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고발한 ‘딥 스테이트’의 실체

프랑스 외교부의 ‘이단’ 외교관들

2020-10-05     마크 앙데벨 | 저널리스트 겸 작가

미국과의 동맹을 존중하지만 미국을 추종하지는 않는다는 프랑스의 독특한 외교 노선은 드골 장군이 수립한 이후 시라크 대통령 시절까지 유지됐지만, 사르코지 대통령과 올랑드 대통령 시절 신보주수의 외교관들이 외교부에 입성하면서 단절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드골주의의 명맥을 이어나가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2019년 8월 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의 외교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엘리제궁에서 열린 연례 ‘재외 공관장 회의’에서 그는 외교부 내부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 그림자 정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정책과 정치를 왜곡하는 기득권-역주)의 존재를 고발했다. “일부 해외 이론가들이 말하듯, 프랑스에도 ‘딥 스테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느닷없이 말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면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진실을 아는 건 우리야. 그러니 우리는 항상 해왔던 대로 할 거야’라고 집단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러지 않기를 강력히 권고한다.”(1)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의에 참석했던 공관장들 사이에서 불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프랑스의 귀족행세를 하는 이 고위 공직자들은 이런 혹평에 익숙하지 않다. 사실 이 같은 대통령의 권위적인 발언은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 일부는 이를 나약함의 실토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외교관은 “외교부는 이 발언을 매우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라고 실토했다. 

파리의 ‘황금 삼각형’(2) 지역인 로스차일드 투자은행과 라자르 투자은행 인근에 위치한 오귀스트-드부지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피에르 셀랄은 2009~2014년 외교부 사무차관을 지낸 외교부에 정통한 인사다. 그는 또한 오랜 기간 주 유럽연합(EU) 프랑스 대표부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이런 그도 마크롱 대통령이 사용한 표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딥 스테이트’에 대한 언급에 사실 좀 놀랐다. 외교부는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철저하게 대통령의 권한에 복속하는 행정부처다. 대사들과 대통령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외교정책은 국가의 약속, 즉 대통령의 약속이다.” 

제5공화국 수립 이후 군대의 통수권자를 겸하게 된 대통령은 대외정책도 장악했다. 이때부터 외교와 국방은 대통령의 ‘고유 분야’에 속한다. 하지만 외교부 전문가인 크리스티앙 르켄 파리정치대학(Science Po) 국제연구소 소장은 “외교관들은 일을 느릿느릿 엉망으로 처리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저항한다”(3)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발언을 하기 1주일 전, 마크롱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프랑스 남부 바르(Var)주(州)에 있는 대통령 여름별장인 브레강송 요새에 초청했다. 2017년 6월 베르사유 궁으로의 초대 이후 두 번째 초청이었다. 프랑스 주최로 비아리츠(Biarritz)에서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시점에 이뤄진 두 정상의 만남은 많은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는 2014년 G8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외교관들에게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검토하라”며 두 나라의 대화를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멀어지도록 밀어내는 것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다. 우리가 러시아를 배척하면 러시아의 고립으로 긴장이 고조되거나 러시아가 중국을 비롯한 다른 열강과 동맹을 맺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출판된 저서『혁명 Révolution』에서 다음과 같이 의향을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양측 모두 점진적으로 제재를 철회할 수 있도록 러시아와 협력하겠다.”(4)

하지만 오늘날 엘리제궁의 한 보좌관은 우리에게 “러시아에 대한 입장이 180도 변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 어떤 경우라도 러시아에 면죄부를 줄 계획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유럽의 공동안보 계획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20여 년 전 부터 코소보, 조지아, 우크라이나, 시리아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5) 동유럽 국가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6) 계획은 비록 실현되지 않았지만 러시아를 자극했다. 미국은 2002년 자국의 우위를 최대한 내세워 옛 소련과 체결했던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Treaty)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19년 2월에는 1987년 체결 당시 소련의 SS-20 미사일과 미국의 퍼싱 미사일 배치에 종지부를 찍고 유럽 중거리 핵미사일 위기를 타개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Treaty)에서도 탈퇴했다. 

프랑스가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단절됐던 러시아와의 대화를 재개하자 유럽의 프랑스 협력국 일부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국가는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프랑스의 독자적인 결정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범대서양주의를 지지하고 러시아에 적대적인 전문가와 논객은 프랑스 국내에도 많다. 브뤼노 테르트레 전략연구재단 부이사장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유럽 전체가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 프랑스는 독자적인 노선을 택했다. 결국 프랑스는 어떤 구체적인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도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러시아와 충분히 대화하지 않았다’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프랑스 외교계 일부는 러시아와의 대화 재개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피에르 셀랄 전 외교부 사무차관은 “외교부의 상당수가 대(對)러시아 정책에 원대한 계획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런 계획들은 지금은 제재의 형태로 축약된 상태다. 이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외교부 내부가 아닌 외부의 비정부기구(NGO)와 언론 쪽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랍정책’ 또는 ‘서구권 혈통’

마크롱 대통령은 2016년 1월 경제부 장관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후 러시아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경제외교’ 차원에서 2012년 ‘러시아 담당 프랑스 특별 대표’로 임명된 장 피에르 슈벤느망과 동행했다. 서로 신망이 두터웠던 두 정치가는 즉시 러시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슈벤느망은 마크롱 대통령이 1990년대 말 청년 시절에 자신의 정당인 시민운동당(MDC)의 일원이었다고 회고하며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내게 공직에 복귀하길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마크롱이 그에게 맡긴 새로운 임무는 러시아를 유럽 평의회(Council of Europe)에 완전히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유럽 평의회는 유럽의 47개국, 넓은 의미에서 벨라루스를 제외한 유럽 전체가 가입한 정부 간 기구다. 실제로 러시아는 2019년 6월 유럽평의회에 복귀해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상실한 투표권을 되찾았다. 장 피에르 슈벤느망은 외교관 특유의 표현 대신 직설적인 화법으로 외교부 내부에 존재하는 저항세력의 존재를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이 참모진과 함께 나를 맞이했을 때, 나는 구(舊)노선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음을 즉시 알아챘다. 나는 모든 단계에서 이 ‘딥 스테이트’와 충돌했다. 많은 외교부 책임자들이 내가 하는 모든 제안을 반박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2007~2010년, 전 프랑스 외교부 장관)와 그가 임명한 인사들이 외교부를 담당한 이후 프랑스의 대(對)러시아 정책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노선을 따랐다.”

1970년대에 등장한 ‘신보수주의’는 당시 헨리 키신저의 ‘현실정치(Realpolitik)'에 대항한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확산시킨 외교 사상이다. 반(反)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서구의 ‘가치’와 미국의 패권을 적극적으로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좌파’ 지식인들은 공화당에 합류해 2001~2009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전성기를 누렸다. 2003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위협까지 하며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단호히 반대했다. 이때 프랑스에서는 신보수주의 지식인, 언론인, 외교관이 결집해 드골주의의 유산과 ‘프랑스의 대(對)아랍 정책’과의 단절을 요구하고 나섰다. 재외 외교관,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NATO 주재 외교관들은 대서양 연대, ‘서구권 혈통’, 인권 또는 내정 간섭권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에 찬성을 선언했다.

“당시(2000년대 초) 제라르 아르노가 외교부 전략국장을 맡고 있었다. 위베르 베드린 외교부 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피에르 셀랄의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제라르 아르노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해 매우 강경한 어조의 발언을 하곤 했다.” 1999~2002년 외교부 북아프리카·중동 국장과 이후 이라크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전직 외교관 이브 오뱅 드 라 므쉬지에르가 이같이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원자력위원회에서 전략 분야를 진두지휘한 테레즈 델페쉬 주변의 세력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의 노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번은 테레즈 델페쉬가 나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라크가 핵폭탄 개발에 거의 성공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라크는 핵 개발을 재개할 능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2003년 이전에는 이런 노선을 취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현재는 은퇴한, 당시 친미주의의자로 통했던 제라르 아르노는 자신의 과오를 고백했다. “나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수장을 맡을 만큼 바보가 아니다.”(7)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시라크 대통령과 빌팽 총리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라고 인정했다.

반(反)공산주의 역사학자인 프랑수아 퓌레의 오랜 동거녀였던 정치학자 테레즈 델페쉬가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를 중심으로 외교부의 전략, 핵확산 방지 분야 전문 고위직들이 결집했다. 다른 외교관들은 곧 이들을 ‘이단’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는 2001년 미국 9·11일 테러 이후 창설된 싱크탱크로, 명백하게 이라크전을 지지했던 오라토리오(Oratoire) 서클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이기도 했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결정으로(준비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말부터 시작됐다) 프랑스가 NATO 통합 사령부에 복귀한 이후 이런 ‘이단’ 외교관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사르코지의 후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추종하는 대(對)근동정책을 펼쳤다. 올랑드 대통령 시절 외교부 장관이었던 로랑 파비우스는 이란 핵문제에 대해 오바마 미행정부보다 더 강경한 노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단’ 외교관들은 우파, 좌파 정부 모두의 신임을 받았다. 장 이브 르 드리앙 외교부 장관은 2019년 공관장회의 연설에서 2005년 출간된 테레즈 델페쉬의 저서『세계의 야만화』를 언급하며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딥스테이트에 대한 비난 발언을 한 지 고작 2일 지난 시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1997~2002년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의 동거정부 시절 외교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마크롱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는 위베르 베드린은 “프랑스가 ‘서구의 가치’를 수호하고 과도하게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구주의파’ 외교관들이 15여 년 사이 외교부의 정치, 전략 부처 지휘부를 꿰찼다”고 한탄했다. 지난 20년 사이 외교부 내부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뒤집혔다. 크리스티앙 르켄 파리정치대학 국제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아랍 전문가들이 외교부의 귀족으로 대접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 출세를 한다”고 지적했다. 

 

‘드골-미테랑파’ vs. ‘신보수주의파’

몇몇 부서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외교부 내부의 역학관계는 더욱 빠르게 변했다. “지역국들은 예전의 힘을 잃고 현재 외교부에서 군림하는 정치·안보국에 종속됐다. 이로써 모든 것이 변했다.” 드 라 므쉬지에르가 설명했다. 여기에 세대별 차이도 더해졌다. “45~55세 외교관들은 서구주의에 젖어 있다. 2000년대 이후 파리정치대학이 학생들에게 프랑스의 대외정책에 중점을 두고 국제관계학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미래의 프랑스 외교관 대부분이 파리정치대학을 거쳐 간다.” 크리스티앙 르켄 연구소장이 덧붙여 설명했다. 20년 전부터 프랑스 외교계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프랑스 고유의 외교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드골-미테랑파’와 프랑스가 ‘서구 진영’의 최우수 학생이 되길 바라는 ‘신보수주의파’가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과 파비우스 외교부 장관 퇴임 이후 ‘이단’ 외교관들의 기세는 다소 약해졌다. 제라르 아르노는 파비우스 장관 시절 분석·예측·전략 센터(CAPS)의 책임자를 지낸 쥐스탱 바이스와 함께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마크롱 선거캠프에서 외교 문건을 작성했다. 하지만 엘리제궁의 외교 수석 보좌관으로 최종 발탁된 이는, 고전적인 프로필을 지닌 전 독일 주재 프랑스 대사 필립 에티엔이었다. 한 전직 보좌관은 “그는 선거기간에 외교부의 다양한 파벌들을 아우르는 평화정책을 펼쳤다”라고 증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인 이란 전문가 오렐리앙 르슈발리에도 필립 에티엔과 함께 외교보좌관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2019년 봄 외교계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오렐리앙 르슈발리에는 남아프리카 대사로 임명됐다. 미국 대사로 임명된 필립 에티엔의 외교수석 보좌관 자리는 올랑드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에마뉘엘 본느가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슈네르 전 외교부 장관의 비서실장이자 NATO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필립 에레라가 외교부 정치·안보 국장으로 임명됐다. 장 이브 르 드리앙 외교부 장관의 비서실장에는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니콜라 로슈가 임명됐다. 마르탱 브리앙은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의 비서실장에 유임됐다. 필립 에레라, 니콜라 로슈, 마르탱 브리앙은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에 요직에 있으며 적극적으로 범대서양주의를 주창했던 인물들이다. 

왜, 마크롱 대통령은 이들의 임명을 승인해놓고는 ‘딥 스테이트’를 고발하고 나선 것일까? 한 외교관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이 질문의 답을 들려줬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기관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행정부뿐만 아니라 엘리제궁 내에서도 혼자다.” 이런 상황은 프랑스의 평판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2019년 가을에 개최된 발다이 클럽(Valdai Discussion Club ‘러시아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전문가 회의체-역주) 회의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랑스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직접 지적했다. 프랑스 지정학자 파스칼 보니파스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는 딥 스테이트가 뭔지 모른다. 러시아에는 대통령에 복종하는 하나의 국가밖에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 임기 초기 다수의 러시아 관련 시도가 외교부에 의해 제동이 결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필립 에레라를 엘리제궁으로 불러 러시아 관련 사안에 대해 그의 충성심을 확인했으며, 외교부 유럽대륙 국장(발칸반도, 러시아와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 주변국, 중앙아시아 담당)에 프레데릭 몽돌로니를 새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프레데릭 몽돌로니는 시라크 대통령 시절 미셸 알리오 마리 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전 세르비아 주재 프랑스 대사다. “그는 엘리제궁의 외교 담당실에 직통으로 닿아있다”고 한 외교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2019년 8월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전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합동참모의장의 러시아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 우리는 비서실을 통해 르 드리앙 외교부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소프트웨어가 갱신되지 않은 프랑스 외교 

직업 외교관 출신인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외교부 장관은 이라크전 당시 프랑스 내부의 저항세력과 대립했다. “범대서양주의자들은 프랑스 군대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경제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영·미권의 사상을 지녔다”라고 빌팽 전 외교장관이 말했다. 그의 회고록 속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많이 등장한다. “프랑스 기업인협회(MEDEF)와 프랑스 주가지수(CAC 40)를 좌지우지하는 일부 대기업은 미국에 대해 한층 유연한 자세를 권고하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게 보냈다.”(8)

2017년 6월 당선 직후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나는 10년 전 프랑스에 유입된 신보수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모르게 외부로부터 이뤄지지 않는다. 프랑스는 이라크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리비아에서 전쟁을 벌인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 개입의 결과는 무엇인가? 몰락한 국가들에서는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번창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시리아에서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9) 신임 대통령 마크롱은 더 이상 바샤드 알 아사르 시리아 대통령의 퇴진을 시리아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 인터뷰를 읽다 숨이 막힐 뻔한 전략연구재단의 브뤼노 테르트레는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시리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은 어이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다#완곡한 표현.”

마크롱 대통령은 ‘가치’에 대한 담론을 ‘현실 정치’에 대한 담론과 맞바꾸길 원한다. 그는 모두와 대화를 나누기 원한다. 그리고 그 의도를 충분히 보여줬다. 그는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무대에 첫발을 내딛었다. 2017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 행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했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옹호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을 반박했으며, 소르본 대학이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유럽을 위한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가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가 서구라는 한 덩어리에 녹아 흡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야망이 있다.” 위베르 베드린 전 외교부 장관이 이 같이 단언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드골-미테랑주의자가 아니다. 신보수주의자도 아니다. ‘마크롱주의’는 모든 사조를 차용한 혼합체다.” 드골주의에 기반을 둔 실용주의인가, 저속한 기회주의인가? “기본값으로 설정된 외교”라는 것이 국제관계 전문 정치학자인 베르트랑 바디의 평가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정치대학의 모범생으로 일정 부분 드골-미테랑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신보수주의의 일부 주제를 답습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외교의 소프트웨어가 갱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대통령 당선 전인 2016년 이미 자신의 저서『혁명』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에서 균형의 회복”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연합은 하지만 추종은 하지 않는다는 드골주의 명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2월 프랑스는 미국이 지지하는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황급히 인정했다. 지난 1월 미국이 드론 공격으로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암살했을 때는 미국과의 “전적인 연대”를 밝히며 이란에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는 모든 조치”를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와 굳건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근동지역 내 다른 국가들에서는 프랑스의 존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크롱은 근동지역의 위기에 대한 비전이 없다. 너무나 중요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에 대해서도 그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는 것”이라고 전 이라크 주재 프랑스 대사 드 라 므쉬지에르가 강조했다. 2019년 11월 터키는 다른 동맹국과는 어떤 협의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만 얻은 상태로 시리아 동북부 지역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공격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그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10)에서 NATO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는 파격적인 표현의 비판을 했다. 이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스탄불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지금 터키에 있지만, NATO에 가서도 이 말을 다시 할 것이다. 본인부터 뇌사상태가 아닌지 확인해보라”(11)라고 냉정하게 응수했다. 

 

“안일한 범대서양주의로 인한 패배”

프랑스는 러시아 문제에서도 이런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기를 할 때 완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빌팽 전 총리가 단호하게 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과는 충분한 관계를 쌓지 않고 미국이라는 핵심 국가 한 곳에만 집중해왔다. 2003년 프랑스가 이라크전에 반대하기 위해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 행사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수개월에 걸쳐 러시아 대통령을 설득한 일을 기억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프랑스가 여러 사안에 대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돼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프랑스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가? 망설임과 안일한 범대서양주의 때문에 우리는 모든 점에서 패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사태 해결을 위해 2019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노르망디 형식’ 정상회담(우크라이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참여)은 9가지 합의를 도출했다. 이 중 한 가지 사항인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동부 돈바스 지역 분리주의 반군 사이의 포로 교환(12)은 현재 이행 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러시아가 유럽을 건너뛰고 싶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담당 프랑스 특별 대표로 임명된 외교관 피에르 비몽은 상원에서 말했다.(13) “러시아와 미국이 프랑스를 거치지 않고 유럽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직접 논의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나는 이점이 마음에 걸린다. 유럽은 스스로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이미 2017년부터 “독일과의 전략적 대화”를 통해 진정한 ‘국방 강국 유럽’ 건설을 원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가을 유럽이 “전략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선포하며, 유럽의 국방강화에 대한 야심을 다시 한 번 밝혔다. 하지만 그는 EU 회원국, 특히 중앙 유럽 국가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우려해 이 계획의 실현을 NATO 차원에 맡기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일까? 지난 5월 20일 전략미래학연구소(CEPS)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 국방참모대학교 총장인 뱅상 데포르트 장군은 단도직입적으로 NATO를 비난했다. “NATO는 이제 효용성보다 위험이 더 큰 기구가 돼버렸다. 유럽 국민에게 가짜 안전감을 주기 때문이다. 충격적으로 들리겠지만, NATO는 ‘뇌사상태’에서 조차 우리의 안보, 프랑스와 유럽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 돼버렸다.” 지금까지 미국에 대한 호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장군의 발언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미국이 유럽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데포르트 장군은 “유럽의 전략적 이익과 점점 더 대립하는 강대국 한 나라에 유럽의 전략적 운명을 결부시키는 것은 비상식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이런 시각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우리가 NATO에서 탈퇴하면 유럽의 국방강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협력국들에 신경을 써야한다.” 지난 2월 국방참모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공동안보에서 프랑스의 핵억제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유럽 협력국들과 전략적 대화”를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한 측근은 “유럽은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올랑드 전 대통령은 “프랑스도 독일도 핵억제 분야에 있어서는 공동결정을 내릴 준비가 안됐다”는 말로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외교부, 아프리카 동향 감지능력 잃어

현재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의 위기는 지중해 너머에서 시작됐다. 그는 임기 초기부터 전임 대통령들은 실패했지만, 자신은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리비아에 개입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무아마르 카다피를 상대로 무모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 군사작전의 참담한 결과를 수습해야 했던 이는 올랑드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파비우스 외교부 장관은 터키가 지지하고 UN이 인정하는 파예즈 알 사라지 대통령과 트리폴리 정부를 지지했다. 반면 르 드리앙 국방장관은 이집트, 아랍 에메리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지하는 하프타르 총사령관 편을 들어 리비아 동부에 특수부대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파렴치하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이런 일관성 부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리비아 관련 현안들에서 프랑스를 고립시켰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은 하프타르 총사령관과 사라지 대통령을 프랑스 이블린(Yvelines)주(州)에 있는 라셀생클루 성에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외교부를 배제한 채 엘리제궁의 일부 인사들이 주도한 이 회담은 아무런 외교적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사전 협의 없이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이 회담은 또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2020년 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틈타 프랑스의 해상 통제를 무시하고 트리폴리에 무기와 용병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중국과의 관계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마크롱 대통령은 애매모호하다”라고 평가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중국과 진정한 협력관계 구축을 원하면서도 중국을 신뢰하지 않고 방역선(Cordon sanitaire) 전략을 채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령 해외영토가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균형유지 전략을 거론하며(14) 호주, 인도, 일본과 관련된 계획을 늘리고 있다. 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는 ”프랑스는 중국을 때로는 위협으로, 때로는 시장으로 간주한다.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마크롱은 비(非)유럽, 비(非)서구 협력국들을 평가절하하며 지역 강대국들의 위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체 해외파견 외교관 수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를 비롯한 G20 국가 주재 공관의 외교관 수를 2025년까지 25%로 늘릴 예정이다. “내가 1970년대 외교부에 처음 부임했을 때 아시아국은 이국적인 부서였으며 주로 문화교류에만 집중했다”라고 피에르 셀랄이 미소지으며 회상했다. 외교술은 대외정책에서 전쟁과 무역 제재를 우선시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밀려 부차적인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 이후 외교부는 군대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동향 감지능력을 많이 상실했다. 현재 외교부는 더이상 전위부대가 아니라 경리부서로 전락했다.” 빌팽 전 총리가 지적했다. 오랫동안 아프리카 주재 공관에서 근무한 로랑 비고는 “외교관들은 더이상 분석을 하고 전략을 수립할 능력이 없다. 현재 사헬 지역 관련(15) 분석 및 전략을 내놓는 곳은 국방부와 대외안보총국(DGSE) 뿐이다. 외교의 공백을 군인들이 채웠다”라고 탄식했다. 

이제 외교부의 ‘강경파’들은 고립됐다. 위베르 베드린 전 외교부 장관은 “프랑스의 강경파 외교관들은 트럼프 때문에 매우 난처하다. 그는 미국의 가치와 무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가 간 협의 체제에서 프랑스가 목소리를 되찾으려면, 대통령 한 명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영향력 회복을 진정 원하기는 하는 것일까? 

 

 

글·마크 앙데벨 Marc Endeweld
저널리스트 겸 작가. 주로 정치, 사회 등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의 자유로운 문체와 독립정신을 고려해 수여하는 ‘Prix du livre incorrect’ 상을 2016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Le grand manipulateur, les réseaux secrets de Macron 위대한 조종자, 마크롱의 비밀 조직망』, (Stock, Paris, 2019)이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Emmanuel Macron, 2019년 8월 27일 연설.
(2) ‘Lieux de pouvoir à Paris 파리의 권력 지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2월호.
(3) Christian Lequesne, 『Ethnographie du Quai d’Orsay 프랑스 외교부의 민족지학』, CNRS 출판사, Biblis 컬렉션, Paris, 2020.
(4) Emmanuel Macron, 『Révolution 혁명』, XO 출판사, Paris, 2016.
(5) Maxime Lefebvre, ‘La Russie et l’Occident : dix contentieux et une escalade inévitable ? 러시아와 서구 : 10가지 분쟁과 필연적인 갈등 격화?‘, 로베르 쉬망 재단, 2016년 1월 25일.
(6) Philippe Descamps, ‘L’OTAN ne s’étendra pas d’un pouce vers l’est NATO는 단숨에 동유럽으로 확대될 수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9월호.
(7) ‘Gérard Araud, l’ambassadeur pas toujours très diplomate 항상 외교관답지는 않은 대사, 제라르 아르노‘, <르몽드>, 2019년 9월 20일.
(8) Jacques Chirac (Jean-Luc Barré 공저), 『자서전 2권 : 대통령 시절』, Nil, Paris, 2011. Serge Halimi, ‘Mémoires du président Chirac 시라크 대통령의 자서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11월호.
(9) ‘L’Europe n’est pas un supermarché 유럽은 슈퍼마켓이 아니다‘, <Le Figaro>, Paris, 2017년 6월 22일.
(10) ‘Emmanuel Macron warns Europe: NATO is becoming brain-dead’, <The Economist>, 2019년 11월 7일.
(11) <Hurriyet>, Istanbul, 2019년 11월 28일.
(12) Igor Delanoë, ‘Qui veut la paix en Ukraine ? 누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바라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
(13) 2020년 2월 19일 프랑스 상원의 외교·국방 위원회에서 열린 피에르 비몽 청문회. 
(14) Emmanuel Macron, 2019년 12월 12일 연설.
(15) Rémi Carayol, ‘Sahel, les militaires évincent le Quai d’Orsay 사헬지역, 군인들이 외교부를 몰아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