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파타, 아랍 혁명에 떠밀린 악수

2011-06-07     알랭 그레슈

지난 5월 15일 시위를 주도한 일단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이스라엘로 향해 모이자고 촉구했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 국기만 들고 모든 폭력적 수단은 사용하지 말자고 했다. 아랍 혁명에 고무된 이번 시위는 평화협상 실패, 하마스와 파타가 맞닥뜨린 전략적 난관의 산물이다.

지난 5월 15일 이스라엘 국경에 밀집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꿈이요, 다른 누군가에겐 악몽이었다. 이날은 유대 국가에는 63번째 건국기념일이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에겐 수십만 명이 집에서 내몰린 ‘나크바’(대재앙)의 날이다. 시리아(1), 레바논, 요르단, 가자지구에서 온 시위자들은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원문 보기>>

이스라엘 앞에 두고 오랜 적대

시위자 수는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전세계는 ‘만약 내일이라도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평화행진을 계속해 국경과 장벽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1960년대 팔레스타인의 변화를 이끌었지만,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인정을 받지 못한 난민들이 다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것일까?

시위대는 라말라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역, 가자지구, 베이루트 및 암만에 거주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선출하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회의를 마련하고, PLO를 재설립하자고 했다. 독립운동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적대적 반응(5월 15일 무장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시위대 14명 사살)은 지도부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랍 혁명을 뒤좇아 발생한 ‘팔레스타인 민심’이 보여준 유례없는 열망은, 하마스(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로,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함)는 물론 파타(PLO 중 최대 조직으로, 근본주의인 하마스와 달리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목적으로 함)의 의도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의 민심은 적대적인 두 조직을 비롯해 13개 팔레스타인 정파가 지난 5월 4일 카이로에서 협정을 체결하게 만들었다. 협정문의 주요 내용은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인물로 정부 구성, 하마스와 파타의 상대편 포로 석방, 향후 1년 안에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실시, PLO 개혁, 전문적인 안보군 창설을 위한 군사조직 통합 등이다. 우선 과제는 봉쇄 조처가 내려진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들이 끊임없이 원용하는 오슬로 협정은 인정한다면서, 당시 협정을 체결한 PLO(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아니라)만이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의 지위에 관한 최종 협정을 놓고 이스라엘과 협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PLO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칼레드 마샬 하마스 최고지도자의 선언도 무시했다. 칼레드 마샬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여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면서, 팔레스타인 국가가 설립되면 하마스는 폭력을 포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2)

다시 일어서는 난민들

파타와 하마스 간에 체결된 협정은 지난 몇 년간 양쪽의 교활한 뒷거래를 지켜봐온 모든 관측통들을 놀라게 했다. 협정의 많은 부분이 모호한 상태이고, 양쪽의 불신이 뿌리깊은 상황에서 어떤 조처가 취해질지 아직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내부 상황이나 변화된 지역 상황으로 볼 때 양쪽 협의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파타와 하마스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반대 시위에 부딪혔다. 주요 구호는 다른 아랍 국가에서처럼 ‘국민은 체제 붕괴를 원한다’가 아니었다. 라말라에서 만난 지식인 자밀 히랄은 “우리는 체제도 없고, 국가도 없다”며 “단지 권력기관만 있을 뿐이고, 그보다 상부에는 점령자가 있다”고 말했다.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우리는 분열 종식을 원한다”고 외쳤다. 파타와 하마스는 전략적 난관에 봉착한 터라 국민의 요구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파타가 1993년부터 기대한 평화 프로세스는 몇 년 전부터 무산됐다. 그러다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겸 파타 사무총장인 아바스의 운동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끊임없이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주장하는 이스라엘과는 어느 방면으로든 대화의 여지가 사라졌다(오바마 대통령이 근동 문제에 대해 연설한 날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에 1550채 규모의 정착촌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저항’의 기치를 내건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정전을 유지하며 다른 팔레스타인 정파에도 경우에 따라서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가자지구에서 알카에다와 일부 연계한 살라피 단체와 대치해야만 했다. 이 단체들은 하마스가 ‘시온주의자인 적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고, 내부적으로는 사회의 이슬람화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난한다. 가자지구에 정착한 친팔레스타인인 이탈리아 운동가 비토리오 아리고니가 지난 4월 한 과격단체에 살해당한 사건은 경고 포격이었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이 계속되고,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하마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파타와 하마스는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다. 그들의 행동(권위주의·대중영합술·부패 등)은 아랍 국가에서 팽배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동일한 성격의 폭동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급변하는 지역 상황이 두 정파를 타협으로 이끌었다. 파타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가장 돈독한 관계의 동맹을 잃었다. 시리아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정부가 이를 강경 진압하면서 하마스의 중요한 지원자의 힘이 약해졌다. 시리아는 하마스가 요르단에서 추방됐을 때 지도부에게 근거지를 제공했다. ‘무슬림형제단’(하마스의 기원)과 연계된 영향력 있는 수니파 지도자 유세프 알카라다위는 바스당이 더 이상 시리아를 지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체제를 단호하게 비판했다.

압도적 민심은 “분열 종식”

이슬람 정당의 지도부를 당황하게 만드는 다른 지역적 정세 변화가 있다. 바레인 정부의 민주화 혁명 탄압과 걸프만 국가들에 의한 시아파 시위대 폭력 진압은, 이 국가들과 이란 간 긴장 상태를 한층 악화시켰다. 하마스에게 자금을 대준 걸프만 국가의 부유한 사업가들이 하마스와 이란 정부의 관계를 곱게 보지 않던 차였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수니파 국가인 이집트와 친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 이는 이집트가 대통령 퇴진으로 정치 성향이 변하면서 한결 수월해졌다.

이집트 외교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라파 국경검문소를 개방하겠다”고 밝혔다.(3) 사미 아난 참모총장은 페이스북에 “이스라엘 정부는 평화회담을 언급할 때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고 “팔레스타인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4)

주시리아 이집트 대사를 지낸 마흐무드 슈크리는 “무바라크는 언제나 미국 편만 들었다. 이제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모델이 될 만한 민주주의를 마련하고 이집트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란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5) 이런 노선의 변화는 (시리아 정부와 마찬가지로) 파타와 하마스의 단일정부 구성 합의를 존중하는 이란과의 관계 개선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지역 정세가 형성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이 실패하자(조지 미첼 근동평화특사의 사임으로 입증됨)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2년 전 카이로 연설에 이어 이슬람 세계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미국이 역사적으로 옳은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미 국방부 5함대가 주둔해 있는 우방국 바레인 정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은 비난했지만, 미국에 협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역할에는 침묵을 지키며 이해와 가치를 조합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표명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대통령 연설에 앞서 “미국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었다. 로버트 드레이퍼스는 <네이션>에서 “중동 지역에서 아직도 미국의 말을 듣는 이가 있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6) 그는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란은 막대한 경제제재와 반복되는 군사 개입 위협에도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레바논·팔레스타인·걸프만 국가의 반미운동을 지지”하고 있으며, “2003년 침공으로 새로 들어선 이라크 정부는 미군 주둔을 거부하고 이란과 새로운 동맹관계 구축을 축하하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바레인의 시위 진압을 비난한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궁색해진 미국, 뻣뻣해진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론’은 물론 이에 근거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5월 20일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무서울 게 없다는 태도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역사적·지정학적 훈계를 했다. 양쪽 대표의 의견차는 미디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스라엘 총리가 참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회담에 참석하기 전에는 걱정되는 점이 있었는데, 회담이 끝날 때는 아주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7)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확인했다”고 했다. 이는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변함 없는 원칙이지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거대한 장애물이기도 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과 2008년에,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승인했었다. 

대선을 17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오바마 대통령의 능력은 불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1967년 국경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승인할지를 논의하게 될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미국은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점이다. 수십 년 전부터 모든 유엔결의안(심지어 미국 정부가 표결한 결의안까지)을 위반해온 정부에 가해지는 모든 압력에 반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글· 알랭 그레슈 Alain Gre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근동문제 전문가.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자국 내 팔레스타인 난민 시위대에게 그동안 진입을 통제해온 시리아가 이스라엘 접경 지역 골란고원의 통행을 허락한 것은, 다마스쿠스 체제 붕괴가 이스라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스라엘과 미국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2) 하마스를 거부하는 이유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 역사학자 지브 스턴헬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회(총 120명)에 리쿠당 의원을 포함해 39명으로 구성된 반대파가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영토를 단 1㎠도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런 의견을 가진 의원이나 정당을 정부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파타-하마스 합의가 부른 이스라엘의 허풍’, <내셔널 인터레스트>, 2011년 5월 13일 참조).
(3) ‘이집트, 가자지구 봉쇄 풀다’, 아흐람 온라인, 카이로, 2011년 4월 29일.
(4) ‘이집트, 라파 국경검문소를 개방하다’, Y-net, 텔아비브, 2011년 4월 29일.
(5) ‘이집트 과도정부, 이스라엘의 적인 이란과 하마스와 관계 개선’, <뉴욕타임스>, 2011년 4월 28일.
(6) ‘오바마의 중대한 중동 연설, 그런데 중동 지역에서 아직도 미국의 말을 듣는 이가 있는가?’, <네이션>, 뉴욕, 2011년 5월 19일.
(7) 스티브 리 마이어스가 인용, ‘오바마와 네타냐후가 평화를 논하는 한 분열은 계속된다’. <뉴욕타임스>, 2011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