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Haji) 순례, 사우드 가문의 제2의 석유

단체종교관광으로 돈방석에 앉은 사우디아라비아

2020-08-31     모하메드 라르비 부게라 | 교수

이슬람교의 5대 의무로 꼽히는 메카 성지순례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지갑을 채워주는 든든한 자금줄이다. 와하비즘을 따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도자들은 더 많은 순례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 성스러운 도시를 훼손하고 있다. 종교관광 수입에 대한 욕망이 도시 훼손, 환경오염, 대규모 참사 등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1일 1,000만 배럴)으로 명성이 높다. 동시에 명실상부한 이슬람의 요람이자 중추로 통한다. 국제연합(UN) 회원국 중 가문의 이름(사우디아라비아의 국호는 ‘사우드 가문의 아랍왕국’을 뜻한다-역주)을 내걸고 활동하는 유일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샤하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라는 구절로 이뤄진 이슬람의 신앙고백-역주)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이 신앙 고백문을 국기에까지 새겨 넣고 있다. 

이런 식으로 18억 명의 전 세계 이슬람 신도에게 사우디의 군주만이 ‘성지의 수호자’임을 공표한다. 사실상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멧)의 탄생지인 메카(이는 무슬림이 하루 5번 기도를 올리는 방향이기도 하다)와 사망지인 메디나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 군주의 전적인 관할권에 속해 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오일머니에 힘입어 움마(이슬람교 신앙공동체) 내에서 굳건한 종교적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지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계속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잘 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자국의 성지순례 운영에 막대한 공을 들이는 이유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하지’ 순례코스의 안전업무를 이스라엘 사설 경비업체인 ‘G4S’에 맡기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성지순례지 운영은 물자 보급·건강·안전 등의 측면에서 막중한 과제를 떠안긴다.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한 ‘성스러운 도시’

이슬람교의 5대 의무(기둥)인 ‘하지(Haji)’를 실천하는 순례객은 매년 200~300만 명에 이른다. 경제적 여유와 건강한 신체를 갖춘 이슬람교 신도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 히즈라력(음력 기준 이슬람력)으로 12번째 막달에 해당하는 ‘두알히자’ 기간 최소 5일에 걸쳐 ‘하지’를 실천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는 이슬람 신도에게 있어 종교적 삶의 완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모든 죄를 씻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이 한 데 모여 함께 화합과 교류의 시간을 다지는 만남의 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매년 ‘하지’로 평균 100~15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1) 이에 더해 연중 원할 때 메카를 방문하는 성지순례 ‘옴라’의 순례객도 800만 명에 달한다. 특히 ‘라마단’ 기간 절정을 이루는 ‘옴라’ 순례객은 40~50억 달러의 수익을 제공한다. 메카 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성지가 위치한 두 도시에서는 성지순례가 민간부문 소득의 무려 25~30%를 좌지우지한다. ‘하지’와 ‘옴라’를 합친 총 수입은 사우디에서 원유판매 다음가는 소득원이다.

2018년 사우디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두 성지순례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1,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정부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수립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다원화 정책, ‘비전 2030’를 작성한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옴라’ 순례에 참여자가 매년 3,000만 명에 이를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이상 원유가격을 유지하는 독보적인 힘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종교관광이 사우디의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2)

사우디아라비아 기업들은 성지순례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1988년 이래 자국이 시행해온 각 국가별 순례자 쿼터제 철폐를 희망한다. 물론 사우디 정부당국은 쿼터제 자체를 철폐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많은 순례자를 유치하기 위해 순례지 시설 정비에 공을 들인다. 가령 3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 중인 국부펀드를 메카에 투입해 성지로 몰려드는 거대 인파를 수용할 인프라 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1950~2017년 여객기 운항 덕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총 성지순례객(‘하지’와 ‘옴라’) 수는 5만 명에서 무려 1,000만 명까지 급증했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메카의 풍경은 철저히 변모했다. 객실 10만 개, 고급 레스토랑 70곳, 헬리콥터 이착륙장 5개, ‘천막 순례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까지, 메카는 대리석 바닥에 크레인과 마천루가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콘크리트 정글로 전락했다. 최고의 성지로 통하는 카바 사원 곁에는 초고층 빌딩 ‘아브라즈 알바이트’ 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3개 순례지를 연결하는 통행 터널을 무려 60여 개나 갖춘 이 성스러운 도시는 이제 마치 디즈니랜드와 라스베가스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다.(3)

모로코 인류학자 압델라 하무디는 “기괴한 유리 철제 건물들 일색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이 흉물스럽다”며 “감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화세트장 같은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카바와 하람 샤리프(200명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모스크) 사원 주변에는 어느새 40층짜리 고급호텔과 명품샵,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문화공간은 찾기 어렵다. 사실상 모든 도시의 유적은 우상숭배를 백안시한 와하비즘 세력의 분노를 피하지 못한 채 1924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이 도시를 정복한 이래로 철저히 파괴됐다. 심지어 예언자의 생가가 주차장이 됐고, 그의 첫 아내 카디자의 생가는 위생시설로 재탄생했다!

 

대규모 참사, 환경오염, 외교분쟁

열대기후에 적합한 자연통풍 장치인 ‘마쉬라비야’(목조 격자 창살-역주)가 설치된 전통 건축물을 전부 밀어낸 자리에는 흉물스러운 콘크리트와 요란한 에어컨 시설이 들어섰다. 이 성스러운 도시에서는 더 이상 그 무엇도 과거 오스만 제국의 장대한 역사를 떠올리게 해서는 안 되는 탓이리라. 이런 무대를 배경으로 ‘하지’(‘노력’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낱말도 어느새 과거 지녔던 종교적, 정신적, 역사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그저 한낱 기계적인 종교의례의 실천, 쇼핑 활성화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가 이런 식으로 변화와 개발을 거듭하자 갑작스러운 하천 범람과 지하수 오염으로 환경파괴 위험이 더욱 커졌다. 2012년 성지순례 시즌 동안 메카 내 고속도로와 터널, 교차로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조사 결과 오존·일산화탄소·벤젠·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발생한 유해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과 에어컨에서 나오는 염화불화탄소(CFC-12) 등의 수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4) 대사원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아라파트 평원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치는 3개 순례지를 향하는 동안 순례객은 혼잡한 도로에서 짙은 광화학스모그(석유계통의 화석연료의 다량 사용으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가 태양의 자외선 하에서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공기 중 산화제의 농도가 높아져 발생하는 안개-역주)에 노출된다.

“성수기 동안 미나(메카에서 5km 떨어진 ‘하지’ 순례객의 필수 코스)의 관광버스와 자동차들은 매일 80톤의 배기가스를 뿜어댄다. 대부분 순례객은 기도보다 기침을 더 많이 한다. 배기가스·폭염·피로 등이 겹친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졸도나 사망이다.” 5년 동안 지다의 메카 성지순례 연구소에서 일해온 영국계 파키스탄인 저술가이자 교수인 지아우딘 사르다르는 이렇게 회고했다.(5) 

사르다르는 그동안 ‘생지옥을 방불케하는’ 인프라 문제의 해결책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연구소가 여러 대책을 권고했지만 권고한 사항이 실천에 옮겨지는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그는 “현대적인 도시 개발로 인해 결국 이 성스러운 도시는 두 고유한 특징, 즉 ‘미’와 ‘영원성’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마저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하지’는 사우디 출신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도 재정적으로 막중한 과제를 떠안긴다. 많은 순례객은 평균 5,000~8,000유로(교통, 현지 숙박 및 식사)가 드는 순례 비용으로 인해 큰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이슬람 종교는 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을 금지한다). 때때로 각국 정부가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미래 하지 순례객(hadj)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다른 많은 이슬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이 쥐꼬리만 한 수준(30달러)에 불과한 나이지리아에서도 많은 국민이 순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정부 당국에 극심한 분노나 좌절감을 드러내곤 한다. 

튀니지에서는 이슬람 학자 바드리 마다니가 올해 4월 천문학적인 ‘하지’ 비용을 비판하며 ‘하지’나 ‘옴라’에 드는 비용을 학교 및 병원 관리에 쓰자고 주장했다.(6) 프랑스에서는 매년 메카 방문을 위해 비자를 취득하는 사람이 2만5,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사우디 성지순례부의 공인을 받은 중개업체는 60여 개에 불과하다. 이들은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심지어 비자를 취득하기 어려운 순례 희망자들을 상대로 사기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7)

‘하지’는 외교분쟁의 무기로 동원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상대국의 순례자 할당 수를 줄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터키, 이란은 물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이런 상황에 불만을 표출한다. 사우디로부터 이런 보복조치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이 나라들은 성지순례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적 권한에 맡기지 말고 일종의 ‘이슬람 바티칸’을 만들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글·모하메드 라르비 부게라 Mohamed Larbi Bouguerra
교수, 튀니지 과학·문학·예술 아카데미 바이트 알히크마(카르타고)의 일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Paul Cocharane, ‘The economics of the hajj’, <Accounting and Business Magazine>, Glasgow, 2018년 7월.
(2) Sadek Boussena, ‘Pétrole, accord et désaccords 마이너스 가격으로 치달은 석유의 새로운 지정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6월호.
(3) Ziauddin Sardar, ‘The destrcution of Mecca’, <The New York Times>, 2015년 9월 30일.
(4) ‘Air quality in Mecca and surrounding holy places in Saudi Arabia during hajj : Initial survey’, <Environemental Science & Techonology>, 제48호, Washington, 2014년.
(5) Ziauddin Sardar, 『Histoire de la Mecque. De la naissance d'Abraham au XXI siècle 메카의 역사. 아브라함의 탄생에서 21세기까지』, Payot, Paris, 2015년.
(6) Siyassi.tn(아랍어 매체), 2020년 4월 22일.
(7) ‘Le grand laisser-faire du marché du hajj en France’, <Orient XXI>, 2019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