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유럽’ 향해, 각자 다른 좌파의 꿈

2011-06-07     앙투안 슈바르츠

스페인에는 지난 5월 15일 이후 시위대가 전국 주요 광장을 점거하고 있다. 시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에 항의하며, 현 위기와 무관한 시민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유로존 국가에서도 슬슬 저항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화살의 방향은 조금씩 시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EU)을 향하고 있다. 과연 유럽이 왼쪽으로 기수를 트는 것이 가능할까?

모처럼 유럽연합(EU)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프랑스 좌파의 분열이 이어졌다. 2005년 5월 29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 조약 반대자는 무려 54.67%의 표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투표율도 67.37%로 높았다. 하지만 헌법안 부결에도, 예정대로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2007년 12월 13일 체결된 리스본 조약에는 과거 유럽헌법안의 핵심 조항이 그대로 담겼다. 이번에는 국민 의견 따위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 국민투표 대신 의회 비준 방식이 선택됐다.

“현 EU로는 안 된다”에 의견 일치

장뤼크 멜랑숑 좌파당(PG) 부대표는 “국민투표 부결의 주역들은 나중에 승리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에 낙담했지만, 그럼에도 프랑스에서는 꽤 오랫동안 두 진영의 대립 구도가 유지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양 진영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그때만큼 명확할까?

유로화 위기와 긴축재정으로 인해 유럽 통합의 목적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면서 프랑스 좌파 지형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U 기구를 ‘내부적’으로 개혁하자는 주장에서부터 유로화를 포기하자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이제 좌파는 단순히 EU의 개혁 방향뿐 아니라 개혁 실행 방안을 놓고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유일하게 좌파가 공유하는 목표가 있다면, 각 진영 모두 그토록 바라는 ‘사회적 유럽’을 어떻게 건설하느냐는 문제뿐이다.

또 다른 정치무대에서는 국민투표라는 역사의 페이지가 이미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선거에서 치열하게 격돌한 조제 보베(반세계화운동의 세계적 프랑스 농민운동가)와 다니엘 콘벤디는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는 사이좋게 나란히 선거운동을 펼치기로 했던 것이다. 현재 그들 모두 유럽녹색당(EELV) 당원이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연대일까? 세실 뒤플로 유럽녹색당 사무총장은 “두 사람 사이에 목표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단지 헌법안 부결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렸을 뿐이다. 덕분에 당원들이 의견차를 극복하고 연합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회당은 어떨까? 시간의 힘은 사회당 내홍이 남긴 상처를 지워주었을까? 유럽헌법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사회당의 일부 지도부와 당원은 당의 공식 지침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졌다. 장관 출신인 엘리자베스 기구 국회 부의장은 조심스럽게 이렇게 진단했다. “험난한 시기를 지나 이제 사회당은 전보다 훨씬 통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사회당원은 유럽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고, 위기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현 위기는 유럽 통합의 위기이자, 존재의 위기이다.” 하지만 유럽이 유로존 ‘주변’ 국가를 휩쓸고 지나간 투기 태풍으로 한 차례 해체 위기에 직면한 지금, 중심국가(프랑스·독일)도 혹은 기구 부의장도 기존 태도만 고수할 처지는 아니다.

오늘날 EU의 운영을 두고 비난이 거세다. 과거 그 누구보다 유럽 통합의 미덕을 칭송한 기구 부의장마저 “10여 년 전부터 자유주의 내지는 급진 자유주의의 일탈 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을 제어·규제하는 유럽 공동 정책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다”라고 일침을 가할 정도다.

유럽 국가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분열된 채, 유럽의 채권자 독일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긴축재정을 강요받고 있다. 물론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위기 사태는 유럽이 시장에 순응하는 것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결국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자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어느 누구도 귀기울이거나 수긍하지 않는다.

방향과 방법론에선 큰 시각차

스테판 르 폴 유럽의회 산하 사회민주당 그룹 부대표는 EU를 온갖 불행의 원흉으로 몰아세우며, 유럽 통합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우리는 유럽 통합의 정신을 계승하고, 지금까지 이룩한 EU 체계를 유지해가기 바란다. 40년 역사의 실타래를 다시 풀어헤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또 다른 유럽을 외치는 꼴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함께할 파트너는 있는가?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다. 넘어야 할 산이 높으면 어려움을 과장해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람이다. 누군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이룩한 EU 체계를 수호하려는 태도의 저변에는 과거 프랑스 사회당이 EU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실이 작용한다. 하지만 좌파 내부의 의견이 크게 갈리는 곳도 이 역사적 부분이다.(1) 반자본주의신당(NPA) 중진 의원인 피에르 프랑수아 그롱은 “사회민주당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초석으로 한 EU의 공동 창설자였다”고 환기시켰다. 오늘날 그는 위기의 대가를 임금노동자가 치르도록 만드는 EU에 대해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자크 들로르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독일의 헬무트 콜과 함께 유럽 통합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복지보다 경제 ‘신뢰도’를 우선시하는 길을 선택했다.

장피에르 슈벤망 공화국시민운동(MRC) 명예대표는 이 사건을 사회당 지도부가 신자유주의 노선에 동참한 사건에 비교했다. “진정한 전환점은 1983년이었다. 당시 우리는 유럽 통화 시스템에 동참했다. 이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합류하는 것을 뜻했다. 그다음은 1986년 단일유럽의정서(SEA) 차례였다. 유럽 차원의 규제 철폐를 의미하는 조약이었다.” 이 조약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다. 단, 사전 조세 통일은 합의에 실패했다. 이윽고 1993년 EU 탄생의 초석이 될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단일통화안이 구체화됐다. 단일화폐 체계를 관장할 유럽중앙은행에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부여하고, 인플레이션 통제권만 맡긴다는 결정이었다. 임금 감축도 새로운 유럽의 교리로 자리매김했다.

국가지상주의와 유럽통합주의 대결

2008년 사회당을 탈당한 멜랑숑은 이 ‘전환점’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다. 그는 유럽 통합의 결말보다 시초에 방점을 찍었다. 1983년, 그리고 ‘긴축 기조로의 전환’ 이후 사회당원들은 개별 국가 차원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적합한 새로운 토양을 다지기로 결심한다. 경제적 통합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사회당은 경제 통합이 정치 통합, 그리고 종국에는 사회적 진보까지 가져다주리라고 믿었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지지 운동을 펼친 장관 출신 멜랑숑은 “자본주의라는 기관차에 석탄만 넣으면 사회적 반사이익이 거저 생겨날 것이라 생각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미국이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오르는 한편, 자본주의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변화했다. 사회당원들의 야심찬 포부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유럽이라는 기차는 사회민주당원들을 실은 채 가던 길을 계속 질주했다. 멜랑숑 유럽의원은 “사회민주당원들은 EU로 포장된 것이면 무엇이든 관계없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메이드 인 유럽’만 찍히면 뭐든 상관없다는 기색이었다”고 회고했다.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주장도

유럽 통합을 거세게 비판하는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EU의 토대다. 그들은 애당초 근본이 잘못됐으니 모조리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현 유럽 체제를 지지하는 진영은 모든 문제가 유럽 통합 과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데 있다고 여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을 위해 협상에 참여했던 기구 부의장은 이렇게 꼬집었다. “통합 경제 및 통화 체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원인은 결코 통화관리가 미흡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부분이 등한시되는 것이 문제다.” 본래 EU는 △통화 통합 △경제 통합 △세제 통일이라는 세 개의 축을 토대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뒤의 두 가지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거버넌스’가 없다는 데 있다. 기구 부의장은 “지금의 위기가 다시 한번 유럽 통합을 추동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려면 먼저 대규모 투자를 위해 EU 예산을 늘리고, 유로존 내 경제정책 조율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유로협정’(Euro Pact)에 제시된 거버넌스 강화안은 기존 통화주의 교리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2)

장기적 측면에서 사회당원들은 여전히 ‘정치적 유럽’(3)이 실현될 때까지 유럽 통합을 계속 추진해가기 바란다. 이런 비전은 EU 건설 초기부터 좌파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됐다. 국가의 지위는 그대로 두고 제도적 모델로서 유럽만 건설하자는 ‘국가지상주의’와 초국적 통합 체제를 구축하자는 ‘유럽통합주의’로 좌파가 양분됐다. 전자는 민주주의의 장인 개별 국가에서만 국민 주권이 실현될 수 있다고 여겼고, 후자는 유럽대륙 차원의 민주주의 체제와 초강대국을 건설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모든 좌파가 국가지상주의와 유럽통합주의만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노동자 투쟁’ 정당은 사회당의 핵심 인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 분명한 몇 가지 원칙을 토대로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건설을 갈망한다(상자 기사 참조). 논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인지 모른다. 파트리크 르 이아릭 공산당 소속 유럽의원은 “오늘날 초국적 체제에 지나치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국민의 손으로 뽑지 않았기에 결코 국민을 대표할 수 없는 기관에 권력을 부여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톡톡히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일간지 <뤼마니테>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국가연합 체제’(Confederation of Nation-States) 형태의 유럽을 선호한다.

1991~95년 미테랑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스팽 사회당 내각의 외무장관을 지낸 위베르 베드린은 “공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반드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국가의 ‘구태의연함’과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일각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주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하며, 대신 “EU의 지리적 한계선이나 권한 배분 등의 문제를 좀더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뜨거운 엘리트, 무관심한 대중

‘유럽주의 도그마’라고? 베드린에 따르면, 현재 유럽 통합을 주장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기껏 해야 콘벤디 같은 몇몇 정치계 인사나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 방송의 베르나르 게타, ‘통합주의의 아야툴라’라고 부르는 <리베라시옹>의 장 콰트르메르만 긴밀히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주의 비전은 사회 지도층의 사고방식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일부 정치 진영의 수사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그들은 “유럽은 평화이며, 미래이며, 젊음이다”라는 식의 단정적 표현법을 구사한다. 반면 “유럽 통합에 의문을 품는 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주권지상주의자이자 반유럽확대주의자다. 정말이지 역겨운 존재다”라는 식으로, 유럽 통합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민심은 유럽 통합이라는 이상에 무관심하다. 베드린은 “엘리트층이 갈망하는 통합주의는 점점 더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 유럽의회가 국회를 대체하고 유럽집행위원회가 유럽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려 해도, 사람들은 금세 ‘그건 안 될 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정녕 대중은 유럽합중국의 이상에 전혀 관심이 없을까? 유럽합중국을 추구하는 유럽녹색당의 뒤플로 의원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스스로 유럽인이라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에 강한 애착을 나타낸다.” 따라서 환경론자들은 ‘유럽 시민’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유럽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결코 국가 소속감에 위배되는 개념이 아니다. 국가 정체성에 추가되는 플러스알파다. 만일 유럽 시민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이 구축되지 못한다면 EU는 완전히 상징성을 잃고 말 것이다.” 뒤플로 위원의 말이다. ‘유럽민을 위한 정치공론장’을 형성하는 것도 급선무다. 그래야만 유럽 통합 과정이 새로운 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시민에게 국가 차원의 정치가 의미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대선전이다.

통합이냐 집합체냐?

’통합된 체제로서의 유럽이냐, 아니면 개별 국가 집합체로서의 유럽이냐’라는 문제는 다른 한편으로 ‘EU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통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적어도 좌파는 좀더 단결되고 민주적이며 친환경적인 유럽을 수호하는 데 서로 동의한다. 공통된 비전을 토대로 현재의 EU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할 새로운 개혁안을 구상했다. 오늘날 EU는 각 유럽국, 나아가 각국의 노동자를 경쟁체제로 내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 가지 원칙적 목표에서 합의점을 찾아냈다. 금융 시스템 개혁, 세제 통일, 사회보장제도 ‘상향’ 표준화가 그것이다. 반면 유럽중앙은행 정관 수정이나 ‘또 다른 유럽’의 틀을 정하기 위한 개혁 등(이 두 가지 사안에 사회당이 반대하고 있다)에는 아직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갈망하느냐가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목표를 실행할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또 목표 실현이 가능한지 가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유럽 질서를 변혁할 방법은 무엇인가? 유럽 질서의 변혁이란 난해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EU는 여론이 잘 반영되지 않는 제도적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다. 유럽의회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기구는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민에 대한 책임감이 약한 기관이다. 그나마 유럽의회의 권한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유럽인’을 대변한다고 자처할 만한 자격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4) 실제로 유럽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EU의 미래를 변화시킬 힘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최근 금융위기 관리 사례만 봐도 그렇다. 최종 결정권은 각국 지도자가 쥐고 있다. 더욱이 세제 통일의 사례에서 보듯, EU 조약을 수정하려면 각국 정부의 수반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정당은 유럽 차원의 전략을 추진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투기자본 감시단체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산하 과학위원회 위원 겸 노조원인 피에르 칼파가 “진보적 성격의 계획은 유럽 차원에서 추진해야 좀더 탄력받고 순항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신자유주의’ 좌파단체 ATTAC는 국경을 초월해 함께 투쟁하고, 공동의 구호를 내건 사회운동을 전개하려면 ‘유럽사회운동’을 출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5) 지난해 9월 29일 유럽노조연맹의 발의로 ‘긴축재정안 저지’를 위한 대규모 ‘범유럽 시위’가 열렸다. 여기에는 여러 유럽국 노조들이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르 이아릭은 “이런 운동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힘을 지닐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2004년 창설된 ‘유럽좌파당’이 그런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유럽사회운동’은 유럽 내 대중영합주의 우파의 부상에 맞서 여러 시급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해법이 되고 싶어한다. 동시에 EU의 미래를 함께 변화시키고 토대를 다시 세우는 데도 기여하기 바란다. 하지만 자크 니코노프 대중교육정치운동(MPEP) 대변인 겸 전 ATTAC 회장은 유럽사회운동의 성공 가능성에 다소 회의적이다. 그에 따르면, “그동안 좌파는 비현실적 이상만 꿈꾼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그는 유럽사회운동이 어떤 무서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든 간에 현재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여러 유럽국에서 좌파의 힘이 점차 약화되는 현실은 결코 외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유럽 차원의 투쟁이 별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좌파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시간의 제약이다. 즉,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과 개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시간 사이의 관계가 문제다. 공간이 넓을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연대와 정치통합의 간극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를 불확실한 대상을 개혁(EU 체제 개혁과 유럽중앙은행 정관 수정)하는 일은 좀처럼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자크 니코노프 전 ATTAC 회장은 “정치의 시대란 곧 국가의 시대를 의미한다. 국가에는 유권자가 동의한 정치적 과정에 따라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제도, 다시 말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공동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무엇보다 화폐를 공유하려면 이념적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니코노프 전 ATTAC 회장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변혁을 이루는 것은 개별 정부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진보적 성향의 정부가 ‘독자적 정책’을 펼쳐 자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회복하고,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는’ 다른 나라들과 서로 협력할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에는 많은 지성인들이 동의한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다.

ATTAC의 피에르 칼파는 “국가와 유럽 차원에서 동시에 투쟁하는 것은 결코 모순된 일이 아니다. 투쟁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 차원의 투쟁은 좌파가 여론을 변화시키고, 지도층을 설득하고, 새로운 진전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 상황이 좌파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상황이 절대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슈벤망은 “현 위기로 유럽주의 도그마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았다. ‘EU 안정 협약’은 산산조각이 났고, 유럽중앙은행은 운영 방식을 수정했다. EU 경쟁위원회 집행위원은 국가가 은행을 지원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이미 EU 기구가 존재하지만 충분히 손볼 수 있다. 조약은 재해석하면 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드린도 몇몇 조항을 재해석하는 것에 찬성한다. “조약에서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해석이다. 하지만 일부 조항을 재해석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로마조약 그 어디에도 경쟁을 통해 반드시 거물급 유럽 기업이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명문화돼 있는 것은 아니다.” 판례는 바뀔 수 있다. 집행위원들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존 입장을 바꾸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베드린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사회당이 자유무역 교리에 반대해 주장하고 있는 ‘공정무역’을 언급했다. 결국 투쟁의 시작은 이념 투쟁이 될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가 회원국을 설득해 보수주의 주류에 역행하는 개혁을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유럽 내 주류 정치세력이 교체돼야 한다. 르 폴은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1990년대 말이 좋은 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사회민주당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일까? 르 폴은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 조율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사회민주당은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토니 블레어가 주창하는 제3의 길이냐, 리오넬 조스팽이 주장하는 좀더 전통적인 사회주의냐를 놓고 이념 갈등이 팽배했다.” 어쨌든 ‘좀더 전통적인’ 사회주의라고 해서 조스팽 정부가 우체국이나 에너지, 철도 시장 등의 규제를 철폐하는 걸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회원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 유럽 체제에서 진보주의 정부가 누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얼마나 되는가? 이에 대해 기구 부의장의 생각은 다소 회의적이다. “운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회원국과 협력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독불장군처럼 행동한다면 흡사 1980년대 푸아티에에서 일본 비디오 녹화기 수입을 가로막던 일명 ‘알바니아인’으로 불리던 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다.”(6)

우파 부상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베드린은 질문을 수정해 다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EU에 속하지 않은 사회민주당 정부가 누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얼마나 되는가? 이를테면 노르웨이 사민당 정부를 예로 들어보자. 이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도와 금융시장의 역할을 볼 때, 이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요정 지니를 다시 램프 속에 가두지 못하는 한, 또 금융계의 비정상적 질주를 막지 못하는 한, 결국 모든 정부가 의존적 처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EU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말이다.”

반면에 멜랑숑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노선 외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은 한정돼 있다고 평가한다. “리스본 조약 체제에서 한 나라가 진정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다.” 만일 그런 정책을 펼치더라도 정부는 금세 금융시장 압박에 시달리거나,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번번이 유럽을 섭정하는 신자유주의 원칙과 충돌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그롱은 “자본주의 수용을 외치는 좌파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좌파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비전은 EU와의 단절뿐이다”라고 말한다.

지배질서 타개 위한 ‘위기’는 필수

유럽 질서와의 단절이라고? 유럽 질서와의 단절은 먼저 유럽의 법 규정을 위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르 이아릭이 생각하는 유럽 질서와의 단절은 이렇다. “정부가 자국의 선결 과제를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국 정책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EU 지침이나 조약에 대해서는 다른 회원국들에 재협상을 하자고 제안한다. 정부는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유럽기구 내에서 끝까지 투쟁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먼저 국민의 힘에 호소하거나, 국민의 결단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항시 열려 있어야 한다.”

유럽 질서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EU로부터 탈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멜랑숑은 “리스본 조약을 폐기하자는 것이지, 결코 EU에서 탈퇴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로화 포기는 어떠한가? 니코노프는 “각 정부가 자국 경제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자국의 통화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그런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온갖 가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반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려면 좌파 정부가 유럽이라는 틀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혹 이런 상황이 정치 위기로까지 번지는 것은 아닐까? 르 이아릭은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그런 정치적 위기에도 대비해야 할 때이다.

 

글·앙투안 슈바르츠 Antoine Schwartz
작가. 프랑수아 드노르와 공동으로 <사회적 유럽은 실현되지 않는다>(레종다지르 출판사·파리·2009)를 저술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세르주 알리미, ‘좌파가 유럽이라는 이름을 포기할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6월.
(2) 프레데리크 로르동, ‘복지 지키려면 임금 깎아라? 캉드쉬 궤변의 경제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4월.
(3) 사회당, ‘세계와 유럽의 새 판도를 위해’, 2010년 10월 9일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강령.
(4) 2009년 유럽의회선거 프랑스 투표율은 40.63%에 달했다. 안 세실 로베르, ‘정치적 게임에 질식하는 사회운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3월.
(5) 피에르 부르디외, ‘유럽사회운동을 위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6월.
(6) 1944년과 1985년 알바니아에서 실시된 엔베르 호자의 자급경제 정책을 기치로 내건, 슈벤망을 주축으로 한 사회당 좌파 세력.


 유럽통합주의의 꿈

지난해 11월 19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은행위원회에 참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연설 도중 “EU 창설자들의 약속을 다시 지켜가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1) 유럽 통합 과정을 재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IMF 총재는 ‘고용단일시장’ 창설을 제안했다. 고용단일시장은 유럽 노동자가 자신이 지닌 모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실업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칸 총재는 “그 계획은 ‘중심’, 즉 지도층이 주축이 돼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럽국이 저마다 예산 문제로 고심하는 상황에서 스트로스칸은 스스로 ‘매우 야심찬 해법’이라고 칭한 대책을 공개했다. “유럽중앙은행에 준하는 독립적 지위를 지닌 중앙집권적 예산기구를 창설하자. 이 기구가 각국의 예산정책을 수립하고, 중앙예산에서 필요한 만큼 재원을 배분하게 하자.” 이 말은 곧 유럽국의 예산정책을 결정할 민주주의적 정당성이 결여된 전문기구를 또 하나 만들자는 주장이 아닌가? 한편, 스트로스칸 총재는 고용단일시장 창설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그는 향후에 또다시 이 이야기를 꺼낼 심산인 걸까?

<각주>
(1)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Europe’s Growth Challenges’, 프랑크푸르트, 2010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