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대는 중국의 비단길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2020-07-31     마르틴 뷜라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가만히 보면 중국 지도부의 홍보 감각이 제법 뛰어난 듯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온 전설의 비단길을 바탕으로 21세기식 ‘뉴 실크로드’를 구상해 한층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로와 철로, 원전을 아우르는 이 ‘뉴 실크로드’에서 마르코 폴로 시대의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

 

2,000여 년 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두 차례 파견됐던 중국 한나라의 외교특사 장건은 동방에서 서역으로 펼쳐지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비단길을 개척했다. 2013년 9월 7일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학을 찾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먼저 중국의 고대사를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낙타에 매달린 방울 소리가 들려오고, 사막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두 눈에 선하다”(1)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문구를 동원했다. 이로써 그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계획이 탄생했다. ‘하나의 띠, 하나의 길’이란 뜻의 ‘일대일로’는 이후 ‘벨트 앤 로드 이니셔티브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전략’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지만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아 ‘뉴 실크로드 전략’이라고도 불렸다.

2013년만 해도 시 주석의 연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 내에서조차 ‘일대일로’는 말만 무성했다. 그러나 8개월 후인 2014년 5월 8일 중국의 신화통신 보도를 통해 시진핑의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진핑이 그린 ‘뉴 실크로드’란 중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각각 러시아와 이란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육로와 해상수송로,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극지방 항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땅과 바다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라는 방향성만은 확실하다. 

2014년 11월 중국 정부는 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곧이어 역내·역외 국가 모두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이 설립됐다. 이를 “미국에서 중국으로 주도권이 이전”(2)하는 시초로 본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를 필두로 한 서구권 국가 대다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설립에 동참했다. 창립 당시 57개국에 불과했던 회원국 수는 오늘날 102개국으로 확대됐으며,(3) 중국 자본이 약 1/3에 달하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자본도 총 20%에 이르렀다. 중국 주도의 이 기구 내에서 거부권을 가진 국가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뉴 실크로드 전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이는 실상 중국의 순수한 대외사업이었다. 또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과 함께 ‘다자주의’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한다고 했지만 실상 양자관계의 결과물에 불과했다. ‘뉴 실크로드’는 고대의 실크로드 범위를 넘어서서 아프리카로까지 대거 확대됐다. 지정학적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중국인들에게 지리나 역사 차원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국몽’에 대한 환상이 배어있는 이 사업계획에서는 최상급 수식어가 난무한다. 전체 예산이 1조 달러, 나아가 2조 달러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2017년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개최된 1차 BRI 포럼에서도 10억 단위의 투자금액이 난무했다. 마치 다시금 세계무대를 장악한 중화 문명으로의 회귀를 보는 듯했다. 

 

인프라 구축 앞세우는 중국

중국의 뉴 실크로드 전략이 막연한 공약인지 확실한 계획인지 헷갈릴 수 있겠지만, 이를 겉만 요란한 빈 수레로 보면 곤란하다. 다수의 건설 프로젝트가 이미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도로망 확충과 철도 연결 사업(지부티-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자카르타-인도네시아 반둥, 인도 연결망 현대화 작업 등), 심해항 구축 사업(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개공업단지조성사업(카자흐스탄) 등은 물론 전기(파키스탄 석탄 및 수력발전소) 및 통신설비 구축 작업까지 진행 중이다. 게다가 이 뉴 실크로드 전략에는 중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세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려 하는지가 담겨있다. 

중국이 이렇게 인프라 개발을 우선시하는 것은 중국 개발 모델 자체가 인프라 구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중국의 중소도시에서는 “길을 닦아야 부강해진다”는 식의 말이 많았는데 그래야 이 외딴 지역에서 사람이든 물자든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 농촌 지역의 낙후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택한 인프라 중심 개발 모델은 주변국 및 수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에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에서도 전기, 운송 및 통신, 도심 및 물류 개발, 환경보호, 농촌 지역 개발 및 인프라 구축 등 6개 투자 부문을 제정했다. 

물론 뉴 실크로드 전략의 중상주의 측면은 명백하다. 중국의 대형 기업들에게 즉각적인 판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설, 토목, 철강 분야의 기업들은 심각한 공급과잉에 처해 있었고, 철도부문 관련 기업이나 에너지 설비 관련 업체 등 내수시장의 포화에 대비해야 하는 기업들도 많았다. 따라서 뉴 실크로드 전략으로 해외시장이 개척되면 서구권에서 점차 그 사용이 줄고 있는 일용 소비재의 판로 역시 쉽게 해결된다. 

또한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면 중국은 그만큼 안정적인 수출입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수출입은 80%가 바닷길을 통해 이뤄진다. 해상 대부분은 미국과 그 동맹국(일본, 한국, 대만 등)이 통제하는 상황이다. 이에 2000년대 초 이후 중국 지도부는 ‘혹여 바닷길이 막히는 건 아닐까, 나아가 미국의 봉쇄조치가 내려지진 않을까’늘 불안해했다. 그러니 이들이 다른 무역 통로를 개척하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의 목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은 2차 대전 이후 설립된 IMF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틈타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6~2030년 아시아 지역 인프라 수요는 약 22조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4) 이 중 이 기관이 부담할 수 있는 규모는 약 절반에 불과한데, 그나마 신규 회원국의 긴축정책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1997~1998년 경제위기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아시아 지역 국가에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으로 사회적 동요가 일어났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소요사태로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경제 전체가 사지로 내몰렸다. 

내정간섭을 배제하는 중국이 그때처럼 과도한 개입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이득에 대한 보장은 확실하게 이뤄진다. 공공자본과 민간자본, 중국자본과 해외자본, 즉 서구권 국가들 및 수혜국 자본을 적당히 섞어서 기금을 조성한 중국은 자금 동원 면에서까지 다자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위험 부담을 나누고 중국의 자금력을 우려하는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IMF 및 (일본이 의장국으로 있는) 아시아개발은행의 일방주의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은 (2018년에 발표된)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35개 프로젝트 중 일부를 BRI 전략과 연계하는 대범함도 보였는데, 해당 프로젝트 중 절반 이상은 중국 이외 다른 투자 기관(민간은행이나 정부의 기금)을 통해 출자가 이뤄졌다.(5) 또한 인도와 중국 간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인도가 아시아개발은행의 주요 차관국이었던 만큼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중국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기관으로 봐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은행이 자금을 대고 추진하는 계획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BRI 전략과 관련한 전체 프로젝트 가운데에서는 약 10~15%만이 아시아개발은행과 연계돼 있다. 2017년만 해도 중국건설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은행 등의 시중은행이 조성한 자금이 2,250억 달러, 국영 계열인 중국개발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조성한 자금이 2,000억 달러였다.(6) 직접 투자는 말할 것도 없다. 

BRI 전략에서 중국은 아시아를 3개의 경제 회랑으로 분류했다. 그 중 발전소, 통신망, 과다르 항 등으로 가장 많은 진전이 이뤄진 곳은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이다.(7) 라오스-태국 회랑에는 항만 시설이 구축될 예정이나 방글라데시와 인도, 미얀마를 잇는 마지막 회랑은 구체화 되기가 좀 더 힘들 전망이다.

물론 뉴 실크로드는 유럽으로까지 이어진다. 2014년 3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독일 뒤스부르크역 방문은 꽤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뒤스부르크역은 중국의 산업중심지 충칭에서 출발한 화물 열차가 1만1,000km를 주파해 도착하는 종점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후 2011년 17대에 불과했던 열차 수가 5,000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 화물 수송량의 1.5%에 불과하며 철도가 해상 컨테이너 수송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항만 설비에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연합의 구조조정 및 긴축정책 상황을 이용해 그리스 피레우스 항을 접수한다. 스페인 발렌시아와 빌바오 항만 컨테이너 기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슬로베니아 코페르 항과 연결되는) 트리에스테 항, 제노바 항, 팔레르모 항과의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23일 주세페 콩테 당시 이탈리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BRI 전략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물론 중국의 BRI 전략에 동참한 유럽 국가가 이탈리아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그리스, 포르투갈, 라트비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등이 중국과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그러나 G7 회원국 중에서는 이탈리아가 – 트럼프의 화를 돋우며 - 중국의 행보에 발을 맞춘 최초의 국가가 됐다. 

 

비단길인가, 가시밭길인가

그러나 실상 중국이 가는 길은 ‘비단길’보다는 ‘가시밭길’에 더 가깝다. 부패문제는 물론 분별없는 차관에 대한 비판도 거세고, 사업계획 역시 무모할 정도로 방대할 뿐 아니라 수익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혜국인 개도국을 부채의 덫에 빠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다만 부채의 덫과 관련한 지적에 대해 경제학자 청 이핑은 “우리는 도로도 닦아주고 공항도 세워주고 연결망도 만들어준다. 그런데 해당 국가에 도움 될 만한 지속적 인프라는 구축하지도 않은 채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와 남미 국가를 부채로 몰고 간 서구권에서 왜 우리한테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스리랑카가 갚을 수 없는 규모의 항만 시설을 구축하며 이 국가를 빚더미로 몰고 간 것은 서구권 국가들이 아니다. 다름 아닌 중국의 은행과 공기업들이었다. 2018년 스리랑카는 못 갚은 빚 대신 중국의 다국적 기업 자오상쥐 그룹에 무려 ‘99년 임차’로 항만 운영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 같은 주권 침탈은 역내 국가들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신임 총리로 교체된 말레이시아에서는 140억 달러 규모의 철도 연결 사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도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사업을 중단했으며, 방글라데시 역시 심해항 중 한 곳의 건설 사업자로 중국이 아닌 일본을 택했다.(8) 믿었던 파키스탄마저 임란 칸 신임 총리가 사업 축소를 요구했다. 따라서 2018년은 중국에게 꽤나 혹독한 한 해였을 것이다. 그동안 잘만 진행해오던 원조 외교가 연이어 삐거덕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중국은 아니다. 토머스 모어 연구소의 에마뉘엘 뒤부아 드 프리스크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현 상황에 딱히 문제는 없다고 보면서도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9) 이에 지난해 4월 25~27일 베이징에서 열린 2차 BRI 포럼에서도 시 주석은 35개 회원국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이 같은 우려를 잠재우려는 노력을 보였다. BRI는 “중국의 이익만을 위한 폐쇄적인 사업체가 아니며 (...) 다자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10) 

그리고 이 같은 다자주의야말로 BRI 로드 전략하에서 이뤄지는 사업들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이어 세 가지 의무사항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수준의 부채 유지, 녹색성장 추구, 투명성 확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검증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에 전반적인 사업 축소를 요구했고, 비용 일부를 중국이 함께 분담해야 사업 허가를 내주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공사대금이 축소된 채로 사업이 재개됐고, 방글라데시에서는 2순위 심해항이 중국 기업에게 배정됐다.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업 규모가 축소됐다. 

유럽연합도 뉴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한 확실한 대체 해법을 마련(11)하기 위해 2019년 3월 미 연방청인 해외민간투자공사와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국은 이에 동요하지 않는 듯하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시진핑, 『일대일로 구상 L’Initiative La ceinture et la route 』, Éditions en langues étrangères (ELE), 베이징, 2019.
(2) ‘China’s Marshall Plan’,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4년 11월 11일.
(3)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2020년 2월 28일, aiib.org
(4) ‘Meeting Asia’s infrastructure needs’,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 Manila, 2017년 2월.
(5) ‘2018 AIIB annual report and financials’, BAII, Pekin, 2019.
(6) Jean-Francois Dufour, 『China Corp. 2025. Dans les coulisses du capitalisme a la chinoise』, Maxima, Paris, 2019.
(7) 크리스토프 자프를로, ‘파키스탄, 군부의 영원한 귀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8년 9월호.
(8) 사뮈엘 베르테, ‘벵골 만, 정체성 분쟁 일으키는 실크로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9년 12월호.
(9) 2019년 4월 27일 파리에서 <라크루아 La Croix>지와 진행한 인터뷰. 에마뉘엘 뒤부아 드 프리스크는 소피 부아소 뒤 로셰Sophie Boisseau du Rocher와 함께 공저 『La Chine e(s)t le monde』(Odile Jacob, Paris, 2019)를 펴냈다.
(10) 2019년 4월 26일 베이징 연설로, 중국 외무부 홈페이지(www.fmprc.gov.cn)에서 조회할 수 있다.
(11) <South China Morning Post>, Hongkong, 2019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