술 발달을 가져오는 데 투자 거품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최빈층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소액대출이 필요하다면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 방송 제작이 끝나기 무섭게 인도에서는 소액대출 거품이 붕괴하면서 궁지에 몰린 채무자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급기야 안드라프라데시 주정부가 소액대출기관들의 ‘과도한 수익’과 ‘날강도짓’과 이들로 인해 빈곤층이 고통받고 있음을 비난했다.(9) 신기술과 금융의 마술,  사회다윈주의가 합쳐져 모든 것을 해결해줄 마법의 묘약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기술·금융·경쟁의 삼박자야말로 묘약이 아닌 우리 앞에서 정면으로 폭발한 잡탕물이며, 그 여파야말로 잔혹함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글 · 로랑 코르도니에르 Laurent Cordonnier
노동경제학 전문가. 주류 경제학의 기초를 비판하는 연구를 하며, ‘국제금융과세연대’(ATTAC) 회원이다. 주요 저서로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2001·창작과비평사) 등이 있다.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존 메이너드 케인스, ‘풍요 속의 빈곤’, 프랑크 반 데 벨데가 프랑스어로 번역. 갈리마르, 파리, pp.121~131, 2002..
(2) 악하다는 의미.
(3) 장마리 메시에는 한층 너그러운 대접을 받았다. 오르세나는 그의 몰락에 대해 말하며 자제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참, 너무 성급하셨죠.” 장마리 메시에가 카날플러스 감독위원회 부회장으로 임명한 사람으로서 보인 마음 씀씀이겠다.
(4) 각각 골드만삭스의 전직 사장이자 부시 행정부(2006~2008) 재무장관이었고,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1987~2006)을 지냈다.
(5) 당시 미국 항공관제사들의 장기 파업으로 공무원 1만1천여 명이 해고됐고, 노조 관계자 10여 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6) 피에르 랑베르, ‘권력은 얻었으니, 이제는 돈이 필요한 때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09년 4월.
(7) 프랑수아 루핀, ‘로비스트들이 세운 유럽합중국, E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0년 6월.
(8) J. E. 킹, <A History of Post Keynesian Economics since 1936>, 제6장, 에드워드 엘가, 첼텐험, 2002.
(9) 파트리크 드 자크로, ‘소액대출의 몰락: 인도판 서브프라임’, <레제코>, 파리, 2010년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