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문가들, 게토 속 하청 노동자
프랑스에서 정보처리기사라고 하면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컴퓨터 모니터 너머의 실상은 인사과에서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노동권이 악화되는 현실이 숨어 있다.
“30년 전, 엔지니어 공부를 한다는 건 곧 국립 이공대나 광산학교, 토목학교 등 프랑스 국내 유수의 그랑제콜에 다닌다는 말이었다. 이제 엘리트는 회계결산 잘하는 법을 가르쳤던 국립행정학교(ENA)에서 배출된다.” 툴루즈 폴사바티에대학의 통계학자 조제프 생피에르의 푸념이다. 공학 엔지니어의 명성이 많이 깎인 지금, 그의 지위도 평범해졌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엔지니어’라는 통칭은 모든 직업을 망라한다. 1970년대, 1세대 컴퓨터와 함께 디지털화가 이뤄지면서 그와 더불어 IT 컨설팅 업체가 탄생했다. 아울러 프로그래머, 콘솔 오퍼레이터, 시스템 프로그래머, 시스템 애널리스트,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전문직이 나타났다.(1) 1980년대 들어서며 ‘돈이 곧 최고’라는 논리가 IT 업계를 장악하고, IT 컨설팅 업체는 기술과 재무 수익성을 연계한 IT 아웃소싱 업체로 변모한다.
20년 전 빛나던 명예는 어디 가고
1990년부터 산업계는 하청이 일반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됨에 따라 아웃소싱이 생겨났다. 회사 업무를 전문 용역 업체에 맡기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철칙으로 자리잡았고, 모니터 뒤 생산 주체로 전락한 정보처리기사는 IT 아웃소싱 업계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따라가야 했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점점 악화되고, 학교에서 듣던 화려한 미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에어버스의 하청업체인 ‘사프란 엔지니어링 서비스’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는 프랑수아(가명)는 “엔지니어 그랑제콜 준비반에서, 선생님들은 우리가 엘리트라고 거듭 말씀하셨다”며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의 동료이자 ‘노동자의 힘’(FO) 노조위원인 쥘리앙 르 파프도 “다들 우리가 간부급이 될 거라고 말했다”며 말을 잇는다. 학위가 정확히 뭐냐고 묻자, 그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무선항법공학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모두 30대인 그의 동료들은 ‘시스템디자인공학사’, ‘기계공학사’, ‘시스템공학사’ 등의 학위를 가졌다. “우리가 하는 일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게 IT 아웃소싱 업계의 특징이다. 마치 그 누구라도 내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뜻 같다. 직원 대 직원의 상호 교체가 가능한 거다.” 5년간의 고등교육 과정 동안 품어온 환상과는 사뭇 거리가 먼 현실이었다.
과거, 공학사들은 댐과 교량을 건설했다. 오늘날 컴퓨터 뒤에 앉게 된 공학사들은 늘 자초지종도 모른 채 다짜고짜 프로젝트를 개발한다. 프랑수아는 “IT 아웃소싱 업계에서 공학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타락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공학 엔지니어의 일은 수준 낮은 기술적 업무에 국한됐다. 대개 반복 업무가 주를 이루고, 서류 더미에 발목이 잡힌 채 동기부여를 못 느낀다. 아무런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르 파프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 경영 면에서도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매니저라는 사람은 식견이 있는 자로서 타의 모범이 돼야 하는데, 우리를 있는 대로 무시하고 윗사람한테는 벌벌 기는 게 현실이다. 자기 판단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로지 상부의 명령만 그대로 적용한다.”
아웃소싱 따른 저임과 고용 불안
이런 상황은 IT 아웃소싱 업계에 자리잡은 특이한 구조에서 비롯됐다. 이 분야의 기업인들은 가장 성공적인 탄력적 급여 형태를 만들어냈다. 정보처리기사를 클라이언트에게 ‘취직’시킨 것이다. 아웃소싱 업계 은어로 이는 ‘기술지원’이라 불린다. ‘실비정산’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이다. 정보통신 및 웹 분야의 노동자와 구직자가 모인 한 단체는 정보처리기사들의 상황이 악화된 것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IT 아웃소싱 업체들이 단순한 노동력 대여 업체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서비스 제공은 하지 않고 있다. 즉, 실제 전문업체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불법 인력 대여 및 기술지원 용역 불법 파견이라는 죄를 범하는 위장 하도급자다.”(2)
사실 인력 파견은 노동법으로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임시직에 한해서만 합법화돼 있다. 1999년 당시 마르틴 오브리 노동부 장관은 관보를 통해 “노동법 제125-1조가 파견 노동자에게 피해를 초래하거나 이들과 관련해 클라이언트사가 현행 법·규제·협정 사항의 적용을 교묘히 피하는 모든 영리적 인력 대여 행위를 불법 파견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3)
하지만 노동법의 이 기본적인 예외 규정 위에 돈이 더해졌다. 이로부터 특별한 예외적 테두리가 만들어짐에 따라 위계질서는 변질된다. 공학 석사들이 전문대 졸업의 영업직과 하나로 묶이게 됐고, 생산적 활동은 판매력 위주로 흘러간다. 영업이 서열상 우위를 차지하면 창의력은 수익성을 위해 2순위로 밀려난다.
불법 용역 만연, 돈 앞에 법은 멀다
영업의 논리는 ‘인적 자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이윤을 증대시킨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치 위주의 경영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을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이다. 경영진이 사람들을 ‘유휴’ 인력으로 만드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저들도 공학 엔지니어이고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식은 더 이상 쓸모없게 됐다.” ‘유휴’ 기간이란 두 파견 업무 사이에 활동하지 않고 쉬는 기간을 의미한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IT 아웃소싱 업체가 고안해낸 이 방식의 숨겨진 목적은 비활동 기간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노조화 비율이 2%밖에 되지 않는 이 분야에서 노동자 결집은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프랑스의 고용주협회인 메데프 소속의 디지털산업연합회에서 ‘시장 환경 부적응’을 해고 사유 조항에 신설하려는 만큼 상황은 더 시급하다.
글 · 니콜라 세네 Nicolas Séné
<사회혁명의 이면>(Derrière l’écran de la révolution sociale·Res Publica·2010)의 저자.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크리스티앙 브레, ‘인물 및 활동을 통해 본 프랑스 IT 아웃소싱 초기 40년의 역사’(L’histoire des quarante premières années des SSII en France à travers leurs hommes et leurs activités), <Entreprises et Histoire>, n°40, Paris, 2005.
(2) ‘IT 아웃소싱 업계의 정보처리기사들: 위기의 원인’(Informaticiens en SSII: les raisons du malaise), 2002년 2월 20일, www.munci.org.
(3) 1999년 3월 20일 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