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경제, 21세기의 위대한 여정

2020-06-30     세드릭 뒤랑 외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베일을 벗긴 마틴 루터 킹의 공로는 크다. 그는 사회주의는 부자를 위한 것이고, 자유 기업체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 말하곤 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이는 사실이다. 예컨대 지난 몇 십 년간, 국가는 전후 시기 동안 누리던 신용통제권을 자발적으로 민간기업에 넘기며 국채시장을 형성했다.(1) 역설적이게도 국가가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마틴 루터 킹의 말은 더욱더 신빙성을 갖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각 국가들이 마련한 경제원조계획에 투입된 예산을 합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액의 1.7%에 달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이미 4월 초 연간총생산의 2.6%에 맞먹는 금액을 투입했다. 미국(10%)이나 영국(8%)의 예산은 이를 훨씬 웃돈다. 

이 비율은 물론 국가가 쏟는 노력의 시작일 뿐이다. 몇 달 후 비율이 더 증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예산에 중앙은행이 투입한 막대한 금액이 추가된다. 일본이나 영국의 중앙은행과는 달리, 유럽중앙은행(ECB)은 국가에 직접적인 경제 원조를 지양한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은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1조1,200억 유로 상당의 유가증권과 공채, 게다가 BMW, 쉘, 토탈, LVMH나 텔레포니카 같은 다국적기업의 채권까지 매입하기로 약조했다. 은행에게 더 큰 유동성을 주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한창인 지금 금융안정성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투자기관, 은행, 환경오염에 책임이 있는 대기업들은 공권력이 내미는 손길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는 말 그대로, 지금 부자들은 유례없이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사태의 심각성, 그리고 생산경제가 금융경제보다 천대받는 현실 때문에 마틴 루터 킹이 내린 정의는 급변한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미국은 국고에서 시민에게 직접 수표를 보낸다. 공중에서 직접 돈을 뿌리는 소위 ‘헬리콥터’식 통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은행의 중개를 통하지 않고 대가 없이 직접 가계와 기업에 지원금을 준다. 4월 초 프랑스에서는 임금노동자 5명당 1명이 부분적 실업 상태로, 단축 근무로 줄어든 임금을 국가지원금으로 보상받았다. 이 숫자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경기관측소(OFCE)는 이 제도로 임금노동자의 월급을 부분적으로나마 지켜주려면 매월 210억 유로가 넘는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2)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신성하게 받들어지며 유럽연합 국가들의 교차로가 돼주던 신자유주의 신조는, 코로나19 사태로 하루아침에 제동이 걸렸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화폐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즉, 국가의 지출비용을 직접 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정·재계 엘리트들 사이에서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는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이례적인 이념의 변화’는 경제자금조달과 민간소유 자본 사이의 고리를 끊을 엄청난 기회다. 한 나라의 경제가 가진 생산역량의 범위 내에서 중앙은행이 활동에 필요한 선금을 직접 댈 수 있게 된다면, 시장이 가진 우월한 지위는 사라진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으려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고, 긴축정책에 대한 정당성도 사라진다.

혼동하지 말자. 신자유주의의 쇠퇴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실제로 프랑스가 극빈층을 위한 정책에 소극적인 것은, 정부가 경제위기 완화의 일환으로 임금을 ‘재조정(삭감)’해야 할 때를 대비해 저가 인력풀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3) 그렇지만 위기상황에서는 다른 경제논리도 조금씩 등장한다. 특히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의 경우가 그랬다. 세계1차대전 당시 파리는 극심한 석탄부족에 시달렸다.(4) 정부는 석탄 생산과 분배를 도맡았다. 각 가정에 갈 석탄량을 배정하는 데는 두 가지 기준이 적용됐다. 집의 크기와 거주하는 사람 수를 고려해 난방에 필요한 석탄량을 계산한 것이다. 석탄은 각 가구의 지불 능력이 아닌 실제 필요한 양만큼 분배됐다. 화폐경제식 계산이 아닌 현물경제식 계산법이다.

 

원상회복 시킬 수 있는 대안경제의 필요성

물론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1차대전만큼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유사한 논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급에 필요한 비용은 짐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단 한 가지 질문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생산할 수 있는가? 이제 양은 가격보다 더 중요해졌다. 시장의 논리는 실제 필요량에 굴복했고, 그 빈자리는 정부의 징발로 대체됐다. 신자유주의를 숭상하던 아일랜드 정부는 코로나 사태 동안 민간병원을 주저 없이 국유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인공호흡기 생산을 가속화하기 위해 한국전쟁(1950~1953) 당시 공포된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언급했다. 이 법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공익을 위한 물품을 우선순위로 생산할 것을 사기업에게 명할 수 있다. 이렇듯 응급상황에서 필요는 시장경제 논리를 넘어선다. 위기상황에서 사회는 갈림길에 서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폭풍이 지나가자마자 그 전의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가 그랬다. 

위기는 종종 새로운 논리를 추구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로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시장논리에 맞서 실제 필요량을 충족시키는 쪽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새로운 요구사항이 생겼다. 코로나19는 인간사회와 동물 간 상호침투력이 점점 강해져 바이러스의 이동이 용이해졌기 때문에 발생했다.(5) 동물은 전염병의 숙주가 돼 인간거주지 근처에 서식하고, 이러한 변화는 생태계 붕괴를 초래한다. 실제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생태균형을 존중하고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대안적 경제논리가 필요하다. 바로 친환경 계획경제다. 

친환경 계획경제는 총 다섯 가지 원칙으로 이뤄진다. 첫 번째, 신용과 투자관리를 정부가 감독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은 법적으로 자금원조를 중지한 후 폐쇄한다. 이러한 움직임과 더불어 친환경 경제로의 이행, 재생가능한 에너지, 단열을 이용한 효율적인 인프라 구축 등에 막대한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구체적인 수치를 알고 싶다면 네가와트협회의 성명서를 참고하면 된다.(6) 핵심은 시장경제 논리 하에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진 공공기관, 특히 교육, 의료, 교통, 수자원, 쓰레기처리, 에너지, 통신 분야의 공공기관을 재구축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림자 금융과 친환경 위장

2019년 2월,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1930년대 경제대공항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정부가 주도한 경제정책인 뉴딜정책의 사례에서 따온 이름이다. 프로젝트는 10년 동안 저탄소 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10년이라는 시간은 임의로 붙인 숫자가 아니다. 그만큼 환경오염의 현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들은 긴축정책이라는 장벽 때문에 환경문제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린뉴딜 계획도 그 벽을 넘어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긴축정책은 산산조각난 상태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사령부인 은행, 그리고 ‘그림자금융(shadow-banking)’이라는 규제되지 않는 금융시장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대기업 공식사이트에 빈번히 등장하는 ‘우리가 지키는 가치’ 란을 클릭하면 나오는 환경보호 공약을 제외하면, 특정 산업이나 활동에 투자할지 결정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보통 수익성과 지불능력이다. 블랙록 투자회사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는, 2020년 1월 기업 경영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7) 편지에서 핑크는 이제 “지속 가능한 투자”를 희망한다며, 자신의 자산경영방침을 남겼다. 이것이 탄화수소산업에 막대한 금액을 출자한 블랙록의 ‘친환경 위장(green washing)’임을 모르고 지나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8) 그의 의도가 진지하다고 할지라도 투자는 단기적인 경쟁 논리를 배제했을 때 비로소 그의 말처럼 ‘지속 가능’ 해 진다.

중앙집권화된 민간 금융업계의 권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친환경 경제 구축을 위한 투자 관련 의사결정의 모든 단계는 민주주의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국유화 바람이 불던 1981~1982년 피에르 말루아 정부의 고문이자 프랑스은행의 이사회 일원이었던 프랑소아 모랭은 이렇게 제안했다. “투표로 선출된 이들은 신용이나 새로운 통화발행에 관한 의사결정의 핵심에 자리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 선출된 이들이 모여 융자할당의 기준, 수령인의 자격, 할당금액 (…) 을 각 주요 산업별로 정의해야 한다.”(9) 투자에 관한 표결은 국가 차원 혹은 더 나아가 대륙적, 전지구적 차원에서 세운 환경보호의 목표와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치권 덕분에 각 기관은 고유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경제적 획일성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한데로 모으고, 그 실천은 지역단위의 역동성에 일임함으로써 인간사회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생활양식과 적응력을 고려한다. 이는 계획경제에 강력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넓은 범위로 자원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의견차가 생길 경우, 국가차원의 최고단계에서 최종결정을 내린다. 이를 위해서는 표결절차의 효율성 개선이 환경문제와 연관이 있음을 정당화해야 한다. 신용의 할당 역시 생태적 제약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소련, 프랑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착수한 계획경제는 대부분 전후에 시설이나 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오늘날까지도 계획경제의 우선순위는 생산성이었다. 한편 친환경 계획경제는 천연자원 사용을 감소시킬 방안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서 환경문제에 최적화된 통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계획경제란 현재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각본을 만들어 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10) 그런데 다양한 경제활동이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아직 불완전하다. 따라서 표결과 의사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의미 있고 정확한 지표가 없는 형편이다. 국가가 공식통계연구소에 지표개발 연구를 일임하고 예산을 충분히 할당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산업분야에서 실업자가 대거 발생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청난 사회격동을 초래했던 탈산업화의 이미지는 몇십 년 전부터 은근슬쩍 환경보호의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탈산업화는 공장의 해외이전 바람이 가져온 결과일 뿐 환경에 대한 우려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친환경 계획경제의 핵심은 바로 서민층이다. 서민들은 증기기관으로 대변되는 산업화 사회를 뒤엎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않는 생산방식이 곧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친환경 계획경제의 두 번째 원칙은 국가가 서민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뉴딜 프로젝트도 이 정책을 포함한다.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정책이다.(11) 국가가 일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공공부문의 기본급이나 그 이상의 금액으로 일자리를 제안하거나 혹은 고용 창출을 위한 비용을 댄다. 마치 금융위기가 닥치면 중앙은행이 대출의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처럼 고용보장을 위해서 국가가 국민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

 

‘장기실업 없는 지역 프로젝트’

이 같은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여겨 지지만 사회적·환경적 관점에서는 부가가치가 큰 일자리를 창출한다. 천연자원 관리, 노령인구와 영유아 인구 부양, 보수공사와 같은 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 2016년에서 2021년까지 프랑스 십여 곳의 지역에서 진행 중인 ‘장기실업 없는 지역 프로젝트’는 고유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 정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12) 시범정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신념을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일자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모두에게 능력이 있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돈은 부족하지 않고 일자리 또한 마찬가지다. 한가지 부족해지는 일자리는 바로 자본중심적 일자리이다. 고용시장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원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용보장은 시장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준다. 구직자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기구 사이에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특정 지역에서 유용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근로조건과 임금에 대한 사회규범의 초석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노동자 전체가 덕을 볼 수 있게 된다. 고용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은 이제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노동의 존재가치가 더 이상 시장경제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또 하나의 직업적 계층구조가 드러났다.(13) 급작스럽게도 이제 국민의 생존은 간병인, 슈퍼마켓 계산원, 청소부 등 보통상황에서는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직업군의 손에 달렸다. 매일 저녁 8시마다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매년 7월 14일 혁명기념일에 열리는 군대 행렬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친환경 경제로의 이행에 필수적인 직군들도 이 같은 재평가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계의 핵심 산업역군으로 인정받던 석탄광산의 광부들처럼, 새로운 사회에서도 영웅이 필요하다. 임금의 불평등한 계급구조를 타파하고, 사회적·환경적 기여도가 높지만 외면받던 직군의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이 투쟁에서 문화적 측면 역시 빠질 수 없다. 영화나 소설, 노래에서 간호조무사, 재활용업자, 농부가 문학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경찰, 사업가, 변호사,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지위로 승격되지 않는 한, 직업에 대한 대중들의 낡은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원칙으로 친환경 계획경제는 해외로 이전된 경제활동을 다시 자국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유럽연합도 이에 동참했다.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2020년 1월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이라는 기후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폰 데어 라이엔이 법안의 윤곽을 잡고 있던 순간에도 유럽연합은 베트남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었다. 더 많은 상품이 지구를 가로질러 왕래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증가할 것이다. 자유무역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생태계 교란을 초래한다. 

해외로 이전된 산업을 국내로 재정착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생산의 다양화’다. 가격이 요동치는 세계시장에서 해방되고, 생산물에 대한 주권을 되찾을 길이다. 자본주의 기반의 세계화, 길어지는 가치사슬 때문에 국민은 직접 만든 생산물에 대한 통제권을 뺏겼다. 두 번째 원칙은 ‘보호무역 연대’다. 사회적·환경적 관세장벽을 세우는 동시에 대기업의 지식 독점체제를 와해시켜야 한다. 지적재산권을 개방함으로써 수혜자들은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교류로 말미암아 사회·환경문제에 관한 권리의식이 고취된다. 보호주의 연대는 자폐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식의 공유와 친환경 경제를 기반으로 세계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바로, 재정착 과정에서 생산할 물품과 생산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물건의 수명을 최대한 짧게 만들어 소비자가 항상 새 물건을 사도록 종용한다. 따라서 일부러 질이 나쁜 재화를 시장에 내놓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생산자에게 더 긴 사용기간을 보장하도록 엄격한 표준을 제시해야 한다.(14)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 양질의 제품을 고쳐서 계속 쓰면 생태계에 돌아가는 부담이 줄어든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더 검소하기 살기 열풍이 불고 있다. 대부분 경우 개인주의적 가치관에서 기인한 결정이다.(15) 하지만 검소함이란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 가치다. 그러므로 검소한 삶을 장려하기 위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활동에 기반한 생산제일주의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물건의 수명주기를 연장하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한다. 오래된 물건을 관리하고, 보수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모든 것을 버리면 그만이라는 일회성 사고방식보다 앞서야 한다. 이는 투자와 고용, 역량과 직결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규제에는 엄격한 광고제한이 포함된다. 기업이 고객에게 상품의 가치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광고는 상품보다 환상을 팔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공간을 잠식한다. 20세기 동안 기업, 특히 다국적기업의 광고 지출은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16) 광고는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다. 이런 조건에서 지속가능한 소비형태가 등장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친환경 계획경제의 네 번째 원칙은 민주주의다. 과거의 계획경제는 생산이 우선시됐을 뿐만 아니라 수직구조를 가진 권위적 기술관료체제 위에서 이뤄졌다.(17) 계획경제를 주도하던 소련 관료들은 생산할 재화의 양과 질을 직접 결정하곤 했다. 이런 권위주의는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지식이 빈약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엘리트 관료들은 시민사회와는 단절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결과 수요와 공급의 엄청난 불균형이 발생했다. 어떤 자원은 결핍에 시달리는 한편 과도하게 생산된 자원은 낭비됐다.

 

친환경 경제, 간접 민주주의를 직접 민주주의로 대체할 기회

계획경제와 권위주의의 상관관계는 단지 불행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러한 불운을 피하려면 창의력을 발휘해 다양한 기관을 고안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은 계속됐다.(18)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행정부와 이사회에서 이루어졌지만, 실험의 결과로 정치적인 묘안도 고안됐다. 시민참여회의, 시민심사위원회, 시민참여형 예산, 혹은 ‘미래시민회의’(19)와 같은 다양한 기관이 어떤 물건을 얼마만큼 생산할지에 관한 표결에 참여할 수 있다. 이같이 장치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결과가 실제로 생산에 반영돼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시장경제체제가 한발 뒤로 물러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널리 사용중인 IT 기술을 수요와 공급의 조율에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9월,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빅데이터의 혁명으로 계획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단언했다.(20) 일부 논설위원들은 데이터 수집과 계산이 가능해진 오늘날, 20세기 중앙집권식 계획경제가 겪은 실패를 극복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활동에 따라 쏟아지는 대량의 정보는 가격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소비자 대다수가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거의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터는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사기업들의 소유다. 데이터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인프라가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감독하에 사회적 효용성을 우선하도록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준다면, 데이터는 시장경제의 대안을 고안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친환경 계획경제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원칙은 환경문제 대한 정의구현이다. 코로나19는 프랑스의 센생드니 지역처럼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서민들의 건강은 취약하다.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질병에 잘 걸리고, 의료시설이 충분치 않은 지역에 사는 만큼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최전선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 대부분이 서민층이고, 전염병 때문에 계층 간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기후변화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부유층보다 서민층이 환경오염과 자연재해의 위험에 더 노출된다.(21)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부는 그 비용을 서민층에게 부과했다. 노란조끼 시위에 시발점이 된 탄소세가 대표적인 예다. 도덕성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행동이다. 서민들의 지지 없이 친환경 경제로의 이행은 불가능하다. 민심을 얻으려면 정의구현이 변화의 핵심에 자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한 민주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선 상위 10%의 부유층이 하위 10%보다 8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미국은 24배, 브라질은 46배 차이난다.)(22) 환경파괴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건 바로 이들이다.

 환경보호는 이제 유럽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가 됐다. 과연 어떤 방식의 환경보호를 말하는 것일까? 오스트리아의 보수당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지난 1월 녹색당과 동맹을 맺을 당시,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이민과 기후변화라고 선언했다. 국가 차원에서 사상 최초로 보수당와 녹색당이 연합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보수파 환경운동의 출현이 가속화될 듯하다. 공포에 내몰려 ‘강력한’ 국가를 요구하고, 국경을 폐쇄한 채 국민의 삶을 추적하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생산제일주의는 반드시 큰 재앙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커질수록 오스트리아는 환경문제를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대표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순리에 어긋나는 동맹을 믿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환경운동의 역사상 어느 정도의 보수적인 성향은 언제나 존재해왔을 수 있다.

보수파 환경운동에 대조되는 또 다른 환경운동이 있다. 국가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변화를 일으키려 하며, 이 과정에서 국가를 민주화할 기회, 또는 간접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할 기회를 찾는다. 친환경 경제로의 변화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정치·경제 시스템 또한 동시에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23) 그들의 방식 대 우리의 방식. 21세기의 위대한 싸움은 시작됐다.  

 

 

글·세드릭 뒤랑 Cédric Durand 
파리 13대학 경제학과 부교수
라즈미그 크쉐양 Razmig Keucheyan 
보르도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Benjamin Lemoine, 『L’Ordre de la dette. Enquête sur les infortunes de l’État et la prospérité du marché 채무의 법칙. 국가의 불운과 시장번영에 관한 조사』, La Découverte, Paris, 2016.
(2) ‘Évaluation au 30 mars 2020 de l’impact économique de la pandémie de Covid-19 et des mesures de confinement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친 영향과 격리정책에 관한 2020년 3월30일자 평가 ’, Policy brief n° 65, OFCE, Paris, 2020년 3월 30일.
(3) Michaël Zemmour, ‘Coronavirus : Le gouvernement ne se rend pas compte de l’exposition des ménages modestes à la crise 코로나바이러스, 정부는 서민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알지 못한다’, <Le Monde>, 2020년 3월 27일.
(4) Thierry Bonzon, 『Consumption and total warfare in Paris (1914-1918) 』, in Frank Trentmann and Flemming Just (dir.),『Food and Conflict in Europe in the Age of the Two World Wars 』, 런던, Palgrave Macmillan, 2006.
(5) Sonia Shah, ‘Contre les pandémies, l’écologie 왜 판데믹은 야생동물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3월호.
(6) Association négaWatt, 『Manifeste négaWatt. En route pour la transition énergétique !  네가와트 성명서. 에너지 가득한 변화를 향한 길에서』, Actes Sud, Arles, 2015.
(7) Larry Fink, ‘A fundamental reshaping of finance’, BlackRock 공식 홈페이지, 2020년 1월, www.blackrock.com
(8) Amélie Canonne & Maxime Combes, ‘BlackRock se paie une opération de greenwashing grâce à Paris et Berlin 파리와 베를린 덕택에 친환경 위장한 블랙록’, <Basta !>, 2020년 1월 24일, www.bastamag.net 
(9) François Morin, 『Quand la gauche essayait encore. Le récit des nationalisations de 1981 et quelques leçons que l’on peut en tirer 좌파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때. 1981년 국유화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Lux, Montréal, 2020.
(10) Alain Desrosières, ‘La commission et l’équation : une comparaison des Plans français et néerlandais entre 1945 et 1980 1945~1980년 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계획경제 비교’, <Genèses. Sciences sociales et histoire>, Paris, n°34, 1999. 
(11) Pavlina Tcherneva, 『The Case for a job guarantee』, Polity Press, 런던, 2020.
(12) Florence Jany-Catrice & Anne Fretel (coord.) ‘Une analyse de la mise en œuvre du programme expérimental visant à la résorption du chômage de longue durée dans le territoire urbain de la Métropole de Lille 릴 도시지역 장기실업의 단계적 해소를 위한 시범계획’, 중간보고서, 2019년 6월 11일, 다음 사이트에서 열람 가능 https://chairess.org 
(13) Dominique Méda, ‘Nous savons aujourd’hui quels sont les métiers vraiment essentiels 오늘날 정말 중요한 직업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Politis>, Paris, 2020년 3월 25일. 
(14) ‘De la pacotille aux choses qui durent ‘소니 타이머’ 에 반하는 사용가치의 연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9월호.
(15) Jean-Baptiste Malet, ‘Le système Rabhi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구세주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8월호, 한국어판 2018년 10월호. 
(16) John Bellamy Foster et al., ‘The sales effort and monopoly capitalism’ <Monthly review>, 60 (11), New York, 2009년 4월호.
(17) Bernard Chavance, ‘La planification centrale et ses alternatives dans l’expérience des économies socialistes 중앙집권식 계획경제와 사회주의 경제에서 찾은 대안’, <Actuel Marx>, Paris, 65 (1), 2019.
(18) Yannick Barthe & Michel Callon & Pierre Lascoumes, 『Agir dans un monde incertain. Essai sur la démocratie technique 불확실한 세상에서 행동하기. 기술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Seuil, Paris, 2001.
(19) Dominique Bourg et al., 『Inventer la démocratie du XXIe siècle. L’Assemblée citoyenne du futur 21세기식 민주주의 만들기. 미래시민회의』, Paris, Les Liens qui libèrent, 2017. 
(20) <Financial Times>, 런던, 2017년 9월 4일.
(21) Catherine Larrère (dir.), 『Les Inégalités environnementales 환경문제의 불평등』, Paris, PUF, 2017. 
(22) Lucas Chancel, 『Insoutenables inégalités. Pour une justice sociale et environnementale 참을 수 없는 불평등. 사회·환경 문제의 정의구현을 위하여』, Paris, Les petits matins, 2017.
(23) André Gorz, ‘Leur écologie et la nôtre 그들의 생태론과 우리의 생태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4월호, 한국어판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