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움직이는 점성술사, 카르발류

브라질 이념전쟁의 전면에 나선 선동가

2020-10-05     질베르투 칼리우 | 역사학자

‘우익 포퓰리스트’이자 도발적인 언사를 즐겨 사용하는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그는 종종 ‘열대지역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린다. 예측불허의 돌발적인 언행을 일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언행은 단순한 돌출행동이라 치부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내공을 닦아온 정신적 스승의 사상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라부 지 카르발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당(PT, 좌파) 측의 사회학자 에미르 사데르가 2001년에 쓴 이 표현은 진보적인 브라질의 정치 환경 속에서 카르발류가 걸어온 정치 노선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문장으로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철학자이면서 풍자문학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점성술사로도 활동하며 반동적인 논문들을 발표해 학계의 조롱을 사기도 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은 이렇게 확신했다. 카르발류는 브라질 우파 중 가장 급진적인 계파, 즉 비중 없이 큰 소리로 짖어대는 소수 세력을 위해서만 존재했다고 말이다.

 

“점성학을 모르면 문맹이나 마찬가지”

2018년 10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 과거의 소수 세력이 권력을 탈취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당선 소감을 밝히며 네 권의 책을 언급했다. 성경과 브라질 헌법, 윈스턴 처칠 전집, 그리고 카르발류 저서였다. 카르발류를 경멸하던 좌파 지식인들은 정치학자 아우바루 비안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사실관계의 오류가 많기로 잘 알려진 카르발류의 저서가 어떻게 당선자의 눈에 대중의 생각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을까요?”(1)

1947년생인 카르발류는 1960년대에 브라질 공산당에서 활약했다. 그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곧 그만뒀다. 교육의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67년에 주요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기 시작했던 그는 스스로 ‘근본적 학문’이라고 여기던 점성학을 틈틈이 연구하곤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점성학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문맹이나 다름없습니다.”(2) 카르발류는 보수주의적인 논조의 사설을 쓰는 자리에 안착했다. 그리고 독재 정부 시기(1964~1984) 후반부터는 그가 보기에 차기 정권의 주요 인물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성인들을 맹렬히 공격해왔다. 여기에서 그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O Imbecil Coletivo :atualidades intelectuais brasileiras 얼간이 모음집: 브라질 지성계의 시사 문제』(1996)가 출간됐다.

카르발류가 지식인으로 변신한 데는 호나우두 레빈슨의 역할이 컸다. 연속적인 금융 스캔들을 기적적으로 모면한 자산가 레빈슨은 사립대학교 UniverCidade의 소유자가 된 후 카르발류에게 문을 열어줬다. 카르발류는 1997~2001년 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했고, 1999~2001년에는 대학교 출판부를 운영했다. 

카르발류가 이념전쟁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해서 세속의 재물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부터 그는 자신의 주요 사상을 전파하며 상류층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2009년에 한 차례 개정된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부르주아의 ‘이념적인 도구’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 상류층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에 직면해 “방어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상류층은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용기를 내 부탁할 때 아주 분별력 있고 세련된 방식으로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자비롭고 너그러운 적을 마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직면한 적들은 혁명가들이 아주 흡족해 마지않는 ‘살인 기계들’입니다.”(3) 

카르발류는 자신을 부자들의 대의명분을 수호할 소수의 지식인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은 카르발류에게 충분한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수호가 필요할 만큼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질 파시즘을 이끈 역사적인 지도자, 필리니오 살가도(1895~1975)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한탄했었다. “부르주아들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 카르발류의 글은 저속하면서도 호전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이 공격성 뒤에 깔린 특유의 솔직함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언행을 연상시킨다. 카르발류는 자신의 욕설에 대해 “가식적인 격식을 거부하고 서민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평한다. 카르발류는 세련된 답변들이 넘쳐나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는 이런 표현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4) 

물론 이런 수사적 선택은 논쟁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질 때 교묘하게 빠져나갈 퇴로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카르발류가 선호하는 기술 중 하나는 성적으로 천박한 별명을 붙여 상대방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어떤 ‘좌파 인사’가 특정 인종을 학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몰아붙인다. “만일 당신이 그에게 공손하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그의 사상에 품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빌어먹을, 썩 꺼져라, 이 창녀의 자식아!”(5) 하지만 그의 주장이 정당할 때도 있다. 특히 그가 고등교육을 받은 진보주의자들의 거만한 태도를 혹평할 때가 그렇다. 그들은 성인 인구 중 83% 이상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이 나라에서 카르발류가 대학교 졸업장 하나 없다고 조롱한다.

카르발류는 2002년부터 인터넷 웹사이트 <가면이 없는 미디어 (MSM)>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신문사에서 정기적으로 논설을 기고하는 그가 굳이 이 플랫폼을 창설한 이유는 언론사를 장악하는 공산주의의 영향력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소수의 기득권이 언론을 장악한 브라질에서 이 웹사이트는 그 자체로 기발하다.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카르발류의 ‘용기’에 감명받은 극우세력은 그를 ‘극우 지식인’의 대명사로 추앙하게 됐다. 

 

카르발류의 그람시에 대한 집착

이 점성술가의 눈에 ‘공산주의자’ 집단은 미온적 개량주의자, 확고한 사회민주주의자,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 우파)의 신자유주의자까지 포괄한다. 사회 전반의 근대화에 영향을 입은 ‘개방’ 경제의 신봉자들은 카르발류가 ‘그람시 추종자’로 규정짓는 이념작전을 수행하는 핵심세력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눈에 그들은 브라질 사회를 약화시켜 장차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카르발류는 1994년 『A Nova Era e a Revolução Cultural 새로운 시대와 문화혁명』을 출판한 후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에 집착해왔다. 레오나르두 풀리아의 조사 분석에 의하면 카르발류는 이 공산주의 지식인을 “얼간이들 무리를 지도하는 멍청한 예언자”(6)라고 혹평하며 4권의 주요 저서에서 무려 318회(7) 언급했다. “만일 레닌이 쿠테타의 이론을 창안한 사상가라면 (그람시는) 쿠데타가 일어날 토양을 사전에 준비하는 심리적 혁명의 전략을 제시했다. (…) 레닌의 혁명을 난폭한 강간에 비유한다면 그람시의 혁명은 달콤한 유혹이라 할 수 있다.”(8)

카르발류에 의하면 지각하기 어려울 만큼 서서히 진행되는 ‘그람시의 전략’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사회의 도덕적, 기독교적 기초를 붕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낙태를 허용하고, 동성애를 확산시키며 성적 자유를 증진 시키려고 브라질 사회에 대항해 벌이고 있는, 소위 ‘문화 전쟁’인 것이다. 2011년 상원의원 카티아 아브레우는 카르발류의 주장을 단어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옮겼다. “그람시의 문화혁명 전략이 대학가에 주입한 좌파사상의 헤게모니는 사상 면에서 독재질서를 확립했다.”(9) 그녀가 전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여사(노동당)가 이끈 ‘열린’ 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하기 4년 전 일이었다. 

카르발류가 거둔 성공이 그람시가 제시한 의사소통 도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람시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념투쟁을 위해 ‘진지전’과 흡사한 의사소통 도구를 제시했는데, 카르발류가 이것을 활용해 우파 문화혁명으로 보우소나로의 당선에 기여한 것이다. 보우소나루 정부는 반(反)공산주의와 기후문제 및 인권문제에 대한 방관, 여성과 유색인종 및 소수인종에 대한 공격 등을 주요정책 기조로 삼는다. 카르발류는 현직 교육부 장관 아브라함 브라간사 지 바스콘셀루스 웨인트라웁과 외무부 장관, 에르네스토 아라우주를 발탁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주로 대통령과 그의 세 아들들, 즉 플라비우(상원 의원), 에두아르두(하원 의원), 그리고 카를루스(리우데자네이루의 의회 의원)를 통해 발휘된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임기 2003~2010년)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임기 2011~2016년) 집권 시기, 다양한 우파세력은 하나로 연합해 룰라 대통령을 증거도 없이 투옥시켰고,(10) 호세프 대통령을 위헌적으로 파면시켰다.(11) 그러나 보우소나루 당선 이후 우파세력은 분열했고, 정부는 3개 세력의 각축장이 됐다. 8개 장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세력과(12) 경제부 장관 파울로 게드스가 이끄는 급진적 자유주의 세력, 그리고 카르발류와 가까운 극단적 이념 성향의 분파가 정부를 구성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인권부 및 여성가족부 장관, 다마리스 아우베스다. 목사 출신인 그녀는 소년들에게는 파란색 옷을, 소녀들에게는 핑크색 옷을 입히라고 권장했던 인물이다.

이런 정세 속에서 카르발류는 자유 브라질 운동 등 급진적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장군 출신의 부통령, 안토니우 아미우통 모랑을 표적으로 삼는다. 보우소나루가 뜻을 펴지 못하게 막는, 소극적인 ‘온건파’ 정부 인사들을 향해 카르발류는 맹렬한 비판을 쏟아붓는다. 그는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인물로,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모랑 장군을 꼽았다.(13) 

카르발류는 정치적 갈등의 심화를 환영하며, 2019년 5월 26일과 6월 30일에 일어난 시위를 지지했다. 민주주의 체제의 중단을 요구했던 5월 26일 시위는 ‘국민의 야망’을 가로막는다는 비난을 받았다. 6월 30일 시위는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투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판사 세르지오 모로를 지지하는 것이었는데, 훗날 이 판사의 판결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이라고 밝혀졌다. 6월 30일 시위에서 확성기를 장착한 화물차 몇 대가 곳곳을 다니며 카르발류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40년이나 50년 후면, 공산주의자들이 브라질 전체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여러분, 두고 보십시오. 언론, 대학교, 예술계 전부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할 것입니다!” 이 과격한 발언을 통해 카르발류는 이 시위운동의 분열을 기대했다. 다른 진영과 협상을 시도하며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변절자들이 진영 내에서 축출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때가 가까이 왔다.” 

 

 

글·질베르투 칼리우 Gilberto Calil 
브라질 서부 파라나 주립 대학교(Unioeste) 역사학 교수

번역·이근혁
번역위원


(1) Patricia Facchin, ‘Olavo de Carvalho e um efeito da nova direita e nao sua causa 올라부 지 카르발류는 신보수주의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다’, Instituto Humanitas Unisinos, 2018년 12월 19일, ihu.unisinos.br.
(2) ‘Um acerto de contas com a astrologia 점성술에 따른 해석의 정확성’, Porto do Céu, Recife, 2000년 6월. 
(3) Diário do Comércio, São Paulo, 2009년 8월 17일.
(4) ‘Colecao de frases com Cu e cia 저속한 욕설과 고급스러운 표현 모음’, 올라부 지 카르발류, 2015년 4월 20일, https://olavodecarvalhofb.wordpress.com.
(5) Lucas Patschiki, ‘Os litores da nossa burguesia : o Midia Sem Mascara em atuacao partidaria (2002-2011) 브라질 부르주아들의 치안판사(lictor): ‘가면 없는 미디어’(Mídia Sem Máscara)의  유격 활동(2002-2011)’, 석사학위 논문, 서부 파라나 주립 대학교, 2012년.
(6) ‘A nova era e a revolucao cultural : Capitulo II 새로운 시대와 문화혁명: 제2장’, 올라부 지 카르발류, http://olavodecarvalho.org
(7) Leonardo Seabra Puglia, ‘Gramsci e os intelectuais de direita no Brasil contemporaneo 그람시와 오늘날 브라질의 우파 지식인들’, <Teoria e Cultura>, Juiz de Fora, vol. 13, n° 12,  2018년 12월.
(8) ‘A nova era e a revolucao cultural : Capitulo II 새로운 시대와 문화혁명: 제2장’, 앞서 언급한 책.
(9) Lucas Patschiki, ‘Os litores da nossa burguesia 브라질 부르주아들의 치안판사’, 앞서 언급한 책.
(10) Perry Anderson, ‘Au Brésil, les arcanes d’un coup d’État judiciaire (한국어판 제목: 브라질 부패 스캔들의 진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9월호. 
(11)  Laurent Delcourt, ‘Printemps trompeur au Brésil (한국어판 제목: 브라질의 가짜 봄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5월호, 한국어판 2016년 6월호.
(12)  Raúl Zibechi, ‘Que veulent les militaires brésiliens ? (한국어판 제목: 브라질 군부, 무엇을 원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2월호.
(13) ‘Olavo de Carvalho retruca Mourao via redes sociais ; Carlos Bolsonaro apoia 올라부 지 카르발류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모랑에게 대답하고, 카룰루스 보우소나로가 카르발류를 지지한다’, Poder 360, 2019년 4월 23일, www.poder360.com.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