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티는 근무 중> 제인 윌스, 카비타 다타, 야라 에반스 등
“런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가진 자들의 것이지만, 오전 5시부터 9시까지는 우리들의 것이다.” 런던에 사는 어느 가나 출신 외국인이 들려주는 이 말은 이른바 ‘글로벌 시티’라 불리는 도시에 새로운 사회계급이 존재함을 잘 보여준다. 글로벌 도시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서비스 경제에서 잡다한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간다. 사회학 연구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들은 지난 20년간 많은 외국인이 몰려오면서 런던은 엄청난 다양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런던에 179개국에서 온 외국인이 살고 있고,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모두 합하면 300여 개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불평등의 꾸준한 증가라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가사도우미, 미화원, 패스트푸드 종업원 등 단순직에 종사한다. 외국인 노동자야말로 빈부 격차가 뚜렷한 도시 경제에서 맨 하부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유형과 인종을 상세히 관찰하며, 영국의 노동시장을 재정비하고 동시에 개도국의 생활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민주주의의 술책> 이자벨 티로, 후아 린샨
지금의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불만족’과 ‘항의’가 어떻게 표현될까? 민원사항 수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중국의 정부기관이 받은 수백 통의 편지, 여러 증언과 자료를 참조해 두 저자가 이를 역사적으로 재해석한다. 두 저자는 행정 개혁과 정치권의 결단 덕분에 ‘행동하는 시민들’이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말한다. 행동하는 시민들이란 바로 정부기관과 당국에 편지를 보내거나 이곳을 직접 방문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두 저자는 용기 있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그동안 중국인이 공동으로 뭔가를 추구하던 경향이 점차 무너지고 있음을 상세히 보여준다. 각자 말·기대감·판단이 다르지만, 다른 한편에서 국민과 노동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공평함’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의 그림자> 가오 웬키안
전통적인 지식인이면서 모범이 되는 혁명가인 저우언라이는 ‘중국 막후의 참모’(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카이유가 집필한 저서 제목이기도 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역할은 실제로 복잡했다. 꼼꼼한 사료 연구가 돋보이는 가오 웬키안의 책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의 그림자>는 그에 관한 전기로는 최고라 평가할 수 있다. 저우언라이는 여러 면에서 복잡한 인물이다. 중국 중심 사고를 가진 마오쩌둥과는 달리 저우언라이는 젊은 시절 낭만적 성격을 가졌고, 서구(파리·베를린·모스크바)를 두루 다니기도 했다. 저우언라이는 한때 마오쩌둥에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마오쩌둥을 정치적으로 도왔다. 저자는 둘의 모호한 관계를 파고든다. 서로 끌리면서도 거리를 유지하고 협력하면서도 증오하는 관계, 아니면 서로 상대를 조종하는 것일 수도 있는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두 사람을 연구했고, 두 사람에 관한 전기를 여러 권 펴냈다. 저자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자료도 볼 수 있었다. 현재 저자는 미국에 거주하며 강의를 하고, 중국 역사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저우언라이 전기와 비교해 이데올로기적·정치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19세기의 언론, 국가와 세계화> 마리 이브 테랑티, 알랭 바이앙
19세기에는 전세계에 걸쳐(유럽·북미·남미) 언론이 동질성을 띠고 국가 정체성이 확립됐는데,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2006년 열린 세미나에서 다룬 주제다. 신문이 발달할수록 국가 정체성과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공공 공간이 강화됐다. 그야말로 진정한 정신적 혁명이 생겨난 것이다. 영미 저널리즘과 프랑스 저널리즘이 기준이 되었지만, 서구권 지식인들은 이런 기준을 고스란히 따르려 하지 않는다. 또한 19세기 중반까지 대다수 신문가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를 풍자하거나 정치 투쟁(프랑스 혁명, 벨기에 독립 등)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