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가수로 산다는 것

“무기를 내려놔요. 나는 유혈사태가 싫어요….”

2020-07-31     델마 카테비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란 특파원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 이란. 끊임없이 검열당해야 하는 이란 아티스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자기 검열하며 기관과 타협을 하든지,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로 망명하든지. 정부로부터 외설적이라고 비난받고 콘서트 금지를 당한 힙합 음악은 폐쇄적인 정치에 신물 난 청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스파한 도시에 있는 차하르 바그 길에 활기가 넘친다. 길거리 스피커에서 서양의 리듬과 동양의 선율이 혼합된 페르시아 최신 히트곡이 흘러나온다. 유명 가수 구구슈(본명은 ‘파에그에 아타신’)의 노래도 나온다. 행인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노래에서 금기에 맞서는 고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란 방송에서 이런 음악을 틀면 경찰 기동대까지 출동할 수 있다. 이란에서 대중가요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금지됐다. 최고 권력자인 호메이니가 공공영역에서 모든 형태의 음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1990년대에 정부 내부에서 개혁의 물결이 일면서, 대중가요 금지가 풀리고 때로는 장려되기도 했다. 대중가요의 지위는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대중가수들은 정부 당국과 애매하고 역설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중음악뿐 아니라 전통적인 이란 음악도 정부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곧 80세가 되는 모함마드 레자 사자리안은 청년들을 포함한 모든 이란인에게 ‘진정한 클래식 가수’로 칭송받는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유네스코 등으로부터 상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이란 공식 매체에서 그의 노래는 금지곡이다. 이전에 그는 시적인 은유로 정부를 비판했다. 2009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당선에 항의하며 녹색운동 시위가 벌어졌는데, 정부는 시위자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다. 사자리안의 죄는 그의 노래 가사에 정부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1) 

“무기를 내려놔요. 나는 유혈사태가 싫어요….” 며칠 후 그는 즉시 이란 국영방송 ‘이슬람 공화국 라디오-텔레비전(IRIB)’에서 퇴출당했다. 이 방송국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직속 기관이다. 이 결정에 모함마드 레자 사자리안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라디오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방송을 거부한 것은 자신이라고 선언했다. 

사자리안과 같이 용기를 내지 못했던 다른 가수들은 자신의 곡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 않고 감성적인 색채를 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란은 엄격한 법 때문에 연애도 힘든데 일상에서 시(詩)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다. 가수들은 13~14세기 위대한 시인 사디와 하페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렇지만 그들의 가사(‘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 역시 문화부와 ‘에르샤드(이란어로 ‘방침’을 의미함)’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란과 이란 외부에 이슬람 가치를 전파하는 이 기관은 가수들의 앨범 내용부터 무대 출연 여부까지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메네 유스프자데 연구원은 에르샤드와 그 ‘음악’ 부서에서 적용하는 평가 기준을 연구했다.(2) 

이 기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악과 가사는 정부와 종교기관을 비판하면 안 되며 무신론, 기쁨, 방탕함을 장려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국가적 일체감을 강화하고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새겨야 한다.” 많은 아티스트는 이 지시사항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검열한다. 실제로 가수들이 ‘귀중한’ 허가를 받기 위해 이 기관과 함께 가사의 모든 단어를 일일이 확인한다. 어떤 단어는 끈질기게 요구하고, 어떤 단어는 포기하는 협상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샤(과거 이란의 왕) 시대부터 존재해온 이러한 검열이 가수들의 소명을 좌절시킬 수는 없었다. 이란에서는 음악이 시만큼 중요하다. 2014년 11월 16일 수만 명이 테헤란로에 모여서 모르테자 파샤에이의 장례 행렬을 따랐다. 모르테자 파샤에이는 페르시아 ‘팝의 황제’로 가수이자 작곡가로 30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떠나지 말 것을 약속해. 나에게 사랑은 한마음으로 가는 길인걸. 네가 떠나면 난 죽을 거야. 마지막이야….” 군중은 그의 히트곡 후렴을 계속해서 불렀다. 사람들이 너무 빽빽해서 모르테자 파샤에이의 묘지 안장 행사가 연기될 정도였다. 마슈하드는 음악 규제가 엄격한 종교 대도시다. 이 도시에서 팝 황제의 사망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모이자 경찰이 투입됐다.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잃은 슬픔은 대중을 결집했다. 그날 거리를 메운 많은 이들은 장례식을 정치변화 촉구에 대한 의지표현의 기회로 여겼다.

 

뇌물로 사들인 약간의 자유

아무리 음악계에 새로운 인물이 쏟아져도, 구구슈 같은 유명한 팝가수들이 망명을 통해 이란을 떠난다. 이슬람 혁명 이후 초기부터 이들 중 대부분은 소위 ‘테헤란젤레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정착했다. 그때부터 가수 유출 현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란 음악을 꾸준히 방송하는 인터넷 라디오 채널이 개설됐는데, 이는 이란 외부에서 ‘e-로산제레시 팝(로스앤젤레스 팝)’이라고 불리는 페르시아 음악이 출현하는 계기가 됐다. 2004년에 만들어진 라디오 자반은 이런 채널 중 가장 유명한 채널로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란에 남아 있는 가수들에게도 망명한 가수들에게도, 인터넷 라디오는 북아메리카뿐 아니라 유럽까지 대대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방송할 기회였다. 인터넷 라디오인 라디오 자반, 비아2, 라디오 파르다는 당연히 페르시아 팝은 물론이고 더 고전적인 가수 노래도 방송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이란 정부는 이란에 남아있는 가수들에게 이 매체에 “협력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북아메리카로 망명한 가수들과 함께 일할 권리 역시 허가하지 않았다. 2013년 5명의 아티스트가 체포됐다. 미국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채널과 위성TV(채널1, 날베키, 이란 TV 네트워크)와 협업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테헤란의 풍기문란 단속 경찰은 이 매체가 이란을 상대로 “문화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체포를 정당화했다.

소루쉬 카리미는 고전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가수이자 작곡가, 기타리스트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훈련을 받아온 그는 대중음악계에서 ‘비주류’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조금 느슨해진 음악계를 보며 기뻐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한 말에는 뼈가 있었다. “진정한 재능인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의 눈에는 부정한 돈이 음악계를 망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5년 전만 해도 아티스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송을 위해 에르샤드의 허가를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돈으로 해결되죠.” 

이슬람 공화국이 확립한 시스템의 속박을 받는 국가에서 뇌물은 사실 얼마간의 자유와 특혜를 얻는 방법이었다. 지난해 10월 고위직에 있는 종교인들조차도 부정부패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했다.(3) 에르샤드 검열 과정이 있는 음악계가 부정부패 의혹을 피하지 못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대스타들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했다. 야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야세르 바크티아리는 이런 방식으로 에르샤드의 허가를 최초로 얻어낸 힙합 뮤지션이다. 그는 이란 최고의 인기 래퍼로 타이틀곡 일부를 허가받았다. 그 자체로 큰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란에서 콘서트를 할 수 없다. 여전히 이란에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신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런던에서 콘서트를 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처지를 자신의 곡 ‘보그즈 야니(비애)’를 통해 표현했다. “비애, 그것은 비밀스러운 필연. 콘서트에 갈 수는 있지만 오로지 관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비애, 그것은 이란 무대에 설 수 없는 채 늙어가는 것. 더 높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아첨’하면 돼.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긍지를 주었지. (…) 마침내 너도 에맘 공항(테헤란에 있는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 가네. (…) 한 손에는 여권, 다른 한 손에는 가방. 이 순간 누가 너를 이해할까? 아무도 이해 못 해. 비애, 그것은 네가 네 나라를 떠나는 순간이지.” 

이란 사회는 경제적 어려움과 국제적 제재에 사로잡혀 있고, 소외된 국민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주기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비판하는 랩이 주목받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정부는 랩을 ‘외설적인’ 음악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이란 내 대다수의 힙합 뮤지션은 ‘지르자민(지하)’에서 음악을 해야 했다. 등장 자체가 불법인 상황에서 에르샤드의 허가를 원하는 가수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래퍼 소루슈 라슈카리는 2011년 런던으로 망명했다. 그는 히치카스(‘아무도 아닌’이란 의미)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거친 목소리를 가진 이 가수의 일대기는 지난 10여 년간 이란에서 일어난 변화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그는 변화를 원하는 바람을 음악에 실었다. ‘예 루즈 후브 미아드(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죠)’라는 곡에서 그는 말한다. “피는 혈관에 머물고 하늘과 아스팔트를 알지 못하지. 더 이상 솟구치지도 않고, 더 이상 굳지도 않네. 더 이상 엄마가 자식 무덤에 갈 수가 없네.” 

그러나 1년 후 테헤란의 사회 현실을 묘사한 이 노래 때문에 그는 이란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당했다. 그리고 이란을 떠나야 했다. 오늘날 이란 청년 대부분은 여전히 이 랩의 가사를 외우고 있다. “오늘날에는 돈이 우선, 신은 그 다음이야. 국민은 천하고 지배자는 위대하지. (…) 도처에 깔린 허영심을 보지 않으려면 장님이 돼야 해. 길에서 빈궁과 타락을 보지 않는 너, 신이여 좀 일어나. 쓰레기(히치카스 자신)가 너한테 할 말 있대…” 

 

회유를 거부하는 랩의 ‘대부’

지난 12월, 비싼 물가와 부정부패에 맞서 일어난 11월 대중 시위에 답해 히치카스는 충격적인 곡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발표했다. 이 곡은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시위와 강경 진압을 떠올리게 하는 ‘다스타쇼 모슈 카르데(그는 주먹을 쥐었다네)’는 정부의 폭력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증언하고 있다. 배경 음악을 최소화하고 절제하면서 내뱉는 매혹적인 주문 안에 히치카스는 랩 이상의 것을 말한다. 강력한 그의 음색에 억눌렸던 분노가 묻어난다. 

“그들은 시민을 원하지 않아. 그들은 노예를 원하지. 울음소리가 감방에서 새어 나오네. 그(시위자)는 수십 년간의 살인과 약탈을 끝내길 원했지. 그들 때문에 그는 몇 년간 울었고, 최루가스로 더 눈물 흘릴 일만 남았어. 그는 외치지. 누가 이 죄를 잊으리오? 숨이 입술에 겨우 붙어있는 가운데 그는 외친다네….” 

곡의 끝부분에서 시위자들의 비통하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을 쏘고 있어!” “경찰이 공격해 온다. 부끄럽지도 않나 봐!” 사격 소리에 군데군데 목소리가 끊긴다. “두려워하지 마!” 한 남자의 목소리가 안심시키려고 애쓴다. 그리고 조용해진다. 

자신의 나라인 이란에서 떠난 페르시아 랩의 ‘대부’는 정부의 정치적 개방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청년들의 대변인 역할을 기꺼이 담당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숙적 즉, 이슬람국가 외국인에게 회유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며 ‘테헤란젤레스’에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정착한 다른 이란 아티스트들은 이런 통찰력이 없었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알우라에서 열린 탄투라 축제에서 ‘e-로산제레시 팝’의 스타들을 초대했다. 70대인 위대한 가수 에비, 뜨고 있는 가수 아라슈 라바프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이란의 ‘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앞에서 공연한 일은 이란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들은 일말의 애국심도 없는 건가?” 이란 정부를 향한 증오가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이스라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많은 이란 네티즌들이 항의했다.  

 

 

글·델마 카테비 Thelma Kateb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란 특파원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Shervin Ahmadi, ‘A Gorgan, un Iran quotidien 경제 제재 속 이란의 일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7월호. 
(2) ‘Veiled voices : Music and censorship in post-revolutionary Iran’, <The Oxford Handbook of Music Censorship>, 2015년 1월. 
(3) ‘Iran's conservatives are saying it: Corruption is 'systemic'’, <Middle East Eye>, 런던, 2019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