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골로 간 닥터 디미트라스
프랑스 농촌과 몇몇 도시 지역에서는 개업하는 일반의가 적어 은퇴한 의사들의 공백이 잘 메워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회는 지난 4월 13일, 의료 공동화에 대처할 수 있는 기존의 강제성 규정을 폐지했다. 이를 우려하는 지역의원들이 여러 발의를 하고, 루마니아에서까지 개업의를 모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많은 프랑스 학생들이 의사 교육을 받기 위해 루마니아로 떠나고 있다.
성 스피리돈 병원 이비인후과 사무실의 분위기가 심각하다. 인턴 여의사 한 명이 방금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의사가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지나 스테가루 박사는 “곧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곳에 오는 우리의 친구와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쉰다. 복도에는 노인 몇 명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창문 너머로는 겨울바람이 눈 덮인 앞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한 임상의는 “이곳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인도주의 차원의 소명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루마니아 북동부의 대도시 이아시 중심부에 위치한 성 스피리돈 병원은 2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래되고 중요한 루마니아 공공보건시설 중 하나다. 직원 2500명, 인턴 500명과 전문의 40명이 근무하고 있다.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외국의 ‘의료인력 사냥꾼’들에게는 이 병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원문 보기>>
루마니아를 떠나는 의사들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의자에 앉아 몸을 흔드는 요안 발리바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그는 인사관리부 책임자다. 그런데 정말로 기자가 맞는지, 그러니까 기자가 아니라 혹시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한다.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며 안심을 시켰다. 의심할 만 했다. 발리바는 이 병원 의사들에게 말을 거는 서구인들을 경계한다. “매달 간호사와 인턴이 없어진다. 이런 출혈을 멈춰야지, 안 그러면 대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루마니아 공공 시스템에서 초임 의사의 월평균 수입은 250유로 정도다. 경력을 쌓은 전문의의 수입은 약 400유로다(루마니아 월평균 급여는 2011년 1월에 1424레이, 약 340유로다). 그다지 매력적이랄 수 없는 월급이 지난해 여름에는 25% 삭감됐다. 중도우파 정부가 시행한 ‘위기대처’ 플랜 때문이다. 성 스피리돈 병원의 의료부장인 카멜리아 보그다니치는 “루마니아의 간부급 부장보다 서유럽의 간호조무사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당히 환멸을 느끼는 듯 말한다. “우리 병원의 한 여자 외과의사는 57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한 달에 6천 유로를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서비스가 느리게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 병원은 마취의사가 지금보다 2배 더 많이 필요하다. 얼마 전 마취의사 2명이 프랑스로 떠났고, 또 다른 2명은 민간시설에 채용됐다. 그녀 역시 외국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전자우편을 매일 받고 있다. 하지만 보그다니치는 루마니아에 남는 쪽을 택했다. 그녀는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시선으로 “나는 내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내 가족이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2007년 1월 루마니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이래, 루마니아 전체 임상의 4만2천 명 가운데 5천 명이 루마니아를 떠나는 쪽을 택했다. 그중 4분의 1 이상이 현재 프랑스에 살고, 다른 의사들은 독일·벨기에·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지에 자리잡았다. 루마니아 의사협회의 바실리 아스타라스토아에 회장은 “루마니아를 떠나는 일은 그들에게 쉬운 일이다. 그들은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유럽 법제는 그들의 의사 자격을 자동으로 인정하고(1) EU 회원국 어디라도 마음대로 거주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떠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서류만 준비하면 된다. 하나는 루마니아 보건부가 발행하는 것으로, 대학 졸업장과 3천 시간의 실무를 거쳤음을 증명하는 서류다. 두 번째는 의사협회가 발행해주는 것으로, 의료 사고나 과실 없이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다는 증명서다. 2007∼2010년 이 서류들을 요청한 의사가 8천 명에 이른다. 그 추세는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루마니아 주민 1천 명당 임상의 수가 2명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집단탈출’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수치는 유럽 평균의 2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신세대가 도시적 생활양식을 갈망하는 지금, 농촌 지역은 의료 공동화 위험에 처했다. 루마니아의 주요 보건의료노조 중 하나인 사니타스의 부회장 아드리안 발레아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이미 의료행위를 해왔던 많은 의사들과 달리 젊은 의사들은 박애주의나 실천에 대한 열의로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이 의사가 되려는 데는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다. 그들은 도시에서 개업하거나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국외로 떠날 생각을 하고 의대에 입학한다.” 그 때문에 일부 과들에는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고 다른 과들은 인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상황에서 의료 균형을 회복하고 젊은 의사들을 루마니아에 붙들어두기 위한 단체가 생겨났다. 이 단체의 한 운동가는 “한편에는 갓 대학을 졸업한 가정의 수천 명이 실직 상태에 있고, 다른 한편에는 마취의 1500명이 필요한데 700명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람들이 분별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EU 가입 뒤 부(富) 좇아 엑소더스 급증
루마니아 의사들이 보잘것없는 계약조건 때문에 루마니아를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더 나은 근무조건을 갈망한다. 그들의 일상은 턱없이 부족한 장비와 의약품, 수당을 받지 못하는 초과근무, 인원 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 등으로 채워졌다. 바실리 아스타라스토아에 회장은 “뒤처진 시스템에서 그들이 밝고 명랑해지기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루마니아는 EU 국가 중에서 보건에 가장 적게 투자하는 나라로, 국가 전체 예산의 4%에 불과하다. 1989년 12월 공산독재가 붕괴된 이래 많은 인프라와 시설이 노후화됐다. 아스타라스토아에 회장은 “많은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우리 시스템은 최근 많이 발전했다. 특히 모든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통행의 자유 덕분에, 의사들이 최신 의료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건강 관련 시설들의 지방분권이 이루어진 뒤 시스템 전산화와 통합 의료보험카드 도입이 우리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고령화 심화… 공공의료 붕괴 위기
30년 안에 루마니아인 5명 중 1명이 65살 이상이 된다. 현재 남자 70살, 여자 77살인 평균수명은 더 늘어날 것이다.(2) 하지만 인구 고령화와 이에 따른 의료 수요 증대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시스템이 한참 못 미친다.(3) 납세자 670만 명의 세금으로 1800만 명이 혜택을 보는 건강보험 체계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발레아는 “이론적으로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 것은 무료다. 하지만 수많은 환자가 팁이나 뇌물을 당직자에게 바치고, 개인용 시트와 의약품을 들고 병원에 온다. 공공 시스템을 불신해 개인병원이나 외국에 가서 치료받는 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작은 건물 10여 동으로 둘러싸인 성 스피리돈 병원의 안마당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링거대를 밀고 나온 환자들이 진흙 웅덩이와 눈보라를 피하려 애써보지만 허사다. 발리바는 “병원 건물이 낡았다. 이쪽 건물에서 저쪽 건물로 이동할 때 환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건물 간 통로 지붕을 만드는 데 25만~30만 유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청에서는 우리가 유럽보조금을 신청하는 것을 허가해주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루마니아에서 공공병원들은 부지 소유주인 지방자치단체에 종속돼 있다. 지방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병원 책임자들이 새로 임명된다. 장기 계획을 쉽게 추진할 수 없게 하는 전통이다. 발리바는 “병원 관리는 보건 관련 문제보다 정치적 전략을 더 따른다”고 덧붙였다.
이아시에서 2500km 떨어진 곳인 프랑스의 블루아 북동부 한적한 들판, 700여 명이 모여 사는 마을 셀롬의 유일한 레스토랑에 테오도르 디미트라스는 자주 드나든다. 포도주 한 잔과 파테(간 간이나 고기를 파이로 싼 요리)…. 루마니아 출신의 이 의사는 레스토랑 분위기에 푹 젖어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 도착했다. “내 아내도 일반의다. 우리는 어쨌든 시도는 해보자며 루마니아를 떠났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장소를 원했다. 이아시에서 우리는 각각 2천 명의 환자를 돌봤다.” 프랑스 의사협회위원회에 따르면, 새로 프랑스에 도착하는 의사는 대개 그들에게 더 많은 조언과 지도를 해줄 수 있는 공공병원을 선택하는데, 그에 비하면 이들의 선택은 특이하다. 게다가 지난해 발간된 회람에 따르면,(4) 그들 대부분이 프랑스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파리나 프랑스 남부에 자리를 잡는다. 셀롬의 프랑시스 드뤼옹 이장은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는 의사가 2명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중 한 일반의가 몸이 좋지 않아 반일 근무만 하게 됐다. 의사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우리 마을에 오려 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료 공동화 위기에 처한 농촌에 외국인 의사를 소개해주는 레비탈리스의 설립자인 자비에 드 팡팡테뇨를 접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료공동화 겪는 서구 시골엔 단비
팡팡테뇨는 “2007년 창설 이래 외국인 일반의 80명을 배치했고, 그중 50명이 루마니아 의사”라고 했다. 대개 인터넷을 통해 모집된 지원자들은 일단 부카레스트에 있는 레비탈리스 지사장을 만난다. 지사장은 그들의 지원 동기를 평가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도시나 마을을 제안한다. 비용 1만 유로는 해당 지자체에 청구한다. 비슷한 서비스를 받는 다른 도시나 마을들의 부담금은 4만 유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상당한 금액이지만 질식 상태에 처한 작은 지자체들은 그 금액을 지급할 준비가 돼 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방돔의 전문의 진찰을 받으려면 5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일부 전문의는 더 이상 새 환자들을 받지 않기도 한다”고 셀롬 옆에 위치한 생아르망 롱프레 마을의 이장은 한숨을 내쉰다. “루마니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도 안다. 폴의 옷을 벗겨서 피에르 옷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 일을 하는 것이 우리도 자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마을이 죽어가기를 원치 않고, 보건의료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프랑스 의사들, 도시로 도시로
코뮌공동체와 루아르에셰르 현 광역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곧 셀롬에 병원이 들어선다. 그 병원에는 3명의 간호사와 발 전문 치료사가 일할 것이다. 디미트라스는 “아내가 의사 영업허가를 받으면 나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들떠 있다. 현재 디미트라스는 정착 때 지원받은 대출금을 갚아가고 있다. 그는 하루에 10명 정도의 환자를 받는데, 팡팡테뇨는 “주민들이 신뢰하기 시작하면 환자가 몰려들 것”이라고 믿는다. 의사협회위원회의 자비에 도 부회장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프랑스에 정착한 몇몇 루마니아 의사가 하루에 대여섯 명의 환자들밖에 받지 못하다가 몇 달이 지나면 짐을 꾸려 더 매력적인 지역으로 떠난다”고 말한다. 팡팡테뇨는 몇몇 실패한 경우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정착시킨 의사들은 대부분 잘 통합돼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인 의사 수입이 프랑스 농어촌의 의료 공동화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다. 도에 따르면, 프랑스에 의사 수가 이렇게 많았던 적은 없다. 의과대학 6년이 끝나고 의사국가고시를 치른 학생들은 그 결과에 따라 프랑스 전역의 병원에 배치된다. 하지만 인턴 과정이 끝나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떠난다. 따라서 일부 지역은 자기 지역에 남지 않을 개업의를 양성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이는 셈이 된다. 자비에 도는 “의대생들이 인턴 과정을 마치고 몇 년간은 자신이 교육받은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법령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개혁을 학생노조가 받아들일 확률은 낮다”고 덧붙인다. 학생노조는 의료 밀도 조정 책임을 학생들이 떠맡는 걸 거부한다. 반대로 학생노조는 의과대 2학년 진급자 수를 늘려주도록 요구한다. 현재 1학년에 등록한 학생의 85%가 2학년 진급에서 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5) 루마니아에도 프랑스어권 학생을 위한 의학 전문 과정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 시험에서 실패한 학생들에게 완전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부터, 특히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고 대학 졸업 학위가 통합되고부터 프랑스어권 학생을 위한 의학 전문 과정에 점점 더 많은 학생이 몰리고 있다.
입시 탈락생들은 루마니아 의대로
이아시의 그리도르 T. 포파의대 앞에서 여학생 2명이 눈을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18살의 레일라는 튀니지를 떠나본 것도, 자신의 집을 떠나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레일라는 이 대학에 개설된 프랑스어권 학생들을 위한 의학 전문 과정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모든 것이 새롭다. 우리는 루마니아어를 못해서 다소 불안하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학생 114명 -그중 80명이 프랑스 학생이다- 이 이아시에서 기회에 도전하고 있다. 1년 전 이 과정이 개설됐을 때는 등록학생이 8명에 불과했다. 이 대학의 도이나 아조이카이 학장은 “영어권 학생을 위한 과정은 10년 전에 개설돼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어권 학생을 위한 과정을 개설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아마 몇 년 전부터 수백 명의 프랑스 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는 클루지의대와 경쟁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학생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업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생의 1년 등록금은 5천 유로, 루마니아 학생은 1500유로 이하다. 시험에 실패해 추가 시험을 볼 때마다 250유로를 내야 한다. 루마니아 학생들의 10배에 해당한다. 일부 프랑스 학생은 “우리는 그야말로 봉이다. 시험 전에 시험지 복사 비용까지 우리가 내야 한다”고 분개한다. 학교 당국은 프랑스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수들에게 2배의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교육비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의 훌륭한 교수들이 외국으로 떠날 생각을 덜 하게 될 것”이라고 아조이카이 학장은 타당성을 증명하려 한다. 루마니아로 오는 쪽을 택한 프랑스 학생들에게 학교에 내야 할 돈의 액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의술은 소명이니까.
올해 20살이 되는 소피아는 “의대 입학시험에 두 번째 떨어지던 날, 루마니아 대학에 지원하는 서류를 마련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세 번째 시험을 준비하고 싶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아시에는 어떤 입학시험도 필요 없다. 지원자는 서류 전형으로 선발된다. 프랑스 의대생들의 현실에 견주면, 이런 전형 방법은 낯선 풍경이다. 루마니아 의사협회는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보는 시험을 치르게 하도록 당국에 요청했다. 루디는 “이곳에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루마니아의 수준이 더 낮은 것은 아니다. 교육 방식이 다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아시에서 학생들은 즉시 현장에 투입된다. 2학년 때부터 소아과의 외과수술 당직이 시작되고, 서류상으로는 루마니아 환자와의 소통을 위해 3학년 때 루마니아어 숙달이 필수다. 도는 “루마니아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 동료들과는 다른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EU 전체에 분포된 의료계 전문 과목 52개 가운데 모든 회원국이 공통적으로 가진 전문 과목은 17개뿐이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에는 족(足) 치료 전문 학위가 없지만 ‘신생아학’ 과정은 개설돼 있다. “물론 각국이 나름의 특수성을 유지해야 하겠지만 학위 단일화가 절실하다”고 도는 주장한다.
현지 학생보다 3~4배 비싼 등록금
외국인 학생을 끌어들여 장기적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는 이아시나 클루지의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의 보건 시스템은 여러 가지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부카레스트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마을 브라네스티의 경우, 공산 치하에 건축된 보건소의 리모델링과 민영화가 환자 1만여 명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아드리안 카타네스쿠 소장은 “1990년, 나와 내 동료들이 이 보건소에 왔을 때 여기 상황은 너무 열악했다.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남아 있을 운명이었다. 우리는 국가 지원에 기대려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였다. 낭트 인구밀집 지역 여러 마을들의 민간자금을 지원받았고, 미하이 전 국왕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의 도움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숲 속 학교 종소리와 길 잃은 개, 작은 손수레, 트랙터가 왔다갔다 하는 리듬에 맞춰 살고 있는 이 농촌 마을에서 보건소를 구해낸다는 것은 삶과 직결된 문제였다. 카타네스쿠 소장은 “이곳 사람들의 반은 부카레스트까지 치료를 받으러 가기 위한 버스비나 택시비를 낼 수 없는 퇴직 농민이다. 그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고 말한다. 반(半)민영 모델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시설들이 루마니아 농촌에서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일반의 4명과 치과의사 2명이 의료보험과 서비스 수당계약을 체결했다. 그들의 급여는 환자 수와 보건소에서 진료하는 과목에 따라 다르다. 환자 처지에서는 무료 치료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보건소장은 “우리는 공무원이 아니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나은 월급을 받고 있다”고 즐거워하면서 “더 큰 이점은 정부가 월급을 삭감할 때 우리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집세와 수도·가스·전기 요금 등을 직접 내야 하고, 간호사들의 월급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매달 1600유로를 버는데, 보건소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600유로를 지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관반민 보건소, 제3의 길 찾기
루마니아 보건 시스템의 만성적 어려움 때문에 루마니아에 남기로 한 의사들은 주도적으로 생각하며 문제에 대처하게 됐다. 부카레스트 의사협회 사무실에서 바실리 아스타라스토에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교육, 연구 또는 민간병원에서의 야간 아르바이트 같은 합법적 대안이 있고, 약품 판매, 불법 노동 같은 비합법적 비결이 있다. 그보다 더 흔하게 행해지는 팁도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실현협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6) 루마니아인 3명 중 2명이 보건의료 관련 직원에게 50레이(약 12유로)에서 700레이(약 170유로) 정도의 돈을 줘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니타스 노조의 생각은 좀더 온건하다. “대부분의 경우 달라고 하지 않아도 환자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준다. 턱없이 낮은 의사 봉급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 사이 간극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그들이 의사에게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이다."
글 · 로랑 제슬랭 & 메디 셰바나 Laurent Geslin & Mehdi Chebana
번역 · 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각주>
(1) 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수의사, 산파, 약사의 자격 자동 인정은 2005년 9월 7일자 유럽위원회 지침과 유럽의회 지침 2005/46/CE에 규정돼 있다. 세부지침은 http://europa.eu/legislation_summaries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루마니아 건강 하이라이트>, 세계보건기구 보고서, 2005, www.euro.who.int.
(3) 루마니아 인구개발위원회가 2006년 출간한 <인구녹서>.
(4) 파트리크 롬스탱, <유럽 및 비유럽 국적의 의사들>, 프랑스 의사협회위원회, 2010년 1월 1일.
(5) 2000~2001학년도에 4100명이던 등록자 수가 2010~2011학년도에는 7400명에 달했다.
(6) 2010년 7월 22일 <메디아팍스> 통신사가 발표한 이 여론조사는 2010년 4월 18~19일 18살 이상 루마니아인 1042명을 대상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