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에 빠진 제5공화국 정치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안정적’ 체제

2020-10-05     앙드레 벨롱 외

서방에서 프랑스 헌법만큼 대통령 권력을 강력하게 밀어주는 헌법이 없다. 대통령이 ‘공화정의 군주’로 보일 지경이다. 알제리 전쟁의 포화 속에 불안정한 제4공화국이 붕괴했고 그 여파로 이런 안정적인 체제가 탄생했다. 공공 문제, 사회 문제, 보건 문제, 지정학적 문제가 늘어나는 현재, 이 체제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한 공화당 의원은 연금개혁 반대시위 규모에 놀란 나머지 본심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 제4공화국 시대였다면 정부는 벌써 뒤집혔을 것이다.”(1)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반대파였는데도 프랑스 체제의 ‘안정성’이 얼마나 좋은지 설파했다. “두 번 더 안정적이었다간 죽겠다”라고 응수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노란 조끼 시위가 시작됐을 때부터 프랑스 대통령관저와 총리관저는 포위당한 요새가 돼, 시위대에 경찰진압이라는 기름을 뿌려댔다.

대다수 유권자가 연금개혁을 거부했으며 장기파업과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나고 파업기금은 늘고 있다. 그런데도 헌법에는 연금개혁을 저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강한 반대도 무시하며 헌법 제49-3조(정부가 긴급상황이라고 판단했을 경우 총리 및 내각의 책임 하에 하원의 의결 없이도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역주)를 비롯한 모든 법적 무기를 동원하고 있다.(2) 2017년 대선 및 총선 결과를 볼 때 현 정부의 정당성이 상당히 취약함에도 말이다. 

2017년 대선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의 득표율은 1차 투표 17%, 2차 투표 47%에 그쳤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극우 정당과 벌였던 대결에서 62% 지지를 얻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게다가 국회가 이토록 적은 유권자들의 참여로 구성된 것도 처음이었다. 2017년 6월 총선에서 기권표가 무려 57.36%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 마크롱 정부는 유권자들이 위임한 ‘임기’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연금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들에게 백지수표나 주어진 듯 임기 전체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써버릴 심산으로 보인다. 

극도로 불안정했던 제4공화국에 대한 트라우마로 1958년 헌법 제정자들은 체제에 견고한 지속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얼마나 견고한지 프랑수아 미테랑이 ‘영원한 쿠데타’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3) “19세기 말 이래로 정치계가 이만한 안정성을 누린 적이 없었다”라고 마티아스 베르나르 역사학자는 과장을 섞어서 자신의 책에 입장을 밝혔다.(4) 

 

“의원이 되게 해주신 분은 대통령”

여당은 행정부에 복종하게 됐다. 2001년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선거일정을 바꾸면서 이 ‘복종’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때부터 매번 대선이 총선보다 먼저 실시됐으며 국회의원 당선 여부는 엘리제궁을 차지한 자가 유권자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올해 1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이블린 지역의 공화당 의원인 오로르 베르제는 2017년 이래 12명이나 공화당에서 탈당한 현상에 관련한 질문을 받고 순진하게 이를 인정했다. 

세드릭 빌라니의 반항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외쳤다. “제가 의원이 되게 해주신 분이 바로 대통령이에요. 저도, 여당의 다른 모든 분도 그렇게 의원이 된 겁니다.”(5) 이 말을 들어보면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들의 대변인이 돼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프랑스 국민을 상대하는 대통령의 대변인이 돼버렸음을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보장받은 상태로 정부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권력, 다시 말해 프랑스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개혁할’ 수 있다. 대통령직 자체도 5년 동안은 성역이다. 에마뉘엘 대통령은 기소당할 위험도 없고, 자신의 계획이 상원으로부터 거부당할 위험도 없다. 파리 공항 민영화 사례에서 보여주듯 국민투표는 예외적인 절차로 실행하기 힘들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난을 피하느라 고생하는(6) 프랑스 대통령 모습은 실제로 프랑스 민주주의가 쇠약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독재란 한 사람 혹은 한 세력이 법을 결정하는 체제다. 독재는 절대로 지도자를 바꿀 수 없다.”(7) 2020년 1월 24일 분노를 억지로 감추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한 말이다. ‘독재’라는 용어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행 헌법이 ‘다른 이들(야당, 유권자,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한 무리’가 법을 결정할 수 있게 허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1981년에 했던 공약을 위반하면서 1983년 미테랑 전 대통령이 결정했던 ‘긴축으로의 대전환’이 그 전조였다. 

헌법이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국민에게 결정권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국민의 결정에 맡기기로 최종결정하는 것도 대통령 본인 의지다.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사임할지, 은근슬쩍 넘어갈지도 대통령 자유다. 1969년 드골 장군은 유권자들에 의해 지방분권화 계획이 거부된 후 하야했다. 

이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두렵게 했다.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 헌법 조약이 부결된 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사임하지 않고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에게 책임을 넘겼다. 차기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두려웠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법적 절차와 원칙은 동일하게 요구된다. 그는 2008년 유럽헌법 조약과 쌍둥이처럼 비슷한 리스본 조약을 새롭게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을 거부했다. 2010년 연금개혁의 경우엔 그는 자신이 했던 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와 맞바꾼 ‘안정성’

그래서 이런 ‘안정성’은 프랑스 민주주의라는 크나큰 대가를 요구했다. 체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던 제4공화국 말년은 쇠약했고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관한 모든 논의를 뒤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마치 부적이 돼버린 이 ‘안정성’은 위계질서를 뒤집고 국민에 의한 정당성을 2순위로 밀어냈다. 정권이 국민의 지지보다, 권력유지를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강박관념을 가진 국회는 민주주의를 훼손시킨다. 더불어 서방 민주주의에서 요구되는 균형을 깨뜨리면서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프랑스 정치계는 엘리제궁을 차지한 대통령의 개인적 자질에 좌우되게 된다. 대통령이 견제 없이 상황을 이용하고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는 대선이 유권자들에게는 매번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목표를 놓치는 사격이 돼버렸다. 하나로 통제된 체제가 작동되면 모든 논쟁적인 토론이 마비된다. “대중의 목소리를 더이상 듣지 않는 곳에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8) 올해 1월 29일 15명의 주요 인사들이 칼럼에 쓴 문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의 정당성이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9) 

사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인 클레이스테네스가 탄생시킨 민주주의는 사회를 가로지르는 반론에 답하고 모두가 납득 할 수 있는 절차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10) 이처럼 민주주의는 적응의 도구인 동시에 안정성을 추구한다. 프랑스 역사를 보면 한편에서는 모든 논쟁을 무시하며 대중을 안심시키는 지도자에 대한 동경이 있다. 1851년 쿠데타에 반대한 자들을 말 그대로 제거한 나폴레옹 3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정치적 투쟁이 있었다. 오늘날 회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 바로 19세기 말 사건이 그렇다. 제2 제정 붕괴, 파리 코뮌 학살, 아돌프 티에르 전 대통령의 짧은 집권 후, 파트리스 드 마크마옹 대통령(1873~1879)은 왕정주의 형태의 체제를 안정시키고 법제화하려 했다. 

이어진 국회의원 선거와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파가 승리하면서 그는 사임했고, 제3공화국이 설립됐다. 1877년 8월 15일 레옹 강베타 의원은 파트리스 마크마옹 전 대통령에게 유명한 훈수를 둔 적이 있다. “국민이 의사표명을 했을 때는 따르거나 사임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이 말도 사회를 뒤흔드는 것인가? 당시에는 하원도 그리고 상원도 대통령 의지에 반해 선출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지지를 통해 얻는 정당성과 대통령이 인정하는 정당성은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는 사실상 오늘날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사회계약 내에서 민주주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다. 

 

사회적 갈등, 민주주의로 해결해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변화를 두려워하는 정치적 안정성은 대개 ‘사회적 불안정’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처럼 “우리의 지배자는 길거리가 아니다”, “정치는 폭력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11) 그러나 2,000여 년 전 폭력을 대신하기 위해 클레이스테네스가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 심화되는 사회적 갈등(반복되는 대규모 시위, 장기파업 등)의 해결책이 대통령의 절대적 명령인가? 그보다 보통선거가 효과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이념적 갈등, 현실에 대한 불만이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체제 내에서 이것들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제도가 차단된다면, 억눌린 욕구는 폭력적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 2019년 여름과 2019~2020년 겨울 여당 의원의 자택이 폭력시위의 표적이 된 것이 그 예다. 심지어 시위자들은 종이로 단두대까지 만든다. 제라드 라르셰 상원 의장, 전 법무부 장관인 로베르 바당테르 등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진정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원한다면 국민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시위대에 가해지는 강력진압이야말로 폭력임을 인식해야 한다. 의원들이 유권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유권자들이 의원들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국회가 승인했던 리스본 조약은 결코 메울 수 없는 단절을 발생시켰다. 이 사건은 국민투표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수많은 단체와 시위자들이, 노란 조끼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민투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물론 체제의 본질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인 알랭 쉬피오는 서방의 주요 정치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논쟁거리를 제거하는지 증명한 바 있다. 정치세력들은 세계화를 인간에 의한 게 아닌 ‘자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좌파정부를 무시한 결과, 프랑스의 국가체제에 장애가 일어나고 현행 헌법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세계화는 서방 지도자들에게 이념적 나침반 역할을 했다. 체제는 국민과 지도자 사이의 간극을 더 깊게 만들었다.(12) 프랑스 국민의 생각이 담긴 시위대 깃발이 늘고 있음에도 정치세력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3) 이런 불일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인 장 클로드 융커의 유명한 문장 속에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미 비준된 조약에 반대하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브렉시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체제의 변화 없이, 사회변화는 없다

체제의 ‘안정성’이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고,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체제는 정치를 혼수상태로 빠뜨린다. 지도자들이 모든 논쟁에 귀를 닫게 만들며, 예상치 못한 모순도 발생한다.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자들은 프랑스가 그 당시 국제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제5공화국은 금융세계화나 유럽연합의 일방적인 결정에 굴복하고 있다. 혼란 상태의 지정학적 흐름에 프랑스 헌법은 그 특성을 드러낸다. 현재 정부를 뒤집거나 임기 중인 여당을 교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체제를 바꾼다고 해서 요술 지팡이를 손에 쥔 것처럼 국민의 요구나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민주주의가 단번에 세워지지는 않는다. 프랑스 국민이 체제를 재구성한다는 것, 즉 정부의 일이 국민의 일이 된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권력 관계를 구축하려면 언제나 그랬듯 사회적 움직임이 법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천 명의 시위자들과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14)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글·앙드레 벨롱 André Bellon
입헌의회를 위한 단체장 

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필자와의 비공식 인터뷰에서. 
(2) Bastien François, 『Le Régime politique de la Ve République 제5공화국 정치체제』, La Découverte, Paris, 2010년(초판 1998년).
(3) Plon, 1964년.
(4) Mathias Bernard, 『Histoire politique de la Ve République 제5공화국 정치 역사』, Armand Colin, Paris, 2008년.
(5) 국회,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기자회견.
(6) Mathieu Chaigne, ‘Le moment autoritaire d’Emmanuel Macron ? 에마뉘엘 마크롱, 독재의 시간인가?’, <Figarovox>, 2020년 1월 10일, www.lefigaro.fr
(7) Radio J, 2020년 1월 24일.
(8) ‘Non, monsieur Macron, nous ne sommes plus en démocratie 아니요, 대통령님, 우리나라는 더이상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L’Humanité>,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9) ‘Bonapartisme ou Constituante 보나파르티즘 혹은 입헌의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8월호. 
(10) ‘Pas de démocratie sans conflit 투쟁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09년 6월호. 
(11) 2019년 7월 26일 트위터. 
(12) Alain Supiot, 『L’esprit de Philadelphie, La justice sociale face au marché total 필라델피아 정신, 시장 전체와 맞서는 사회 정의』, Seuil, Paris, 2010년.
(13) ‘Peu(ple) leur chaut ! 국민, 그들에게는 상관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3년 11월호. 
(14) Martin Cadoret, ‘Ces mouvements citoyens qui veulent renouveler la démocratie 민주주의를 쇄신하고 싶은 시민들의 움직임’, Reporterre, 2017년 3월 9일, reporterr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