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번개’
프랑스 토탈사는 지난 5월 13일, 폴란드의 셰일가스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셰일가스 에너지원 사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개발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셰일가스의 위험성을 신속하게 폭로한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의 공이 컸다.
반대자, 기업, 국회의원들이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무슨 영문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셰일가스와 셰일유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들이 보인 반응이다. 지난 4월 중순, 갑자기 정부는 셰일가스(Shale Gas)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1년 전만 해도 조용히 사업을 허가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떠들썩하게 개발 금지 쪽으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 셰일가스는 오래전부터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18일 텍사스주 포트워스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뉴욕주는 개발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발 금지법 도입까지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셰일가스 굴착이 처음 시도된 것은 1821년이지만,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것은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에너지 자립이 국가안보에 직결된다고 선언한 뒤부터다. 현재 북미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의 절반은 역청질 모래나 셰일유, 셰일가스 등의 에너지원에서 나온다(셰일가스 비율은 현재 20%. 향후 10년 안에 40~50% 예정). 2005년 개정된 미국 에너지법(Energy Policy Act)에 의해 석유·가스 회사들은 공기·수질과 관련한 일부 법규 적용을 면제받게 되었다. 기업들에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신이 준 선물’, 그러나 환경재앙
시추공마다 최대 14회까지 반복되는 이 작업은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고 심각한 환경문제를 초래한다. 지하수와 대기 오염뿐 아니라 폐수 처리가 골치 아픈 문제다. 지하에 매장된 라듐 등과 접촉한 물은 방사능에 오염돼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 지금까지 총 50만 개 유정 중 80여 곳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가스 누출, 파쇄용 액체 역류, 가옥 폭발, 가축 사망 등 갖가지 사고가 발생했다.
기술적 논란 속에서도 셰일가스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셰일가스는 기존 천연가스에 비해 매장량이 5배 더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1세기가 ‘가스의 황금기’가 되고, 화석연료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론자에겐 애석한 일이다. 셰일가스는 독일·스웨덴·폴란드에도 매장돼 있고, 프랑스가 유럽 전체 매장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탐사 허가가 난 면적만 프랑스 전체 국토의 10%에 달한다. 지난해 3월에는 장루이 보를로 환경에너지부 장관이 몽텔리마르에서 몽펠리에, 세벤에 이르는 9672㎢의 지역에 대한 탐사를 허가했다. 파리 주변 지역의 셰일유 600억 배럴과 미디 지방의 셰일가스 매장량 5조㎥- 연간 원유 소비량의 5%, 90년간 가스 소비량- 라면 ‘프랑스는 지식과 석유, 가스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한편 광산업 계통 출신의 고위 공무원들과 행정 당국은 토탈, GDF-수에즈, 북미 경쟁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3)
주요국들, 관련 업계에 온갖 특혜
프랑스에서는 경제 관련 미디어들을 제외하고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르몽드> 2010년 3월 21일자에 실린 에르베 캉프의 기사와 2010년 10월 유전 개발 위험을 폭로한 <샤를리 엡도>의 기사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라르자크와 세벤의 주민 거주 지역 사이에 있는 탐사 지역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문제가 심각해질 것을 예감했다.” 파브리스 니콜리노 기자는 “예전에 조제 보베가 벌인 운동이 다시 불붙을 거라고 예상했다”. 캉프와 니콜리노, 두 기자는 아베롱의 생장드브뤼엘에서 지난해 12월 20일 열린 첫 집회에 참가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당장이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관심 갖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불어났다.”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미국과 퀘벡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아르데슈, 아베롱, 드롬, 가르의 집회에서 상영된 미국 감독 조슈 폭스의 다큐멘터리 <가스랜드>(Gasland)를 본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화면 속에서는, 수도꼭지 밑에 성냥불을 갖다 대자 물에 불이 붙거나, 지하수를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고, 물에서 벤젠 성분이 검출되고, 강 주변 주민들이 병에 걸렸다. 니콜리노 기자는 “문제가 절박함을 깨달은 주민들이 분노에 사로잡혔다”고 전한다. 영화를 한 번 상영할 때마다 새로운 단체가 결성됐다. 새로운 단체의 인터넷 주소가 메일링 리스트에 추가됐다. 이 사이트들은 회원이 서로 결속을 다지고 정보를 교환하고 활동을 조직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관심을 보인 건 지역 언론뿐이었다. 지난해 12월 ‘Owni.fr’라는 사이트에 처음으로 심층조사 보고서를 올린 실뱅 라푸아 기자는 “복잡하고 기술적이며 지역적이라는 이유로 기존 언론들은 보도를 꺼린다”고 말한다. “웹 덕분에 다양한 분야를 접목할 수 있었다. 나는 정치적·경제적·외교적·기술적 관점을 부각시켰다. 애니메이션 같은 도구를 사용해 네티즌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수압파쇄 공법과 그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지난 2월 26일 빌뇌브드베르(아르데슈)에서는 1만8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같은 달 초 기업들에 오는 6월 중순 환경에너지부 광산토목 전문가들의 조사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수압파쇄 공법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4월 중순에 나온 중간보고서는 탐사 허가 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면서, “주민과 지역 의원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물을 수 있게 광산 개발 관련 법규를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1월 행정명령으로 개정된 법은 이와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늦게나마 비판적 의견이 제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교사인 로랑 뉘리는 인터넷을 통해 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정법에는 탐사 허가와 관련해 관련 주체들 간의 협의나 파급효과 예측, 해당 법인체의 탐사 허가 정보 공개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기술적인 서류는 20년 간 공개하지 않아도 되었다. 뉘리는 “한편에서는 법 개정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수압분쇄 공법 사용을 보류하는 식으로 정부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언론이나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었지만, ‘르포스트’(Le Post)와 ‘아고라복스’(Agoravox) 등 네티즌 참여 사이트에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8개 문서로 정리해 올렸다. <NKM(4)과 정부의 거짓말>이라는 동영상도 ‘데일리모션’(Dailymotion) 사이트에 올렸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운동연합(UMP) 소속 국회의원 피에르 모렐 아리시에와 접촉했고, 국회 셰일가스 관련 청문회에 초대받기도 했다.
80여 개에 달하는 단체 안에는 그처럼 감시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는 지질학이나 법 관련 전문가들도 있다. 인터넷 덕분에 회원들은 원할 때면 언제라도 항상 열려 있는 포럼에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로제르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멜리나 가쿠앵은 지난 1월 모든 회원이 동등한 자격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포럼을 열었다. 발드마른에서 전산 관련 일을 하는 프랑크 제스베르가 만든 페이스북 그룹 회원은 4천 명에 달한다. 그는 센에마른 지역 셰일유 개발 계획 정보를 얻기 위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프랑스 탄화수소 탐사생산국(BEPH) 보고서를 찾아 읽는다. 비밀스럽게 준비 작업이 진행되는 시추 현장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사진을 찍기도 한다.
프랑스 지역민들, ‘공포 체험’ 뒤 반대운동
그 말고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주민이 많다. 현장 트럭 진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은 비상연락망을 만들었다. 누군가가 처음 연락하면 각각의 활동가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5명에게 전화하고, 연락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5명에게 연락하는 식이다. 전국 단위로 연합한 각 단체들은 자율적 방식으로 운영된다. 안나 베드니크는 자신이 속한 일드프랑스 지역 단체가 체계는 없지만 상당히 적극적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수평적인 조직 덕분에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쉽다.” 이 단체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지도자나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 정파에 종속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생태유럽-녹색당(EELV)과 전 환경부 장관 코린 르파주가 이끄는 Cap21 운동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뒤이어 좌파전선도 합세했다. 이 문제와 직결된 지역구에서는 지역 의원들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셰일가스 개발 금지 법령 개정안이나 발의안에 표를 던졌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지방의회·상원의회 선거와 2012년의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인들이 시민 의견에 귀기울이는 일은 특별할 것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반대운동에 앞장선 시민들의 홍보가 큰 몫을 했다.
직업 기자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대조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료 조사를 의뢰하며, 수집된 정보를 분류해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뱅 라푸아 기자는 ‘셰일가스의 위크리크스’인 ‘Ownischiste’(5)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에 올린 자료의 3분의 2는 시민들이 국가법률정보 사이트(L?gifrance)나 시청 같은 곳에서 수집한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이 발견한 정보의 가치를 알기 위해 내게 문의를 한다.” 웹2.0 덕분에 가능해진 ‘대중의 정보 생산’ 방식인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하는 것이다.
SNS 등 동원해 탐사 보류 첫 성과
시민들은 갈수록 전문화되는 정보력을 바탕으로 최근 조금씩 고개를 드는 반대자의 논리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셰일유와 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사이트나 블로그가 30개가 넘는 데 반해, 파리 지역 유전 개발에 찬성하는 사이트는 오직 하나뿐이며 석유회사 토탈은 최근 교육적 목적으로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했다. 언론들은 사회당(PS), 보를로가 이끄는 급진당, 국민운동연합(UMP) 등이 유전 개발 금지 법안을 제안하자 비로소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이미 발부된 허가권은 여전히 유효하며, 수압파쇄 공법만 아니라면 다른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각 지역 단체들은 반대 활동을 계속 진행할 태세다. “첫 싸움은 승리로 끝났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글·에마뉘엘 라울 Emmanuel Raoul
언론인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1995~2000년, 미국 회사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는 딕 체니였다. 그는 그 뒤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다.
(2) ‘Toxic contamination from natural gas wells’, <뉴욕타임스>, 2011년 2월 26일자.
(3) 캐나다인 폴 데마레와 벨기에인 알베르 프레르가 토탈과 GDF-수에즈의 최대 주주다. 니콜라 사르코지와 가까운 사이인 이들은 2008년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을 받았다.
(4) 환경·지속적 발전·교통·주택 장관인 나탈리 코시우스코-모리제(Nathalie Kosciusko-Morizet) 장관의 이니셜이다.
(5) http://schiste.owni.fr.