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참치잡이 - 조업을 닮은 군사작전
지난해 4월 9일, 소총과 기관총을 실은 거대한 스페인 군항기 1대가 세이셸 공항에 착륙했다. 스페인군 병기고에서 싣고 온 이 무기의 수령자는 스페인 사설 경호업체들로, 소말리아 인근해에서 조업하는 참치 어선들을 보호하는 신규 계약을 따낸 업체들이다. 이 사설 업체들에 전달한 무기 수송은 2009년 이후 두 번째이다. 지난해 조업 어선들이 해적의 공격을 수차례 받자, 사설 경호업체들이 기관총을 보강한 것이다. 마리아 테레사 페르난데스 데 라 베가 스페인 부통령은 “스페인 어선들은 이제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무기를 보유하게 됐고, 해적 활동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 냉동참치 업계를 대표하는 알라크라나호가 납치돼 선원 36명(스페인 국적 선원 16명 포함)이 47일간 억류된 사건은 스페인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다. 이 지역 참치 조업 선박들이 최근 몇 년째 겪어온 문제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지금껏 해적들로 인한 직접적 피해자는 없었으나,(1) 나포 선박 한 척에 지불해야 하는 몸값뿐 아니라 해적이라는 위협이 초래하는 스트레스와 비용을 심각히 받아들이게 됐다.
스페인, 경호업체 무장 승선 허용
일부 참치 선박들은 안전 규약을 지키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한 스페인 선박 선장은 “(안전을 위해) 두 선박이 한 조로 조업하게 하는 지침은 ‘농담’이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두 선박이 한 조로 조업하면 어획물도 절반으로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아르사호가 자칫 나포될 뻔한 것도 우회 지시를 여러 차례 무시하고, 소말리아 배타적 경제 수역에 근접해 있는 지역- 소말리아 연안에서 210해리(389km)- 에서 조업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통상 외국 선박의 조업 활동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선주들은 국가에 보호를 요청한다. 모이세스 페레스 콤파니아에우로페아 데투니도스(Compania Europea de Tunidos) 대표(4)는 “내가 왜 세금을 내는가? 다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달라고 국가에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이익단체인 스페인어업협회를 비롯한 OPAGAC의 컨소시엄, 스페인냉동참치선주연합은 스페인 정부에 참치 선박을 위해 군병력 동승을 허가해달라고 했다. 프랑스와 벨기에처럼 말이다.
안전규약 어기면서 무력에 의존
2009년 10월에는 스페인국민당(PP)과 바스크국민당(PNV)이 참치 업계 일자리 보호를 위해 스페인 군 병력의 보호 활동 대상을 일반 어선까지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사회노동당과 좌파연합(IU)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참치 업계가 스페인의 법적 관할 아래 있는 것은 분명하나, 스페인 영토 외부에 있다는 걸 문제로 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무장한 해병대원 4명을 일반 선박 선장의 지시 아래 둠으로써 일반 참치 어선이 졸지에 해군 선박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카르메 차콩 국방부 장관은 사설 경호업체를 활용하는 것이 애틀랜타 작전에 스페인 병력을 투입하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스페인군은 프랑스처럼 세계 곳곳에 병력을 배치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했다.
바스크국민당의 제안은 부결됐으나,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왕령에 의해 무기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스페인 정부는 해상 활동 기업의 사설 경호업체 동원을 허가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해당법에는 “선박 내 탑승자 및 재산상의 큰 위협이 존재하는 해역을 지나는 스페인 선적의 상선이나 어선에 (구경 20mm 이하) 전투용 무기 보유 및 사용을 허가한다”는 예외 조항이 생겼다.(5) 바스크자치의회와 갈리시아자치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안전 및 치안 유지는 공권력의 임무”라며 사설 경호업체 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의 4분의 1을 부담하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도 비용 부담을 선언했고, 이로써 사설 경호업체를 활용하는 데 드는 선주들의 부담은 절반으로 줄었다.
업계선 해군 직접 승선 요청하기도
국가보조금 비율이 상당한 사설 경호시장은 스페인 기업들에 즉각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이 분야 신출내기와 다름없는 기업들도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사실 사설 경호업체에 의한 어선 보호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일부 바스크나 갈리시아 지역 선주들은 이미 2008년부터 영미권 사설 경호업체들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 업체들과의 계약은 사설 경호업체와의 계약이 허용된 세이셸 선적의 어선들에만 해당됐다. 그전까지 관망만 하던 스페인 사설 경호업체들은 알라크라나호 사건이 조성한 분위기에 편승해 ‘해상 안전 부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해상 안전 부재’에 대한 인식을 조장하는 데 한몫한 것도, 그로써 큰 혜택을 본 것도 이 업체들이다. 알라크라나호 공격 사건이 크게 불거지고, 대중매체가 사설 경호업체 대표들을 지정학 분야 전문가인 양 선전하자, 이들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각종 대책을 제시했다. 실질적 전문가임에도, 과거사 때문에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 있는 스페인군을 대신해서 말이다. 이전까지 주로 남미나 바스크 지역 신변안전 및 사유재산 보호 활동에 머물던 사설 경호업체들은 국외 기업과 경쟁에 나섰다. 이 업체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가 ‘국내 기업을 선호’한다는 것과, 일부 매체들이 자신을 마치 해적 대항을 위해 정부 허가를 받은 민간 무장병력인 양 선전한 것을 적극 활용했다.
스페인경호업체연합(ASES)의 빈센테 델 라 크루스 회장은 스페인 선주들에게 “외국 업체들과의 계약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면서, 해적이나 마피아들과 유착한 ‘돈에 고용된 용병들’의 사례를 강조했다. 스페인 사설 경호업체들도 대중매체를 대상으로 활발한 홍보를 펼쳤다. 대중매체에서 민간업체의 ‘사설 훈련소’ 훈련과 실습을 다룬 방송을 내보내는 데 열광했음은 물론이다.
정부, 경호업체 비용 지원키로
어선에 동승하는 경호업체 직원은 4~8명이고, 서비스 범위에 따라 선박당 계약금은 2만4천~5만5천 유로이다. ASES는 어선에 동승한 경호팀당 월 7만2천 유로를 현실적인 금액으로 산정했다. 경호원당 월급이 1만2천 유로이고, 경호팀의 전투 설비와 물품 수송, 해상 근무 1개월 뒤 주는 일주일 휴가에 따르는 호텔 체류 비용 등 간접비용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일부 스페인 기업들은 영국 경호업체 ‘시마셜’이 민간 무장선을 보유한 것을 의식해 ‘사략선’(승무원은 민간인이지만 교전국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한 민간 선박)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UC글로벌 같은 기업은 항간에 이른바 ‘용병’이라 알려진 사설 무장경호 기업임을 더는 감추려 들지 않는다.
이와 같은 스페인 동향은 사설 경호업체의 활동 변화에 대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사설 경호업체들은 고객 맞춤형 시장을 발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활동 범위가 종국에는 어선 보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향후 합법적으로 전투무기를 보유·사용할 것이다. 이는 곧 용병 및 비정규 군사활동 통제에도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더불어 폭력이 점점 확대되는 상황이 분명 발생할 것이다. 아직까지 해군의 인명피해가 없고, 격퇴되거나 물에 빠져 숨진 소말리아 희생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문제는 아무리 강력한 해적 대항 활동과 과잉 대응이라도 해적을 없애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소말리아 수자원 수탈 심화될 것
정작 논의 대상이 돼야 함에도 해상 안전 문제로 이면에 가려 있는 논점은, 금지된 다른 해역 거대기업 어선들이 이 지역에서 남획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2005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700여 척의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6)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소말리아에 연 3억 달러의 손실을 입히는 대대적인 불법 조업이다. 물론 해적 공격이 어선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적이 영구적으로 퇴치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해적들이야말로 새로운 공격에 맞서 대항하는 법을 찾아낼 테고, 이는 곧 용병과 다름없는 사설 경호업체들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것과 진배없다.
인도양의 스페인 어선들 : 스페인 참치 어선들이 인도양 내 세이셸과 소말리아 인근 해상 사이 지역에서 조업한 것은 1984년부터다. 이 어장은 세계 참치 어획량의 21%를 차지한다. 스페인은 이 지역에 참치 선박 33척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19척은 스페인 선적이고 나머지는 세이셸 선적이다. 스페인 조업 활동은 유럽 참치업계의 65%를 점하고, 4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연합 어업의 5분의 1을 차지한다.(7) 2007년 스페인의 일자리 가운데 3만5074개가 어업 관련이고, 이 중 2천여 개가 선박과 관련 있으며 1만2천 개 정도는 통조림업이었다. 스페인 참치 선박계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8) 최근 세이셸 해역 어획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이를 해적의 위협 탓으로 보고 있다.
글 · 에두아르 실 Edouard Sill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2008년 타이 해병 3명이 소말리아 억류 중 목숨을 잃었다.
(2) ‘소말리아 해적, 프랑스 참치 선박 공격’, <르몽드>, 2008년 9월 14일자.
(3) 생선 떼를 가두기 위해 해수면에서 사용하는 사각형 그물.
(4) EFE, 2009년 9월15일.
(5) 법령 1628/2009, 2009년 10월 30일.
(6) ‘국가 어장 보고서: 소말리아’, FAO, www.fao.org, 2005.
(7) ‘2005년 및 2007년 수치: 공동어장 정책에 관한 통계 및 기본정보’, 어업 및 유럽 사안에 대한 유럽위원회, 2010년판 <유럽 참치업계- 경제 결산보고 및 무역자유화로 인한 영향 분석: 최종 보고서>, Oceanic developpement Poseidon Aquatic Resource Management Ltd, Megapesca Lda, 2005.
(8) 에두아르 실, <참치와 해적과 용병들>, Mouvements, www.mouvements.info, 2010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