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논리

2011-06-07     세르주 알리미

소수 엘리트 정치인들의 특혜, 돈에 매수된 지도층, 은행의 뇌물수수, 자유무역, 국제경쟁력을 핑계로 한 임금 삭감 등을 비방하는 사람은 누가 됐든 ‘포퓰리스트’(1) 취급을 당하거나, ‘극우파 성향’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원문 보기>>

뉴욕재판부가 맨해튼의 호화 호텔에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게 특별대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한 논평가는 프랑스 정치지도층에 장단을 맞추듯 “평등주의적 사법부가 행한 폭력”이라며 분개했다. 거의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스캔들로 인해 엘리트층에 대한 반감이 깊어져 다음 선거에서 덕을 보는 것은 르펜의 국민전선이겠군요.”(2)

즉 찌들고 가난한 이름 없는 군중의 분노에 맞서, 엘리트층과 이들의 정책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내 일종의 위생관리 작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튀니지에 착취를 일삼는 벤 알리 정권을 정당화했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이탈리아에서 베를루스코니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마찬가지로 국민전선에 대한 (정당화된) 우려를 내세워 ‘또 다른 4월 21일’(3)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전선이 반대하는 모든 정책에 손대면 큰일 날 일인 양 취급한다. 폐쇄적인 정치놀이에 국민이 반발한다고? 시위에 참여하는 국민은 무지한 파시스트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할 따름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생각에 수갑을 채우는 행태가 자리잡도록 내버려둔다면 정치적인 광란밖에 남지 않는다. 프랑스의 극우파도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사회 불평등 악화라는 문제를 인식해, 자신들이 과거 지지했던 대처주의식 논리나 공무원에 대한 반감, 푸자드의 세금반대운동이 더 이상 현실에 걸맞지 않음을 인지했다. 이들 극우파도 과거 좌파 논리로 당연시되던 주제를 거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20년 전 장마리 르펜은 비시 체제와 프랑스령 알제리 전쟁 당시 반란 장군들을 기념했고, 레이건 대통령과도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도 드골 장군이나 레지스탕스, 통신 및 에너지 재국유화를 거리낌없이 언급한다.(4) 물론 인종차별적 면은 변하지 않았으나, 이런 성향은 프랑스 사회에 만연해 있고, 권력층에서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극우파 정치선전의 주된 요소는 인종차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극우파들이 좌파 논리를 끌어다 쓴 것은 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물들면서 부르주아화한 좌파 제도상의 잘못만은 아니다. ‘좌파 내 좌파’의 전략적 취약함과 노선 간 분열도 한몫했다. 극우파에 대항하는 방법은 이들이 좌파로부터 취한 진보적 논리에 맞서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합당한 이유로 분노한 국민에게 정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포퓰리즘이라는 적이 나타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6년 5월호.
(2) 도미니크 모이지, ‘스트로스칸이라는 지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11년 5월 18일.
(3) 2002년 4월 21일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대통령 후보가 장마리 르펜에게 패해 2차 투표 대상에서 탈락했다. 그 결과 시라크 대통령이 82%를 얻어 대통령에 재선됐다.
(4) ‘르펜당의 새로운 논리: 공공서비스를 사수하라’, <르몽드>, 2011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