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 슬로베니아, 시장경제로 가는 두 갈래 길

충격요법이냐 점진주의냐

2020-07-31     쥘리앙 베르쾨이 | 파리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교(INALCO) 부총장

공산주의 체제의 결별 30년, 일부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EU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한편 EU 측에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한다. 종종 모범사례로 언급되는 폴란드와 슬로베니아가 그간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기존 왕권과 새로운 종속관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지역 국가들의 모순과 경제적 선택을 파악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초래된 최근의 공중보건 위기를 제외하면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 평가 지수(PPP)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폴란드의 경우 1989년 대비 2.5배, 슬로베니아의 경우 1992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이어진 변화의 시기 EU는 이 국가들의 정치적 모델로서 그리고 경제적·법적 보호자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4년 EU 확대는 유럽 변두리 국가들이 생산체제 및 유로존의 중심으로 진입하는데 어떻게 기여했을까?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EC(유럽공동체)에 가입했을 때처럼 중동부유럽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의 EU 가입에 대해 긍정적일까?

 

‘어중간한 개혁’의 실패와 후유증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 이후 내려진 결정들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지적·사회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구소련의 국가수반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실패로 끝나면서 생겨났다.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는 공산권 국가 간의 경제협력 조직인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를 유지할 의지도 자원도 없었다(결국 1991년 소련 해체됨). 페레스트로이카의 경제적 실패는 국민들의 변화 욕구에 불을 지폈다. 어중간한 개혁으로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자 국민들의 반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재정 문제도 한몫했다. 루마니아를 제외한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높은 외채, 심지어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외채를 떠안게 됐다. 결국 달러 조달에 목말라 있던 이들 국가는 서유럽의 자금 제공처와 자문관의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스탠리 피셔, 루디거 돈부시, 제프리 삭스 등 당시 IMF와 경제단체에서 활동하던 경제 전문가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보인 구조조정정책에 주목했다. 중동부유럽 국가들이 시스템의 전면적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의 경험이 중동부유럽에서도 과연 통할까? 기본조건이 다르다면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표준 패키지의 핵심은 중동부유럽에도 똑같이 통할 것이다.”(1)

문제의 이 패키지는 크게 세 분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기업, 가격, 무역의 자유화이고, 두 번째는 국가재정, 통화, 환율의 안정화다. 그리고 세 번째는 민영화를 통한 정부 조직, 사회보장제도, 서비스의 개편이다. 관건은 이처럼 다양한 변화들을 추진하고 조합하는 방식이다. 이에 경제학자들은 개혁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추진을 주장하는 점진주의파와, 전 분야에서 최대한 신속히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는 급진주의파로 나뉘었다. 

 

폴란드의 충격요법, 슬로베니아의 점진주의

폴란드에서는 ‘충격요법’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다. ‘충격요법’은 1985년 볼리비아에서 도입됐던 경제정책의 명칭이다. 충격요법의 주창자들은 다양한 변화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면서 최대한 많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데, 국민들의 기존 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급진적 개혁을 향한 강한 열망이 사그라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변화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989년 9월~1991년 12월 그리고 1997~2000년까지 폴란드의 재무장관이었던 레세크 발체로비츠가 이 ‘정치적 황금기’를 이끈 인물이다.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던 폴란드에서는 급진성이 성공의 필수요소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개혁이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고 또 초기 정책의 즉각적인 수혜자들(새로운 주주, 상인, 기업가, 민간기업의 임금노동자 등)이 기득권층이 되고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개혁에 가속도가 붙었다.

반면 슬로베니아의 경우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1991년부터 점진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이런 경제정책은 구유고만의 독특한 제도적 유산에 기반하고 있는데 바로 노조활동을 중심으로 지방분권화가 돼 있고 시장경제와 혼합돼 있는 사회주의다. 또한 1980년대 초부터 진행 중이던 개혁도 함께 고려됐다. 슬로베니아는 공공분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덕분에 사회 주요 집단들 간 합의를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중동부유럽국가들 중에 이미 가장 높은 수준이던 삶의 질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실업률 증가를 막겠다는 의지와 국가자산을 외국기업에 헐값에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1989년 폴란드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점진적인 개혁 전략을 고수했다.(2) 1989년부터 IMF의 모범생이었던 폴란드는 1990년 중동부유럽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파리클럽’으로부터 외채의 절반을 탕감받을 수 있었다. 파리클럽은 공적채무 재조정을 위해 서구권 국가들이 결성한 채권국 모임이다. 1994년에는 민간채권자 모임인 런던클럽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부채를 탕감받았다. 슬로베니아도 폴란드만큼 기본조건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었지만, 서구권 국가들의 권고안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대신 안정성을 추구하는 신중한 사회경제 개혁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 슬로베니아의 경제성장률은 폴란드에 비해 다소 낮았지만(1993~1999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슬로베니아가 4.6%, 폴란드가 5.6%) 대신 실업률은 폴란드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 두 국가에서 개혁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들은 IMF가 내건 조건을 모두 준수하고 있지는 않았다. 국영기업의 대부분이 해외기업에 인수합병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노조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민영화 작업의 일부가 지연되고 있었고 이는 IMF와 EU 집행위의 질책으로 이어졌다. 폴란드의 경우 충격요법은 1990년에서 1991년까지 개혁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바탕으로 레세크 발체로비츠의 주도하에 추진됐다. 그러나 실업률 급증, 빈곤문제 악화, 인플레이션 증가, GDP 폭락은 당시 자유주의를 표방하던 집권당에 패배를 안겨줬다. 그리고 1993년 말에 치러진 총선에서 과거에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이제는 시장경제의 추종자가 된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1995~2005년 대통령 역임)가 이끄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민주좌파연합이 집권에 성공했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재무장관직에 새롭게 임명된 그르제고르슈 콜로드코가 폴란드식 점진적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는 IMF의 지원중단을 무릅쓰고 긴축정책을 잠시 미룬 채 일단 폴란드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주변 국가에 비해 폴란드 경제는 더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초기 10년 동안 개혁정책의 추진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IMF의 예산 및 세금 관련 권고안에 대해 계속 거부감을 표했다. 특히 실업급여제도의 개편과 부가가치세의 도입,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 등과 같은 일부 구조적 개혁의 경우에 그러했다. 슬로베니아의 은행들은 1990년 말에야 EU 집행위의 압력에 못 이겨 외국기업들에 문을 열었다. 1998년이 돼서도 슬로베니아의 민간분야는 GDP의 55%에 그쳐, 중동부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3)

 

EU의 지원, 2008년 금융위기

EU 가입을 희망하는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EU는 가입기준을 완화했다. EU가 그동안 축적한 모든 법체계를 의미하는 ‘아키 코뮈노테르(acquis communautaire)’를 가입후보국이 수용하면 지원금을 수령 할 수 있게 된다. 폴란드와 슬로베니아는 2004년 5월 1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발트 3국, 사이프러스, 몰타와 함께 EU에 가입했다. 가입이 승인되면 지원금 액수도 올랐다. 폴란드는 EU 가입 후 초반 3년 동안 GDP의 1.24%를, 2007~2013년에는 2%를 EU로부터 지원받아 총 667억 유로를 지급받았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평균소득이 높은 슬로베니아는 같은 기간 GDP의 1.2%인 40억 유로를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금이 컸음에도 1991~2003년 전체의 23%에 달하는 약 1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두 나라의 사회적 파장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 북부의 수많은 공업단지들이 용도가 변경되거나 전면폐쇄 됐다. 그 유명한 폴란드의 그단스크 조선소도 1만8,000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대폭 감소해, 현재는 2백명에 불과하다.

EU의 지원금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경제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폴란드와 슬로베니아는 명실공히 EU 확대를 상징하는 대표국가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외국자본의 유입을 막고자 설치한 빗장은 서구권 국가들의 압력에 무너졌고, 은행과 제조업은 외국기업들에 의해 잠식됐다. 그러던 중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폴란드보다 더 작고 개방적이었던 슬로베니아는 무역감소로 인한 타격을 훨씬 더 크게 받았다. 2008년 위기 전의 1인당 국민소득을 회복하는 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그래프 참조). 2007년에 유로존에 가입한 슬로베니아에는 위기탈출에 필요한 ‘자국통화’라는 무기가 없었다. 반면 폴란드는 그리스에 유로화 도입을 부추기고는 자국은 즈워티 통화를 유지했다. 그 덕분에 폴란드 경제는 유럽경제 침체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위 일화는 두 국가의 경제가 국제자본의 유입과 유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자금부족이었다. 서유럽 국가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 인프라와 생산설비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그동안 중동부유럽 국가들은 국내자본을 축적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들은 서유럽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하고 인건비를 낮은 수준으로 억제했다. 또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함으로써 투자를 하는 국가나, 받는 국가나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종국에는 해외자본을 놓고 중동부유럽 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졌다.(4) 

네덜란드의 정치학자인 안드레아스 놀케와 아르얀 블리겐하르트는 국가 생산시스템의 중심에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오자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의존적 시장경제가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5) 의사결정 과정에 현지 자회사는 거의 개입할 수 없었고, 기술이전은 미미했으며, 직원교육은 부족했고, 고부가가치 활동은 여전히 서구권 소재 본사에서만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부유럽 국가들의 경제개방은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구권 국가들에 대한 불만과 새롭게 형성된 의존관계 속에서 정치적 가부장주의, 외국인 혐오증, 유럽회의주의가 커졌다. 그리고 보수주의 정당들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사회정책을 펼치자 빈곤층은 자유주의 운동에 등을 돌렸다.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빈곤층을 겨냥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쌓았다. 2019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수당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이 바탕이 됐다. 사실 폴란드는 EU의 지원금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임에도(2014~2020년 860억 유로), EU가 표방하는 권력분산과 소수집단 보호의 원칙에 지속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지정학적 및 환경적 문제에 있어서도 EU보다는 미국에 가까운 입장을 취해왔다.

슬로베니아의 경우에도 미미하게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2018년 총선과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슬로베니아민주당(SDS)이 승리함으로써 입증됐다. 폴란드에서는 야네즈 얀사 전 총리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대통령에 버금가는 외국인 혐오 발언으로 표심을 자극해 소속정당을 승리로 이끌었고, 2020년 3월 다시 총리직에 임명돼 새롭게 구성된 연합우파 내각의 수장이 됐다. 

 

 

글·쥘리앙 베르쾨이 Julien Vercueil
프랑스 파리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교(INALCO)의 경제학과 교수 겸 부총장, <Revue de la régulation> 부편집장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Olivier Blanchard, Rudiger Dornbusch, Paul Krugman, Richard Layard, Lawrence Summers, Reform in Eastern Europe, Cambridge, Massachussets, 미국, MIT Press, 1991.
(2) From Yugoslavia to the European Union, 세계은행, Washington, 2004. 
(3) Nebojsa Vukadinovic, 중동부유럽 국가 현황표 중 ‘슬로베니아’ 부분, 국제연구센터(CERI) 조사, n°57, Paris, 1999년 11월.
(4) Ana Podvršič & Lukas Schmidt, ‘From crisis to crisis’, Behind the scenes of peripherisation and europeanisation of Slovenia, Revue de la régulation, Paris, n°24, 2018년 가을.
(5) Andreas Nölke, Arjan Vliegenthart, Enlarging the varieties of capitalism: the emergence of dependent market economies in east central Europe, World Politics, vol.61, n°4,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