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니즘과의 은밀한 결별

제레미 코빈에 이은 노동당의 새 당대표, 키어 스타머

2020-10-05     앤드루 머리 | 제레미 코빈 전 고문

제러미 코빈의 지휘로 영국 안팎으로 희망의 바람을 일으킨 노동당이 새로운 지도자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를 이제 막 영입했다. 스타머는 코빈과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New Labour)’으로 복귀하려는 것도 아니다. 현재 스타머의 힘은 팬데믹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보이는 무능력에서 나온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대표는 지난 4월 애도의 침묵 속에 임기를 마쳤다. 영국 전역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졌다. 전 국민의 생사가 국영의료제도인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역량과 위기관리 경험이 전무한 보리스 존슨 총리의 능력에 달린 처지다. 코빈은 영국 국민건강서비스의 재정 및 인력 부족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왔다.

2019년 12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참패했고, 이후 코빈의 후임을 찾는 내부 협의는 코로나19 여파로 당의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예상대로 노동당 전 대변인 키어 스타머가 당에 가입한 노동조합원들이 참여한 투표에서 56%를 획득했고, 코빈은 스타머에게 당대표직을 내줬다. 스타머의 득표율은 2015년 코빈의 59.5%에는 못 미치지만 꽤 높다.

스타머는 2015년 정계에 입문해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 전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는 전임자인 코빈에게는 부족했던 유력인사로서의 자질을 노동당 지도부에 선사했다. 그의 역량과 권위가 내뿜는 후광은 5년간 계속된 노동당 내부 갈등으로 지친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후광으로 신뢰할 만한 총리 후보임을 입증했다. 이 전직 법조인은 당파 간 화해를 위해 애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시절(1997~2007)에는 더 심각했던 분열 양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코빈 집권기의 양극화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스타머 노동당 신임 대표는 물러나는 지도부가 결정한 정치적 방침을 바꾸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 방침이란 철도 재국유화, 공공주택 건설계획, 부유층 및 대기업에서 징수한 자금을 공공서비스에 투입하는 방안, 탐욕스러운 영국은행 및 기타 경제 분야에 국가가 더 엄격하게 개입하는 것 등이다. 스타머가 이런 방침에 반기를 든다면 노동당원의 3/4(다른 모든 정당의 당원 전체보다 많은 인원)이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중 다수가 코빈의 노선에 이끌려 노동당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스타머는 코빈의 정책을 계승하는 길을 선택했다. 

보수당이 10년 동안 가혹한 긴축정책을 이어온 뒤 이제는 블레어 시절 ‘신노동당’의 복음으로 부르짖던 ‘규제완화, 민영화, 세금 인하’를 거론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든 노동당에 좌파적 대안의 필요성이 널리 요구되고 있다. 현재 40년간 양당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와는 이미 단절했고, 이런 기조는 앞으로 더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회주의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허버트 모리슨을 비롯해 토니 블레어와 더 최근에는 에드 밀리밴드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정권을 잡아 온 노동당 우파는 사상 처음으로 노동당 당대표직에 후보를 내는 것에도 실패했다. 초반에 복병으로 평가받던 버밍엄의 제스 필립스 의원은 당원 및 노동조합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당대표 경선을 포기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의 변화는 노동당 의원들이 코빈을 당대표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불신임을 추진한 후 치러진 2016년 코빈의 재선 때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120년 노동당 역사 이래 당의 전통적 중진 의원들이 그 정도로 신랄하게 거부감을 보인 적은 없었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언론들은 스타머의 승리를 ‘정상으로의 회귀’라며 축하했다. 스타머가 당대표 당선 직후 내린 결정들은 현재의 총체적 보건위기에 덮인 감이 있다. 

존 맥도널과 다이앤 애벗은 노동당 그림자 내각에서 각각 재무장관과 내무장관을 맡았던 코빈의 최측근이다. 두 사람은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의 멘토가 실패한다면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타머는 그림자 내각을 구성하면서 ‘친코빈계 의원들’을 대부분 내보냈다. 스타머는 이들을 대신하기 위해 코빈의 부상 이후 당을 떠났거나 그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실패하고 2016년 은퇴한 블레어 시절의 중진들을 재소환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의원 중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온 당파 싸움에 관여하지 않은 젊은 중도파에 주목했다. 코빈의 측근으로 스타머에게 패배한 친코빈계 레베카 롱베일리가 교육부 대변인 자리를 지켰다는 점은 예외적이다. 스타머는 전임자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들, 즉 ‘코비니즘’을 탄생시킨 ‘정치적 색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코빈 자신은 항상 이 ‘코비니즘’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며 “사회주의 외에 다른 것은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코비니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반(反)제국주의’다. 코빈 노동당 전 대표는 한결같이 팔레스타인의 명분을 지지하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코빈은 일방적 비핵화를 주장했고,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 및 걸프만의 여러 독재국가와 맺고 있는 군사 및 경제 관계를 규탄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런던을 방문했을 때 반(反)트럼프 집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혹여 코빈이 다우닝 가 10번지(영국 총리 관저)에 입성했다 해도 그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실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외교 문제에서 노동당이 내부분열 양상을 보여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수의 의원이 NATO 탈퇴는커녕 비핵화를 지지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도 수긍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NATO를 지지하고 제국주의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는 노동당 우파를 포함해 지도층 내부에 가장 큰 분란을 일으킨 것은 바로 코빈의 이런 정책들이다. 

노동당 지도부는 수자원공사를 공공소유로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워싱턴과 동맹관계를 끊거나 영국의 근동정책이 급변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코빈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개입에 반대했던 것처럼 스타머가 아무리 군사개입에 반대한다고 해도 그가 노동당 우파의 전통을 저버릴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코비니즘’의 두 번째 혁신성은 코빈이 의회 활동뿐 아니라 사회운동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코빈 자신에 의해 상당히 상징적이 된 전략이다. 그는 32년 동안 의회의 변방에 머물렀으나 전쟁과 권위와 온갖 불의에 대항할 때 따르는 것에는 도가 튼 인물이다. 코빈은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로서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며 200만 명을 동원한 단체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의 대변인이었다. 그는 거리에서 난민들의 권리를 주장한 이후 2015년에 노동당의 수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다이앤 애벗과 존 맥도널도 이런 실천적 행동에 동참했다. 존 맥도널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피켓에 수시로 등장하는 그림자 내각의 첫 재무장관이 됐다. 

코빈의 정치적 노정은 노동당 내부의 적들(극히 순화해서 표현하자면)에 의해 툭하면 조롱당했다. 그들의 눈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의 가죽의자를 벗어나 행해지는 모든 참여활동이 저항을 위해 권력을 포기하는 어리숙한 발상으로 보였다. 의원들은 의회제도의 위선적 측면에 대한 코빈의 양면적 태도보다, 그의 반제국주의 성향에 더 큰 우려를 표했다. 부분적으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코빈이 노동당의 근성을 개혁하고, 나아가 개조하려는 시도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코빈은 2018년까지 노동당 집행부 내에서 비주류에 속했고, 임기 내내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 노동당과 의회와 싸워야 했기 때문에 손발이 묶인 신세였다. 그가 추진한 당 내부의 민주화 개혁은 그렇게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노동당 지역 지부에 좀 더 여유를 둬서 노동조합의 입맛에 맞지 않는 국회의원 출마자를 배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직체를 모집해 기반이 약화 된 옛 산업 현장에서 노동당의 재건을 돕는 방식을 택했다.

코빈이 가장 빛나던 시기는 전국을 누비며 운동을 이끌 때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활기 넘치던 ‘코비니즘’은 의정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차츰 생기를 잃었다. 브렉시트로 생긴 분열을 수습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의회의 의원들, 대부분의 지지자, 노동자 계층이 다수를 이루는 유권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좁히느라 ‘코비니즘’은 더 빨리 고갈됐다. 유럽연합(EU) 밖의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좌파는 결국 코빈의 계획에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스에서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리자(Syriza, 급진좌파연합)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게다가 시리자는 노동당보다 선거에서 더 많은 찬성표를 받지 않았던가. 런던 북부 지도층 내부에서 과잉 대표성(Overpresentation, 특정한 계층이나 세력의 목소리가 실제 비율보다 더 크게 반영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노동당 지도부는 유럽 정치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측면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대륙 전역에서 긴축정책 강행, 자본주의 영향력 강화, 브뤼셀의 불투명한 민주주의, 망명 신청자들에게 ‘유럽의 요새’ 정책을 적용하는 것 등이다. 노동당 지도부는 유럽연합의 문화적 차원이나, 환경과 소비와 노동에 대한 유럽의 규범(영국에서 시행 중인 규범보다 훨씬 엄격한)을 더 적극적으로 앞세운다.

 

스타머에게 찾아온 반전의 기회 

자유주의 지지자들과 민주주의 신봉자들 사이에서 생겨난 노동당 내부의 균열은 ‘코비니즘’을 이겨냈다. 갈등은 2017년부터 잦아들었다. 코빈이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묻는 2016년 국민투표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하자 2015년 30%의 지지를 얻은 노동당이 2017년 선거에서 40%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지지율이다. 당의 유력인사들은 ‘소프트 브렉시트’ 협상보다는 재투표를 요구하면서 이후에도 계속 투표결과를 뒤집고자 했다.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회의 모든 발의를 차단하는 방법과 함께 이 전략은, 코빈 뒤에 모인 결집력이 약한 연합세력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좌파가 당대표직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는 선거의 성패에 달려 있다. 2019년 12월 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득표율 32%)하면서 영국 북부와 중부의 노동자 선거구에서 표심을 몽땅 잃었다. 지난 40년간 많은 지도자가 이보다 더 초라한 성적을 냈음에도, 이 결과는 코빈과 그의 팀에 치명상을 입혔다. 예상대로 노동당 우파는 이런 실패의 책임을 코빈 탓으로 돌렸다. 그의 안보의식과 이민에 대한 입장과 반(反)유대주의라는 악랄한 주장에 대한 불만들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2년 전 노동당 당대표가 반제국주의적 시각을 가졌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대거 노동당에 표를 던지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현재 스타머는 만신창이가 된 정치판 앞에 서 있다. 5년 동안 코빈과 그의 지지 세력은 데이비드 캐머런과 테레사 메이의 보수당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부유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중산층과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낮추고 공공서비스를 없애는 데 혈안이 된 그들의 의지에도 맞섰다. 코로나19가 영국 전역을 강타하기 전에도 보리스 존슨총리의 보수당은 최저임금을 6% 인상하고, 보건 및 시설 분야에 공공 지출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했다. 북부 지역구에서 새로 확보한 표를 지키려면 최소한 이런 시도라도 해야 했다. 이 감염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존슨 총리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하는 바람에 이 정도로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보리스 존슨 정부는 감염병 위기관리에서 미흡한 대처, 뒤늦은 이동제한령, 그리고 ‘집단 면역’(1) 이론을 내세운 위험성, 만성부족 상태인 의료진의 보호장구, 진단검사 부족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따라서 긴축정책이 실패한다면 스타머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다면 그는 재건할 시간을 얻게 될 것이다. 2017년에 코빈이 얻은 득표율과 같은 득표율을 2023년에 얻는 것이 그의 능력 범위 내에 있는 목표다. 이 유예기간이 스타머에게는 적절할 수 있지만 반대로 존슨에게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국은 코로나19로 가장 극심한 타격을 입은 나라에 속한다. 코로나19가 영국 경제에 미친 손실이 2022년 전까지 2019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년도 경제지표가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의 경기침체 이후 영국이 지나온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경제지표에 맞먹기 때문에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제의 위기는 오늘의 위기와 뒤섞인다. 존슨이 이 위기를 극복했다고 외쳐봐야 소용없다. 우파 포퓰리즘의 약속은, 신자유주의적 중도주의의 약속만큼이나 공허한 메아리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글·앤드루 머리 Andrew Murray
제러미 코빈의 전 고문이자, 영국 노동조합 유나이트(Unite) 간부. 『Fall and Rise of the British Left 영국 좌파의 흥망성쇠』(Verso books, London, 2019)를 썼다.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번역위원


(1) Théo Bourgeron, ‘Au Royaume-Uni, la tentation de l’inéluctable (한국어판 제목: 죽음으로 내모는 집단면역의 카운트다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