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는 인도와 중국
지난 4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추가된 브릭스(BRICS)가 처음으로 모여 리비아 공습과 달러에 대해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인도와 중국은 국제회담에서 단결된 모습을 보이지만, 일대일 상황에서는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가 몇 달 사이 극과 극을 달렸다. 지난해 12월 원자바오 중국 국가주석이 뉴델리를 방문했을 때 양국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중국이 티베트와 대만에 대한 소유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원 차이나’(One China) 문구가 최종 성명서에서 빠졌다. 인도의 아루나찰프라데시주와 잠무카슈미르주에 대한 소유권을 중국이 인정하지 않자 인도가 보복한 것이다.(1) 한편 지난 4월 중국 산야에서 열린 브릭스(BRICS)(2) 제3회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인도는 한목소리로 신흥국의 이익 수호를 지지하고, (서방국가의) 리비아 군사 개입을 비난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인도 언론은 중국이 수십 년 전부터 독립운동을 벌이는 북동부 민족 반란군에게 무기를 지원했다는 뉴스를 연일 보도했다.(3)
한 손으론 악수, 다른 손으론 뒤통수
2000년대 중반 인도 정부의 주요 인사인 자이람 라메시 환경부 장관은 ‘친디아’(4)라는 개념을 만들어 당시 양국 관계가 얼마간 개선됐음을 보여줬다. 1988년 라지브 간디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이후 양국 사이에 긴장감이 돌게 한 1962년 전쟁의 기억은 사라지고, 공식 회담도 주기적으로 계속 열렸다. ‘인도-중국,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협약’(2005) 같은 중요한 협약도 여러 건 체결됐다. 외교적 측면에서 인도는 (중국이 1954년부터 주장한 대로)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확인했고, 중국은 1974년 인도에 병합된 시킴주가 인도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양국 교역 규모는 2000년 30억 달러에서 2010년 617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해, 중국은 인도의 제1교역국이 됐다.
그러나 1988년부터 국경분쟁에 관한 꾸준한 교섭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이 문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2009년 중국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인도에 29억 달러를 융자해주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이 가운데 일부(약 6천만 달러)가 중국이 인도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이뤄지는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인도와 달리 1913년 영국과 당시 티베트 정부가 합의해 정한 ‘맥마흔 라인’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 지역은 ‘남티베트’이며 자신의 영토로 간주한다. 같은 해 중국은 만모한 싱 총리가 이 지역에 방문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제6대 달라이 라마가 탄생한 타왕 티베트 불교사원에 대한 중국의 이런 불안한 모습은 그의 후계자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게다가 중국 당국은 2009~2010년 잠무카슈미르주를 인도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지역 주민에게 그들이 보유한 인도 여권이 아닌 낱장 종이에 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5) 중국이 지난해 7월 북부 군사지역의 수장이던 육군 중장과 함께 이런 일을 벌일 때, 인도는 이 육군 중장이 동행하기로 돼 있던 공식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
적의 적을 이용해 벌이는 헤게모니 전쟁
인도와 중국의 영토분쟁은 인도양에서 한층 격화된다. 인도는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호르무즈해협까지 항구 신설)과 티베트 고원 미사일 배치로 인한 포위망에 고심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인도가 안다만제도를 이용해 ‘마레노스트룸’(‘우리의 바다’, 여기서는 ‘중국해’) 접근로를 막을 힘이 있다고 믿는다.(7) 양국의 석유 공급원이 대부분 근동에 있고, 인도양을 통해 석유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양쪽의 이해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군비 급증이 보여주듯, 양국이 해군을 필두로 전체 병력 강화에 힘쓰는 모습은 그리 놀랍지 않다.(8)
인도와 중국의 라이벌 관계로 인해 지역 연합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은 인접국인 파키스탄·버마(미얀마)·스리랑카는 물론이고 인도가 우호관계를 유지·발전시키려는 이란·네팔·방글라데시와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인도는 베트남·싱가포르·일본 등 중국의 성장을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국가들과 협력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는 2006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다. 인도는 미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일 관계와 더불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파트너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이런 복잡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자간 기구에서는 점점 힘을 모으고 있다. 아시아 국가 간, 좀더 넓게는 신흥국 간 기구가 다양해지면서 교역량과 교역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현재 아시아 지역과 전세계에서 약 6개의 동종 기구에 가입했다.
브릭스 등 다자간 기구에선 연대 과시
러시아-중국-인도로 이뤄진 전략적 삼각동맹과 더불어 가장 주목할 만한 모임은 바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2009년 6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정상회담의 최종 결의안에서 BRICS는 ‘다극세계’ 출현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2회 정상회담에서는 이란 사태 같은 전략지정학적 사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BRIC(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회원국이 아니었음)는 서방국가의 제재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지난 4월 중국 산야에서 열린 제3회 정상회담에서 BRICS는 경제력이 향상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새로 영입하면서 진정한 정치기구로 거듭났고, 중국과 인도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 개발 어젠다와 코펜하겐 회의에서 그랬듯이 신흥국의 이익 수호를 지지했다. BRICS는 서방국가의 리비아 공습을 비난하고, 유엔에서 입지 강화를 주장하며, 브라질과 인도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이 돌아가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총재 자리를 독식하던 관행을 끝내도록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중국과 인도의 상대적으로 치열한 국경분쟁은 서방국가를 저지하며 확대한 다자간 교역량으로 보완된다. 중국의 적개심은 새삼 놀랄 것도 없지만, 인도의 몇몇 사안에 보이는 모호한 태도는 혼란스럽다. 인도는 이 나라를 북반구와 남반구를 잇는 연결다리(브리지 파워)로 보는 옥시덴탈리스트와 워싱턴 컨센서스(9)를 ‘아시아 컨센서스’, 더 나아가서는 경제자유주의와 정치권위주의를 조합한 베이징 컨센서스로 대신하려는 오리엔탈리스트(여기에서는 에드워드 사이트가 말한 서구의 편견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친동방주의자를 의미함) 간의 첨예한 대립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성장에 매료된 인도 지식인층은 후자를 지지한다. 라지브 쿠마르 인도상공회의소(FICCI) 소장은 산야 회담에 참석한 뒤 “중국 자본주의에서 주목할 점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계를 완벽히 지웠다는 점”이라며 “양쪽이 공산당의 지지 아래 투명하게 공조한다”고 감탄했다.(10)
지금은 화해 무드, 그러나 얼마나 갈까
인도의 외교정책 분야 인사 중에는 민주주의를 이상이 아니라 정치적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도가 (파키스탄의 세력을 약화시킨) 아프가니스탄 군사 개입에 나선 것은 정당하지만,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략을 비판하는 서방세력에 동조하거나 리비아 공습을 승인하는 유엔 결의안 1973호를 지지한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인도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보문제 책임자는 이웃 중국의 성장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서방국가에 맞서 중국 편에 서고 있고, 경제계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산야 정상회담과 별도로, 인도와 중국은 지난해 7월 사건 이후 냉각된 방위 분야 협력을 재개하고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며(현재 인도가 250억 달러 적자 기록) 국경분쟁에 관한 새로운 협의기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친파키스탄인 미국에 압력을 가하고 싶은 인도의 욕망이 반영된 양국 간 관계 개선이 얼마나 지속될까? 누구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양자 관계와 다자간 기구에서 서방국가에 대한 연합을 분리해 접근하는 그들의 능력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글·크리스토프 자프르로 Christophe Jaffrelot
시앙스포아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가 공동 출자한 프랑스 국제학연구소(CERI)의 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현실정치와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성장한 신흥세력 인도와 세계>(오트르망 출판사·파리·2008) 등이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수지트 두타, ‘떠오르는 중국을 관리하고 관계를 맺어라, 발전하는 인도의 태도’ <더 워싱턴 쿼털리>, 34호, n°2, 2011년 봄호, p.133.
(2)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약자다.
(3) 사이카트 다타, ‘중국의 위대한 발톱’, <아웃룩>, 뉴델리, 2011년 2월 7일자 참조.
(4) 자이람 라메시, <친디아를 이해하라, 중국과 인도에 대한 고찰>, 인디아리서치프레스, 뉴델리, 2005.
(5)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부터 카슈미르의 소유권을 놓고 대립 중이다.
(6) 크리스토프 자프르로, ‘두 개의 항구 이야기, 아라비아해의 과다르와 차바하르에서 펼쳐지는 중국과 인도의 경쟁’, <예일글로벌>, 2011년 1월 7일자 참조(yaleglobal.yale.edu).
(7) 마티유 뒤샤텔, ‘중국의 해군력, 푸른 바다로 뻗어나오다’ 중 ‘인도양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차이나 애널리시스>, 2011년 3월호, pp.3~5.
(8) 중국의 군비예산은 30년 전부터 연평균 10%씩 증가해 2011년 공식적으로 910억 달러에 달한다(국제안보연구소, <2010년 각국의 군비지출>, 런던, 2011). 인도의 2009·2010년 군비예산은 전년 대비 3분의 1가량 늘어난 320억 달러다. 그러나 실제 예산은 공식적인 수치보다 높을 것이다.
(9) 1980~90년대 채무국에 강요했던 자유무역 조처를 말한다.
(10) 라지브 쿠마르, ‘중국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교훈’, <비즈니스라인> 2011년 4월 16일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