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저널>, 자유시장 찬양 포기
<월스트리트 저널>, 자유시장 찬양 포기
세르쥬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발행인
1972년부터 1989년까지 17년 동안 <월스트리트 저널>의 주필이었던 로버트 바틀리의 오른팔 격인 조지 멜로안은 5년 전에 의미심장한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금융인과 언론인이 자신들의 독선적 원칙을 위해 국민 전체를 희생시키려 했던 '고집'에 관한 것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기 전 지미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볼커는 의장직에 오른 직후 로버트 바틀리와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한 자리에서 혹시라도 자신이 어려울 때 지지해달라고 부탁했지요. 나는 옆자리의 바틀리가 머뭇거릴 때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고, 인플레가 높아지자 라틴아메리카의 채무국들과 미국 농부들이 졸지에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이때 볼커는 인플레를 잡기위해 협조를 요청했지만, 우리는 그를 외면했습니다."1)
당시 재정정책 등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모든 경제활동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이른바 통화주의적 원칙들은 중남미 대륙의 고통을 덜거나, 수천 가구에 달하는 미들 웨스트 지역 농가들을 경매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것보다 더 중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지 멜로안과 로버트 바틀리는 볼커가 자신들에게 요청한 협조를 왜 외면했던 것일까? 근본적으로 그들과 볼커의 피가 달랐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이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는 지금, 자유주의적 통화주의 전도사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당혹해하고 있다. 이 신문이 그토록 주창한 경제 자유주의 원칙이 흔들리고, 그 대신 공적 자금의 투입과 국가 금융기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주의적인 레이건주의를 고안해내고 홍보한 뉴욕의 이 거대 일간지가 겪고 있는 고민과 혼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가볍고도 뻔뻔스럽게 말해 대는 무수한 프랑스 정기간행물들과는 달리, <월스트리트 저널>은 굳건한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랬기에 몇 주 전부터 이 신문이 맛보는 고통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9월 11일자 이 신문에 실린 '억만장자들을 위한 구조계획'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지원하기로 한 미국 의회에 '도덕적 해이'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이 의회 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주의 진영의 사람들을 향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우리는 납세자들을 희생시켜 누가 부유해졌는지, 의회가 폴슨 재무장관에게 그 명단을 요청해주길 바란다."고 큰소리쳤다.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이 신문은 분노가 풀리지 않았을 텐데도 이미 체념한 듯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 때문에 격노하고 있다. 그들의 분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금융계와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납세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해결책을 원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납세자들과 자유시장경제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자유시장경제는 결코 패퇴하지 않을 것이다. "13개월 동안 재정 위기를 치른 후에도 미국 경제가 강한 내성을 바탕으로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알아야한다."는 또 다른 낙관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괴로움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시기다. 9월 27일 공화당 의원들과 당원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공화당의 강령에 충실한 그들은 국가와 납세자가 파산한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자신들이 끈기 있게 만들어내고 찬양해 온 가치와 입장을 고통스러워하며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의한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1월 20일 대통령직에 취임하면서 "국가가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었다. 이젠 한 시대가 저무는 순간이다.
번역 |이상빈
1) 조지 멜로안, '바틀리와 보낸 32년간의 몇가지 추억들', <월스트리트 저널>, 2003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