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부모들이 두려워하는 것

2020-08-31     리처드 카이저 l 대학 교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북부나 중서부 산업도시로 ‘대이동’을 하자 이 지역에서 ‘백인 유출’ 현상이 일어났다. 백인들은 지체없이 부동산을 매도하고자 했다. 흑인들 사이에 남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흑인들과 이웃이 되면 동네가 위험해지고 격이 떨어지며, 학교 수준도 낮아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1) 

오늘날 중산층 사이에서 또 다른 이유로 ‘백인 유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그들이 사는 상류층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안전한 지역, 명성과 수준이 높은 학교가 있어 누구나 탐내는 지역을 떠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그럼에도 백인 부모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답은 자녀가 능력주의 위계서열 사회의 정점에 머무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 2005년 애플 본사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첨단 하이테크 기업들이 밀집한 도시 쿠퍼티노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면서 처음으로 드러났다.(2)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 내 아시아계 미국인 가정 비율이 높은 교외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이 지역들은 높은 백인 중산층 인구 비율, 비싼 집값, 명성 있는 학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주로 중국계나 인도계) 2세대 비율이 과거에는 15%였는데 10년 만에 2배가 돼서 지금은 40%가 됐다. 

1984년 캘리포니아주 최고의 고등학교로 꼽히는 실리콘밸리의 미션 고등학교에서 백인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84%였다. 그러나 2010년에는 백인 학생 비율이 10%로 추락했고, 반면에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 비율이 83%로 급등했다.(3) 백인들은 자신들의 ‘성소’로 도망쳤다. 대개 그 성소란 아시아계 학생 비율이 낮은 가까운 지역의 공립학교였다. 많은 백인이 모순되는 감정을 표출했다.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최상급 고등학교로 가는 디딤돌 격인 초등학교 내에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불평했다. 학교 내 경쟁이 심해진 이유는 성적에 목숨 거는 아시아계 신입생들 때문이었다. 백인들은 자녀들을 캘리포니아 최고의 고등학교에서 빼냈다. 그리고 고등학교가 학생평가와 일류대학 합격률에 치중해있다고 비난했다. 중국계나 인도계 가정의 자녀들이 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자신이 국가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백인들은 이제 자신이 구별되는 존재라고 느낀다. 아시아계 학생들이 자유시간을 속성과외 프로그램에 쏟고 있는 동안 백인 자녀들은 축구나 수영을 한다. 2013년 캘리포니아 북부 학교의 교사 두 명은 이같이 결론을 내렸다. “아시아인다움이란 내면 깊이 완벽주의, 학업 성취를 위한 노력, 일류대학 합격이라는 가치가 박혀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백인답다는 것’은 불완전하고 나태하며, 학업 성취율이 낮다는 관념이 생겼다.”(4) 이를 증명하듯 자녀들을 경쟁이 덜한 공립학교에 입학시키는 백인 부모가 늘고 있다. 

 

흔들리는 ‘우수한 백인’의 위상

백인 중산층이 전략을 바꾼 이유가 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피부색과 연관된 특권을 누려왔다. 이 특권을 누리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그에 맞는 대안을 생각한 것이다. 미션 고등학교에서는 ‘선행 학습반’(대학 교육 입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속한 대부분의 학생이 소수의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반면 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그런데 이 선별적 교육 프로그램은 우수한 학생만 받을 수 있고, 이들만이 미국 내 최상위 대학 입학을 보장받을 수 있다. 

백인, 특히 백인 남성이 미국 자본주의 정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례로 구글 경영진 중 2/3가 백인 남성이다. 그러나 2019년 ‘하이테크’ 강자인 구글은 백인 여성보다 아시아계 여성을 더 많이 채용했다. 올해는 백인 남성보다 아시아계 남성을 더 많이 채용했다.(5) 성공으로 가는 길은 더 이상 백인 전용 포장도로가 아닌 것이다. 위계서열이 학위에 기반을 두고 재구성되는 중인 셈이다. 서열에서 밀려난 백인 가족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내세우면서 열세를 만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백인들이 말하는 ‘우수함’이 더 이상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수함’의 기준은 과도한 야심이나 출세지상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호기심, 열린 마음, 일종의 ‘정상’을 추구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백인 남성은 항상 자신을 ‘정상’이라고 규정했다. 피지배층이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할 때마다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깔아뭉갰다.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을 비정상적이며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고 규정지어 버렸다. 같은 방식으로 인종평등이나 이민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도 각종 미사여구로 짓밟았다. 지적 열등감(지적으로 떨어지는 민족)이나 심리적 열등감(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민족성)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백인 남성들의 눈에 아시아계 학생들의 이례적인 성공이 ‘아메리칸 드림’의 완성이 아니라 엄격한 교육의 산물임은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계 교육방식은 여가와 스포츠를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삶을 아이들이 불쌍하게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고 몰아붙였다. 백인 부모들은 자신들이 뒤처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이전에 자신들이 예찬하던 것들을 부정하고 피난처를 찾았다. 개인의 성장을 학교성적 만큼이나 장점으로 평가해주는 학교가 이들의 피난처가 됐다. 

이런 변화는 아이러니했다. 20세기 후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흑인이나 라틴계 민족이 따라야 하는 ‘소수민족의 모범사례’로서 찬양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아시아계 장점을 예찬한다는 명목하에 타민족은 비난받았고 그 결과 이들은 조직적인 차별을 감내해야만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똑같은 조건 하에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니 흑인들이 의욕을 가지면 완전한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차별당하고 있다는 흑인들의 주장은 틀린 것 아닌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미국을 ‘기회의 나라’로 포장하면서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이 사회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열의가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에 감탄해 마지않던 특징들, 다시 말해 학업능력 예찬, 규율 준수, 가족관계 중시 등의 가치들이 느닷없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예전에는 똑똑하다고 칭찬하던 학생을 지금은 사회부적응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백인이 독점한 패권을 유지하려는 이런 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에 의하면 와스프(WASP, ‘앵글로 색슨계 백인 신교도’를 줄인 말로 미국 주류 지배계급을 의미한다)가 유대인에게 계속 취했던 조치가 이런 전략 중 하나다. 제롬 카라벨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교의 입학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유대인 학생 입학을 방해하려는 계획이 숨어있었다. ‘남성성’, ‘성격’, ‘리더십’과 같은 애매모호한 대입전형 기준 덕분이었다. 

한 입학자료는 면접에서 도덕적 기준을 입시에 반영하는 정책으로 “이론의 여지가 있는 성격과 태도를 보이는 유대인 학생 수를 줄일 수 있었다”(6)고 기록했다. 1950년대 하버드 입학 위원회에 의하면 기피인물 목록에는 “자기 공동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불안정한”, “동성애 기질 또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등이 포함돼 있었다. 매카시즘 시절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기준이 됐다. 덕분에 공산당에 찬동한다는 의혹이 드는 인물은 제외시킬 수 있었다. 카라벨이 강조하듯 “우수함에 대한 기준은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자신들 특유의 문화적 시각을 강요하는 권력층의 가치와 이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계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밖으로 ‘백인이 유출되는 현상’은 권력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수함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것과 연관이 깊다. 

 

 

글·리처드 카이저 Richard Keiser 
미네소타주 칼턴 대학교 미국 정치학 교수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Université de Chicago, un petit coin de paradis bien protégé 시카고 대학, 보호받는 작은 천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4년 4월호. 
(2) Suein Hwang, ‘The New White Fight’,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05년 11월 19일. 
(3) Willow S. Lung-Amam, ‘Trespassers? Asian Americans and the battle for suburb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2017.
(4) Tomás R. Jimenez et Adam L. Horowitz, ‘When white is just alright : how immigrants redefine achievement and reconfigure the ethnoracial hierarchy’,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Washington DC, 2013년 8월 30일.
(5) Allison Levitsky, ‘For the first time, White men weren’t the largest group of U.S. hires at Google this year’, <Silicon Valley Business Journal>, San Jose, 2020년 5월 5일. 
(6) Jerome Karabel, ‘The chosen’, <Houghton Mifflin Harcourt>, Boston,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