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러시아·터키의 공동점령체제로 가는가?

혼돈의 국가를 휩쓴 ‘시리아식’ 권력게임

2020-10-05     장미셸 모렐 | 작가

내전의 늪에 빠진 리비아는 전 세계 용병들이 대 거동원되는 국제적 전쟁터가 돼버렸다. 이제 용병은 지원병을 넘어섰다. 서로 반대진영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터키는 대립 중인 듯하다. 그러나 실상 두 국가는 한통속이며, 분열된 리비아라는 전리품을 나눠 먹으려는 단꿈에 젖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지원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사망으로 이어진 2011년 2월 민중봉기 이후, 리비아는 극심한 혼돈과 분열, 외세개입에 시달리고 있다. 리비아를 분할하던 전통적인 세 지역은 동족상잔의 고립지대가 돼버렸다.(1) 먼저 의회 소재지인 벵가지를 중심에 둔 동부 키레나이카 지역은 리비아국민군(LNA)의 수장이자 원수를 자처한 칼리파 하프타르의 본거지로 변신했다. 서부 트리폴리타니아 지역은 이름과 현실이 영 딴판인 리비아통합정부(GNA)가 장악했다. 국제연합(UN)이 리비아의 합법적 정부로 공인한 리비아통합정부(GNA)는 무슬림형제단과 유사한 정치적 색채를 띤다. 마지막으로 리비아 전체 유전의 1/4이 속한 다인종 지역, 남부 페잔은 투부족 민병조직이 두 진영으로 갈려 통치하고 있다.

리비아통합정부(GNA)는 터키의 전폭적인 지원과 그 밖에 카타르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은밀하게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원도 받는다. GNA는 주로 민병대 연합 ‘파즈르 리비아’(리비아의 여명)의 조직원들로 병력을 구성하고 있다. 상대 진영은 80년대 말 반정부 세력으로 변절하기 전까지 카다피 군대에서 장교로 활동한 전적이 있는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자국의 민병조직원들과 사우디·차드 출신의 용병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형성했다. 하프타르 진영의 뒤를 봐주는 외세로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지중해 지역에서 영향력을 높이기를 원하는 러시아가 있다. 그 밖에도 이 구도에 프랑스가 합세한다. 프랑스는 리비아 정부와 완전히 관계를 단절하기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하프타르 원수 진영의 승리를 내심 바라고 있다.(2) 

2019년 7월 트리폴리 인근 전투에 패배한 하프타르 군대가 퇴각한 후 그들이 버리고 간 프랑스제 미사일이 발견되면서 프랑스의 이중적 행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3) 그로부터 1년 뒤 타르후나 마을에서 친 하프타르 진영의 민병조직이 자행한 것으로 보이는 집단 무덤이 발견, 하프타르 지원이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4) 사실상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인 프랑스는 국제연합(UN)이 인정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인 리비아통합정부(GNA)를 지지함으로써 국제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리비아 땅에 집착하는 ‘앙카라의 술탄’

프랑스는 올해 초 리비아에 대거 진출한 터키와 정면대립했다. 터키가 이 지역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스만제국은 마그레브 지역 점령에 이어 알제·튀니스·트리폴리를 각각 수도로 삼은 3개 지역을 건설했다. 물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920년 찢어진 오스만제국을 오늘날 북아프리카에 재건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틈만 나면 오스만 제국의 위대성을 강조하며, 국경 너머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 힘을 과시한다. 시리아 북부 침공, 이라크 쿠르디스탄과 리비아를 상대로 한 군사개입, 예멘 군사기지 건설, 카타르 군사시설 설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5)이 한창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 등이 그런 과시의 예다. 

이 모든 사건은 역내 영향력 확대를 간절히 바라는 터키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8년 친정부 성향의 매체 <예니 아키트>는 터키군이 주둔 중인 10개 국가를 나열하면서 “터키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거침없이 논평했다. 팽창주의를 향한 터키의 야심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가령 2006년 젬 구르드니즈 퇴역 해군제독이 구상한 일명 ‘마비 바탄’(‘푸른 조국’이라는 뜻) 해상전략이 재가동된 것이 대표적이다. ‘마비 바탄’은 외교를 희생하더라도 안보에 더욱 역점을 두는 전략을 의미한다. 리비아통합정부(GNA)를 향한 터키의 지원이 이를 증명한다.

수차례 정전 협상(2020년 1월 베를린에서 마지막 협상)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영원한 내전의 늪에 빠져버린 리비아는 결기에 찬 한 역내 강국에게는 손쉬운 정복대상으로 비친다.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리비아는 점차 악화되는 국내 여론을 잠재우고 다시금 굳건한 권위를 되찾는 데 필요한(6) 일종의 ‘전리품’으로 보인다. 사실 에르도안은 자신을 권좌에 앉혀준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이 2019년 3월 지방선거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시장직을 줄줄이 야당에 내주며 참패를 겪는 등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듯, 정의개발당(AKP)은 올해 두 차례나 분열을 거듭하며, 집권당 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터키 기자 페힘 타시테킨도 온라인매체 <닥틸로 1984>에서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터키는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외정책이 대내정책의 연료로 이용되곤 한다.”

터키 정부의 눈에 리비아는 경제적, 이념적 팽창을 위한 ‘전초기지’에 해당한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의 조직망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과거 에르도안의 동맹이었던 귈렌은 2016년 그에 맞서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무참히 실패했다. 터키 대통령은 리비아 땅 장악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경제가 어려운데도 막대한 재정을 쏟고, 막대한 인적 지원(주로 로자바 침공 때 전투에 참여한 지하디스트들)(7)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MIM-23 호크’를 설치하거나 공격용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를 투입하는 등 군사장비 공급에도 힘쓰고 있다. 여러 논평가에 의하면 특히 앞서 언급된 두 무기는 최근 리비아국민군(LNA)과의 전투에서 상대 진영과 전세를 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까지 ‘앙카라의 술탄’은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듯하다. 2019년 11월 27일 그는 파예즈 알사라즈 리비아통합정부(GNA) 총리를 상대로 리비아 대륙붕과 관련한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를 획정하는 수역 협상에 합의했다. 이로써 터키는 키프로스와 그리스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동지중해 지역에서 마침내 천연가스 탐사와 시추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것이다. 화석연료 수요의 84.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터키에게 있어 아프리카 제3위의 석유 수출국인 리비아로의 진출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을 널리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아닐 수 없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터키 대통령은 중대한 승점을 기록했다. 리비아통합정부(GNA)를 위해 싸우는 4개 주요 민병조직을 지원하며 리비아국민군(LNA)을 몰아내는 데 기여한 덕분이다. 이로써 2019년 4월 이후 꽉 막혔던 리비아 원유공급에 활로를 틀 수 있었다. 하프타르 원수가 이끄는 군대가 패배하면서 터키는 2020년 1월 리비아통합정부(GNA)가 잃은 시르테 연안도시(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의 출생지)와 사막지대에 위치한 대규모 공군기지 알주프라를 다시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에르도안의 동맹들이 목적을 완수했다고는 할 수 없다. 가령 지난 7월 5일 국적 불명의 라팔 전투기 여러 대가 터키군이 리비아통합정부(GNA)의 허가를 받고 주둔 중인 알 와티야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누구의 소행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리비아 국경 근처 시디 바라니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들을 출격시킬 수 있는 이집트가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2019년 2월 하프타르 원수의 리비아국민군(LNA)을 피해 달아나던 투부족 반군에게 공습을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은 프랑스 역시 유력한 배후로 지목됐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가장 유력한 설로 떠오른 것은 아랍에미리트의 개입 가능성이었다. 사실상 아랍에미리트는 리비아에 있는 알카딤 기지와 이집트에 있는 시디 바라니 기지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국가였다. 

 

리비아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리비아의 미래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터키 정부가 후속 행동에 나서지 않은 채 그저 항의와 엄포에 그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터키는 리비아 분쟁의 또 다른 주역인 러시아와 적당히 타협하며 사이좋게 지내야 할 필요가 있다. 2011년 파괴적인 군사 개입 행보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던 러시아는 이번에 리비아를 새로운 교두보로 삼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까지 확대하고, 시리아 사태 덕에 중동에서 확보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한 러시아인 용병들과 친 아사드 성향의 시리아 전투원들은 사실상 하프타르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들이 전선에 부재할 때마다 하프타르 원수는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령 트리폴리 문턱에서 겪었던 패배가 대표적이다. 

‘리비아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는 실용적이고도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러시아는 그들의 가신에게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도 정작 개입 수준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그들이 완전히 승리하는 것만은 가로막고 있다. 가령 지난 7월 ‘미그(MIG)-29’와 ‘수호이(Su)-35’ 전투기 여러 대가 트리폴리에서 800km 지점에 위치한 ‘알 주라프’ 공군기지 활주로로 출격했다. 사실상 하프타르 원수의 군대가 관할하는 기지에 러시아 전투기를 배치시키는 작전은 석유, 천연가스, 금 등 지하자원이 많이 묻히고 지하수가 풍부한 페잔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 지역을 손에 넣기를 바랐던 터키와 리비아 정부에게 그다지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적절히 경고의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 공군은 6월 리비아국민군(LNA)이 트리폴리 문턱에서 패색이 짙을 때는 절대 그들이 패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 개입에 나서지 않았다.

시리아의 경우처럼(8) 러시아는 터키와 서로 손발을 맞추고 있다. 분명 터키는 러시아의 반대진영을 지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두 국가는 경제적 파트너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을 견제하는 데 뜻을 함께하는 동맹국이기도 하다. 두 국가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결코 강하게 충돌할 수 없는 이유다. 푸틴과 에르도안은 일종의 밀월관계로 얽혀 있다. 물론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항상 그들의 이익이 서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당한 선을 잘 파악하고 지키는 듯하다.

러시아는 ‘동결분쟁’(국제관계학에서 능동적 무장충돌(전쟁)은 종료됐지만 강화조약 등 교전세력들을 만족시켜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킬 정치적 수단이 부재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동결분쟁은 국제법적으로 언제든지 전면전으로 재점화될 수 있으며 해당국가나 지역에 불안정한 상태를 조성한다-역주)에 대해서라면 아주 훤하다. 이미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에서 그 능력을 여실히 발휘했다. 별로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는 이 전술은 러시아에게 게임판을 뒤흔들 강한 영향력을 쥐어주는 한편 앞선 3개국이 유럽연합(UN)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막아줬다. 러시아 정부에게는 리비아에서 동결분쟁을 이어가며 여러 군사기지를 활용하는 전술이야말로 매우 현실적인 대책이 아닐 수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휴전을 운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는 잠재적인 전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러시아 정부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에 해당할 것이다.

이제 리비아에서는 각국이 서로 세력권을 나눠 먹는 ‘시리아식’ 정국이 펼쳐지고 있다. 전리품을 사이좋게(물론 완전히 공정하게는 아닐 테지만) 나누기로 마음먹은 터키와 러시아가 리비아에 공동점령체제를 굳히고 있다. 더욱이 “무조건 전투를 조속히 멈추고, 리비아 전역에서 진행되는 군비 강화 행보를 중단”(9)하라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호소는 현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듯이 보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비아 문제에 무관심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외국인 용병’을 내보내고 민병조직을 해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휴전협정을 제안했다가 다시 6월 20일 리비아 영토에 자국군대를 파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냉온전략을 펴고 있다. 그러나, 현 판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집트 의회는 7월이 돼서야 겨우 ‘불법 무장민병조직들과 해외 테러리스트 분자들’을 격파하기 위해 ‘서부 전선’(리비아를 의미)에 초국적 군대를 전개하는 것에 승인했다.

터키와 러시아 간 힘의 구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 리비아의 미래는 이제 자국의 인물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결정될 공산이 크다. 내전의 당사자들은 그저 한낱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상 베를린 휴전협상 회의에는 리비아통합정부(GNA)의 총리인 파예즈 알사라즈도, 리비아국민군(LNA)의 원수인 칼리파 하프타르도 결코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특히 무엇보다도 리비아 국민의 의견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글·장미셸 모렐 Jean-Michel Morel
작가. <오리엔트 21> 편집위원회 위원. 최근 출간한 소설로『코바니로의 귀환』 (2018)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Patrick Haimzadeh, ‘La Libye aux mains des milices 민병대 손에 넘어간 리비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10월호.
(2) Ariane Bonzon, ‘Le désastreux casting de la France en Libye 리비아에서 프랑스가 보여준 재앙 같은 캐스팅’, <Slate>, 2020년 6월 25일.
(3) Nathalie Guibert, Frédéric Bonin, ‘L'embarras de Paris après la découverte de missiles sur une base d'Haftar en Libye리비아 하프타르 기지에서 발견된 미사일로 인해 곤경에 빠진 프랑스’, <르몽드>, 2019년 7월 10일.
(4) ‘UN chief expresses shock at discovery of mass graves in Libya’, <The Guardian>, 런던, 2020년 6월 13일.
(5) Philippe Descamps, ‘Etat de guerre permanet dans le Haut-Karabakh 영원한 분쟁지역 카라바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12월호.
(6) Jean Marcou, ‘La quête obessionnelle d'un pouvoir fort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터키의 집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4월호·한국어판 2017년 5월호.
(7) Mireille Court, Chris Den Hond, ‘L'avenir suspendu du Rojava 로자바의 불투명한 미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한국어판2020년 4월호.
(8) Akram Bellkaïd, ‘Ankara et Moscou, jeu de dupes en Syrie 터키와 러시아, 시리아의 속고 속이는 게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1월호·한국어판 2020년 1월호.
(9) 6월 25일 공동담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