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카키스토크라시

2020-05-29     이브라임 와르드 | 미국 터프츠대학교 부교수

스탠리 호프만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가장 뛰어나게 설명하는 작품은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코뿔소』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뛰어난 학자인 호프만 교수는 이 작품의 부조리성이 “이 길고도 가혹한 침입에 서린 모든 부조리함과 비극을 그 어떤 역사서나 사회과학서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1)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구가 코뿔소로 변하는 내용을 담은 우화 『코뿔소』는 가장 순종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정신까지 사로잡고 마는 전체주의의 역학을 설명한다. 

 예술가들은 풍자를 활용해 당대의 주요 문제를 다루고는 했다. 찰리 채플린은 1940년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두 역할을 연기한다. 아돌프 히틀러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인물임이 분명한 독재자 아드노이드 힌켈과 박해받는 가난한 유대인 이발사다. 극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에서 비극은 벌레스크 쇼(버라이어티 쇼 ·레뷔 등을 상연할 때 막간에 끼워 넣는 해학촌극 ·풍자극-역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로 독재자 힌켈이 지구본을 다정히 쓰다듬은 뒤 ‘세계의 황제’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풍선처럼 갖고 노는(이 풍선은 곧 터지고 만다) 장면과 베니토 무솔리니를 꼭 닮은 벤지노 나폴레오니를 이발소에서 맞이한 후 서로 번갈아 가며 의자를 상대보다 높이 올리는 장면이다. 

 1997년 노벨 문학상은 “중세 마술사의 전통을 계승해 권력자를 비판하고 모욕당한 이들의 존엄성을 되살린” 이탈리아 출신 극작가이자 작가 겸 연출가 다리오 포에게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은 1960년대 사회면 기사에 실린 유명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살인 사건인지 자살 사건인지 혹은 단순한 사고인지 모를 사건이었다. 작품 속 광인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후 이 사건을 이용해 최고재판소 재판장 노릇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경찰관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상식을 벗어난 조사가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권력자들을 향한 풍자는 늘 성공을 거뒀다. 익살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베일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코미디언들은 종종 권력에 도전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중 몇몇은 실제로 권력에 도전하기도 한다. 프랑스인 코미디언 콜뤼슈는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불쑥 출마해 짧게 유세를 벌였다. 그가 내건 슬로건은 “그동안 둘로 나뉘어 있던 프랑스, 콜뤼슈와 함께라면 넷으로 접힐 것입니다”였다. 2008년 세계 금융·정책 위기 이후, 정권을 쥔 엘리트들이 신뢰를 잃고 희극인들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2009년 이탈리아에서는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정당 ‘5성 운동’을 창당하며 정치계를 뒤흔들었다.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국가의 부패를 척결하고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역사 교사 역할을 연기했다. 이후 2019년 정치 풋내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과거에 이미 알프레드 제리(1873~1907)는 그의 희곡 『위뷔 왕』에서 탐욕스럽고 잔혹한 폭군의 원형을 창조했다. 1896년 12월 10일 파리 테아트르 드 뢰브르 극장에서 초연한(이는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이 익살극은 저속한 어투와 과장된 연출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인물 맥베스의 ‘파타피지컬(pataphysique, 현실과 가상이 어지럽게 뒤섞인 상태)한 사촌 형제’인 위뷔 왕은 폴란드의 방세스라스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그는 너무도 많은 사람을 죽인다. 위뷔 왕에게 등을 돌린 지지자들은 러시아 차르의 도움을 받아 그를 몰아낸다. 결국, 위뷔 왕은 프랑스로 향한다. 

 알프레드 제리는 가드레일에 막히지 않은 권력의 힘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위뷔 왕은 “천박한 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지닌 채 멍청한 말을 하는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무서운 아이)”이다. 위뷔 왕은 기괴하고 비열하다. 그는 이러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투명성을 강조하며 과장된 말투로 자신의 의도와 방식을 설파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왕국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귀족을 없애고 귀족들의 재산을 차지하겠다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알린다.” 이런 말도 한다. “우리는 부유해지고 싶다. 우리는 단 한 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제정한 규범을 위반하며 스스로 무지함을 폭로하는 셈이다. 과대망상에 빠져 있고 권위주의적인 위뷔 왕은 자신을 지칭할 때 1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다. 

 

 쿠데타 선동가부터 잔혹한 광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내내 위뷔 왕 같은 지도자들은 많았다. 1971~1979년 집권 당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우간다의 폭군 이디 아민 다다는 전설이 되었다.(2)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절대 권력의 미숙한 광기를 구현해 자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장대한 기념비를 세우고 자신에게 ‘카르파티아산맥의 천재’, ‘사유하는 다뉴브’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사이 교차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위뷔 왕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는 이미 2002년에 자국의 백만장자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일탈을 걱정했다. 우리는 『위뷔 왕』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비상식적인 역설 앞에 있다. 이는 비현실적인 익살극이다. 왕을 위한 법이 만들어지고 장관들은 왕궁에서 선정한다. 이 장관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수호하지만, 대중은 이들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기껏해야 누군가가 분노를 담은 트림을 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은 기사와 기사의 일꾼들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완전한 치외법권적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3)

 이러한 추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가속화됐다. 트럼프의 승리를 설계한(이후 경질된) 스티브 배넌은 애초부터 ‘행정국가 해체’라는 자신의 원대한 정치적 계획을 드러냈다. 뉴딜 정책 때 만들어져 1960년대 ‘위대한 사회’ 개혁으로 철저하게 다져진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저서 『다섯 번째 위기 The Fifth Risk』(노련한 공무원들만이 대처할 수 있는 예측 불능한 위기를 뜻한다)에서 이 해체에 필요한 요소(4)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정 직위를 임명할 수 없거나 임시직으로만 임명 가능한 상태, 현존하는 행정기관 해체, 그 행정기관의 실체를 없애고 지원을 중단하기, 전문가들을 비하하고 이들이 검은 흉계를 갖고 있다고 비난하기(전염병 전담 기관도 2년 전 이런 식으로 해체됐다) 등이다. 취임하기 전 당선자 신분이었을 때 트럼프는 정권 교체 전 과도기 전담팀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이 기획된다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이러한 모금 활동은 법으로 정한 사항이었는데도 말이다(미국법에 따르면 과도기 전담팀은 연방 기금뿐 아니라 개인 기부금을 통해서도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는 “내 돈을 훔치려 한다! 망할 놈들이 내 돈을 훔치려 한다!”(5)라며 고함을 쳤다. 

 공무 수행의 경험이 전무한 채로 국가의 행정부 수장 자리에 오른 트럼프는 공무원과 부하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의 증거를 요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처럼 트럼프는 “그들의 머리를 잘라라”라는 모순에 반응한다. 그는 여러 핑계를 대며 숙청을 계속한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물이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국정을 다스리는 것을 방해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 민주주의 제도 밖의 숨은 권력집단, ‘그림자 정부’라고도 한다)’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의 적들은 트위터에서 저격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기밀 취급권을 박탈당한 후 TV 정치 해설가가 된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의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 악덕 정치)는 무너지고 있습니다.”(6)라는 답 트윗을 보내며 잊혔던 단어를 다시금 발굴해냈다. 

 그리스어 카키스토스(kakistos, 나쁘다의 최상급)와 크라토스(kratos, 권력)에서 비롯된 카키스토크라시는 ‘가장 나쁜 사람들에 의한 정부’를 뜻한다. 가장 자격 없고 양심 없는 시민들에 의한 정치가 대두하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17세기 만들어진 이 단어는 도널드 트럼프와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대통령 당선으로 다시 새롭게 도약했다. 트럼프 행정부 구성원들의 자질을 분석한 기자 알렉산더 나자리안은 그 안에 머리가 돈 사람들 한 무더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에만 밝고 맡은 직위에 대한 역량은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상류층 도둑 정치가들의 난교”였다. 세금 개혁을 위한 미국인 협회 회장 그로버 노퀴스트는 열혈 시장 지지자들의 목적은 국가를 ‘욕조 안에서 익사’시킬 수 있도록 국가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무능력은 공공 업무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공황 직전, 악덕 정치의 미덕은 심지어 칭송을 받기도 했다. 1928년 호머 퍼거슨 전 미국 상공회의소 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최고의 공복(公僕)은 최악이다. 공직을 맡은 최상류층 출신 인물은 부패한다. 그는 우리의 자유를 파괴한다. 그가 더 나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더 오래 권력을 쥘수록 그는 더욱 위험한 사람이 된다.”(7)  

 

 

글·이브라임 와르드 Ibrahim Warde
미국 터프츠대학교 부교수

번역·문수혜 souhait.moon@gmail.com
번역위원


(1) Stanley Hoffmann, ‘The Arrival of World War II: An Anticlimax’, <The New York Times>, 1989년 9월 1일. 
(2) 이디 아민 다다를 주제로 한 영화로는 바벳 슈뢰더의 <General Idi Amin Dada: un Auto-Portrait> (1974), 케빈 맥도널드의 <le Dernier roi d’Ecosse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 (2007) 등이 있다. 
(3) Dario Fo, ‘Le nouveau fascisme est arrivé 신 파시즘이 도래했다’, <르몽드>, 2002년 1월 11일.
(4), (5) Michael Lewis, 『The Fifth Risk : Undoing Democracy』, W.W. Nortonn, New York, 2018년 (프랑스어 역서 미출간).
(6) Avi Selk, ‘Kakistocracy, a 374-year-old word that means ‘government by the worst,’ just broke the dictionary‘, <The Washington Post>, 2018년 4월 13일.
(7) Thomas Frank, 『The Wrecking Crew: How Conservatives Rule』,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