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변화는 없다!

2020-05-29     토마스 프랭크 | 언론인, 역사학자

미국 역사상 최악의 순간이 찾아왔다. 감염병 사태가 터진 것이다. 예언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경고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대비도 하지 못한 우리는 추락하고 말았다. 거대한 미국 정부 조직은 극우세력의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아주 작은 것에도 과도할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러나 이 역사적 위기 속에서 정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우리들의 대통령이자, 과거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이 낳은 인기 스타이기도 한 도널드 트럼프는 전적인 무능함을 드러냈다. 게다가 미국 가정에서 거의 매일 회자되는 바보 같은 농담으로 공중보건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미국 전역의 대다수 가정이 외출 제한 상태에 처해있다. 감염병으로 큰 피해를 보았던 뉴욕시에서는 불과 몇 주 전, 공동묘지에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불도저를 투입해야 했다.

 

감염병 사태가 초래한 신경제대공황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온전히 운영되던 이 나라는 격리조치의 전면적 실시 이후 경제활동도 전면적으로 중단됐다. 미국에는 갑작스러운 차단의 영향을 완화해줄 안전망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최근 경제성장을 구가해오던 미국은 모든 중간단계를 건너뛴 채, 순식간에 ‘신(新)경제대공황’에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률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자신밖에 모르는 군주가 다스리는 이 나라의 국민은 질병과 경제 붕괴라는 예상치 못한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우리의 이웃들은 병원 어딘가에서 쓸쓸히 혼자 죽어가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붐비던 식당은 문을 닫았고, 그곳에서 일하던 요리사들도 실업급여 신청서를 작성하느라 바쁘다. 

이런 모든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유난히 아름다운 날씨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베데스다(워싱턴 D.C. 인근에 있는 메릴랜드 주의 도시)에 거주하는 나는 이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려하고 쾌청한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도심 인근 사무직 노동자의 눈에, 마치 18세기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 풍의 화사한 풍경화처럼 등장했다. 처음 공포를 느꼈을 무렵 수선화가 피었고, 그다음 튤립이 피었다. 이후 목련과 벚꽃도 피었고, 이제 진달래가 필 때가 왔다. 베데스다의 조용하고 한적한 길에서 홀로 조깅하고 있을 때면 산수유나무가 머리 위로 아름답게 아치를 만들어준다. 

이처럼 극명한 모순을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목소리 좀 낸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번 감염병 사태가 자신의 신념이 옳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환호하고 있다. 몇몇 미디어는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무능과 무지가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며 반기고 있다. 보수층 지지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좌파 지지자들이 이민자들을 수용하자고 했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비판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적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은 정보화 시대의 진입 대가로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조 시설을 외주화했다. 이제 미국은 의료나 법률 등에 종사하는 이들로 넘쳐나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의 나라가 될 것이다. 화이트칼라의 노동은 질량은 미미해도 가치는 막대한 ‘정신’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노동이다. 우리는 기존 배송업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의 신속 배송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상한 지도자들 덕분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의 부족, 감염검사의 난항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낙관적 미래전망 순식간에 소멸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정권을 번갈아 가며 양당의 열렬한 도움을 받아 이룩한 이윤추구 기반의 미국 공중보건 시스템은 팬데믹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스템은 애초에 공중보건 증진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으로서 내가 받아온 암묵적 메시지는 ‘공중보건 서비스라는 특권을 누리고 싶다면,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받을 치료행위를 세분화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 그리고 제약산업계의 위대한 의사들과 젊은 수재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보라. 이 시스템은 철저히 능력주의에 기초한 제도다. 

가난해서 저렴하고 부실한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뼈가 부러졌거나 장기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천문학적 액수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피를 닦아주고,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치료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재 미국 보건 정책의 기본방침과 상반된다. 이처럼 필수적인 결정도 언제,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나라에서 미국인들은 살고 있다. 

감염병이 가져온 유익한 결과가 하나 있기는 하다.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조정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인들은 얼마 전까지 대학교 졸업장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1)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줬던 이들 중 일부가 종사하고 있는 소위 ‘3D’ 업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직종 종사자들은 지속적이고 고된 노동으로 인해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한편 민주당의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연했던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농부나 노동자와 달리 ‘생각하고 분석하는 법’을 아는 엘리트들이 열광할 법한 이론을 제시해, 강연장의 학생들을 기쁘게 했다. 

현재 농부와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우리가 감염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로 소모되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일터로 나간다. 감염병에 걸릴까 걱정할 겨를도 없이 최저임금을 받기 위해 가는 것이다.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식품점이나 육류공장에서 일했던 그들은 결국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반면 정보화 시대를 대표하는 화이트칼라들은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주가 등락을 즐긴다. “미국 의회 만세! 연방준비제도 만세!”를 외치며 말이다. 주로 이메일과 화상회의로 진행되는 그들의 업무 방식은 안전한 격리가 필수적인 감염병 시대의 트렌드와 잘 어울린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3D’ 업계 노동자들은 인내심을 잃지 않을까? 그렇다. 미국에서 사회 저널리즘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관련 정보는 거의 없지만 직장 내 노조 행동이 포착됐다는 신호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반(反)노조 로비스트 중 한 명인 릭 버만은 고객들에게 ‘노동자들의 부분적 반란’(2)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몇 주 동안 많은 수의 자발적 파업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3)

이런 결과들은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지도자들이 1970, 1980, 1990년대를 거치며 지구 전역에 확산시켰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순식간에 소멸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현상 유지’라는 조 바이든의 공약처럼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미국 자유주의가 처한 암울한 모순에 직면해 있다. 현실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혁신할 수 있는 기관은 민주당뿐이다. 그렇다. 민주당은 오늘날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관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미국에서 창궐하기 바로 몇 주 전, 민주당은 공개적인 자축 속에 미국 정책이 단기간에 개편될 가능성을 아예 근절시켜 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민주당 지도자들은 이번 위기를 조용히 흘려보내기로 한 듯하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쟁이 벌어졌다. 좌파진영을 대표하는 몇몇 노선은 이미 초기 단계에 진부한 노선으로부터 분명하고 색다른 방식으로 결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기존 질서 선호자들의 지지 덕에 지난 2월 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압승했다. 다른 후보들 대부분은 승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하차했다. 유일하게 경선을 계속했던 정치인은 우리 시대의 개혁가이자 청년들의 찬사를 받는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으나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격동의 시기에 등장한 인물, 조 바이든은 ‘현상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가 속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도구에 불과할 선거를 준비 중이다. 우리는 지금 역설적인 정치적 기류 속에 있다. 미국 유권자 대부분은 급진적인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런 바람을 실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의 두 백인 사이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발언을 두고 진위공방을 벌이고 있는 한 노인과 수십 년 전 성추행 혐의로 최근 고발된 한 보수주의자.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주적 개혁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것이다. 마치 신의 섭리처럼 예전의 대선 구도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반복해서 말한다. 현재의 여론지형을 고려한다면, 지도자만 잘 선택한다면, 놀라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지평은 친절하고 노련한 후보, 조 바이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여러 가지 재앙에 연루돼왔다. 직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상업적 계약, 이라크 전쟁, 파산자들에 대한 가혹한 입법, 대량 투옥, 전례 없는 애국자법(Patriot Act,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내 테러 예방을 위해 제정된 법률. 인권침해 등의 독소조항에 대한 논란으로 2015년 6월 폐지됨-역주) 입법을 통한 사생활의 자유 침해 등. 심지어 정치에 입문할 당시 분리주의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몇몇 흠결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근하며 호감이 가는, 고전적인 가치를 표상하는 정치인이다. 한편 병적인 자기애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되는 분노를 늘 새로운 방법으로 해소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미국에 가져다주는 재앙만큼이나 끔찍한 경제적 피해와 보건 위기를 과연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직은 답이 없다. 그리고 당선자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유권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재앙이 끝나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가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을 안심시켜 온 말처럼 말이다. 이 구호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훌륭한 슬로건이다. 나의 좌파 친구들은 요즘 우울한 심정으로 이 구호를 곱씹는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승리를 예상했던 그들의 영웅, 버니 샌더스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들은 인터넷 사용자들과 트위터로 교류하며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나도 그들의 안타까움에 공감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현재의 재앙이 끝난다고 해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언론에서는 기존의 질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도한다. 끊임없이 양산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기업으로 유입시키거나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들에 더 많은 권력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 출신의 뉴욕 주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는 이번 ‘감금의 시간’을 빌 게이츠를 비롯한 ‘기술계’ 억만장자들을 설득해 뉴욕주의 미래를 재편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그런 그들을 막을 방법은 우리에게 없다.

팬데믹 속에서 엄습해오는 두려움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형태로 말이다. 시스템은 우리를 속인다. 원래 우리를 속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히고 지워지는 동안 어떤 이들은 우리의 미래를 뒤바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우리가 한 잔의 술로 마음을 달래며 TV를 보는 동안 그들은 우리의 사회 계약서를 다시 쓰고 있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시카고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의 <네이션>, <하퍼스 매거진>, 프랑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주로 문화와 사상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고, 미국의 정치와 선전, 광고, 대중문화, 주류 언론과 경제에 관심이 많다.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한 『하늘 아래 유일한 시장 One Market Under God』,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도 변화무쌍한 집권 전략을 폭로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보수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분석한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등의 저서가 있다. 이번 7월에 The People, No: A Brief History of Anti-Populism (Metropolitan Books, New York)을 발간할 예정이다. 

번역·이근혁
번역위원


(1) Lizzie O’Shea, ‘Les emplois qualifiés n’existent pas 숙련 노동자 고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5월.
(2) ‘Anti-union operative warns business of historic rise in labor activism’, <The Intercept>, New York, 2020년 5월 1일, https://theintercept.com
(3) ‘Covid-19 strike wave interactive map’, <Payday report>, Chattanooga, https://payday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