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즈 칼럼] 아메리칸 드림, 당신의 꿈은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2020-08-10     서혜빈(르디플러)

 

 “상상해 보세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버지가 사라지고 없다면요. 상상해 보세요.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데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라 얘기하려 애쓰는 모습을요. 상상해 보세요. 매일 밤 자려고 노력하지만 잘 수 없기 때문에 몇 시간동안 뜬눈으로 지새우는 모습을요. 그런 걱정이 사람을 끝장내고 무너뜨리려 할 거예요.”

 
[르디플러 1기=서혜빈] 미국의 미등록 이민자들을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Lives undocumented>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1) 출생권을 인정하는 미국은 그곳에서 출생 후 국적만 유지한 채 미국을 떠난다해도 언제든 그들이 돌아오면 미국 시민으로 인정해준다. 반면 미국 외 국가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학교를 다니고 사회경제활동에 참여해온 이들은 미등록 이민자로 간주되어 수용소에 구금되거나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모든 삶이 미국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등록 이민자라 불리며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미국을 방문했던 2018년 여름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이 특히나 논란이 되고 있었던 해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 아래 비시민자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더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며 어떠한 형태의 불법 체류도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 정책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의 무관용적인 태도는 미등록 이민 가족을 향한 반인륜적인 행위로 이어졌다. 실제로 내가 미국에서 지낸 짧은 기간동안에도 뉴스에서는 이민관세국 ICE의 폭력적인 체포 과정을 고발하는 내용이 연일 이어졌고, 들이닥친 이민관세국에게 체포된 가족들이 각기 다른 수용소로 격리되어 뿔뿔이 흩어진 바람에 자녀가 어디로 갔는지 생사조차 알 수 없다며 호소하는 부모의 인터뷰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당시 청소년기 이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 온 미등록 이민자들을 드리머(Dreamer)라 칭하며, 그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프로그램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제도를 도입했다.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수혜자들은 3년간 합법적인 신분으로 일을 구할 수 있는 비자와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DACA 프로그램은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구제받기 위해 등록한 개인 정보가 그들을 추방하는 데 역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맥락이 비슷하다. 흔들리는 미국의 기강은 이민자 포화 시장 때문이며, 그렇게 미국에 남고 싶다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익에 도움이 될 조건을 채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러한 논리로 주요 공약인 반이민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선택적, 선별적 수용일까? 만약 그렇다면, DACA 제도의 도입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반겨야 할 제도다. 범죄 기록이 전무하고 미국 교육 기관을 수료한 이들이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3년의 유예 기간을 받는 이 제도는 불법 체류자들을 무분별한 수용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불법 체류 문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자만 40만 명에 달한 미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대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유학생들의 비자 발급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이 방침은 빗발치는 반발에 결국 철회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영주권을 소지하였더라도 잠재적 테러 위험이 있다고 간주된 특정 국가 출신이라면 입국을 막아버리고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자 발급까지 중단시켜버린 전적이 있다. 이쯤 되면 그의 속내가 보인다. 그저 미국의 모든 문제를 이방인들의 탓으로 돌려 그들을 몰아내는 혐오만이 흔들리는 미국 정세를 바로잡을 해결책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미국의 미등록 거주자 인구 수는 천만 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쫓아내는 반이민 정책이 자국민 일자리 고용 지수를 높이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약 65만 명의 DACA 수혜자들이 취업 자격을 얻어 일하고 있는데, DACA 제도의 폐지로 그들이 합법적인 근로 자격을 박탈당하면 그들을 고용한 업체들은 한 해에 34억 달러의 손실을 떠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246억 달러에 달하는 세입의 증발까지 더하면 한해 GDP만 약 430억 달러가 손실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ICE(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이민세관집행국)가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까지 생각하면 천만 명의 거주민을 쫓아내는 일이 결코 미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2)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멕시칸 이민자들을 겨냥해 "이 나라에 존재하는 나쁜 사람들(Bad Hombres)을 몰아내고, 우리의 국경을 보호할 것이다"고 말했다.3)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들이 자유와 기회를 좇아 국경을 넘어 미국을 향하고 있다. 독재와 전쟁, 가난과 굶주림,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삶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 등록되지 않은 이웃. 반기지 않는 그곳에서의 불확실한 매일, 그들은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내일을 살아낼 준비를 한다. 설령 그 꿈이 길몽 아닌 악몽일지라도.

 

 

참고문헌

1) Living Undocumented, Co-Directed by Aaron Saidman and Anna Chai, Netflix, 2019

2) 한면택, 「트럼프 DACA 추방유예 폐지로 연 500억달러 날린다」, 라디오코리아, 2017.05.01., 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248176

3) Lizzy Gurdus, 「Trump: ‘We have some bad hombres and we’re going to get them out’」, CNBC, 2016.10.19., https://www.cnbc.com/2016/10/19/trump-we-have-some-bad-hombres-and-were-going-to-get-them-ou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