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43명은 어디에?

카르텔과 폭력에 물든 국가

2020-10-05     벤자민 페르난데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사회학 박사

43은 멕시코에서 상징적인 수다. 2014년 살해당한 아요치나파 교대생의 수를 뜻하는 43에는 수십 년 동안 멕시코인들을 짓누른 불안,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책임자들, 범죄조직과 결탁한 당국 등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2018년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사건을 규명하기로 약속했으나 시민들은 여전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43명은 어디에 있을까? 멕시코 도시의 담벼락들에 적힌 질문이다. 멕시코를 끊임없이 괴롭힌 이 사건을 묘사하며 알레한드로 엔시나스 로드리게스 내무부 인권담당 차관은 ‘거대한 집단 암매장지’(1)라는 표현을 썼다. 2014년 9월 26일 아요치나파 교육대학교 학생 43명이 실종됐고, 게레로주 이괄라시에서 6명이 살해됐다. 이 사건은 누구 책임인가? 독립 수사관들은 ‘멕시코 정부’라고 입을 모으며 연방정부 세력이 연루돼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멕시코인들에게 ‘43’이라는 숫자는 면죄부의 상징이자, 국가의 사법적 실패의 상징이 돼버렸다. 

오래전부터 교육대학교 학생들은 민간 버스를 ‘동원’해 이동했다. 그날 밤에도 학생들은 버스를 여러 대 동원했다. 이괄라시로 가서 돈을 모아 1968년 틀라텔로코 대학살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요치나파는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이 농촌 지역에서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추모식 참석은 학교 전통이었다. 공식조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며 신속하게 종결됐다. 조직범죄와 유착관계에 있는 지역 보스,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 이괄라 시장이 자기 부인의 연설을 방해할까 두려워 학생들을 진압하라고 지역 경찰에게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경찰은 학생들을 지역 마약밀매 조직 게레로스 우니도스에게 넘겼다. 이 조직이 학생들을 죽이고 이괄라 인근 소도시 코쿨라 쓰레기매립장에서 그 시체를 태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체포된 갱단 조직원의 자백과 쓰레기매립장 근처 비닐봉지에서 발견된 뼛조각에서 나온 알렉산더 모라 베난시오 학생의 DNA에 기반한 것이다. 2015년 1월 27일 사건 당시 멕시코 검찰총장이었던 헤수스 무리요 카람은 이 버전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하며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진실’은 점차 신뢰를 잃었다. 유엔은 이 ‘믿을 수 없는’ 버전을 심사했고 해당 증거가 연방 검찰과 경찰, 해양부에서 시행한 조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얻은 증언임을 밝혀냈다. 학부모, 국제기구, 지지자들과 기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드러난 사실이다.(2) 희생자 가족은 아르헨티나 법의인류학 팀(EAAF)을 불렀고 이 팀은 지역 경찰이 있던 장소와 연방 경찰이 탔던 5대의 순찰차, 게레로주 경찰차, 이괄라시에 기반을 둔 제27 보병대대 정찰대 두 팀이 있던 위치까지 밝혀냈다. 게다가 43명의 시체가 코쿨라 쓰레기장에서 태워졌다는 가설을 뒤집고, 모라 베난시오 것이라고 추측되는 뼛조각을 누가 조작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GIEI)은 미주 인권위원회의 요청으로 2015년 3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사건을 조사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한 달 후인 2014년 10월 28일, 즉 뼛조각이 발견되기 전날 쓰레기매립장을 다녀간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방문은 토마스 즈롱 범죄조사국 국장 서류에 기록돼 있지 않았다. 그들의 최종 보고서(3)에 의하면 이괄라시에 전략작전센터가 있었고, 이 센터에서 경찰, 군, 검찰, 법무부 직원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요치나파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GIEI)은 조사 끝에(멕시코 정부 때문에 재조사를 할 수 없었다) 멕시코 검찰청이 묵살한 17가지 증거를 확인했다. 이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사건 발생 2년 후인 2016년 군이 이괄라시 경찰이 소지한 25개 총을 파괴했다. 이것 중 교대생들을 공격한 무기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 검찰청은 3년이 지나서야 이괄라시에 있는 제27 보병대대에 가서 사건이 일어난 밤 CCTV 원본파일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리고 군은 원본파일이 든 하드디스크에 결함이 생겨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4년 후에야 지역 경찰로부터 작전기록부와 2014년 9월 26일과 27일에 동원됐던 인력, 순찰대, 군 인원 명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멕시코인들은 정부가 이스라엘제 스파이웨어인 페가수스(4)를 이용해 국제전문가들을 감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GIEI) 멤버인 안젤라 마리아 부이트라고는 2014년 9월 26일 밤 이괄라시에서 아요치나파 43명의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 정부의 공무원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요 증거를 은닉, 폐기, 조작했다”는 것이다. 안젤라는 “그들이 누구를, 왜 보호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핵심”(5)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멕시코 혁명 정신과 관련이 깊은 교육대학교는 좌파 조직의 토양이자 시위를 진압하는 기동대의 공격대상이었다. 아요치나파 살인사건이 이데올로기적 동기가 있다고 추측하는 이유다. 게다가 아요치나파는 대통령 고문들이 비밀리에 작성한 대통령 국정운영안에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조직명단이 있었다.(6) 그러나 조사하는 동안 조금씩 다른 가설도 제기됐다. 학생들이 실수로 마약밀매를 하는 고속버스인 코스타 라인 2513에 탔을 가능성이다. 헤로인을 미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환승 지점이 이괄라시임에도 이 증거는 공식조사에서 오랫동안 배제됐다. 

조사를 마친 후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은 조사범위를 남쪽으로 8km, 메스칼라와 위즈코 지역까지 더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스칼라에는 금광산이 있다. 골드코프가 사업권을 갖고 있었고 2017년 캐나다 다국적 기업 레아골드에 팔렸다. 인근 주민들과 광부들은 이 광산이 부당징수, 유괴, 실종과 같은 조직범죄 비리를 비호하고 있다고 고발했으나 정부 당국과 기업지도자들은 이를 무시했다.(7) 

수감자를 고문하는 비디오는 2019년 6월 유출됐다. 이 비디오를 보면 멕시코 검찰청과 검찰청 특수부가 2014년 10월부터 학생들이 메스칼라 지역으로 끌려가 광산촌을 운영하는 게레로스 우니도스파에 넘겨진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무원들 모두가 이 사건에 집중한 가운데 독립조사관과 가족들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43명의 아요치나파 교대생들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그러나 2018년 6월 희망이 비쳤다. 멕시코 주 법원이 사건 재수사와 검찰청 내 독립 조사위원회 창설을 명한 것이다. 이 ‘진실과 정의를 위한 위원회’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취임 후 2019년 1월 설립됐다.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도 사건을 재조사를 위해 복귀했다. 범인 기소 여부와 별개로, 이번 조사결과는 새로운 정부의 변화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글·벤자민 페르난데스 Benjamin Fernand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사회학 박사.  사회와 환경 갈등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며 보도한다. 저널리즘과 인권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을 추모해 제정된 Le prix Breach-Valdez 상의 기획위원을 맡았다.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La Jornada’, Mexico, 2019년 2월 4일.
(2) ‘Doble injusticia. Informe sobre violaciones de derechos humanos en la investigación del caso Ayotzinapa’, <Bureau du Haut commissaire des Nations unies pour les droits humains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 Mexico, 2018년 3월.
(3) ‘Informe Ayotzinapa II. Avances y nuevas conclusiones sobre la investigación, búsqueda y atención a la víctimas’, <Groupe interdisciplinaire d’experts indépendants 독립적 전문가 합동연구팀>, 2016년 4월 24일, www.oas.org
(4) 조사에 의하면 멕시코 검찰청은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기자와 인권지지자들을 감시했다.  ‘Au Mexique, la presse au service d’une tyrannie invisible 멕시코, 보이지 않는 폭정을 위한 보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1월호.
(5) ‘Proceso’, México, 2019년 7월 2일.
(6) Anabel Hernández, ‘La Verdadera Noche de Iguala : La historia que el gobierno quiso ocultar’, <Grijalbo>, Mexico, 2016.
(7) ‘Mexique. Dans la ceinture d’or, les mineurs sont livrés aux cartels 멕시코. 금띠 안에서 마약 카르텔에 넘겨진 광부들’, < L’Humanité>, Saint-Denis, 2015년 4월 21일.

 

 

마약과의 전쟁, 도리어 조직 범죄 증가

 

2006~2019년 6만1,637명이 실종됐고, 은폐됐던 암매장 구덩이 3,600개가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멕시코 31개 주 중 24개 주, 7개 도시 중 1개 도시가 이 비극을 겪었다. 새로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국가적 범죄’에 대해 언급했으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가 2018년 12월 1일 취임 이후 새로운 구덩이 873개가 발견됐고, 새로운 실종사건이 5,000여 건 접수됐다. 이전 정부가 이끌었던 20년간의 ‘마약과의 전쟁’은 오히려 조직범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약과의 전쟁’의 주창자이자 2006~2012년 공공치안부 장관이었던 헤나로 가르시아 루나는 마약밀매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9년 12월 미국에서 체포됐다. 토마스 야링톤, 에우헤니오 에르난데스, 로베르토 보르헤, 하비에르 두아르테 이 4명의 전 주지사들은 조직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국제적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루이스 아스토르가 교수는 ‘마약과의 전쟁’ 프로젝트가 군대의 폭력을 확장시켰다고 지적한다. “이 전쟁 때문에 농민, 일부 정치그룹, 모든 형태의 사회적 항의에 대한 초법적 폭력이 유발됐다”라는 것이다. 

1960년대 ‘더러운 전쟁’ 동안 실종사건은 다반사였다. 그 당시 희생자는 밝혀진 것만도 900명에 달한다. 1976년 멕시코는 미국의 후원하에 라틴 아메리카 내 마약퇴치를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처음으로 시험했다. 치우아우아주, 시날로아주, 두랑고주에서 수천 명의 군인을 결집해서 시행한 ‘콘도르’ 작전 때문에 수백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나왔고 주된 희생자는 농민이었다. 

아스토르가 교수는 이 모델이 빈센터 폭스(2000~2006), 펠리페 칼데론(2006~2012), 엔리케 페냐 리에토(2012~2018) 대통령 임기 때 그대로 행해졌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의 프로그램에도 같은 방식의 작전개요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 끔찍한 전략을 끝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후 멕시코 거리의 군인 배치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검찰총장 자리에 과거 폭스 정권의 공안부 소속이었던 알레한드로 헤르츠 마네로를 앉혔다. 헤르츠 마네로는 전형적인 ‘무쇠 주먹’으로 유명하며 ‘콘도르’ 작전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또 하나 있다. 군의 압력으로 루이스 크레센시오 산도발이 국방부 장관이 된 것이다. 루이스 산도발 장관은 2011~2012년 코쿨라 주에서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감옥 보안을 담당했었다. 그 당시 마약 카르텔 조직 제타스는 감옥에서 자유롭게 거래를 했다. 국제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피살자와 실종자가 150명이 넘는다.  

 

글·벤자민 페르난데스
번역·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