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종이’를 보여주세요
프랑스 파리에서 교환학생 과정을 마친 나는, 운좋게 한 프랑스 기업에서 인턴 계약직(CDD)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6개월 인턴십이 끝나자 회사에서 나를 정규직(CDI)으로 채용하려 했다. 당분간 휴학하고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전에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바로 ‘종이’(Papier) 문제였다. 빨간색 바탕에 ‘이 사람은 합법적으로 솅겐 권역(1)에서 영주권을 획득한 유럽연합 역외 출신 외국인’이며 ‘프랑스 영토 안에서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규정하는 종이 말이다.
3개월에 걸쳐 취업허가 심사를 하는데, 그 기간만큼 임시체류증을 받아서 체류 시한을 연장해야 했다. 말 그대로 ‘임시’라서 신청이 반려되면 바로 짐을 싸야 했다. 그 3개월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파리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에서 쌓은 모든 것- 친구, 연인, 경력 등- 을 버리고 귀국해야 했다.
결국 일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종이가 허락한 시한에서 단 하루를 남기고 쫓기듯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밀려드는 미련과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뒤로한 채.
튀니지 난민의 종이
튀니지 벤 알리 정권과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아랍 혁명은 점점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리비아에서 서방의 개입과 함께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리아 등지에서 시위 열기는 뜨겁다. 그러나 ‘혁명의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특히 튀니지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해로를 통한 불법 이민을 통제해오던 정권이 무너지자, 치안 불안과 지지부진한 경제 재건, 나아지지 않는 임금 및 노동조건에 불만을 품어오던 튀니지 젊은이들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제국주의 시절 서방이 아프리카 노예들을 배에 짐짝처럼 실어 대서양을 건넌 것처럼, 그들은 자유와 생계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 난민이 되어, 좀더 과격하게 말하면 ‘화물’이 되어 지중해를 건넜다. 그 와중에 750여 명이 유럽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수장됐다.(2)
밀려드는 난민 행렬을 견딜 수 없던 이탈리아 당국은 6개월짜리 단기비자를 발급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종이를 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솅겐 협정국들은 시선이 곱지 않다. 당장 프랑스는 이탈리아 빈티밀과 니스를 연결하는 열차 노선을 폐쇄했고, 비자를 받은 튀니지인이라 해도 하루 31유로 이상을 소지한 사람만 통과시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솅겐 협정에서 ‘국내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 발동할 수 있는 30일간의 예외적 협정 중지를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논의하기로 한 상태이다.(3)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 파리에 도착한 난민들 앞에 있는 것은 차가운 현실뿐이다. 기찻길 옆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하며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우리는 자유와 돈을 벌기 위해 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종이는 목적을 이루기엔 충분치 않다. 6개월 뒤면 자동으로 법망 바깥으로 밀려나고, 취업허가증이 없는 상태에서 프랑스 땅에서 돈을 버는 순간 그들은 ‘범죄자’가 된다.
극우와 게토, 그리고 타자화
튀니지에선 혁명의 도화선이자 주체가 되었던 튀니지 젊은이들이, 유럽 땅에서는 ‘국내 안전에 위협이 되는’ 자로 전락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종이는 인간으로서 유럽에 살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한정짓는다. 그 기간 안에 갱신하지 못하면 추방된다. 종이는 아무런 고려 없이 한 인간을 구획화한다. 법적 ‘게토’를 만드는 것이다.
그 게토는 자국민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이주외국인(노동자)들은 게토를 분명히 인지하고 생존을 위해 금을 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자국민은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이주외국인을 보이지 않는 게토를 통해 자꾸만 타자화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제노포비아(Xenophobia·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이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다.
이중의 격리
한국의 경우,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에게 주어진 기한은 5년이다. 법 권력이 한시적으로 허용한 종이로 된 금 안의 삶이다. “예외 상태가 상례가 될 때 법적·정치적 체계는 죽음을 초래하는 치명적 기계로 변형된다”(4)고 아감벤이 설파했듯이, 일회용 삶의 유통기한이 끝나는, 즉 법의 예외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법 권력은 그들을 배제하는 폭력 장치로 변모한다. 바로 그 시점부터 인권의 보편성은 멈춘다. 행정 권력은 지울 수 없는 ‘인간’이라는 기의를 지우고 ‘불법체류자’라는 기표를 씌운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신성화한 폭력을 망설임 없이 휘두른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제도적 민주화 이후에도 너무 자주 봐야 했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그들을 보는 언론과 우리의 왜곡된 시선이다. 정부 주도의 다문화 캠페인으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 관심조차 잘못된 편견으로 기울어 있다. 한 예가 한국방송이 다문화 캠페인 홍보 목적으로 방영하는 <러브인아시아>라는 프로그램이다. 그 속에 드러나는 주체의 대상화와 마초이즘, 그리고 다문화와 오히려 반대되는 통합주의 성향은 편견을 공고화할 뿐이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 및 가혹한 노동조건, 그리고 생존의 실존적 조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땅에서 한국인이 돼야 하는 ‘외국인’이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시각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국가 권력과 국민 편견의 이중적 게토로 이주노동자를 주변화하고 있다.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들의 비중을 우리가 준 종이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종이와 그들의 종이
목숨을 담보로 취득한 단기비자를 들고 파리에 도착한 젊은 튀니지 난민들, 단속의 불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일해야 하는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프랑스 땅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지만 거부당해 도망쳐야만 했던 나. 이 세 가지는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는 그 반대였다. 정확히 말하면 귀국 후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내가 그들과 같은 처지였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라 같은 고통을 공유한 인간이었다. 동감이 이해의 첫걸음이고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시발점인 것이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되물어보자. 나를 규정하는 종이는 무엇인지, 타인을 규정하는 종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의 종이를 벗겼을 때 거리낌없이 눈을 마주칠 수 있는지.
“당신의 종이를 보여주세요.”
이제 우리의 종이를 그들에게 보여줄 차례이다.
<각주>
(1) 솅겐 협정은 가입국 안에서 여권과 세관의 검문을 폐지해 자유로운 여행을 보장한다. ‘솅겐 권역’은 인구 4억 명, 면적 450만㎢의 광활한 지역을 포함한다. 가입국 중 한 나라에 일단 입국하면 상호 통행 자유가 보장된다.
(2) ‘이탈리아 람페두사의 비극… 리비아 난민선 침몰 750명 실종’, <한겨레>, 2011년 4월 7일자.
(3) www.rfi.fr/europe/20110418-migrants-tunisiens-france-veut-pas-tensions-italie.
(4) 조르주 아감벤, <예외상태>,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