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 신성한 가치
수많은 책과 출판사를 보다 보면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닌 특별한 물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자본의 집중화 현상은 활발히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출판업계에서도 자본은 자본을 부른다.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증명된 이 진리는 증거 또한 무수히 많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당시 프랑스 출판계와 나치 사령부 간에 수년간 이뤄졌던 협업부터 시작해보자. 영악한 대규모 출판사는 시류에 흔들리던 약소한 출판사를 사들였다. 드노엘 사와 메르퀴르 드 프랑스 사는 갈리마르에 인수됐고, 그라세와 파야르, 스톡 사는 아셰트에 흡수됐다. 나치 점령 시절 탄생한 프레스 드 라 시테 출판사는 1960년대 페랑, 플롱, 쥘리아르 등의 출판사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시테 그룹’으로서 다가올 영광의 30년(2차대전 종전 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1945~1975년을 일컫는다-역주)을 누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20년 후 시테 그룹은 보르다스, 달로즈, 라루스, 나탕 등을 인수하며 두 번째 대규모 인수합병 시대를 맞이했다.
역시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출판업계에서도 위기 속에서 기업가 정신이 더욱 빛난다. 프랑스 미디어 그룹 비방디의 전신인 소시에테 제네랄 데 조(CGE)의 회장이었던 장 마리 메시에는 아바스를 인수한다. 아바스는 프랑스 민영방송국 카날 플뤼스를 창립한 회사로 당시 시테 그룹을 막 흡수한 상태였다. 이후 메시에는 1998년부터 ‘비방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5년도 지탱하지 못할 모래성을 짓는다.(1)
원자력산업이나 군수산업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출판업 또한 프랑스 정부가 예의주시하는 주요산업이다. 150년 전부터 루이 아셰트의 후손은 점점 성장해 업계 최고의 출판그룹과 유통업계의 수장 자리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신문·잡지 배송업체와 ‘흘레(Relay)’ 등 역내 판매점을 독점한 덕택에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한 투자 은행이 아셰트의 대주주가 된 시점에 아셰트의 자본은 산재한 채 주식시장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회 공산주의’가 권력을 잡을 때 발레리 지르카르 데스탕 대통령은 장 뤽 라가르데르라는 이름을 지목했다. 1980년 말, 항공·군수 산업체 마트라를 운영하던 라가르데르는 ‘프랑스 대표 출판사’로 알려진 아셰트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손에 넣었다.
‘아세트 제국’과 ‘비방디 그룹’의 합병 경쟁
2002년에는 자크 시라크 정부 하에서 아셰트는 비방디 그룹 산하 출판사들을 인수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업계 최대 출판그룹이 업계 2위를 흡수한다는 것은 프랑스 경쟁관리 당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결국 2년 후 아셰트는 보르다스, 라 데쿠베르트, 플롱, 로베르 라퐁 출판사 등을 포함해 보유 중이던 비방디의 지분 60%를 방델에 양보해야 했다. 제철소에서 출발한 투자회사인 방델은 사들인 출판사들을 에디티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해 규모를 두 배로 불린 후, 2008년 스페인 항공운송 그룹인 플라네타에 되팔았다.
‘아셰트 제국’과는 대조적으로 라가르디에르는 한 세대 만에 어긋나버렸다. 스포츠 분야에 투자를 주력하고자 기술 분야의 비중을 줄였지만, 투자는 손실로 돌아왔다. 그 결과 그룹 내에서 안정적인 수익처는 출판사와 흘레(Relay)를 포함한 유통사뿐이었다. 지난 5월 아르노 라가르디에르는 뱅상 볼로레가 아셰트에 자본을 투입한 덕택에 간신히 회장 자리를 지켜냈다. 시기적절한 일이었다.
볼로레는 3년 전 카날 플뤼스, 아바스, 유니버셜 뮤직 그룹이 속해 있는 비방디 그룹의 소유주가 됐다. 에디티스를 손에 쥐었던 2018년 당시 브르타뉴 출신 백만장자인 볼로레는 문학작품을 찾고 있었다. 그의 회사가 제작하는 영화와 드라마에 자양분이 될,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 저장고’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번에는 업계 2위가 1위를 흡수하고자 했던 것일까? ‘폭군’이라는 평판을 지닌 볼로레의 출판업계 진출은 의외로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2012년 악트 쉬드는 파요 에 리바주 출판사를 흡수하고, 갈리마르는 플라마리옹(산하에 아르토, 오비에, 오트르망, 카르테르망 출판사 보유)을 이탈리아의 은행·보험·건설업 그룹인 리졸리 코리에레 델라 세라로부터 인수했다. 5년 후 미슐랭과 유통계약을 맺은 만화전문 출판사이자, 다르고와 뒤피스 출판사가 속해 있던 메디아-파티시파시옹 그룹은 쇠이-라마티니에르(역시 산하에 아를레아, 롤리비에, 메타이에 출판사 보유)를 인수했다.
10여 개 회사 소유주가 한 번에 바뀌고, 매번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인수된 회사는 모회사의 이익을 위해 쥐여 짜이거나 ‘상품화’됐다. 전자가 갈리마르식이라면 후자는 악트 쉬드가 파요 출판사에 취한 방식이다. 어디에 인수됐든, 인수된 회사는 모회사의 이익 증대를 위해 존재한다.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출판사들
아셰트와 에디티스가 거느리는 100여 개의 자회사 브랜드를 보며, 일부 서점은 업계 2위인 에디티스가 1위인 아셰트보다도 산하 출판사들의 정체성을 흐리는 현실을 개탄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그룹 산하 출판 브랜드는 이제 시중에 ‘상품’을 출시하지 않은 지 오래다. 산하에 수많은 출판 브랜드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시기를 제외했을 때 두 그룹이 서점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뱅상 볼로레가 상원에서 열린 문화위원회 앞에서 갈리마르 출판사 책의 독자였던 어머니를 언급했다면, 에디티스를 인수할 때 그가 댄 이유는 문학적이지조차 않다. “우리 콘텐츠 제공사업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라며 스튜디오 카날 역사상 최대 수익(약 3억 달러)을 낸 작품 <패딩턴>처럼 원작을 영화화하는 모델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업계 동향에 관한 전문매체의 기사를 읽다 보면, 원작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책은 이미 지난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영화, 드라마 제작을 위해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판권 구매 경쟁에 열을 올리고”, “공연장, 유니버셜 뮤직, 게임로프트, 아바스, 카날 플뤼스의 조직망을 이용한 상호협력이 이뤄지며”, “지난 10년간 프랑스 문학계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기욤 뮈소 같은 ‘주요 작가’가 에디티스-XO에서 아셰트-칼만-레비 사로 이적”(Livres Hebdo, 2018년 11월 23일자 기사 참고)하는 것이 현재 출판업계의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 아셰트와 에디티스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서점 대부분은 ‘업계의 심장’은 아직 마드리갈(갈리마르-플라마리옹이 속해 있음), 쇠이, 악트 쉬드나 리벨라(페뷔스와 누아르 쉬르 블랑이 속해 있음) 등의 소규모 그룹들이 쥐고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이 출판사들이 서점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므로(그 중 갈리마르 사가 가장 크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관점이다.
반면 출판사 직원의 관점에서는 이런 섬세한 의견은 자취를 감춘다. 노조라고는 출판경영인 노조가 유일한 업계에서, 출중한 능력을 지녔으나 박봉을 견디는 출판사 직원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직장생활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고액연봉을 받고 영입된 대형유통업계나 마케터 출신의 경영진 밑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능력 있는 인재가 헐값에 팔리며, 영업 압박에 눌려 과다한 부수를 찍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직장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의 가치’에 대한 애착을 가진 몽상가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려면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2008년 에디티스가 3억2,500만 유로 상당의 차익을 내며 플라네타에 팔렸을 때 상황을 보자. 당시 에디티스의 최대지분은 생고뱅에 자본을 투입한 것이 잘못돼 과다채무를 떠안고 있던 방델에게 남아있었다. 회사를 넘겨 수천만 유로의 자금을 비축했지만, 600여 명의 임직원에게는 최저임금 수준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을 뿐이다.
“걸리적거리는 작은 출판사들이 너무 많다”
2000년대 초반, 인수합병의 주기는 앙투안 갈리마르(갈라마르 가의 3대째)가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에디티스 인수 실패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였고, 플라마리옹 출판사 인수에 성공해 갈리마르가 프랑스 대표 출판그룹으로 우뚝 설 날로부터는 6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출판사 집중화 현상이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출판전문매체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두 거대 프랑스 출판그룹의 합병으로 출판업계에 닥칠 시련에 맞설 수 있다.”(<Livres Hebdo>, 2012년 10월 5일자 기사 참고)
어떤 시련을 말할까? 아셰트-그라세 출판사에서 펴낸 『상습범(Récidives)』에서 저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장 뤽 라가르디에르가 비방디를 인수한 이유를 “샤를 드골 장군의 책을 내던 출판사가 연기금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방델의 회장 에르네스트 앙투안 셀리에르가 에디티스를 플라네타에 매각하던 때는, 외국자본에 의해 회사가 와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소 15년간’ 에디티스를 맡기로 약속한 지 고작 4년 후였다. 2003년 에르베 드 라 마티니에르는 비방디를 아셰트로부터 구해내려는 공동의 목표를 제안하고자 쇠이 출판사의 클로드 셰르키를 만난다.
1년 후 셰르키는 라 마티니에르에게 양보하기로 했던 자사의 주식 절반을 은밀히 사들였고, 쇠이가 매각될 당시 약 2백만 유로의 차익을 챙겼다. 2017년 뱅상 몽타뉴(비방디를 인수하고 실망한 또다른 인물)는 쇠이-라 마티니에르 그룹을 인수해 메디아-파티시파시옹 그룹에 편입시켰다. “문학계에 정문으로 당당하게 입성한다”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만화출판계의 왕’은 이미 매각을 논의 중이다.
소규모 출판사들이 모인 어느 토론회에서 최근 대규모 출판그룹의 도서 생산 과잉에 따른 부작용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장본인들도 익히 인식하고 있는 문제지만, 원인 진단은 제각각이다. 앙투안 갈리마르(마드리갈 그룹)와 프랑시스 에스메나르(알방 미셸)는 2006년에 일찍이 이렇게 고발했다. “서점의 책장에 걸리적거리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너무 많다.” 이런 유감스러운 대립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해를 넘기기 어려워 보이는 영세 출판사를 인수하려고 기회를 노리는 투기꾼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소규모 출판사의 과잉문제는 대규모 회사에 흡수되면서 해소될 것이다. 거대 그룹의 주 수입원은 슈퍼마켓이나 역내 판매점이지, 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 출판그룹은 보유 출판사 수로 규모를 측정한다. 그 중에서도 대규모 그룹은 자사가 유통하는 출판사 수의 총합을 기준으로 한다(아셰트 150개, 에디티스 400개, 마드리갈 700개).
위험에 처한 표현의 자유
몇몇 사람들은 출판사 집중현상으로 생산의 질과 다양성, 출판사와 작가의 표현 자유가 위험에 처했다며 슬퍼한다. 메디아-파티시파시옹 그룹의 창립자 레미 몽타뉴가 하원의원을 역임하던 시절, 시몬 베유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토론 중에 낙태를 나치 독일이 행한 민족학살과 연관 짓는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깨어있는 온건 우파의 대표자’였던 그 아들은 이 과도한 언사에 등을 돌렸다. “각 출판사의 정체성은 우리의 눈이 될 것입니다. 이를 보존하려는 것이 우리의 의지입니다.”(2)
‘경영자’에 대한 틀에 박힌 이미지를 깨야 한다. 에르네스트 앙투안 셀리에르가 조제 보베나 마이클 무어의 작품을 즐겨 출판하는 에디티스의 새주인이 됐을 때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출판그룹에서 2004년 출간된 도서 『부자들의 정부』 표지에 전 총리 장 피에르 라파랑과 나란히 인쇄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웃었다(셀리에르는 프랑스 최대 고용주 연합인 프랑스 기업운동(MEDEF)의 회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현 소유주인 뱅상 볼로레는 셀리에르에 비해 유머감각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골 기질의 창립자 프랑소아 마스페로의 유지를 잇는 라 데쿠베르트 출판사(<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좌파성향의 책들을 많이 내고 있다-역주)를 믿어보자. 프랑스 식민지 개척 시절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고, 금융시장 규제 당국과 재치 있게 장단을 맞추며, 조세피난처를 요령 있게 오가는 볼로레의 ‘천재성’을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아르노 라가르디에르 구제계획은 니콜라 사르코지의 지휘 아래 그의 친구 뱅상 볼로레 덕분에 이뤄졌다.
어떤 이들은 이 도움이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곰의 키스’ 같은 것이라고 본다. 한편 기업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은 한 개인의 실패와 방황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목표를 이룬 시스템의 성공에 불과하다.
글·티에리 디스폴로 Thierry Discepolo
아곤 출판사의 창립자, 『La Trahison des éditeurs 출판사의 배신』의 저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Vivendi, une leçon de chos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도시에, 2002년 5월호.
(2) Nicole Vulser, ‘Les éditions du Seuil vont être vendues à Média-Participations 쇠이 산하의 출판사들이 메디아-파르티시파시옹에 매각된다.’, <르몽드>, Paris, 2017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