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압력에 굴종한 프랑스 사법부

레바논인 압달라, 억울한 36년 옥살이

2020-07-31     피에르 카를르 | 영화감독

유럽인권조약은 ‘석방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징역형 선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이야말로 한 세기의 1/3 이상 프랑스에 수감 중인 레바논인 공산주의 운동가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의 운명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압달라는 그와 무관한 테러행위로 이토록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2020년 3월 말 코로나19가 감옥까지 확산될 위기에 처하자 니콜 벨루베 프랑스 법무장관은 교도소 과밀화 해소를 위해 이후 2개월간 1만3,500명의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석방 대상자는 대부분 형이 얼마 남지 않은 수감자들이었다. 법무장관이 이런 결정을 내릴 당시 프랑스 남서부 오트 피레네(Hautes-Pyrénées)주의 란느므장(Lannemezan) 구치소에는 레바논 국적의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가 수감 중이었다. 압달라는 1978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에 저항 운동을 펼친 공산주의 활동가다. 그는 1999년 10월 27일 최소 의무복역 기간을 마쳤다. 사실상 지난 세기에 자유인이 된 셈이다.(1) 

2020년은 압달라가 수감 된 지 36년째 되는 해다. 지난 50년간 프랑스의 정치범 중 ‘최장기 수감자’이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이처럼 긴 투옥 기간은 이례적이다.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는 고의적 살인 공모죄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체포와 유죄판결의 근거로 제시된 범죄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일부 급진적 성향의 투쟁에 연대의식을 표출했으며 공산주의 무력저항운동 단체인 ‘레바논 무장 혁명파(LARF)’에 대한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LARF는 1982년 주 프랑스 미국 대사관 무관 찰스 레이와 역시 프랑스에 주재 중이던 이스라엘 비밀정보국 모사드(Mossad) 소속 공무원 야콥 바르시멘토프를 암살한 단체다.

1982년 이스라엘은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축복 속에 레바논을 침공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무너뜨리고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지도자인 야세르 아라파트를 사살 또는 생포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LARF의 시각에서 보면 이 두 사람의 암살은 군사공격에 맞선 무력저항 행위였다. 압달라는 1987년 중죄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레바논 국민은, 당신들이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반제국주의적 행위에 동참할 영광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들의 법원은 내게 그 책임을 물으니, 적어도 형리(刑吏)들의 사악한 합법성에 맞서 그런 행위들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라고 일갈했다. 

 

수염 기른 중동 남자는 다 비슷하다?

살인 공모죄로 36년을 감옥에서 보낸 압달라의 석방이 2020년에도 무산된 다른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교도관들은 평소 그의 수감 태도에 존경을 표했고 구치소장은 그와 중동 정세를 즐겨 논했다. 묘하게도 오트 피레네주의 소도시 타르브(Tarbes)의 공산주의 운동조직이 압달라의 장기수감을 주목하게 만든 이들은 바로 압달라가 수감 중인 구치소의 교도관 노동조합 소속 교도관들이었다. 이들은 타르브의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왜 그의 석방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압달라가 이번 석방에서 제외된 이유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4월 8일 법무장관이 하원에서 한 연설에서 밝혀졌다. 이날 벨루베 장관은 이번 조기 석방에서 “형사범, 가정폭력범, 테러범”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압달라가 가담혐의를 받은 무력단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테러로 간주하는 행위(무차별 테러, 거리 폭탄테러, 민간인 살해)를 저지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법부는 압달라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왜일까? 명확한 범죄행위 때문이긴 하다. 그런데 LARF가 저지른 범죄가 아닌 것이 문제다. 

압달라가 중죄법원에 출두하기 몇 달 전인 1987년 2월 말, 파리는 연이은 테러로 슬픔에 잠겼다. 수도권 교외급행 철도(RER), 우체국, 타티(Tati) 상점에서 벌어진 테러로 14명이 목숨을 잃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주요 언론(일간지 <르몽드>, <리베라시옹>, <르피가로>, 라디오 방송국 <RTL>, <프랑스 앵테르>, <Europe 1>, 그리고 주요 텔레비전 방송국)이 당시 내무부의 샤를 파스퀴아 장관과 로베르 팡드로 차관의 발언들을 보도했다.(2) 

두 사람 모두 LARF와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의 형제들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몇 년 후 파스퀴아 장관과 팡드로 차관은 당시 폭탄을 터트린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언론에 압달라를 먹잇감으로 던져 줬다고 시인했다. 로베르 팡드로 차관은 “초기에 수집된 증언들에 근거해 LARF라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라며 “테러 발생지에서 압달라 형제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프랑스인들이 있었지만 사실 이들 눈에 수염을 기른 중동 남성은 다 비슷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압달라가 관련된 가능성을 내세우는 게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그때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3)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공산주의자들, ‘중동의 넬슨 만델라’로 존경 

영향력 있는 기자들(당시 <르몽드>의 탐사보도 기자였던 에드위 플레넬, 조르주 마리옹과 텔레비전 방송국 <TF1>의 샤를 빌뇌브 등)이 ‘압달라 관련설’의 신빙성을 더했다. 이들은 압달라의 형제들이 프랑스 정부가 압달라를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986년 테러의 진범은 이란의 사주를 받은 레바논 헤즈볼라 단원들이었다. 당시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100만 명 사망)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프랑스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LARF가 군인들을 암살한 것은 사실이나,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가짜뉴스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사법부는 압달라와 LARF가 벌인 행위를 ‘테러’로 단정 지었다. 한번 찍힌 낙인은 시간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2월 25일, 브뤼노 포셰 주 레바논 프랑스 대사는 베이루트에서 10여 명의 기자단을 오찬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한 프랑스 특파원이 포셰 대사에게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포셰 대사는 이 사건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베이루트에서는 매년 7월 14일이면 수백 명이 미 대사관 앞에 모여 압달라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기 때문이다. 조건부 석방을 요청한 첫 항소가 기각당한 2004년 이후, 압달라의 석방 요청은 7번이나 기각당했다. 예상대로 포셰 대사는 “압달라 사건은 사법부 소관으로 외교부나 당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시절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이 압달라의 석방을 무산시키기 위해 직접 개입한 사실을 알고 있다. 

파비앙 루셀 프랑스 공산당(PCF) 사무총장은 지난 4월 14일 법무장관 앞으로 서신을 보냈다. 루셀 사무총장은 이 서신에서 “그가 프랑스에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며 압달라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압달라가 저지른 죄의 중함을 고려하면 종신형이 합당하며 그의 석방이 국제사회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우려할 근거가 충분하다”(4)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노르(Nord)주가 지역구인 하원의원으로 프랑스 공산당의 수장인 루셀 사무총장은 자신의 지역구가 속해있는 프랑스 북부 폐광촌 지역의 공산주의자 사이에서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가 종종 ‘중동의 넬슨 만델라’로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파드칼레(Pas-de-Calais)주의 그르네(Grenay)시와 칼론리쿠아르(Calonne-Ricouard)시는 압달라에게 명예시민 지위를 부여했다. 지난 5월 6일, 벨루베 법무장관은 “개별 사건에 대해 담당 검사들에게 그 어떤 지시라도 내리거나 재판 절차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법무부 권한 밖의 일이다.(…) 형기 조정은 형 집행 재판부의 고유 권한으로 해당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검토한 후 최종 결정권을 갖는 사안”이라고 루셀 사무총장에게 회신했다. 

하지만 이 회신을 보내기 6주 전,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요청으로 니스 공항에서 체포했던 이란인 기술자 잘랄 로홀라네자드를 석방했다. 프랑스 사법부는 로홀라네자드를 이란에 인도하는 것에 동의했다. 로홀라네자드는 당시 미국 송환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란이 자국에 수감 중인 프랑스 연구원 롤랑 마르샬과 맞교환 석방을 제안하자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3월 20일 로홀라네자드는 테헤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롤랑 마르샬은 프랑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프랑스 당국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압달라의 석방을 거부하고 있다.

압달라의 경우 소송 내내 미국의 개입이 끊이지 않았다. 2012년 11월 21일, 형 집행 법원(TAP: Tribunal de l’application des peines)이 압달라의 석방 판결을 내리자 찰스 리브킨 주 프랑스 미국 대사는 “유죄가 선고된 테러리스트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의 조건부 석방을 허가한 법원의 결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프랑스 당국이 항소해서 이 결정이 번복되길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검찰 측은 항소를 했다. 2013년 1월 10일, 항소법원도 압달라의 석방을 허가했다. 프랑스 국적도 아니고 체류증도 없는 압달라는 프랑스를 떠나기만 하면 됐다. 압달라의 변호사 자크 베르게스는 “재판부의 결정에 만족한다. 나는 프랑스 사법부가 더 이상 미국의 창녀가 되지 말 것을 요구했었다”며 반색했다. 압달라의 석방은 ‘추방명령서 서명’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었다.

 

압달라 석방을 반대한 미국  

하지만 항소법원의 선고 다음날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항소)법원의 결정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미국은 그가 석방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에 대해 프랑스 정부와 논의를 계속하겠다.”(5)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로랑 파비위스 외교장관을 비롯한 프랑스 정부에서 미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주리라 기대했다. 

당시 국무장관 사임을 준비 중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항소법원의 결정 이후 “프랑스 정부가 항소법원의 1월 10일 자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더라도 이 결정의 합법성을 반박할 다른 근거를 찾아내길 바란다”(6)라는 전갈을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전했다. 프랑스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크리스티안 토비라 법무장관의 공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시점은, 토비라 장관이 외무장관을 비롯한 모든 행정부 각료가 검찰청 사법관에 지시를 내리는 것을 금하는 회람을 돌린 지 몇 달 후였다.

 

특별사면권을 쥔 마크롱의 선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달라의 석방을 무산시키기 위해 미국과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은 누구의 힘을 빌었을까? 3일 뒤 이 질문의 답이 밝혀졌다. 2013년 1월 14일,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이 압달라의 추방명령서 서명을 거부했다. 토비라 법무장관은 자신이 2012년 9월에 돌린 회람을 무시하고 행정부 각료가 이처럼 사법부에 개입하자 당혹스러워하며 대통령의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은 이 안건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내무장관에게 넘겼다. 이렇게 압달라는 감옥에 남게 됐다. 레바논에서는 압달라의 가족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베이루트 공항으로 출발한 상태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8년 2월 1일 튀니지 최초 공식 방문에서 압달라 사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았다. 그가 수도 튀니스의 회교도 거주지역을 방문했을 때 튀니지 운동가들이 “압달라를 석방하라!”라고 박자를 맞춰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를 촬영한 휴대폰 사진들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참모진을 돌아보는 장면이 담겨있다. 프랑스 대표단을 수행하던 튀니지 정부 관계자가 압달라가 누구인지 설명해주기 전까지 마크롱 대통령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2016년 9월 7일 파기원(Cour de Cassation 하급심 판결에 대해 파기 권한을 가진 프랑스 최고상소법원-역주)의 최종판결로 인해 압달라의 석방이 기각되자, 프랑스 행정부의 편파성과 차별대우에 환멸을 느낀 압달라는 변호사에게 본인의 석방을 위한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 특별사면은 오직 프랑스 대통령만이 결정권을 쥔 사안이다. 

 

 

글·피에르 카를르 Pierre Carles 
영화 <Who wants George Ibrahim Abdallah in jail? 누가 조르주 이브라힘 압달라가 감옥에 있길 원하는가?>(제작 중) 감독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Alain Gresh & Marina da Silva, ‘Un prisonnier politique expiatoire 속죄중인 정치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5월호. 
(2) Pierre Carles & Pierre Rimbert, ‘Des plumes empoisonnées 독이 묻은 펜’, <마니에르 드 부아>, n° 172, ‘Fake News, une fausse épidémie 가짜 뉴스, 가짜 전염병’, 2020년 8-9월호.
(3) Pierre Favier & Michel Martin-Roland, 『La décennie Mitterrand 미테랑 집권 10년』, Seuil, 1996. 
(4) 찰스 리브킨 주 프랑스 미국대사가 발표한 성명, 2012년 11월 21일.
(5) <로이터 통신> 속보, 2013년 1월 12일.
(6) 2013년 6월 11일자 이메일, ‘Hillary Clinton archive’, https://wikileak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