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이기주의’에 맞선 미국의 포퓰리스트

과학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

2020-07-31     토마스 프랭크 | 기자 겸 역사가

흔히 ‘포퓰리스트’는 과학, 특히 의학에 적대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최근 보건위기에서 보인 경솔한 태도 때문에 이런 인식이 강화됐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은 정반대다. 과거 미국과 캐나다의 포퓰리스트들은 전문지식과 의료서비스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반면, 의사집단은 부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올해 미국이 팬데믹 사태 속에서 큰 피해를 입은 원인으로, 과학자들의 권위를 무시한 미국 국민의 고집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미주리 주 오자르크에 있는 식당의 수영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 물놀이를 하면서 감염병 확진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근거 없는 음모 이론을 공공연히 전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건강·안전 수칙을 대놓고 무시하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람도 있다.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 가운데 길 한 가운데서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전문가들의 권장 사항을 죄다 무시하는 그들의 대통령은 또 어떤가?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으면서 책임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허송세월한 그는 주방 벽과 화장실 변기에 소독제를 바르면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소위 ‘무식한’ 사람들과 ‘계몽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무자비한 싸움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정치 생활의 핵심이었다.(1) 대부분의 경우 민주당원들, 즉 ‘진보주의자들’이 우리의 현실과 가장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노벨상 수상자 및 기타 과학 분야의 수상자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마치 종교를 신봉하듯 주의 깊게 경청한다. 반면 공화당이 사는 세상은 우화나 전설처럼 진실이 통용되지 않는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스스로 사상적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논평가 집단은 이 갈등을 틈타 양 진영을 더 갈라놓는다. “똑똑한 건 우리야! 저쪽 진영 사람들은 멍청한 놈들이라고!” 이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양 진영 사이의 대결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존경스러운 미국인들은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과학기술에 대한 영원한 자신감을 선포한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는 정부를 향해 마치 무릎을 꿇고 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처럼, 전문가의 조언에 경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위 여론 주도층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할 이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전문가들의 소견과 반대로 행동하는 그들은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신앙의 지지자들, 즉 ‘포퓰리스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동료들을 무지막지하게 깨물어버린다. 그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2) 서적에 기록된 문자 정보보다 자신의 직감에 의존하고, 건강전문가의 권고를 무시하고 조롱하며, ‘대중의 지혜’를 격찬하는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다. 단언컨대, 포퓰리즘은 과학의 적이다. 그것은 합리적인 사고와 일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포퓰리즘은 악을 확산시키는 공범자다. 그들은 악, 그 자체를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권에 대항하는 포퓰리스트들

미국의 지식인 계층이 구사하는 멋진 논법이 있다. “포퓰리즘은 매력적인 남성이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같다. 기분만 좋게 만드는 것이다. 의학은 옳지만, 포퓰리즘은 틀리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에 힘입어 의학을 찬양하면서 포퓰리즘을 경멸하는 주장이 신문 기사와 사설에 단골로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미국이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독보적인 우매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국의 보건 시스템이다. 

‘공중보건’이라는 이상을 짓밟는 미국 보건 시스템은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일마저 소수를 위한 사치품으로 전환시킨다. 경제적 여건이 나쁜 사람이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가도 보험이 없으면 치료가 거부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어렵게 치료를 시작한다고 해도, 환자가 실직상태에 접어들자마자 치료가 중단돼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감염병 사태로 인해 최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만일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된다면, 그들은 당연히 비싼 가격에 약을 팔 것이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장본인은 ‘조직화 된 의사집단’이다. 그들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전문지식이 내뿜는 아우라 속에서 특권을 지키기 위해 애써 왔다. 반면 포퓰리스트 계층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개혁의 열기를 통해 다수의 대중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애써 왔다. 즉 진지하고 지적이며 탁월한 우리들의 전문가, 학자, 그리고 ‘싱크탱크’는 완전히 잘못된 길로 가고 말았다. 그들은 ‘공중보건은 영영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이라는 과학적 소견을 밝혔고, 우리는 그들의 말을 맹신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것은 전문가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포퓰리즘밖에 없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용어를 정의해 보자. ‘포퓰리스트’라는 용어는 1891년 미국 캔자스 주에 살던 젊은 농민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금본위제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에서부터 철도 국유화를 포함한 독점과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이 운동은 다양한 요구조건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0년 안에 포퓰리스트 정당이 해산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이후 계속됐다.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이상주의의 흔적을 미국 사회당의 강령에서, 그리고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뉴딜 정책에서, 그리고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버니 샌더스의 선거유세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포퓰리스트라는 용어를 고안한 미국인들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국 포퓰리스트들의 부상과 소멸’은 오랫동안 낭만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역사가들이 선호하는 주제였고, 이 주제에 관한 책도 다수 출간됐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실을 강조한다. 이 당시의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과학이나 교육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기술, 지식, 교육에 대해 논할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격찬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과학이나 교육에 찬사를 늘어놓았던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공권력의 개입 등을 통해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함으로써, 눈부신 발전을 거둔 19세기 말 과학계의 흐름과 완벽하게 발을 맞추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포퓰리스트들은 기득권층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다. 포퓰리스트의 적대자 중에는 기성질서에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들의 눈에 모든 특권은 미심쩍어 보였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권위에 힘입어 명성을 누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캔자스 주 루카스 시에 위치한 유명한 에덴동산에서 이들의 관점을 생생하게 찾아볼 수 있다. 1910년대에 지어진 이 조각상 공원은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이론을 대중화하려는 첫 번째 시도 중 하나다. 동산 내 주요 관광지 중 한 곳에는 ‘처형된 노동자’라는 끔찍한 이름이 붙어있다. 포퓰리스트들이 기념하려 했던 이 자리는 지역 사회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들 즉 은행가, 변호사, 의사 및 성직자 등이 노동자를 잔인하게 고문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장소였던 것이다.

요컨대, 최초의 포퓰리스트들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여겼고, 민주주의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시민들을 섬기고 시민들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믿었다. 19세기 후반의 포퓰리스트들은 보건정책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의료계는 오늘날처럼 비싸고 복잡한 관료주의적 거대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의약품 가격이 치솟았다. 그러자 농부, 노동조합 및 자선단체 등이 함께 구상한 온갖 대안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꽃을 피웠다. 그들은 노동자 계층에 적합한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상부상조했다.

 

‘협동보건 시스템’이 남긴 의미

이들 ‘신 포퓰리스트’들이 성취한 업적 중 내가 아주 찬탄해 마지않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오클라호마 주의 작은 도시, 엘크 시티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포퓰리스트의 주장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바로 이곳에 1929년 이른바 ‘협동보건 시스템’이 구축됐다. 농부와 그의 가족이 매년 소액의 연회비를 지불하는 대가로, 현대적 장비를 갖춘 인근 병원과 의사를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도시 주민 전원은 협동조합의 구성원이었고, 그 가운데 특히 농부들은 자체적으로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조합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관리했다.

농민노조 조직 파머스 유니온 지부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이 시스템은 의사 마이클 샤디드의 작품이었다. 특히 파머스 유니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에 포퓰리스트적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머스 유니온은 1890년대에 사라진 포퓰리스트 운동의 직·간접적인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디드 박사의 개인사를 보면 더욱 감명이 깊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마이클 샤디드는 189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는 의사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이후 줄곧 무일푼의 농부들을 치료하는 가난한 의사 역할을 담당했다. 그가 사회당에 가입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독특한 정치적 신념을 견지했으며, 입만 살아있는 돌팔이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료행위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충실한 의사였다. 샤디드는 동료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약탈적 요소가 있다고 비난함으로써 동료들과 자신을 구별 지었다. 그것도 오클라호마 주에서도 가뜩이나 작은 도시에서 말이다. 그는 애써 기존의 모델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미국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중의 의사’(3)로 여겼다. 

건강관리에 고가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 이 두 가지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전쟁 중에도 평화가 있고, 위기 속에서도 풍요가 있으며, 폭풍 속에서도 소강상태가 있듯이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일찍 아프고, 더 오래 아프며 치료가 가장 집중적으로 필요할 때, 가장 적게 치료를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기 때문에 가난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아프다.”(4)

 

가난한 의사 샤디드의 고독한 투쟁

또 다른 저술에서 샤디드는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국민’을 대표해 “국가를 독재와 혼돈의 길로 이끄는 특권층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기자 제임스 로티는 1939년에 출판된 책에서 이 용어들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평했다. “이 단순한 슬로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슬로건보다 더 포퓰리스트적이다. 이 슬로건은 오클라호마 주의 농민들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농민들이 겪고 있는 심경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5)

샤디드가 거론했던 ‘특권층’은 의사들의 전문조직인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를 겨냥하는 것이다. 협회의 회원들은 겁도 없이 협동병원을 개설한 샤디드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고, 가장 악독한 전략을 펼쳤다. 신 포퓰리스트 개혁가의 프로젝트는 회원들의 눈에 ‘비도덕적’인 것으로 비쳤다. 샤디드가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문가들에게 운영비 관리를 맡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사협회는 샤디드의 의사 면허증을 압수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그는 지부에서 퇴출당했다. 이 일로 그는 배상책임 보험 대상자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협회는 또한 협동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려는 의사들을 붙들어두며 샤디드를 방해했다. 

현대의 논평자들은 이 사건을 두고 한 명의 포퓰리스트 샤디드가 과학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고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전쟁은 오히려 ‘과학이 포퓰리즘에 대해 일으킨 전쟁’이라고 명명해야 마땅하다. 이 전쟁은 지난 몇 년 동안 더욱 격렬해졌다. 미국의사협회는 치료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기 위한 제안을 차례로 거부하고 폐기해버렸다. 대표적인 예로 협회의 회원들은 특정 자선단체를 자극하기 위해 낙농업 제품의 불매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자선단체가 소위 ‘의사의 경제학’ 분야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는데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폴 스타는 엘크 시티와 비슷한 보건 협동조합이 태동한 워싱턴에서 미국의사협회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미국의사협회는 운동에 가담하는 의사들에게 보복하겠다고 협박하고, 그들이 상담을 받거나 동료의 추천을 받지 못하게 방해했으며 그들에게 일체의 특권(의사에게 부여된 권리, 즉 건강시설 인력으로서의 신분에 근거해 환자를 진단 및 치료하기 위해 병원 및 의료센터에 입원시킬 권리)을 허용하지 않도록 컬럼비아 구의 모든 병원을 설득했다.”(6)

결국, 이로 인해 미국의사협회는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하지만 소송으로 협회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협회는 좋은 대우만 해주면 만족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협회장은 1938년 보건 시스템 개혁을 위한 연방 조사가 실시되자 극렬하게 항의했다. 비전문가들이 다짜고짜 접골 치료제를 내놓으라고 하고, 전문가들에게 찾아가 처방전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자 협회장은 사회 전체의 위계질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외쳤다. “이런 의술 행위는 과학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경제적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트루먼의 개혁에 반발한 의사협회 

의사들이 자신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직업윤리를 내팽개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1948년에 대통령직에 재선된 해리 트루먼은,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보다 훨씬 더 포퓰리스트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보편적 건강보험에 대한 두 번째 기본계획을 구상해둔 그는 취임 몇 개월 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트루먼은 의사들의 착취를 고발하며 국민이 그동안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약을 구매해왔다고 강조했다. 1949년 그는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날 미국의 의료서비스 비용은 빈곤층은 물론 최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 계층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쌉니다.”(7) 

미국의사협회의 반박은 즉각적이었다. 협회는 이 계획을 “퇴폐한 국가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비난받아 마땅한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공공 행정 관리자들의 거대한 관료조직과 직원, 회계사 및 시민위원회’가 의사와 고학력 출신의 의료계 대표 위에 군림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돌적인 트루먼 대통령을 막기로 결정한 미국의사협회는 즉각 부유한 회원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했다. 협회는 긴급 모금한 기부금으로 특별한 전리품을 챙겼다. 

즉,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이기도 한 캘리포니아 소재의 기구, ‘캠페인즈 인크’사의 서비스를 확보한 것이다. 이 기구는 미국의사협회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기구는 미국 전 지역에 브로셔와 편지, 만화가 그려진 전단지를 대량 살포했다. 이 전단지에 담긴 내용은 ‘의사들의 단결’이 ‘개인의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안타깝게도 이 고전적인 방법으로 인해 미국에서 보편적인 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가 로버트 맥메스가 상기시켜주듯 과학과 포퓰리즘 사이의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나라는 캐나다였다.(8) 캐나다 대평원의 여러 지방에서는 1890년대 미국의 포퓰리즘 운동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수십 년 동안 울려 퍼졌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급진적 농민 정당, 협동조합당(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이 등장해 포퓰리즘의 전통을 탁월하게 구현해냈다. 1944년 이 정당은 사스캐추완 주 지방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북미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로서 새로운 역사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쇄신을 거듭한 협동조합당은 1960년 사스캐추완 주 전체에 보편적 보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에 나섰다. 공약이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면서 협동조합당은 다시 한번 승리를 거뒀다. 2년 후인 1962년 7월 사스캐추완 주의 수도 리자이나 시에 위치한 주정부는 보편적 보건시스템 ‘메디케어(Medicare)’를 실시할 준비를 마쳤다. 단일한 공공시스템을 통해서 의료비용을 지불하는 이 제도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캐나다에서 실시된 적이 없었다.

 

“의사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제사장”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조직화된 과학’이 칼을 뽑아 들었다.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되던 날 사스캐추완 주의 모든 의사가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 실제 파업에 동참한 의사의 수는 1,000명을 넘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0세기 철학자와 소설가이자 개인주의의 사도이며 미국에서 특히 유명한 여성의 이름을 빌려 표현한다면 ‘아인 랜드의 순간’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9)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켜보던 재력과 지성을 겸비한 최상위 1% 계층은 하층민들에게 자기 분수에 만족하고, 전문가를 존경하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벌어진 과학과 포퓰리즘 사이의 대결은 소수 전문가 집단과 사스캐추완 주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이 대치 국면에서 미국의사협회가 알고 있는 여러 작전이 은밀하게 전개됐다. 사스캐추완 주의 의사집단도 미국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회원들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해 형성한 자금을 선전자금으로 조달했다. 사스캐추완 주 상공 회의소뿐 아니라 기타 전문협회가 후원금을 보탰다. 

 

‘아둔한 자들’이 일으킨 소동?

지방언론은 의사집단과 한패가 돼 마치 공산주의가 도래하고 질병이 창궐하기라도 할 듯 우려의 메시지를 확산시켰다. 극우 운동가들도 전대미문의 괴상한 단체에 가담해 그들만의 축제에 동참했다. ‘우리의 의사들을 지키자(Keep Our Doctors, KOD)’라는 단체는 공개집회, 마녀사냥 및 인종차별적 중상 등의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공공의료 시스템을 거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 포퓰리스트 정부는 파업에 가담한 의사를 대체하기 위해 외국인 의사를 초빙하겠다고 발표하며 응수했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전문가들이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의사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치료방법을 선택하고 가격을 결정하며, 가까운 동료들에게만 이 정보를 알린다. 협동조합당 프로젝트 역시 샤디드 박사나 트루먼 대통령의 계획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권위 중 일부를 시민들에게 양도하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로부터 명령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사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제사장과 같은 존재다.”

영국인 의사이자 정치가인 테일러 경은 이 논쟁을 중재하기 위해 임상 용어를 활용해 상황을 요약했다. 그는 1974년의 미국의사협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협회는 모든 형태의 의료보장에 대해서 히스테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사스캐추완 주의 의사들과 공공의 여론에 이 히스테리를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에 성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10) 적어도 테일러 경의 진단만큼은 정확했다. “어떤 전문가단체가 캐나다 평원 전역에 의도적으로 히스테리를 전파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적 공포’가 촉발됐다. ‘민주주의적 공포’는 성난 민중들이 사회 고위층의 특권을 위협한다고 여길 때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히스테리의 배후에는 비슷한 배경이 깔려있다. 우선 민주주의가 마치 폭도들이 주도하는 정치체제인 것처럼 묘사된다. 하층민들이 경제·외교 정책 또는 때로는 의학 분야 등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슈에 주제넘게 끼어든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논조의 이야기를 여러 미디어가 똘똘 뭉쳐서 계속 내뱉는다. 

 

의사 파업에 맞선 사스캐추완 주의 승리  

1896년 촉발된 ‘민주주의적 공포’ 뒤에는 이 모든 배경이 그대로 깔려있었다. 언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미국의 지배층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깃발 아래 행진하는 ‘피에 굶주린’ 프롤레타리아들로부터 위협을 받았다고 느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제닝스 브라이언은 급진적 성향의 정치가로 인식돼 포퓰리스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상아탑 꼭대기에서 이를 내려다본 19세기 말 고학력자들은 미국 동부지역의 여러 신문 지면을 빌어 “포퓰리즘 운동은 정신 이상자와 아둔한 자들이 일으킨 소동에 불과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민주주의적 공포’는 간혹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1962년에 사스캐추완 주를 시끄럽게 한 1%의 파업은 그렇지 못했다. 이 운동은 실패했지만, 파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민주주의적 공포는 초기 단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하지만 전문가 진영에서 하는 격렬한 연설이 선을 넘자, 의사집단의 대의명분에 대한 공감은 사라졌다. 공중파 방송에 등장한 한 목사는 화가 난 목소리로 피를 흘리면서까지 투쟁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11) 파업은 한 달 후 끝났다. 5년 뒤 캐나다 전역은 사스캐추완 주의 보건 시스템을 모방해 재정비됐다. 현재 메디케어는 캐나다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성취 중 하나다.

앞에서 설명한 개혁 운동 중 과학적 연구나 발견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운동은 없었다. 이들 신 포퓰리스트 사상가들은 현대의학의 위대함에 경탄해마지 않는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의료서비스가 취약계층에게도 제대로 제공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펼쳤던 대결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인 두 가지 가치, 즉 특권 대 평등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정부와 사스캐추완 주 의사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핵심은 의료보장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파업이 시작된 지 몇 주 지났을 무렵, 토론토의 주요 일간지 <글로브 앤 메일>은 이렇게 말했다. “전문분야와 무관하게, 전문가는 이제 대중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는 전문 의료지식을 갖추지 않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고귀한 명분을 부여한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춘 미국의 논설위원 조지 소콜스키는 사스캐추완 주의 파업 주동자들을 옹호하며 이들의 투쟁을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의 시대에 거스르는 전문가집단의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뼛속까지 반(反)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지구 전체가 평등주의라는 물결에 잠기고 있는데 의사집단만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위해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대해 서로 존중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토는 이렇게 변했다. ‘나는 너만큼 가치 있는 존재다!’” 소콜스키는 이런 사상이 거짓이며 악의적이라고 생각하며 분노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말했다. “점점 다양해지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문가들뿐이다.”

소콜스키는 극우파이자 열렬한 매카시주의자였다. 한편 사스캐추완 주 협동조합당은 좌파의 농민과 노동자 정당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마치 대반전의 드라마처럼 모든 것이 역전됐다. 트루먼에 투자했던 민주당은 이제 부유하며 고학력을 자랑하는 행정 관리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민주당은 월가의 젊은 천재들에게 부지런히 경제적 도움을 줬다. 그리고 자유무역을 찬양하는 경제학자들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한다. 그리고 대표자들이 나서서 보건 시스템 개혁을 제안해놓고도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끼리 시스템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론이 분노로 들끓어 오르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포퓰리즘, 미국민을 구원하는 치료제   

치료의 사슬에 존재하는 힘 역시 계속 진화했다. 미국의사협회는 더 이상 건강전문가의 강력한 방벽이 아니다. 병원그룹, 제약회사 및 보험회사 등의 새로운 의료주체들은 예전보다 훨씬 큰 권력과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의료비 보장제도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쟁에서 그들의 입장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혁신’해야 한다고 여기는 대상, 즉 ‘권위를 갖춘 전문가들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심오한 변화는 좌파의 사상에서 일어났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선포한 이들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이 민주주의의 유산을 단호하게 폐기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검열의 미덕을 상기시켜주는 목소리를 들었고(12) 국민을 대신해 자본가들이 지도자를 선택했던 과거의 날들을 그리워한다는 말까지 듣고 말았다. 

그들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국민이 전문가의 권위를 무시한다며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그리고 지구 온난화 문제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 사태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무력감... 이 모든 것들이 다 이 어리석은 민주주의에서 비롯된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미국 헌법의 서문의 첫 번째 단어, 즉 ‘우리, 미합중국 국민’의 잘못인 것이다.

정치환경은 완전히 역전됐다. 하지만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전에 우파진영의 촌스러운 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전문가들은 최근에는 좌파진영의 차디찬 도덕적 순결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권위에 대해 무례한 도전을 받을 때마다 전문가들은 격분했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주제는 사실 권위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특권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몸을 굽혀 그들의 발 앞에 절하거나 그들이 내건 명분 아래 모여 함께 행진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현대판 ‘공산당 정치국’(역주- Politburo, 옛 소련의 공산당 집행위원회)이 지닌 이기적인 환상을 배제한다면 오래된 정치방정식은 ‘좌파의 자아도취’라는 베일 뒤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조직화된 과학’과 개인적 특권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보편적 의료보장’이라는 이상을 집중사격하고 있다. 반면 자타가 공인하는 포퓰리스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을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다. 포퓰리즘은 인류를 괴롭히는 악을 이길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하는 치료제 역할은 할 수 있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저널리스트 겸 역사가. 잡지 <The Baffler> 공동 창간자 겸 편집자. 문화와 이념의 역사가로서 미국 선거 정치와 선동, 대중문화, 주류 저널리즘, 경제 등에서의 경향을 분석한다. 저서에 『The People, No : A Brief History of Anti-Populism』(2020), 『Listen, Liberal』(2016), 『The Wrecking Crew: How Conservatives Rule』(2008) 등이 있다.

번역·이근혁
번역위원


(1) Chris Mooney, 『The Republican War on Science』, 뉴욕, Basic Books, 2005.
(2) Scott Lehigh, ‘Time to end populism’s war on expertise‘, <The Boston Globe>, 2020년 4월 7일.
(3) Michael A. Shadid, 『A Doctor for the People : The Autobiography of the Founder of America’s First Co-operative Hospital』, 오클라호마 주 엘크 시티, Vanguard Press, 1939.
(4) Michael A. Shadid, 『Doctors of Today and Tomorrow』, The Cooperative League of the USA, 뉴욕, 1947.
(5) James Rorty, 『American Medicine Mobilizes』, W.W. Norton, 뉴욕, 1939.
(6) Paul Starr, 『The Social Transformation of American Medicine. The Rise of a Sovereign Profession and the Making of a Vast Industry』, Basic Books, 2017 (재판). 
(7) Harry Truman, ‘Special message to the Congress on the nation’s health needs’, 1949년 4월 22일. 
(8) Robert C. McMath, Jr., ‘Populism in two countries : Agrarian protest in the Great Plains and Prairie provinces’, 『Agricultural History』, vol. 69, n° 4, 1995년 가을호.
(9) François Flahault, ‘Ni dieu, ni maître, ni impôt 신도 없고, 주인도 없고, 세금도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8월호. 
(10) Malcolm G. Taylor와 Allan Maslove, 『Health Insurance and Canadian Public Policy : The Seven Decisions That Created the Health Insurance System and Their Outcomes』,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몬트리올, 2009년.
(11) Gregory P. Marchildon (dir.), 『Making Medicare : New Perspectives on the History of Medicare in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12.
(12) Jack Goldsmith, Andrew Keane Woods, 「Internet speech will never go back to normal」, <The Atlantic>, 보스턴, 2020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