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빼앗긴 건 목숨이었다

2011-05-09     정미례

2000년 9월 19일 전북 군산 대명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20대 여성 5명이 사망한 데 이어, 2002년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집결지 화재로 또다시 13명의 여성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가 터지면서, 성매매와 여성 인권의 참혹한 현실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매매가 사회구조적 문제임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행위이자 폭력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2004년 성매매방지법(1)이 제정됐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왜곡된 성산업에 적극 대응하며,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려 한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산업 구조의 문제로 규정하는 등 한국 사회의 전환된 인식을 일정하게 반영했다.

‘자발적 성매매’라는 허구적 인식
흔히 성산업을 분류할 때 ‘업소’를 중심으로 서울 영등포와 경기도 파주 용주골 등 집결지(속칭 집창촌)는 ‘전통형 성매매’, 룸살롱·안마시술소 등 2차 성매매를 중심으로 하는 겸업 형태는 ‘산업형 성매매’로, 그리고 자유업종 같은 형태는 ‘신·변종 성매매’로 구분한다. 마치 성매매는 성매매 집결지에서만 이뤄지고, 다른 업소에서는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 거래 행위로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이다.

성산업은 식품접객업으로 등록한 유흥주점이나 공중위생으로 등록한 이용원·숙박업소·안마시술소를 비롯해 자유업종으로 구분되는 휴게텔 같은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와 변신을 꾀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형태의 등록업소들은 합법적으로 인가된 사업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여성의 몸을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영업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 상품성 있는 여성이 필요하고 상품으로 포장된 여성을 업소에서는 ‘유흥접객원’ 또는 ‘도우미’, ‘알바’라는 이름으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유입시키고 있다.

빈곤과 사회 양극화가 확산되면서 여성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는 가운데, 복지와 인권은 후퇴하고 경쟁과 시장구조로의 일방적 편입만 강요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성산업의 확대와 확산에는 너무 관대해 돈벌이와 생존으로 미화되면서, 더 취약한 상태에 있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에는 무감하게 대응하고, 그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런 인식은 결국 여성의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진다. 인권과 복지는 뒤로 밀리고, 경제 불황에도 성산업은 돈벌이로 합리화되면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은 채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성산업의 막대한 수익 창출 이면에는 착취 구조를 더욱 강화해 여성을 성매매로 내몰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극적 현실이 가려져 있다. 2010년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7명의 잇단 자살(2)은 간고한 착취 구조에 기반한 한국 성산업의 운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매매에 내몰리다 맞은 죽음

업주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고수익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유흥주점 같은 업소는 술을 많이 팔아 매상을 올려야 한다. 유흥과 접대의 주고객은 남성이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자는 여성이다. 그들이 바로 ‘유흥접객원’이다. 정해진 양의 술을 팔지 못하면 매상에 차질이 생기므로, 여성은 고객의 어떤 요구라도 다 들어주면서 술을 소비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여성은 온갖 ‘변태쇼’와 성추행, 성폭력까지 감내해야 하는 그야말로 위험하고 인격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 나아가 외상술값- 업소들은 보통 술값을 바로 계산하지 않고 ‘사인지’라는 것으로 체크만 하고 나중에 결제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관리한다- 까지 여성에게 부담시켜 술값 계산이 안 되면 하루 일한 ‘봉사료’는커녕 손님들 술값까지 대신 물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기도 한다.

여성들은 영업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성매매가 업소 영업 방식의 필수 코스이기에 여성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이 벌금과 이자, 방세, 온갖 영업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심지어 자영업자로 분류돼 세금까지 내야 한다. 여성 7명이 자살한 포항 유흥업소의 경우 업주들이 일방적으로 10%를 세금으로 공제해왔다. 또 자영업자로 소득신고가 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10만 원이 넘는 건강보험료까지 내야 했다. 여성들은 업소를 그만두면서 자신에게 부과되는 세금고지서를 보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너무나 반듯하고 체계적인 착취
정작 업주 자신들은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소비구조를 다단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단이 ‘무지카드’(아무것도 기입하지 않은 카드 명세표)다. 고객들은 업소에서 카드를 사용한 증빙을 없애려 하고, 업주는 소득을 감추기 위해 암묵적 합의 아래 무지카드가 통용된다. 업소 주변 상인들은 업소에서 나온 무지카드를 유통시키면서 업소와 공생한다. 문제는 이 무지카드를 여성들에게도 현금 대신 사용하게 한다. 현금을 손에 쥘 수 없는 여성들은 외상값을 갚는 데 무지카드를 쓸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빚은 늘어간다. 무지카드는 업주가 여성들을 옭아매는 유력한 수단인 셈이다.

업소는 여성들이 성매매로 벌어들인 돈으로 영업수익을 보장받으면서, 세금을 많이 내는 지역사회의 영향력 있는 실세 행세를 하며 상권을 장악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세금만 징수할 뿐, 업소 안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와 착취 구조에는 관심조차 없다.

성착취 구조는 속박과 강압적 통제의 환경을 만들고, 여성에게 적응시켜 구조를 은폐한다. 업주와 성구매자는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을 파는 여성’을 재생산해내고, 속박과 강압적 통제의 환경을 통해 성매매 여성을 심리적·신체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기제가 선불금(속칭 ‘마이킹’)이다. 선불금은 계약금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긴급하게 목돈이 필요하거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업주에게 선불금을 받고, 이를 갚기 위해 성매매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선불금 이자(3~5부)에 방세, 영업에 필요한 각종 비용(홀복, 화장품 등)까지 감당하다 보면 힘들게 일을 하는데도 돈을 모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업소에서 제공하는 선불금은 불법행위(성매매) 동의 금액 같은 것으로, 여성들을 속박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다. 늘어나는 빚에 사채업자들의 협박을 받으면서, 여성들끼리 혹은 가족까지 얽힌 연대 맞보증의 늪에서 여성은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자살을 피할 길이 없지는 않다. 업소와 연결된 주변의 사채업자들은 빚이 늘어나는 여성의 선불금을 업소에 대신 갚아준다. 그러나 그다음은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사채업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여성들을 일본 등 국외로 인신매매한다.

지역 유지 노릇하는 인간 사냥꾼들
포항 유흥업소에서 지난해 죽은 여성이 죽기 전 쓴 메모지에는 ‘살고 싶다’고 적혀 있었으며, 지난 3월에 자살한 여성도 업주에게서 선불금을 당장 갚으라는 협박과 심한 모욕, 그리고 절망감을 표현한 간단한 유서를 남겼다. 이들의 유서는 그저 한 장의 종이일 뿐, 현실에서는 여전히 합법을 가장한 일상화된 성매매가 여성 인권 착취를 당연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 하나 죽은 게 대수냐”, “우리까지 죽어야 하느냐”며 국민을 향해 협박하는 포항의 업주들에 의해 여성들은 더 큰 위협과 공포, 무력함과 절망감, 두려움을 느끼며 어느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게 된다. 또한 “유흥업소 아가씨들만 죽으면 매스컴에서 왜 유독 주목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찰 태도는 검경도 버젓이 드나드는 유흥업소, 권력자들의 성접대와 향응 제공처이자 여성이 불가항력적으로 소비되는 그 공간에서 수많은 여성이 성산업의 착취 구조에 시달리다 희생되는 데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있다.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속박 환경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인의 문제, 개인의 책임이 아님에도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여성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이들을 그 속박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폭력의 일부다. 직접적 착취 구조에 더해진 보이지 않는 수많은 환경이 좌절을 경험하게 하고 거대한 성산업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지만,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내려면 폭력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믿음과 안전에 대한 확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비상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흥업소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을 통해 불법행위와 착취행위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

폭력적으로 죽음을 부르는 성착취 구조 속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소비하는 한국의 접대 행태, 타인의 인권을 파괴하는데도 거래행위로 정당화되는 성구매, 단속해야 할 행정 당국의 묵인과 방조, 수익을 내기 위한 업주들의 폭력과 억압 등이 성산업 현장에서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여성들은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폭력에 대한 대항권이나 선택권을 저당 잡히고 산다는 사회적 낙인과 편견까지 더해져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있는 법부터 지켜라, 그것이 시작이다
성착취 구조의 간고함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성산업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성산업 현장의 폭력성과 반인권적 행태를 고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녀들이 죽기 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다양한 비상구를 만들고, 그 문을 쉽게 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해자가 엄정하게 처벌받을 수 있게 성매매방지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글 · 정미례
여성학자(실천여성학 전공),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각주>
(1)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이 글에서는 ‘성매매방지법’이라고 쓴다.
(2) 2010년 7월부터 2011년 3월24일까지 경북 포항 지역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한 사건이다. 지난 3월 30일 전국 60여 개 시민·사회·여성단체가 ‘포항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촉구하며 공동행동, 토론회 및 관련 기관 면담, 피해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