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라는 민주주의

2011-05-09     모하메드 엘 우아피

<알자지라> 다마스쿠스 지국 앞에는 ‘편파 방송’에 항의하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리비아에서는 반정부 시위 지지 보도에 불만을 품은 카다피 정부가 <알자지라> 기자의 트리폴리 체류를 금지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알자지라>는 중동 미디어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국가를 초월한 범아랍 공론장을 탄생시켰다. <알자지라>는 지난해 말부터 아랍 세계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의 주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3월 2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카타르 국왕과 <알자지라> 경영진이 2001년부터 애달프게 기다려오던 말을 들려주었다. 먼저 그녀는 “미국은 세계 정보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진단했다. 그 원인으로 “수백만 편의 광고나 전문가끼리의 공허한 논쟁”만 내보내는 대형 민영방송사를 지목했다. 반면 “<알자지라>는 참다운 정보를 제공하며 미국에서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클린턴 장관은 하원 의원들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했다. “여러분이 좋든 싫든, <알자지라>는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힐러리, <알자지라>를 시샘하다
아랍 세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지금, <알자지라>의 역할과 국제적 영향력을 극찬한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알자지라>는 주도적이고 독보적인 보도 활동을 통해 중동 미디어계를 쥐락펴락하는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일부 아랍어 방송사를 시장에서 소외시키거나, 다른 매체들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알자지라>의 주요 경쟁사인 사우디아라비아 방송 <알아라비아>의 간판 앵커 하페즈 알미라지가 생방송 도중 갑자기 경영진을 향해 도전적인 발언을 한 사건은 의미가 깊다.

이 이집트인 앵커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퇴진에 대해 논평하다 말고 갑자기 자신이 일하고 있는 방송사가 “압둘라 국왕이나 사우디 정권에 대해서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논평은 다음과 같은 최후통첩으로 마무리됐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다 그만두는 편이 낫다. 다음 방송에서 우리는 한 가지 실험에 나설 것이다. 이집트 혁명이 사우디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평하겠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알아라비아>는 독립적 언론임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동안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작별을 고하는 바다.” 알미라지 앵커가 <알아라비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알아라비아>엔 없는 것, 표현의 자유

1996년 11월 개국 초부터 24시간 채널 <알자지라>는 중동 미디어 지형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알자지라>는 미디어 구조와 보도 방식, 그에 따른 정치적 알력 관계까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1) 일각에서는 아랍 세계를 뒤흔든 민주화 혁명이 발생하는 데도 <알자지라>의 공이 컸다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위키리크스의 공동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중동 민주화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알자지라>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말했다.(2)

아랍 매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랍어라는 공통 언어를 기반으로 국가와 정부를 초월한 범아랍 공론장을 형성한 점이다. 아랍어권 매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때 여러 아랍국은 아랍어 미디어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패권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비롯한 걸프만 국가였다. 1970년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서거 이후 이집트가, 그리고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이라크가 중동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가 거의 모든 아랍어권 미디어를 장악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카타르 국왕이 <알자지라>를 개국하면서 사우디의 독점 체제가 종식된다.

새롭게 개국한 <알자지라>는 세 가지 면에서 기존 사우디아라비아 방송과는 차별화됐다. △방송사가 진출해 있는 나라 △기자 채용 방식 △방송이 추구하는 이념적 색채였다. <알자지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범아랍 매체들은 대개 외국에 방송사를 두어야 비교적 저널리즘의 독립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1975년 내전 이후 레바논 언론 가운데 일부가 유럽으로 이전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사우디아라비아계 미디어 제국도 런던이나 이탈리아에 근거지를 두고 아랍 출신 기자를 대거 채용했다. 특히 레바논 기자를 선호했는데, 이들은 사우디 국왕의 동맹, 심지어 ‘용병’이라고까지 불렸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아랍국가 내에 방송사를 두어도 충분히 언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기존 관행을 뒤집는다. 이를 계기로 사우디 매체들도 하나둘 아랍 지역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대개는 아랍에미리트가 주를 이뤘을 뿐, 자국으로 되돌아온 사우디 방송사는 한 곳도 없었다.

민주화 기여도, 소셜네트워크 압도
<알자지라>의 개국을 기획한 이들은 시청자의 동질감과 애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국가 출신 기자들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레바논 기자나 사우디아라비아식 미디어가 주축이 되던 시대는 끝났다.

<알자지라>의 이념적 정체성과 논조를 파악하기 위해 토론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선정 주제, 간판 앵커들의 논평 등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 방송이 ‘범아랍주의’, ‘이슬람주의’, ‘자유주의’라는 세 가지 경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점을 이루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알자지라>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렇게 눈부신 성공을 거머쥔 배경에는 뉴스를 다루는 참신한 방식과 보도 자율성이 자리잡고 있다. 객관적 진실 보도를 추구하는 <알자지라>는 여러 아랍국 야당 인사들에게도 발언대를 제공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토론을 시청자에게 선사했다. 국적이나 이념, 정치적 성향, 거주국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패널을 참여시켜 국경을 초월한 검열에서 자유로운 의견과 시각을 들려주었다. 그 결과 <알자지라>는 국경의 한계를 넘어서는 범아랍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3) 위성TV와 아랍어권 신문에서 출발해 인터넷·블로그·소셜네트워크까지 가세하면서,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범아랍 공론장은 이제 모든 중동 문제를 둘러싼 여론과 정치 담론이 생산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알아라비아>), 미국(<알후라>), 이란(<알알람>) 등 여러 경쟁국이 범아랍 미디어 사업에 하나둘 뛰어들면서 중동에는 다원주의 경향이 확대됐다. 이는 아랍 세계만의 독특한 정치·미디어 지형을 형성한다. 각 아랍국의 독재정권이 다원주의적 성격의 독립적 미디어 매체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알자지라>가 대담한 보도로 아랍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아랍 독재정권은 새로운 보도매체 등장에 바싹 긴장했다. 정치 질서와 미디어 질서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 관계는 중동 민주화 혁명으로 이어졌다.

아랍 세계에는 정당이나 노조 등 공론화를 주도할 만한 제도가 전무하거나, 형식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알자지라>는 단순한 보도채널을 넘어 점차 제2의 ‘정치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알자지라>는 중동 민족과 관련해 중대한 문제를 토론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 등 여러 분쟁에서도 <알자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욱이 카타르가 과거 전통이나 중동의 관습을 뒤엎는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면서 <알자지라>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국내(4)든 국외(5)든, <알자지라> 보도에 대한 편향성 비판은 중동 정치게임의 일부를 이룬다. <알자지라>의 논조가 곧 카타르의 외교 노선을 의미한다며 <알자지라> 보도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행위 뒤에는, 실은 카타르 정부를 수세로 몰기 위한 목적이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최근 아랍 민주화 혁명 보도를 비롯해 여러 상황을 살펴볼 때, 이제 <알자지라>가 카타르 일국이 아닌 아랍 세계 전체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카타르 정부의 통제 능력 밖에 있다.

범아랍 공론장 자리매김
<알자지라>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송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알자지라>가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위성방송 가운데 처음으로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를 인터뷰했다)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알자지라>의 ‘이슬람주의’ 성향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카타르가 막대한 규모의 미군 주둔을 허용해 미국 대중동 전략의 도구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알자지라>는 반미주의를 고수하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리비아·예멘 등의 민주화 혁명을 지원하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리비아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보도는 중동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알자지라>가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의 여권 인사를 전혀 출연시키지 않는 것도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알자지라>는 바레인 시위에 대해 상당히 말을 아낀다. 사우디군과 그 동맹국이 바레인에 군사 개입을 시도한 사건에 대해 걸프 지역의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만 해석했다. 4월 말 <알자지라> 베이루트 지부장 가산 벤 제두가 리비아·시리아 등에 대한 편파 보도에 불만을 품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건은 아랍 민주화 혁명을 대하는 <알자지라>의 보도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알자지라>를 이슬람주의 방송으로 매도하는 비난만큼은 이제 설 자리를 잃은 것이 분명하다. <알자지라>는 이슬람주의자의 활약이 미흡했던 마그레브 지역과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긍정적 보도를 내보냈다. 2006년 영어 방송을 시작함으로써 <알자지라>는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는 <알자지라>를 반서구·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방송으로 매도하기 위해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 일부 방송만 편집·번역하는 등의 방식으로 <알자지라>의 이미지를 훼손해왔다.(6)

글 · 모하메드 엘 우아피 Mohammed El Oifi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이브 곤잘레키아노·투랴 가아이베스 엮음, <아랍인들이 아랍에 대해 이야기하다: 아랍 세계의 정보혁명>, 악트쉬드 출판사, ‘신바드’ 총서, 아를, 2009.
(2) <르몽드>, 2011년 3월 11일.
(3) 모하메드 자야니 엮음, <The Al-Jazeera Phenomenon: Critical Perspectives on New Arab Medial>(플루토 출판사·런던·2005) 가운데 ‘Influence without power: Al-Jazeera and the Arab publc sphere’ 편.
(4) 마문 팬디, <(Un) Civil War of Words: Media and Politics in the Arab World>, Praeger Security International, 샌타바버라(미국), 2007.
(5) 즈비 마젤, ‘<알자지라>와 카타르: 무슬림형제단의 어두운 제국인가?’, <콩트로베르스>, 제13호, 파리, 2010년 3월, www.controverses.fr.
(6) ‘이스라엘식 정보 조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