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산 고무 거래 - 미국의 ‘고무줄’ 무역 제재
남수단이 독립에 민감한 석유 자원의 분배를 준비하는 동안, 별로 눈에 띄진 않지만 한 무역이 이 지역에서 번창하고 있다. 바로 고무 무역이다. 아카시아종 나무에서 추출한 이 물질은 코카콜라를 비롯해 많은 제품의 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세계 최대 고무 수출국인 수단은 미국의 경제봉쇄를 겪고 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로비스트와 외교관, 도매상인들이 분주히 뛰고 있다.
뉴욕 맨해튼 심장부의 하노버 광장과 펄스트리트 모퉁이에 있는 옛 도매상가 건물이 비즈니스 클럽 ‘인디아 하우스’로 탈바꿈했다. 예전에 인도산 제품을 거래하는 데 쓰이던 건물의 2층은 우아한 식당으로 새로 단장했다. 하지만 이국적 물품을 취급하던 상인들의 정신은 여전히 이 건물을 배회하고 있다. 값비싼 나무로 된 진기한 캐비닛 하나가 새어든 채광과 대화를 뒤로한 채, 마치 이 고대 상점의 사자(使者)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캐비닛 서랍장은 미국 경제에 필수적인 원자재로 가득 찬 30여 개 서랍이 있다. 작은 알갱이로 그득한 11번째 서랍은 보기엔 수지(樹脂) 서랍 같은데, ‘아라비아고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 몇백m 떨어진 14번가 모퉁이, 유니온 스퀘어 사우스 4번지에 유기농식품 유통업체인 홀푸드의 슈퍼마켓 체인점이 있다. 이 슈퍼마켓의 단골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카시아 수지로 장바구니를 채운다. 고무 수입 및 가공 업체인 ‘올랜드 앤 로버트’의 최고경영자 프레데릭 올랜드는 “이른바 ‘전자코드 E414’로 알려진 이런 유화제가 없다면 콜라에 착색한 검은 색소가 병 표면에 떠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더 이상 탄산음료를 마시지 못하게 되고, 아라비아고무로 코팅한 당과를 먹거나 약을 복용할 수 없고, 걸쭉한 요구르트를 먹고, 타닌의 공격성을 줄인 와인을 마시고, 신문을 인쇄할 때 잉크를 고정하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수단인인 하산 아델 누르 교수는 “수많은 세계인이 매일 아라비아고무를 소비한다”고 했다. 성경과 코란에서 이른바 ‘하늘이 내린 신비의 양식’이라 부르는 고무는 제약, 화장품, 식품, 아로마 향을 첨가한 음료, 섬유, 인쇄, 첨단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인다. 히브리인들은 시나이반도를 방황할 때 아라비아고무로 끼니를 때웠고, 이집트인들은 이미 4500년 전에 미라를 감싸는 붕대로 고무를 썼다.
수단 기업인 이삼 시디그는 “미국이 무역 제재를 강화할수록 우리는 미국에 더 많은 아라비아고무를 수출한다”고 했다. 수지는 미국 자본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청량음료 생산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단의 한 미국 전문가는 미국이 “우리에게도 도덕적 양심은 있지만, 우리한테서 코카콜라는 뺏어가지 말라!”고 외치는 꼴이라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이런 아킬레스건을 ‘소다 팝 외교’(Soda Pop Diplomacy)라고 불렀다. 한편 고무의 영향력을 간파한 수단은 고무수출국기구(OPEP)를 창설하기 위해 차드·나이지리아와 동맹을 희망하고 있다. 2007년 워싱턴 주재 수단 대사이던 존 우켁 루스는 한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정부의 다르푸르 학살 규탄에 대한 보복 조처로 대미 고무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며 콜라병을 흔들어 기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소다 전쟁’은 잠정적으로 ‘미국 삶의 방식’ 기둥인 탄산음료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뉴욕에서 1만km 떨어진 수단의 수도 하르툼은 아프리카의 검은 대륙과 아랍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600만 명이 거주하는 하르툼은 청나일과 백나일 기슭으로 자신의 촉수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3월, 수단의 수도는 낡은 인력거와 빛나는 미국산 사륜구동 ‘허머’로 혼잡했다. 빌딩숲과 기중기, 그리고 회교사원의 첨탑들은 중천에 걸린 태양을 견디며 모래 안개와 더위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향신료와 참깨를 거래하는 구멍가게 상인들은 그늘진 가게 안에서 건기의 불쾌지수를 의연하게 견뎠다. 건기는 수단의 자긍심이자 국내 농산물 생산 규모 4위를 차지하는 고무 수확기와 맞물린다. 전통의상인 흰 잘라비야를 입은 도매상인 모멘 살리흐는 “고무가 없는 수단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비죽거렸다. 또 그는 “고무는 수단의 황금이다. 우리는 석유보다 고무를 더 아낀다”는 서정적인 말도 했다.
콜라에서 잉크까지, 산업의 필수 원료
농부 600만 명이 일하는 코르도판과 다르푸르의 거대한 아카시아 재배지를 가려면 광활한 사바나를 가로지르는 직선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800km를 달려야 한다. 도로 양쪽으로 군데군데 오두막과 홀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식량과 사람들을 태운 알록달록한 트럭들이 길 잃은 낙타들과 뒤엉켰다. 대지는 빨갰다. 바오바브나무들이 황량한 지평선 너머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스팔트 도로 끝에 아라비아고무의 수단 수도인 엘누후드 촌락이 있었다.
농부와 도매상인들은 이곳에서 고무를 추출하고 거래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잡 알도르는 “여기서 아카시아는 삶이다”라고 했다. 깡마른 몸에 상냥한 시선을 지닌 다섯 아이의 아버지 알도르는 태곳적부터 전수해온 몸짓으로 큰 칼을 이용해 고무를 채취했다. 아카시아 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는 데는 해질 녘이 적기다. 2주 뒤, 나무 상처에서 흘러내린 수액은 작은 점성 형태를 만들어낸다. 수백만 명의 농부가 그렇듯이, 알도르는 수액의 최종 사용처를 전혀 알지 못한다. 현지 도매상은 수단 파운드 몇 푼에 고무를 매입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건조한 뒤 분쇄해 마대에 담아 주거밀집 지역인 엘오베이드로 보내 경매에 부치다. 이 고무는 다시 2천km를 달려 홍해 기슭의 수단항에 도착한 뒤, 서양의 가공공장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에 적재된다. 서양에서 분쇄되고 가공된 완성품은 흰 분말 상태로 다시 전세계에 팔려나간다.
2011년, 아라비아고무 상인들은 낙관적이다. 신흥국가의 성장에 자극받아, 1985년 이후 전세계의 고무 수요가 2배, 즉 연간 3% 비율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고무 무역업체 피엘토마스의 사장 폴 플라워맨은 “성장의 주요 원천은 청량음료, 비타민 음료와 식품보조제였다”고 털어놨다. <세계은행을 위한 시장연구>의 저자 토마 이브 쿠토디에는 “모든 것이 자연고무의 회귀를 반기고 있다”고 했다. 살리흐는 “서양이 유기농 식품만 찾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며 한술 더 떴다. 그는 “아카시아 수액이 우리나라에 연간 4천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주고, 우리는 또한 세계 최고의 고무를 생산한다”고 했다.
미국 금수 조처에도 공공연한 거래
아라비아고무의 세계가 놀라운 번창을 하고 있어, 우리는 수단이 전세계 외교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국가임을 잊는다. 우리는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 장군의 벽보로 도배된 하르툼 거리에서 군사정권의 망상을 느꼈다. 주요 건물과 다리 주변엔 경찰과 군인이 배치됐다. 만약 외신기자가 사진촬영을 하다 발각되면 긴급체포된다. 하르툼은 오일 붐을 기반으로 국외 개방을 단행했다. 중국국립석유공사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 그룹들이 하루 50만 배럴의 석유를 나눠 갖는다. 하지만 2002년 캐나다의 탈리스먼에너지가 수단에서 철수한 뒤, 서양의 석유회사는 자취를 감췄다. 중국인과 리비아인이 함께 식사하는 하르툼 식당에서 미국인과 유럽인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하르툼에서 가장 큰 코랄호텔의 웨이터들은 “손님, 저희는 현금 결제만 합니다. 미국의 금수 조처로 어쩔 수 없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한다.
석유보다 귀한 수단의 ‘황금’
금수 조처에 대해 해답은 워싱턴이 가졌다. 지난해 12월, 쏟아진 눈 때문에 조지타운대학이나 의회로 연결되는 간선도로가 마비됐다. 워싱턴을 관통하는 포토맥강은 얇게 얼어붙어 햇살에 반짝였다. 하지만 로비스트, 외교관,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은 남수단 분리독립을 묻는 절박한 국민투표를 관찰하며 흥분했다. 이들은 평화로운 선거가 참으로 길고 긴 수단과 미국 간 얼어붙은 외교에 종지부를 찍어주기 기대했다. 테드 다긴은 창문도 없는 국회의사당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 정황을 거의 꿰뚫고 있다. 그는 20년째 국회의사당 연구소에서 수단 전문가로 일하며, 하르툼에 대한 대외정책에 통달한 브레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긴은 양국 관계가 1989년 오마르 알바시르 장군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악화됐지만, “미국 정부는 1992년부터 수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누비아의 반란군을 진압하고, 카를로스와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분자를 자국 영토로 피신시킨 수단이, 미국 눈에는 이슬람 급진세력의 촉진제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하르툼의 행동에 놀란 다긴은 당시 8명의 고위 공직자 및 정치인과 함께 은밀히 대책 ‘협의회’를 출범시켰다고 털어놨다. 협의회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비공식적인 로비를 통해, 미국이 점차 수단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침내 1993년 다긴의 소원이 이뤄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수단인 5명이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첫 테러 공격에 가담했다는 구실로 수단을 테러지원국 목록에 포함시켰다. 같은 시기, 다긴의 지시를 따르는 남부 반란군은 이 엘리트 협의회의 도움으로 금융과 병참을 지원받았다.
1997년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의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인 ‘매파’ 수전 라이스와 동아프리카 전문가인 존 프렌더가스트는 수단과의 대립 문제를 떠맡았다. 1997년 11월 3일,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수단이 “미국 내 안보와 대외정책에 예기치 못한 큰 위협이 된다”며 대통령령 제13067호로 수단에 대한 광범위한 무역제재 조처를 승인했다.
빈라덴 은신, 다르푸르 학살… 경제 봉쇄
양국 관계는 지난 10여 년 동안 더욱 악화됐다. 다르푸르 사태로 사망자 30만 명과 난민 200만 명이 생기자 조지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제재 조처를 단행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조처를 연장했다. 미국이 자국 내 수단 자산 동결, 수단과의 수출입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중단, 그리고 금융거래 금지까지 취하자, 수단은 서양의 경제로부터 배척당한 채 ‘악의 화신’으로 연명하게 된다.
하지만 로비스트 재닛 맥엘리고트는 진통제 애드빌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의약업체 AHP 연구소의 발표를 인용해 “수단산 고무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국제의학연구소(IMR)의 시장조사 책임자인 데니스 세이선은 “탄산음료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최고의 수단산 고무인 하샵이 탄산음료의 유화제로 쓰이기 때문이다.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이 귀중한 수액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처가, 누가 누굴 징벌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1)
그러나 재계의 로비는 시작되고…
모하메드는 미국이 수단산 고무에 대한 예외 조처를 내릴 것으로 점치며, 이 ‘판도라의 상자’(고무)가 봉쇄 정책의 다른 부문들에 대한 조정에도 물꼬를 틀 것이라 여겼다. 그는 미국 산업체를 최우선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하며, 미국 기업인들에게 잘 짜인 정보를 제공했다. 고무가 없으면 일자리가 위협받고, 특히 미국 식품업계는 수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프랑스 고무 도매상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부분 뉴저지주에서 사업하던 미국 도매상들은 자연스럽게 그곳 출신 민주당 의원 로버트 메넨데즈에게 접근했다. 이후 다긴은 “메넨데즈가 백악관과 클린턴 대통령의 안보 자문위원회와 국무부를 차례로 방문했다”고 했다. 당시 메넨데즈의 전화를 받은 올브라이트는 “쿠바에 대한 우리의 제재에 대해선 쿠바 이민 2세인 당신이 어떤 예외조항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수단에 대해선 예외조항을 두자고 부탁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그가 “일자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올브라이트가 메넨데즈의 부탁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음에도, 클린턴 정부는 1998년 7월 ‘수단에 대한 봉쇄 조처 규정’이 모든 것에 적용되지만 아라비아고무에 대해서는 제외된다고 못박았다. 2년 뒤 메넨데즈는 이 법령을 확고한 율법으로 못박기 위해 이 예외조항을 국제무역에 대한 포괄적인 규정에 슬그머니 포함시켰다. 우연일까? 같은 해, 메넨데즈는 고무 수입 협력업체와 소다수업체 대표협회, 그리고 코카콜라 그룹의 부사장인 크리스 벌리너에게서 선거 캠페인 자금을 받았다. 그의 은행 계좌를 파헤친 주간 <어번 타임뉴스>의 기자 스티븐 글레이저는 “메넨데즈가 1997∼2002년 소다수·식품·제약업체 등에서 선거자금으로 받은 돈만 5만5669달러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클린턴 정부 “고무만은 예외”
우리의 인터뷰 요청을 거듭 거부하던 메넨데즈 의원은 2000년 9월 28일자 <워싱턴포스트>에 공개 서한을 보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누구도 악당들과 사업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이 악당들이 우리한테 반드시 필요한 물품을 통제한다면 시장은 이 물품을 우리 매장까지 들여올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한데 당시 그가 말한 악당들 안에는 오사마 빈라덴이 포함돼 있었다. 미 국무부는 4년 전 이미 중앙정보국(CIA)이 수집한 정보를 통해 오사마 빈라덴이 “수단산 고무 수출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2) 9·11 테러 발생 1년 전인 2000년 9월 7일, 공화당 상원 의원 프랭크 울프는 의회에서 “우리가 미국 상표가 붙은 탄산음료를 구입할 때마다 빈라덴에게 자금을 댈 수도 있다”며 분개했다.
미국 내부, 찬반 갈려 갈등
수단산 고무와 알카에다 간 모종의 관계에 대해 조사에 들어간 미국 정부는 폴 플라워맨에게 수단의 아라비아고무 업체 책임자들과 주주들의 명단을 밝혀내라고 지시했다. 이 사업가는 수집한 정보를 직접 올브라이트와 그 후임자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수단의 고무 수출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 와중에 1998년 8월 미국이 하르툼의 알시파 제약공장을 화학무기 공장으로 착각해 오폭한 데 이어 다르푸르 대량학살을 성토하며 서로의 증오심은 커져갔다. 한 고무 도매상은 “미국과 수단은 앙숙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쿼터제로 통제되는데도 지정학적 격변을 여태 잘 버틴 고무 무역은 대단한 규칙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미국의 양면성은 주기적으로 미국 정치에 독이 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흑인 의원 모임 ‘블랙 코커스’와 2007년 수단과의 무역 중단을 위해 특별법(HR3464) 제정을 제안했다 실패한 맥신 워터스 민주당 의원이 꾸준히 불량국가(수단)와의 무역거래 청산을 주장했다. 또 한쪽에서는 아라비아고무 로비의 화신 메넨데즈 의원(최근에 상원 의원이 됨)이 미국인들의 소비습관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수단과의 무역관계 유지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강 미국의 뒤틀린 양면성은 미국 외교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2000년 9월 10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만약 미국이 아라비아고무에 대한 제재를 철회한다면 고결한 미국 외교의 권위를 버리는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아라비아고무에 대해서만은 예외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을 아는 모든 하르툼 사람은 저들의 반응을 비웃으며, 저들이 아라비아고무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것에 뿌듯해한다.
수단은 자신의 고객 미국이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어, 자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처를 취할 처지가 아님을 훤히 꿰뚫고 있다. 미국 재무부 외국자산통제국(OFAC)은 지금까지 허가한 수단과의 무역거래가 25건이나 되고, 2009년 8800t, 2010년 1만450t의 아라비아고무를 수입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플라워맨은 무역 허가 건수는 5건이고 수입량은 4천t이라며 OFAC의 자료를 반박했다. 고무 무역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고무상인들이 수단 얘기만 나오면 함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도매상들이 조지 클루니와 앤절리나 졸리의 다르푸르 난민촌 탐방 사진을 본 미국인에게 그릇된 광고를 내보내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손잡고 고무 공급원을 다각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급원 다각화… 그래봐야 수단산
이것은 ‘소다 외교’의 또 다른 면이다. 미국은 자국 농산물의 가공산업 분야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개발도상국 지원에 참여한 도매상들의 강한 영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은 세네갈·차드·나이지리아가 대량의 고무를 수출하면서 세계 고무 수출에서 차지하는 수단의 비중은 90%(20년 전)에서 50%로 줄었다. 국제의학연구소의 세이선은 “기업들이 케냐와 우간다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필자가 프랑스 기업인 알랑에게 프랑스에서 아카시아를 재배하느냐고 묻자, 그는 “날씨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고, 아카시아 농장이 공간을 많이 차지해 수익성이 없어 재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기업인에게 ‘그럼 왜 프랑스 고무 도매상들이 가공된 고무 수액에다 프랑스산 표시를 한 뒤 판매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프리카 14개국에서 고무를 수입해 우리만의 비법으로 고무를 가공한다. 가공 전 고무와 가공 후 상품으로 출고되는 고무는 완전 딴판이다.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고무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단 기업인 시디그는 “만약 미국인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고무를 공급받는다면 그건 결국 수단산 고무다”라고 했다.
고무 노리는 평화의 수사학들
‘만수르 칼리드 아라비아고무’의 전 회장은 “모든 절차가 비정상”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고무가 미국의 제재 조처를 피해 남수단,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등에서 거래돼 서방으로 팔려나간다는 확인 불가능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우리는 유럽의 이런 고무 허브를 통해 불법으로 미국 동해안에 유입되는 고무량을 5천t 정도로 추정한다. 미국은 이 고무를 가지고 ‘유럽의 알선업체로부터 고무를 사서 고객의 주문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연막전술을 펼치는 것이다.
지난 1월 남수단이 분리독립 투표를 치른 가운데, 수단의 외교관들은 수단의 평화로운 분리독립을 계기로 미국이 제재 조처를 해제해 자국의 고무 수출량이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미 국무부의 수단 특사인 스캇 그래션은 수단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수단을 손아귀에 넣고,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단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편, 미국 도매상들은 진정세로 돌아선 다르푸르 사태를 지켜보며, 아카시아 경작이 활력을 되찾아 안전하게 E414 공급이 이뤄지길 고대한다. 남수단에서 산림녹화운동을 책임을 지고 있는 세계은행의 고문 잭 반 홀스트 펠레칸은 “아카시아는 풍성한 나무다. 아카시아를 심는 것은 가뭄이 든 사하라사막 주변 지대의 사바나를 다시 푸르게 하는 자연보호 활동이다”라고 했다. 또 그는 고무 생산국과 서양 고객 간 제휴가 ‘상생의 길’이라고 했다. 폴 플라워맨은 수단의 동료 기업인들에게 “값진 고무 수액은 진즉부터 미국과 수단의 무역 수익에 필요한 유화제로 쓰이는 식품, 즉 미국과 수단의 ‘통합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필자가 ‘인디아 하우스’의 진기한 캐비닛장의 11번째 서랍에 기적의 물품이 은닉돼 있다는 말을 꺼내자, 반 홀스트 펠레칸의 눈빛이 빛났다. 그는 아라비아고무가 ‘평화를 가져다줄 원자재’라고 확신했다.
아라비아고무에 관한 지표 : 매년 생산되는 아라비아고무 원료 6만t 가운데 절반은 수단이, 4분의 1은 차드가, 10분의 1은 나이지리아가 차지한다. 그 밖의 15개 생산국(말리, 모리타니, 세네갈, 우간다,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카메룬 등)이 나머지 시장을 공유하고 있다.
세계 최대 고무 수입국인 프랑스 한 나라가 생산량의 46%를 매입하고 있다. 프랑스는 고무를 세계, 특히 미국에 재판매해 가공산업이 무척 발달했다. 아라비아고무 원료의 t당 수출 단가는 2500달러지만,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판매되는 정제된 고무의 t당 단가는 품질에 따라 8천~1만2천 달러에 이른다.
코카콜라와 아라비아고무 : 아라비아고무의 이면에는 아라비아고무 상인들의 ‘제왕’ 고객인 코카콜라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 국회의원들의 보좌관들은 2007년 맥신 워터스 민주당 의원이 수단산 고무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특별법(HR3464) 제정을 시도했을 때,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의 로비스트가 자신들에게 접근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프랑스의 비즈니스스쿨 EGE의 크리스티앙 아르뷜로 총장은 “코카콜라 애틀랜타 공장이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손잡고 스위스의 비정부기구 메데르(Medair)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메데르는 현재 다르푸르 서쪽에서 진행 중인 우물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또 아르뷜로는 “코카콜라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잠정적으로 우물 공사에 투입한 인력을 아라비아고무 경작에 투입하려는 것”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코카콜라사에 대한 비밀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필자가 코카콜라사의 스타 음료인 콜라 성분에 대해 거듭 질문을 던졌지만, 회사는 사하라사막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에서 아라비아고무를 수입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고무 공급자 중 한 명인 익명의 제보자는 이 답변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코카콜라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필자의 질문에 논평을 거절했다.
수많은 추측이 있음에도, 결국 우리는 세계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소다음료에 수단산 고무가 함유돼 있다는 공식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반면 미국 코카콜라사의 지사가 수단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르툼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길게 나붙은 미국의 유명 음료사가 낸 광고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제로 코카콜라사는 2002년부터 수단에서 농산물 마케팅을 예외적으로 허가한 법령 제2000호를 근거로 식품기업 달(DAL)을 통해 수단에 자사 음료를 유통시키고 있다. ‘소다 외교’가 코카콜라에는 수입과 수출에 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 · 기욤 피트롱 Guillaume Pitron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랑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이다.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매들린 올브라이트, <Memo to the President Elect: How We Can Restore America’s Reputation and Leadership>, Harper, 2008.
(2) <Usama Bin Ladin: Islamic Extremist Financier>, State Department, Washington, 1996년 8월 14일, http://usembassy-israel.org.il/publish/press/state/archive/august/sd4_8-15.ht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