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한’ 스트로스칸과 언론의 밀월

2011-06-07     마리 베닐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어 유럽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자금 제공의 조건으로 민영화와 긴축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IMF를 좀더 시민의 편으로 개혁하려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식의 이미지 만들기는 갈수록 정치적 사안들이 특정 인물로 의인화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미국에서 강간 미수, 성추행, 감금 등의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둘러싸고 언론이 야단법석이다. 덕분에 프랑스 언론의 구조적 모순의 일부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정치의 극단적 의인화가 문제다. 언론인은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그 결과만을 애석해한다. 정치인, 즉 ‘고객’이 언론의 중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만족시킨다는 전제 아래 홍보 담당자와 기자는 역할을 분담한다.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언론과 권력의 유착 관계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사회 지도층에 오르는 데 성공한 언론인이 한 권력자가 추락했을 때 얼마나 동요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약자의 불행은 흔한 일이라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원문 보기>>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여러 번 내보낸 장면이 하나 있다. 스트로스칸이 미국 법정에 서기 두 달 전이었다. 당시 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워싱턴의 조지타운 자택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고, 그의 아내 안 싱클레르가 샐러드를 준비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평범한 (거의) 수백만 프랑스인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 장면은 KM프로덕션이 제작하고 <카날 플뤼스>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삽입됐다. KM프로덕션 사장 르노 르 반 킴은 니콜라 사르코지- 2004년 국민운동연합(UMP) 대표 자리에 올랐을 때- 를 위한 방송을 제작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 필름 방영에 앞서 지난 2월 24일, <파리 마치>는 스트로스칸 부부의 사생활에 관한 6면 분량의 기사를 내보냈다. “2008년에 있었던 소동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트로스칸이 IMF의 고위 직원 피로스카 나지와 잠깐 바람피운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2008년 10월 20일, 피로스카 나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내게 손을 뻗쳤다. 밑에 여직원들을 거느리는 조직의 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2008년 10월 19일, <르 주르날 뒤 디망슈>는 ‘DSK 일병 구하기’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스트로스칸은 자신이 직위를 남용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엘>은 시련을 겪고 있는 스트로스칸의 훌륭한 아내 안 싱클레르의 사진을 실었다. 아바스사의 자크 세귀엘라 부사장에게 판형 변경을 맡긴 바 있는 <VSD>는 스트로스칸 부부의 대응을 표지 기사로 내보냈으며, 그의 성공적인 아프리카 순방을 동행 취재하기도 했다. 당시 스트로스칸은 폭발 위험에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의 ‘지뢰 제거’ 담당 람지 키룬을 워싱턴으로 불렀다.

람지 키룬은 스트로스칸이 민선 시장으로 있던 사르셀 출신이다. 이 이미지 메이커는 라가르데르그룹의 대변인이자 광고회사 ‘유로 RSCG’에 파견된 컨설턴트다. 뱅상 볼로레가 사장으로 있는 이 회사는 스트로스칸의 최측근 홍보 담당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조레스재단 이사장 질 핀슐슈타인과 그의 홍보 담당관 안 옴멜, 유로 RSCG 월드와이드 공동 사장 스테판 푸크가 그들이다. 키룬은 39살에 정치와 홍보, 미디어의 한복판에 우뚝 선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수행한 역할을 관찰하면 한 정치인의 범죄에 가까운 일탈행위에 프랑스 언론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침묵했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시칠리아의 마피아가 주민에게 침묵의 계율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트로스칸은 1999년 조스팽 정부의 각료들이 갖가지 구설에 휘말리던 때 람지 키룬을 알게 됐다. 그 덕분에 스트로스칸은 프랑스 대학생의료보험조합(MNEF) 허위 고용 사건, 자크 시라크에게 정치적 시련을 안겨준, 비자금 폭로 사실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소지 등의 문제에서 탈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키룬은 스트로스칸의 운전사 겸 경호원 노릇까지 하며, 에바 졸리 판사에게 소환될 때는 그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가려줬다. 2002년에는 스트로스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그를 고소하려던 젊은 여기자 트리스탄 바농을 입막음했다.

나중에 작가로 변신한 트리스탄 바농은 언론의 꼭두각시놀음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다. 2007년 <파리 프르미에르> 채널의 티에리 아르디송의 디너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는 ‘술김에’ 성추행과 성폭력의 중간쯤 되는 사건을 마치 우스갯소리하듯 떠벌리는 실수를 범했다. 방송 당시 그녀의 입에서 나온 “발정난 침팬지”라는 표현은 ‘삐’ 소리로 처리돼 들을 수 없었다. <프랑스 3> 채널의 마르크올리비에 포지엘의 프로그램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증언이 삭제됐다. 바농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스트로스칸을 고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키룬이 주장하듯 사건을 꾸며낸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이번이 첫 사고 아니다

주변의 지원 없이 고립된 한 여성이 이런 일과 관련해 법정 문을 두드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뉴욕에서 스트로스칸이 체포되고 나흘이 지나서야 프랑스 언론은 자신의 책임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리베라시옹>의 유럽 전문기자 장 카트르메르는 이미 2007년 7월 9일에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스트로스칸의 여자관계다. 그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 집요한 나머지 자주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는다. 언론은 그 사실을 잘 알지만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여기는 프랑스다.)” 그의 글은 종이판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카트르메르는 당시 “람지 키룬이 스트로스칸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으니 블로그에서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한다.

<프랑스 앵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전 <리베라시옹> 사장 로랑 조프랭은 프랑스 언론을 향한 비판은 “불공평하고 부당하며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 2>에 출연해 잠재적으로 범죄행위가 될 수도 있는 스트로스칸의 성추행을 알고도 모른 체한 적이 있음을 마지못해 시인했다. “대중에게 지탄받을 것을 각오하고 하는 말이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는 다른 언론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생활 침해로 처벌받을 가능성,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유로 댔다. 그러나 <르몽드>의 니콜라 보 기자는 “그런 사안이 일반 국민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 사건이라는 이유로 모두 기사로 다뤄져야 한다면, 우리 모두는 해고당할 처지에 놓일지 모른다”(1)고 비판한다.

특정 주제에 대한 언론의 침묵은, 무죄추정 원칙이나 법적 고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정치인과 언론 편집 책임자 사이의 공모관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21일 <마리안>은 자사의 고위층인 모리스 사프란, 자크 쥐이아르, 니콜라 도므나크, 드니 장바르가 4월 29일 스트로스칸이 주최한 오찬에서 프랑스 차기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드니 장바르는 “테이블에서 오고 간 얘기를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존중한다. 그러나 뉴욕에서 생긴 사건으로 우리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라는 인물을 더 잘 조명하기 위해 당시 대화를 공개할 책임마저 느낀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언론 편집 책임자는 민감한 문제를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유명 인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가 될 정도의 인물이 하루아침에 피고로 법정에 서게 되면 언론인은 갑자기 보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게 된다. 추락한 유명인사의 ‘숨겨진 이면’에 대한 폭로는 그중 하나다.

정치 홍보는 매우 좁은 세계다. 키룬이 언급한 금기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기자들은 홍보회사 유로 RSCG의 고객인 수많은 사회당 인사들과 접촉할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2) 2008년 11월, 마르틴 오브리가 사회당(PS) 당수가 된 뒤로 유로 RSCG 출신 인사가 사회당 홍보 전반을 책임지게 되었다. 오브리는 미셸 로카르의 홍보 담당이던 클로드 포스테르나크의 광고회사에 도움을 요청하는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오랫동안 땅딸막한 체구에 유쾌한 표정으로 다니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사회당 당수는 검소하고 진지한 이미지로 거듭나기 위해 리오넬 조스팽 밑에서 여론조사를 맡은 제라르 르 갈에게 조언을 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로 RSCG 월드와이드 사장 스테판 푸크는 에브리의 민선 시장이자 사회당 예비선거 출마가 유력한 자신의 오랜 친구 마뉘엘 발스를 추천했다. 센생드니 의회 의장 클로드 바르틀론은 지난 4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의 악의적인 행동을 염려했던 스트로스칸이 뉴욕에 억울하게 잡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유로 RSCG 협력사 대표 스테판 슈말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회사는 손에루아르 지역구 사회당 의원 아르노 몽트부르와 계약한 바 있다.(3)

터질 때마다 ‘좋은 남편’ 이미지 연출

사회당과 이 거대 홍보회사 간의 돈독한 관계- 이미 2002년 리오넬 조스팽의 선거 유세에서 빛을 발했다- 에 하나 더 덧붙일 것이 있다. 스트로스칸의 후보 출마를 지원했던 라가르데르그룹의 언론사들이다. 이번에도 중간 다리를 놓은 인물은 다름 아닌 키룬이었다. 지난 5월 11일 열린 기업총회에서는 스트로스칸이 파리 체류 중 탔던 포르셰가 키룬이 이용한 업무용 차였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아르노 라가르데르는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람지 키룬은 나와 막역한 사이다. 이번 일이 내가 사르코지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비판을 조금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과연 IMF 총재의 성공을 위해 진심으로 애쓴 것일까? (라가르데르그룹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경영구조 결정 과정에서 스트로스칸 덕을 봤다.)(4) 아니면 엘리제궁의 묵인 아래 스트로스칸에 우호적인 일파가 자기 그룹 언론사에 자리잡도록 내버려둔 것일까?

홍보 담당자와 기자, 분업 또는 유착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체포되자, 사회당 지도부는 그의 결백을 주장하며 연대감을 표명했다. 마르틴 오브리 당수는 스트로스칸이 수갑을 찬 채 경찰서를 나서는 장면을 보고 충격받았다. 마뉘엘 발스는 그 장면을 내보낸 언론의 ‘지나치게 잔인한’ 행태를 비판했다. 전 법무부 장관 로베르 비댕테르는 “언론의 집단 폭행”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무죄추정과 관련해 2000년에 도입된 기구 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이들은 ‘우트로 사건’(2000년 프랑스 북부 우트로에서 발생한 어린이 성추행 사건으로, 마을 주민 17명이 구속됐다가 2005년 파리고등법원 항소심에서 13명이 무죄선고를 받음)에서 훗날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이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둘러싸인 장면이 보도됐을 때(2002년 1월)는 왜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을까?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에서 짐 운반 일을 하던 압데르자크 베세기르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명예가 훼손당하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던 때(2005년 무죄판결), 이들은 뭘 하고 있었는가? 

글·마리 베닐드 Marie Bénilde
언론인. <그들은 두뇌를 사들인다: 광고와 언론>(Raison d’Agir·파리·2007)의 저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르몽드>, 2011년 5월 20일자.
(2)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Aurore Gorius & Michaél Moreau, <홍보회사의 교주들>, La Découverte, 파리, 2011을 참조할 것.
(3) <르몽드>, 2011년 5월 14일자.
(4) 2000년 스페인·독일·프랑스 합작회사 EADS 창립 당시 경제재정산업부 장관이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EADS의 프랑스 쪽 지분인 우주산업 공기업의 경영을 라가르데르 개인에게 넘기는 내용의 주주협정 체결을 주도했다. 당시 라가르데르는 감세 혜택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