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돈을 밝히는 독일 병원들

의사와 간호사들이 비판하는 독일 의료계 경제논리

2020-10-05     라헬 크네벨 | 본지 독일 특파원

코로나19의 확산이 한창일 때, 독일은 집중치료실(ICU) 병상 개수에 여유를 보이며 타 국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하지만 실태를 살펴보면, 독일 의료계와 의료진은 수 년 전부터 구조적인 인력난과 예산 부족을 호소해 왔다. 독일 병원들도 진료비 부과시스템이 프랑스의 행위별 수가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악셀 호프만은 오랜 경력의 고참 간호사였다. 2004년 그가 함부르크에서 일하던 병원이 민영화되었을 때, 그는 영리 목적의 대형 병원 직원이 되기보다 이전처럼 공무원 신분으로 남길 바랐다. 그는 현재 의료 실무도 아닌 ‘병원 사무를 보는 상황’이다. 10년차 간호원인 콘스탄체 바이헤르트도 함부르크의 또 다른 병원에서 일하다 직장을 그만둔 뒤 지금은 노인들을 위한 방문 간호 일을 맡고 있다. 그는 “아끼던 직장이었고, 다시 돌아가고도 싶지만 그러자면 노동 조건이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사인 슈테펜 하게만도 근무 환경 때문에 7년 이상 근속하기가 힘들다고 얘기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보통 희생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이를 악용하는 경영진은 우리가 요구 사항 자체를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독일 의료진 가운데에는 이렇듯 눈에 띄게 안 좋아진 근무 조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베를린의 한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일하는 안야 포크트도 “쉬는 게 가능했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면서 “그때는 환자들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휴무일조차 한 달에 한 번 될까 말까하다”라고 성토한다. 

 

인력과 예산 부족에 시달리기는 독일 병원도 마찬가지 

코로나19 사태 동안 프랑스 언론에서 극찬한 독일 의료계이지만, 정작 독일 역시 인력 및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간호사든 의사든 의료계 노조에서는 한 목소리로 심각한 의료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한스뵈클러 재단의 연구에서도 신규 정규직 간호 인력이 10만 명은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1) 심지어 간호사는 그 노동 강도로 인해 오늘날 비인기 직종에 속해 있다. 물론 독일의 집중치료실 병상 수가 유럽 주변국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병상 수가 16.3개, 이탈리아는 8.6개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34개에 달한다.(2) 그러나 라코비츠 민주의사연합회장은 “독일에서 이탈리아 북부 수준으로 코로나19 중증 환자가 쏟아졌더라면, 독일은 병상만 남아돌 뿐 환자를 치료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기 몇 달 전 독일에서는 병원에 그렇게 많은 병상 수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었다. 베르텔스만 재단에서도 (인력 수를 감안하면) 병원 절반이 사라져야 한다고 권고했다.(3) 라코비츠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다 보니 모두가 병상이 많은 걸 다행이라 여긴 것”이라고 강변했다. 

오늘날 독일 의료계의 이 같은 모순을 이해하려면 지난 수십 년 간 독일에서 어떤 정책 결정이 내려져 왔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1985년 의료 민영화법이 통과되면서 독일 의료 시장은 영리 목적의 민간 기업에 대문이 열렸다. 자나, 아스클레피오스, 뢴, (다국적 의료 기기 업체 프레네시우스에 매각된) 헬리오스 등 초대형 의료 그룹의 태동과 성장이 이뤄진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진료비 책정 방식에 있어서는 공공 의료 기관이든 영리/비영리 민간 의료 기관이든 전혀 차이가 없었기에 지역 의료의 기본 틀에 있어서는 각 기관의 차이도 없었고, 실제로 사람들도 각 의료 기관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2004년 프랑스에서 행위별 수가제가 도입됐을 때, 독일도 거의 유사한 진료비 부과 체계를 신설했다. 실질적으로 진료가 이루어진 모든 항목에 진료비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입원 기간에 상관없이 질병군에 따라 진료비를 상정하는 질환별 정액제였다. 프랑스처럼 독일에서도 인공 관절이나 외과 시술 등 전문 기술이 동원되는 진료는 자연 분만 또는 소아과 치료보다 훨씬 더 많은 진료비를 벌어들일 수 있다. 프랑스의 행위별 수가제건 독일의 질환별 정액제건 이들 두 수가제의 모태는 바로 1980년대 초 미국에서 태동한 포괄수가제였다.(4)

독일 지역 연합 우베 륍킹에 따르면, “새로운 진료비 부과 체계를 도입한 목적은 무엇보다도 수익성을 높이는 데 있다. 이게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병원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이로써 병원 수가 감소한다는 건 문제다.” 랜더(주)에서 관할하는 대학병원과 달리 독일의 공공 의료기관은 지방 관구와 란트크라이스(광역군) 소속이다. 따라서 결손 부분을 메우는 것도 결국은 지방 정부의 몫이므로 역내 병원들이 민간 의료 기업에 매각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후 해당 병원의 수익성이 좋지 않다면 이를 인수한 기업에서는 폐쇄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독일에서 폐업한 병의원만 하더라도 2000년 이후 300곳 이상이다. 결국 5만 개에 달하는 병상이 사라졌지만, 진료 건수는 되레 수백만이 늘었다. 같은 시기 민간 의료 시설은 한층 더 확대됐는데, 1992년만 해도 15%에 불과했던 민간 의료 기관은 2018년 기준 37%로 증가하며 전체 의료 기관의 1/3인 37%를 차지했다.(5) 수많은 공공 의료 기관이 적잖이 민영화되었으며, 사람들의 반대에도 민영화는 지속됐다. 가령 2004년 함부르크 지역 병원 가운데 일곱 곳이 아스클레피오스 그룹에 매각됐을 때, 대다수 지역 주민들이 반대했다. 지역 주민 총투표에서는 반대표가 3/4에 달했지만 결국 민영화는 강행됐고, 목적을 달성한 병원들은 소위 ‘돈 되는’ 환자들만 치료하려 들었다. 공공 의료기관의 재무 구조 역시 민간과 같다보니 결국 이들 또한 수익 경쟁에 뛰어들고 만다. 라코비츠 회장은 “그렇게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인 병원들이 심장의학과나 정형의학과 주축의 행위별 정액 과금제가 가장 수익성이 높다는 걸 깨닫고 그에 따라 장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독일에 집중치료실 병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 의료 체계의 또 다른 특징은 ‘운영비’와 ‘투자비’라는 비용 구조의 이원화다. 인건비에 해당하는 ‘운영비’는 의료보험에서 충당하지만 건물이나 장비 등에 대한 투자비용은 보통 랜더(주) 당국에서 끌어온다. 이 점은 민간이든 공공이든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국채를 줄이려는 주 정부 당국에서 예산을 많이 풀지 않다보니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적은 돈의 예산만이 의료 부문에 할당된다”는 것이 하랄트 바인베르크 린케당(좌파) 의원의 분석이다. 독일의료연합의 추산에 따르면 공공 재정에서 충당되어야 할 예산 부족액은 연간 40억 유로에 달한다. “이에 운영비로 할당된 예산이 부분적으로 투자 설비 쪽에 쓰이고, 결과적으로는 인건비 쪽에서 비용 절감이 이뤄진다.”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행위별 수가제로 가면, 어떻게 경영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병원 수익이 크게 달라진다. ‘포괄수가제 매니저’라는 신규 직책이 생겨난 배경이다. 과금 대상이 되는 천 개 이상 범주의 진료 행위가 제대로 기록되고 있는지 체크하는 직업도 신설됐다. 베를린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안야 포크트 역시 “업무 시간의 20% 가량을 컴퓨터 앞에서 자료 입력하는데 다 쓴다”며 “의사들 상황은 더 최악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현장에서는 의료계가 자꾸만 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것에 이력이 난 사람들이 현행 수가제에 대해 점점 더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2019년 의사 십여 명과 다수의 의료진 집단은 주간지 <스턴> 지면을 통해 “의료계를 살려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현행 과금 체계에서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궁금한 환자들을 일일이 보살피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아플지, 생명엔 지장이 없는지 알고 싶은 환자들을 세심히 보살필 수가 없는 것이다. [...] 오늘날 의료계의 경제 논리는 비인간적인 의사와 간호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6)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독일 의료계 파업 

상황이 이러하자 2015년부터는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병원 실무진의 파업도 점차 늘어갔다.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서 처음으로 의료진 파업이 일어난 뒤, 독일 내 이십 여개 공공 병원에서는 업무 부담을 줄이는 노사협정이 체결됐다. 이에 따라 해당 병원은 환자 수 대비 의료진의 일정 비율을 지켜야 했으며, 이 비율은 업무 별로, 또한 의료진 경력에 따라 차등화됐다. 업무 일정에 여유가 생긴 간호사들은 이제 어느 정도 숨 쉴 틈을 갖게 됐다.

노조 쪽에서 협상을 진행한 미카엘 케팅은 “이 같은 협정 체결의 목적은 곧 경영진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실 의료진 파업은 운수 노조 같은 곳의 파업과는 달리 대체로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편이다. 덕분에 오늘날 의료 부문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폐단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마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 싶고, 이는 다른 경제 부문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일이라 사료된다.”

비단 의료진 뿐 아니라 시민들도 “병원에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독일의 열두 개 도시에서는 이를 위한 시민 동맹이 결성되었으며, 바이에른과 브레멘,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에서 이들 시민 동맹은 주민 발의 총투표를 실시하는 데 필요한 서명 수백만 장을 받았다. 하지만 대다수 지역 당국은 – 병원 진료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주체임에도 – 이 문제가 연방 당국 소관이 아니라면서 시민들의 요구를 기각했다. 

그래도 소도시 차원에서의 민영화는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최근 몇 년 간 병원들은 다시 지자체 관할로 넘어가고 있다. 6월 초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루트비히스루스트 지역 광역군 의회에서도 1997년 민영화됐던 74개 병상 규모의 소형 병원을 지자체가 다시 인수하라는 결정을 내렸는데, 지역 의원인 슈테판 슈테른베르크는 해당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 같은 결정의 발단은 작년 말 아스클레피오스 그룹의 자회사로서 이 병원을 소유했던 회사가 아무런 협의 없이 모자 병동을 폐쇄하겠다고 고지한 것이었다. 이후 “주민들의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일어났으며, “농촌 지역, 특히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의 의료 서비스 공급 구조를 재편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슈테판 슈테른베르크 의원은 설명했다. 그는 “병원이 지자체 관할 하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진 않지만 사람들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려면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간 기업이 경영 전문가로서 함께 보조를 맞춰줄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병원 지분 51%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민간 기업에 매각된다. 아울러 지자체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다른 역내 병원과도 함께 공조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슈테른베르크 의원은 지역 차원에서 “수가제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다른 부문에 특화된 다수의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헤센 주에서는 미카엘 코흐 의원이 소속 지역 한 병원의 ‘재공영화’를 추진한 바 있다. 보수 우파 소속의 그는 “독일 병원 재정이 부족하다”면서 “독일 병원의 유지비와 유사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은 무엇보다도 지역 내에서 충당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을 경찰서나 소방서에 비유했는데,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동원된 횟수에 따라 돈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병원들의 재정 부족 문제가 계속해서 논란이 되자 결국 정부 차원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0년 초부터는 일부 의료 부문에 특별 예산이 편성되었으며, 해당 부문은 앞으로 행위별 수가제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또한 코로나19 환자에 대비해 공석으로 유지하던 병상들도 예산 지원을 받게 됐다. 통상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환자 없는 병상의 경우 돈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으로 의료 보험 공단의 지출이 적지 않았을 뿐더러 수개월 간 수술 환자를 거의 받지 못한 병원들도 수익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병원 폐쇄에 대한 논의가 다시 거론되진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의료 과실을 걱정하는 의료진도 있는데, 정부의 마구잡이식 동원으로 부실한 치료가 이뤄지진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일 때 (앙겔라 메르케 총리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보수파 아르민 라셰트가 주지사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정부에서는 의료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치료하도록 강제하는 조치를 채택하려 했다. 결국 극심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주정부안은 결국 폐기됐다. 전직 간호사인 악셀 호프만과 슈테펜 하게만이 억지로 간호사 가운을 다시 걸치는 상황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글‧라헬 크네벨 Rachel Knaebe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일 특파원. 독립 저널리스트로서 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사회 및 경제 이슈를 보도하고 있다. 저서에 『La Révolte  de la psychiatrie 정신의학의 반란』(공저, 2020)이 있다.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Michael Simon, ‘Von der Unterbesetzung in der Krankenhauspflege zur bedarfsgerechten Personalausstattung’, Hans-Bockler-Stiftung, Dusseldorf, 2018년 10월.
(2) ‘Beyond Containment : Health systems responses to Covid-19 in the OECD’, OECD, Paris, 2020년 4월 16일.
(3)  ‘Zukunftsfähige Krankenhausversorgung’, Bertelsmann 재단, Gütersloh, 2019. 
(4) Philippe Froguel&Catherine Smadja, ‘La peau de chagrin du systeme public apres six ans de reaganism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87년 6월호 및 다음을 참고 : Reinhard Busse, Alexander Geissler, Wilm Quentin et Miriam Wiley (dir.), 《Diagnosis-Related Groups in Europe》, Open University Press, Maidenhead, 2011.
(5) 출처: Destatis 및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Arbeit und Qualifikation 연구소.
(6) ‘Der Arzte-Appell : Rettet die Medizin!’, <Stern>, Hambourg, 2019년 10월 1일, www.ster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