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 사회적 관광의 소환
코로나19 이후의 ‘다르게 여행하기’
지역 공동체, 숙박업자, 요식업자, 여행상품 기획자 등 많은 관광 관계자들은 코로나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이미 인간과 지구에 더 책임 있는 여가 활동 방법을 고민해 왔다. 하지만 환경친화적인 여가 활동을 장려할수록 오히려 지역이 훼손되는 관광의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관광산업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관광업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경제 대책은 동시에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여행상품 기획자, 여행사, 지역 공동체, 숙박업자, 비즈니스 서비스 제공업체, 언론이 모여 만든 단체인 ‘지속가능한 관광 관계자 협회(ATD)’는 지난 4월 당국을 상대로 선언문을 발표했다.(1) ATD는 관광의 변혁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며 ‘탄소 배출량 절감 및 환경 보존’, ‘상부상조와 연대, 사회 정의’, ‘지역 경제 혜택’, ‘의미 있는 관광’이라는 4가지 우선 목표를 내세웠다. 수년에 걸친 목적 지향적 관광산업에 대한 성찰과 토론, 결정 유보 끝에 나온 목표들이다. 오늘날 관광업으로 발생하는 공해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 이 8%의 2/3 이상이 여행을 위한 이동과정에서 배출된다.
ATD는 150여 개의 다양한 조직의 연합 단체로 ‘지속가능한 관광 관계자들의 대표’를 자처하며 경제·사회·환경 분야의 목표들을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 여행상품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책임 있는 관광을 위한 행동(ATR)’이나 31개의 회원 업체가 산림 재녹화, 우물 만들기, 학교 건설 등의 개발 사업에 수익 일부를 기증하는 ‘공정·연대 관광 협회(ATES)’처럼 동종업 종사자들끼리 구성한 다른 단체들도 있다. 쥘리앙 뷔오 ATR 회장은 “탄소 배출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평화에 기여하고 사람들 간 만남의 장 역할을 하는 관광의 미덕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거대하고 파괴적인 현재의 관광업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더 빨리’를 추구하는 여행을 지양하고, 교류와 개방을 장려하는 관광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까? 보건 위기로 인한 봉쇄조치로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됐다. 동시에 지금까지 행해진 일부 관광업의 부조리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미 포화상태인 도시들에 휴가철마다 관광객들을 쏟아 내는 것도 모자라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밝혀진 크루즈선을 다시 타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까? 항공사들의 가격할인 술책으로 유럽의 반대편 끝에서 보낼 수 있게 된 주말 휴가로 인해 환경이 치르는 대가를 계속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이미 메마른 나라들에서 지하수를 계속 퍼 올려 운영하는 거대한 호텔들, 예산에 맞춰 시간에 쫓기게 설계된 여행상품들, 사람으로 가득 찬 해변, 청년들이 고향인 도시와 마을에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하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어떻게 하면 종말을 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관광산업은 그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과잉 관광(over tourism)’, 부동산 시장의 변화, 비행기를 타는 수치심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라이언에어(Ryanair. 철저한 저가 전략을 펼치는 유럽 항공사), 에어비앤비(Airbnb) 같은 대기업들은 날로 번창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닥치자 이러한 기업들이 비로소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위기는 관광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대기업들의 관행을 바꾸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지방 차원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1~2년 전부터다. 관광 사무소, 도·지역 관광 위원회가 사회문제, 지역 주민의 사업 재참여,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 이동성과 같은 주제들을 설정하고 전환을 추진해야 하는 필요성을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기욤 크로메 ATD의 회장이 이같이 설명했다. 일례로 옥시타니 지역은 와인 관광, ‘느린 관광(slow tourism)’을 장려하고 눈이 오는 겨울철 외에도 스키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조하는 등 더 발전되고 영속성 있는 지역 관광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1억100만 유로의 기금을 조성했다.
페어부킹닷컴과 바오베르의 새로운 시도
기회주의일까 아니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일까? 지방 당국은 그 어느 때보다 관광지로서의 매력 홍보에 열심이다. 장거리 여행 축소를 권고하고 향토 관광을 재정비하며 ‘마이크로 어드벤처(microadventure. 퇴근 후 또는 주말을 이용해 집 근처에서 짧고 쉽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속 모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의 포화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목적지 소개에도 힘쓰고 있다. “미래의 관광은 친환경 관광이 될 것이다. 우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중관광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상호작용 활동을 할 때 환경을 더 존중해야 할 것이다.” ‘보클뤼즈 주(州) 관광 마케팅’의 대표 카티 페르마니앙은 단언했다.(2) 그녀는 앞으로 단거리 이동을 더 장려하고 제품의 단순성과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강조하는 마케팅 개념인 ‘클린 라벨(clean labels)’ 개발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모두가 이러한 목표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호화 크루즈 회사 포낭(Ponant)의 영업·마케팅 부사장인 에르베 벨라이쉬는 보건과 안전에 중점을 둔 대책들을 우선으로 내세웠다. “앞으로의 관광은 모든 업계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적응력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보건과 안전보장에 필요한 모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승객들은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완벽한 운항 수칙 확립과 혁신은 전적으로 안전한 여행과 크루즈 유람을 제공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핵심 요소이다.” 포낭은 관광업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프랑스 국적 선박을 운항하는 유일한 크루즈 회사로 높이 평가받는 포낭은 저공해 선박 운항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운항 수칙으로 지난 2월 ATD로부터 ‘지속가능한 관광 종려상’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포낭은 부유한 고객(크루즈선 1박에 400~1,000유로)을 대상으로 하는 크루즈 회사로서 더 먼 거리를 운항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선박들을 끊임없이 보강하고 있다. 2021년에는 크루즈 쇄빙선을 도입해 극지방까지 운항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전거 여행, 도보 여행, 백패킹 등 훨씬 저렴한 예산으로 즐기면서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여행이 성황을 누리고 있다. 시장을 파괴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의 힘의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숙박업체들이 모여 부킹닷컴(Booking.com)을 조롱하는 이름을 붙여 만든 페어부킹닷컴(Fairbooking.com)이 그 예다. 페어부킹닷컴은 고객이 사이트에 등록된 숙박업체들과 직접 연락하여 숙소를 선택할 수 있는 전 세계 온라인 예약 사이트다. ‘환경적 책임을 지는’ 숙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관광객들을 직접 이어주는 사이트인 바오베르(VaoVert.fr)도 그 좋은 예다. 공동체 플랫폼인 페어비앤비(Fairbnb.coop)는 1주택 소유자들을 우대하며 사이트 운영비의 절반을 여행객이 선택한 지역 ‘연대 사업’에 투자한다. 에어비앤비가 수익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하고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초기에 많은 직원을 해고한 것과 실로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3) 그중 마지막으로 ‘철새(lesoiseauxdepassage.coop)’ 사이트도 주목할 만하다. 관광, 문화, 사회경제학 분야의 협력자들이 함께 구축한 이 사이트는 지역 주민, 농민, 수공업자, 지역 예술가, 여행자들 간의 교류를 장려하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지만, 이 협업체계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다소간의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려는 대기업에 밀려 이러한 시도들은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오직 소비자의 참여에만 의지하는 방식은 전혀 효과가 없다. 여행상품 기획자들은 이미 탄소 상쇄(carbon offset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저감 활동에 투자하는 모든 활동)비용을 상품 가격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었을 때는 이 비용을 지불하는 데 동의하는 고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속임수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고 싶은 소비자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연대 사업을 하는 회사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견고한 사업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적이지도 못합니다.” 카롤린 미뇽 ATES 회장이 경고했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녹색 간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환경을 생각하는 관광, 정책 반영은 미지수
관광업 종사자와 여행자, 정책 결정자들은 다른 형태의 접근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공동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지난 몇 달간 수많은 발언이 쏟아졌다. ‘세계의 여행자들’ 그룹의 장 프랑수아 리알 회장은 생물종 다양성과 자연보호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세제를 개혁하고, 모든 여행자가 기후에 남긴 탄소 발자국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모두 산출해 진정한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장 프랑수아 리알은 “시민들이 이러한 세금 부과에 단번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이러한 세금을 제도화할 수 있는 의원들을 선출할 것”이라며 “진정한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시장 축소의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말했다. 당국의 대응과 정책 방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규제, 세제, 직·간접 지원금에 대한 보상이 관광을 수익과 경제적 혜택 수치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없애고, 사회·환경 분야의 쟁점도 고려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 장려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2019년 5월 19일 열린 프랑스의 관광 부처 간 위원회는 이러한 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못했다. 당시 정부 자료는 2018년 ‘역사상 최고’를 기록한 프랑스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연간 8,940만명), 국제 관광 수입(연간 562억 유로) 등의 수치만 다뤘다. 일 년 뒤인 2020년 5월 14일, 위 수치들이 ‘역사상 최저’ 기록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 위원회가 다시 열렸다. 위원회에 참석한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연설하는 동안 환경, 기후, 관광 관계자들의 책임의식은커녕 관광 자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총 180억 유로에 달하는 온갖 형태의 경제적 지원을 줄줄이 발표하는 와중에 ‘사회적 관광(social tourism 모든 국민이 ’휴가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받는 관광 분야)’ 지원에 대해 말한 것이 관광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사태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처한 관광 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2억2,500만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지난 5년간 프랑스 국민 65%가 경제적 사정으로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했던 상황에서(4) 이러한 지원만으로 충분할까? “10억 유로 이상을 대표하는 우리 업계에 이러한 발표들은 반가운 소식이다.” 국립 관광·아웃도어 협회 연맹(UNAT) 대표 시몽 티로는 긍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 국토 곳곳에 위치한 영세 업체들이 이러한 기금의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장 취약한 계층의 국민에게 휴가여행 수요가 다시 살아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관광 관계자들과 운동가들이 ‘생태학적 전환청(ADEME)’이 2019년에 실시한 심층 조사에 기대를 품고 있다. 조사 진행 담당자 오드 앙드뤼는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지만 곧 조사 보고서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지속가능한 관광 발전 전략 마련을 위해 실제 적용 가능한 제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업계의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자문을 구했다.” 궁색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의 연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프랑스 정부가 5월 14일 발표한 계획 곳곳에서 ‘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이 ‘혁신’, ‘디지털’이라는 단어들과 연결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과 단어들이 향후 몇 달 동안 어떻게 구체화 될지 아직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글·제네비에브 클라스트르 Geneviève Clastres
기자. 주요 저서로 공동 저술한 『Dix ans de tourisme durable 지속가능한 관광 10년』(Voyageons-autrement.com, Bourg-lès-Valence, 2018)이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Manifeste pour un plan de transformation du tourisme durable 지속가능한 관광 변환 계획을 위한 선언문’, ATD 공식 웹사이트 www.tourisme-durable.org
(2) Le Grand Pastis 웹사이트, 2020년 5월 25일, www.le-grand-pastis.com
(3) www.voyageons-autrement.com 참조
(4) 프랑스 국내외 여론조사·마케팅 연구소(IFOP)가 UNAT와 장 조레스 재단을 위해 실시한 조사, 2019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