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과 정보자본주의의 위험한 동거

2020-05-29     펠릭스 트레게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 인터넷 사회 연구소 연구원

흔히 다국적 인터넷 기업과 국가는 서로 적대관계인 것처럼 소개되곤 한다. 국가는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인터넷 기업을 엄격히 규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인터넷 감시와 검열에 있어 둘은 공생관계다. 사실 정치권력과 정보자본주의의 결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1월 12일,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이 파리 유네스코 본사 대형 컨퍼런스홀에서 개최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연단에 올랐다. ‘반자유주의’ 포퓰리즘에 대항할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보여줄 준비를 단단히 한 이 젊은 프랑스 대통령은 객석을 채운 전 세계 인사들 앞에서 자못 편안한 모습을 연출해 보였다. 이날 청중은 인터넷 주요 현안에 관한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컨퍼런스 홀에 모였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는 두 가지 인터넷 규제 모델을 비난했다. 하나는 ‘캘리포니아식 인터넷’, 다른 하나는 ‘중국식 인터넷’ 식이었다. 

전자는 “지배적이고 위력적인 글로벌 민간주체가 주도하는 모든 종류의 국가통제를 거부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인터넷을 의미한다. 후자는 “강력한 독재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폐쇄적인” 인터넷을 뜻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두 모델과 차별적인 대안으로 ‘제3의 길’을 제시했다. “시민사회, 민간주체, 비정부기구(NGO), 지식인, 언론인, 정부 등을 비롯한 모든 인터넷 이해당사자들”이 힘을 합쳐 “공동의 협력적 규제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에 유익한 모델을 저버리고, 인터넷 ‘다중이해당사자 거버넌스’라는 왜곡된 신화에 의존해, 마크롱 대통령은 두 세계의 장점을 고루 취할 방책으로 여기는 새로운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상 그가 취하려는 장점이라는 것은, 고삐 풀린 감시자본주의(1)와 국가의 철권통제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유럽국은 자국의 디지털 강자가 없는 탓에(러시아와 중국은 자국의 인터넷 규제체제를 옹호해줄 국내 인터넷 챔피언 기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세계 시가총액 순위의 상단을 차지하는 일부 미국 기업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각 유럽국은 인터넷 기업의 일탈(독점지위 남용, 사생활 침해, 가짜뉴스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법률을 입안, 채택하는 등 겉으로는 다국적 인터넷 기업들과 대립하는 듯한 인상을 주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 양자는 나날이 상호의존관계가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감시와 검열의 오래된 역사

소통수단에 대한 감시와 검열의 역사는 이런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소통수단을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와 공권력 간의 상호 포섭 관계는 단순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만이 아니라 미디어의 역사에서 늘 불변의 상수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기술 변화와 정치적 격변으로 인한 위기 발생 시 국가는 언제나 민간과의 결탁을 통해 사상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왔다. 

16세기에도 이미 인쇄술의 발달로 책 보급이 대중화되고, 전복적인 정치와 종교 사상이 널리 확산되자, 국가는 민관협력을 통해 체제 안정에 위협이 되는 균열들을 다시 메우고자 했다. 프랑스에서는 1539년 프랑수아 1세가 출판업의 근거지인 파리와 리옹의 인쇄·서적업자들을 상대로, 활동규제를 위한 규정을 제정했다(도서검열을 목적으로 몽펠리에 칙령을 공포해 새로 출판되는 모든 도서를 왕립도서관에 반드시 납본하도록 강요했다-역주). 또한, 인쇄·서적업 조합 설립을 제도화함으로써, 이 조합이 출판업 전 분야에 걸쳐 정부의 교섭 상대 역할을 하도록 했다. 

1618년, 서적업 단일조합이 탄생하고, 이 기관이 경찰의 역할을 했다. 가령 조합 대표자들은 인쇄소와 서점을 일일이 방문해 업자들이 법규를 준수하는지 감독했다. 경쟁을 원치 않는 파리의 서적상들은 서적출판업에 대한 항구적인 독점권을 요구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그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그 대가로 파리의 서적상들은 경찰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수많은 의무를 성실히 준수해야 했다. 

지방의 서적상을 위한 규정 등 몇 가지 사항을 개선하고 나자, 인쇄·서적업 종사자 30여 명이 왕국 내에서 그럭저럭 도서 제작과 유통과정을 감독하는 데 별 무리가 없어졌다. 현대 디지털 공룡들의 경우처럼, 당시에도 출판경제의 중앙집중 체제는 정부가 관리해야 할 중간상의 수와 검열에 드는 ‘거래비용’을 줄여줬다. 훗날 프랑스 혁명의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사상 초유의 ‘표현의 자유 시대’도 어느새 막을 내렸다. 나폴레옹 제국은 독립신문들에 줄줄이 재갈을 물리고, 인쇄업자의 수를 대폭 줄였다. 

그러나 1830년 다시 규제 완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이 탄생하는 토양이 된 이 시기에, 당국은 발행 부수가 높은 대중신문들의 득세를 널리 허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녕 자유라는 이상을 향한 진심 어린 염려에서 비롯된 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정치권력과 언론 간 결탁이 더욱 심화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을까? 사실 당시는 사회주의를 비롯한 반체제 성격의 불온출판물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던 시절이었다. 당국이 언론 자유를 허용한 것은 오히려 언론산업 내 경제집중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업인들이 정권에 체제 안정을 담보해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쇄술의 혁신, 광고료를 기반으로 한 ‘값싼’ 매체의 등장, 문맹률 감소 등은 구독률 경쟁을 낳았고, 이는 정치적 성격의 여론 형성 매체가 정보나 오락성을 제공하는 매체로 이행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신문판매업자와 규제 당국의 관계가 긴밀해진 덕분에 가능했다. 흔히 시민 자유의 허용은 표현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사전 검열 행태를 종식시킨 저 유명한 1881년 법으로 대변되곤 한다. 

그럼에도 시민 자유의 허용은 그 이전에 대중매체에 나타난 탈정치화 현상에 비추어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881년 법은 (주류언론이 언론역사의 정설인 양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영웅적인 언론의 승리를 의미한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결탁할 때, 다시 말해 사법의 칼날보다 정보 자본주의의 계율에 의존할 때, 더욱 효율적인 규제가 가능하다는 정권의 깨달음을 대변하는 현상인 것이다.

1860년대 이후에도 국가는 유사한 결탁 관계를 통해 초기 민간 통신망을 통제했다. 20세기 말, 국가가 방송 미디어를 독점하던 시대가 끝나고 민영화 물결이 일자, 또다시 국가와 미디어의 유착관계가 강화됐다. 다시금 미디어가 국가와 시장에 이중으로 종속됐다. 1990년대 전투적인 전위부대에 힘입어 인터넷은 현 국면을 뒤엎을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했다. 인터넷은 수많은 대안 언론을 낳거나, 정치권력에 의존적인 유력 언론매체의 지배적 위상을 뒤흔들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다. 

 

인터넷은 소통의 장? 아니면 감시의 창?

하지만 숱한 안보 위기 끝에 국가는 인터넷 경제의 집중 현상을 다시금 국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토대로 삼는다.(2) 디지털 공룡기업들은 특유의 자본주의 축적 논리에 따라, 사실상 대중의 소통수단 대부분을 중앙집중화해버리는가 하면, 대중을 감시하거나 표현의 장을 검열하는 데 필요한 각종 특수한 노하우들을 개발해냈다. 실상 이런 노하우들이야말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들이었다. 

2013년 이후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문서들을 통해, 인터넷 공룡기업들이 미 정보국의 사찰 프로그램에 대거 참여해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해당 기업의 경영진들은 어떻게든 안보기관과 거리를 두거나, 서비스 이용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에 협조하기를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여전히 수사관들로부터 계좌정보를 비롯한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2013~2018년, 미국에서 국외정보감시법에 근거해 사용자 개인정보가 제공된 건수는 구글이 680%, 페이스북이 1,300% 가량 증가했다.(3) 

프랑스에서도 2015년 이후 내무부와 디지털 과점기업 간 ‘연락그룹’이 형성되면서, 프랑스 정부 당국에 사용자 정보가 제공된 건수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 가령 2013~2019년 구글은 670%, 페이스북은 800%나 증가했다. 한편 과거 ‘앙시앵레짐’ 시절의 인쇄·서적업 조합으로까지 계보가 이어지는 이 ‘연락그룹’의 설치 이후, 인터넷 기업들은 국가의 감시능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는 보안 프로토콜 등을 비롯해 조만간 자사 서비스에 적용하게 될 각종 업데이트 내용을 매번 프랑스 당국에 보고했다.

과거에는 정부 당국이 해외 저장 데이터에 접근하려면, 국제사법공조협정 절차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아예 없어졌다. 가령 2018년 도널드 트럼프가 공포한 클라우드법(해외 데이터 이용 합법화법)을 비롯해 해외 데이터 접근에 관한 새로운 법률(유럽의 경우에도 유럽연합에서 심의 중인 유사법률 ‘e-evidence’(디지털 증거) 패키지 법안이 있다)이 속속 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 기업들은 이런 새로운 법률의 제정을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기업들은 각 정부의 국외 정보요청이 사용자의 기본권을 준수하는지를 판단하기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머지않아 유럽이사회가 제정한 사이버범죄조약 등과 같은 제도들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대될 것이다.

인터넷검열 문제에도 유사한 협력관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역사적으로 후퇴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5년 1월 파리 테러 이후, 테러 선동이나 ‘증오 발언’을 척결하기 위한 노력은 경찰과 IT 기업이 상호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구실이 됐다. 가령 불법적인 표현, 마크롱 대통령이 유네스코에서 한 말을 빌리면 ‘달갑지 않은’ 표현들을 차단하는 일에 인터넷 기업이 동원되고 있다. 이렇듯, 기존 사법절차를 건너뛰거나, 아예 자동적인 절차처럼 인터넷검열이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각국의 정부는 실리콘밸리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을, 광활한 디지털 바다에서 부적절한 ‘콘텐츠’를 적발 및 차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 심지어 업계가 아직까지 수천 명의 ‘자잘한 검열 일손’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현재 IT 기업의 컨텐츠 관리정책 업무는 수많은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 새로운 검열 모델은 각 개별국이나 혹은 유럽의 경찰조직인 ‘유로폴’ 같은 기관의 지휘하에 시범적으로 적용되다가, 최근에는 법제화되었다. 가령 인터넷상의 ‘증오 발언’을 척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7년 6월 독일이 채택한 네트워크강화법(NetzDG)이나, 조만간 프랑스 의회를 통과할 예정인 그와 유사한 프랑스의 법률, 나아가 현재 유럽연합이 심의 중인 테러 선동 척결을 위한 유럽연합 규정 등을 들 수 있다.

2018년 4월, 프랑스와 독일의 내무부 장관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 보낸 공동서신에서 위 법률의 목적을 노골적으로 적시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개발한 검열시스템을 모든 인터넷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4) 또한 두 장관은 ‘테러 찬양(넓게는 반체제 발언을 차단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악용되는 개념)’ 규제는 그저 첫걸음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서신에서 그들은 종국에는 “아동 포르노나 증오 발언과 관련된 콘텐츠(차별이나 인종주의적 증오 선동, 인간 존엄성 침해 등) 등으로까지 법률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이제 1881년 법과 표현 자유의 사법적 보호는 이것으로 영영 이별인 것일까. 바야흐로 민영화와 자동화 경향을 띤 비사법적 검열시스템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글·펠릭스 트레게 Félix Tréguer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 인터넷 사회 연구소 연구원. 프랑스 인터넷 개인 정보 옹호 단체, ‘라 콰드라튀르 뒤 넷(La quadrature du net)’의 회원. 본 기사는 그가 펴낸 저서 『Utopie déchue. Une contre-histoire d'Internet, XVe-XXIe siècle(타락한 유토피아. 인터넷의 반-역사, 15~21세기)』(Fayard, Paris, 2018)를 고쳐 쓴 것이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Shoshana Zuboff, ‘Un capitalisme de surveillance 감시자본주의, 당신의 칫솔이 당신을 염탐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1월호. 
(2) Dan Schiller, ‘Qui gouvernera Internet? 누가 진짜 인터넷 관리자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2월호.
(3) ‘Transparence des informations 정보 투명성’, Google, http://transparencyreport.google.com. ‘Government Requests for User Data’, Facebook Transparency, http:// transparency.facebook.com.
(4) Joe McNamee, ‘Leak : France and Germany demand more censorship from Internet companies’, European Digital Rights, 2018년 6월 7일, http://ed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